WORLD HOT 벨기에 | 리에주 오페라 ‘라 페리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2월 10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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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주 오페라 ‘라 페리콜’ 2024.12.20~31

150년산 뼈 있는 유머

 

오펜바흐 연출 베테랑은 이 오래된 유머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브뤼셀과 안트베르펜에 이어 벨기에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리에주는 대학도시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19세기부터 이 도시를 부흥시켰던 철강산업은 1960년대 이후 쇠락했으나, 여전히 항공, 정밀 공업 등 다양한 산업이 이 도시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이 도시의 자랑거리는 지역 특산물인 품질 좋은 맥주와 초콜릿뿐만이 아니다. 리에주 왕립오페라(루아얄 드 왈로니) 또한 이 도시를 방문해야 하는 충분한 동기를 가졌다.

벨기에에는 3개의 왕립오페라가 있다. 모네 광장에 위치해서 ‘라 모네’라고도 불리는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 겐트와 안트베르펜의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 마지막으로 리에주의 왈롱 왕립오페라가 바로 벨기에를 대표하는 오페라의 명소인 셈이다. 이 극장들의 분위기와 기운은 대단하다. 의욕적이고 실험적인 프로덕션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관객들도 애정으로 호응한다. 이 극장들이 품었던 예술가는 다양한 경험으로 성장한 후 더 큰 무대로 활공하곤 한다. 현재 세계 정상급 극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지휘자 스페란차 스카푸치(1973~)도 2022년까지 리에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했다.

 

근거 있는 자신감에서 나온 과감함!

©Vincent Pontet

리에주의 도전정신은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곡가의 가장 생소한 작품을 발굴할 때, 가령 베르디의 ‘알지라’(1845)처럼 아예 존재조차 잊힌 작품을 과감하게 시도할 때 빛을 발한다. 나아가 프랑스 레퍼토리에도 강점을 보여준다. 들리브의 ‘라크메’(1883), 다니엘 프랑수아 에스프리 오베르(1782~1871)의 ‘르 도미노’,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등 자주 공연되지 않는 프랑스 명작을 조명하는 데도 열심이다. 이번 오펜바흐의 재발견 역시, 이 흐름 속에 있다.

오펜바흐는 리에주의 단골손님이다. 2021/22 시즌에는 ‘호프만의 이야기’가 있었고, 2022/23 시즌에는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의상과 연출을 맡았던 ‘파리지앵의 삶’이 화제가 됐다. 이번 2024/25 시즌에는 ‘라 페리콜’(1868)이 찾아왔다. 연출은 맡은 로랑 펠리(1962~)의 필모그래피는 ‘아름다운 헬레네’(2000/파리·런던·산타페), ‘호프만의 이야기(2003·2013/로잔·리옹·바르셀로나·샌프란시스코·베를린), ‘제롤슈타인 대공비’(2004/파리·제네바), ‘파리지앵의 삶’(2007/리옹·툴루즈), ‘달나라 여행’(2023/파리·아테네·빈) 등, 이미 다양한 오펜바흐의 작품들을 구비하고 있다.

펠리의 연출은 영리하다.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재주뿐 아니라 미장센을 배급하는 방법도 총명해 보인다. 그는 단 하나의 극장을 위한 프로덕션을 제작하지 않고, 여러 극장의 공동제작을 유도하여 연출에 보편성과 가변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수차례 TV로 방영됐으며, 상당히 많은 작품이 DVD로도 발매됐다. 이번 ‘라 페리콜’도 샹젤리제 극장, 디종 극장, 리에주 극장의 공동제작으로, 2022년에 파리에서 선보이고, 2023년 프랑스 디종과 툴롱을 거쳐 2024/25 시즌에 리에주에 안착한 프로덕션이다.

 

‘19세기’와 ‘21세기’의 소통 완료

펠리의 영리한 연출은 대중성을 보증하면서도 작품 속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정치·사회 등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작품에 숨겨 놓은 오펜바흐는 그가 즐겨 다루는 작곡가다. 오펜바흐를 21세기의 청중이 이해하게 만들려면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는 그의 전용 극장이었던 ‘부프 파리지앵’과 같은 소규모 무대를 위해 쓰였다. 오늘날 1,000석이 넘는 극장의 관객을 염두에 둔다면 19세기 당시 메이야크와 알레비 콤비가 풍자의 매콤한 맛으로 쓴 원작 대사는 안타깝게도 그 효용이 다했다. 지금은 런던과 리에주를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에 로랑 펠리는 완전히 새롭게 쓴 대사를 사용했다. 그와 1989년부터 긴밀하게 작업해 온 극작가 아가트 멜리낭이 작업한 대사는 19세기 중반의 파리와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멜리낭의 대사는 마이크가 없이도 극장 구석구석에 잘 전달됐고, 프랑스어·영어·독일어·플랑드르어까지 4개 언어로 제공되는 자막이 가수들의 대사 속도에 맞춰 기민하게 반응했다. 덕분에 오펜바흐의 희열은 단 한 순간도 휘발되지 않고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파됐다.

©Vincent Pontet

작품의 배경은 남미의 페루이다. 거리의 가수인 페리콜과 피퀼로는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만 ‘굶주림’이라는 가장 큰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편 권력자 돈 안드레스는 아름다운 페리콜을 탐한다. 그는 물질로 그녀를 유혹하지만, 페리콜은 사랑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결국 이겨낸다는 내용이다. 이는 오펜바흐 당시의 파리 제2제정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내포되어 있다.

펠리는 2002년에 마르세유에서 ‘라 페리콜’을 연출한 바 있는데, 20년 전에는 희극적인 면에 비중을 두었다면 이번 공연의 방향은 “웃음 이면의 암울한 현실인 구걸·매춘·폭정 등을 부각하고자 했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가 강조한 현실은 천박함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오펜바흐라는 거울에 반사되어 다른 빛을 발했다. 마치 조개가 오염물질을 빚어서 진주를 만들어내듯,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으로 변했다.

이는 페리콜 역의 앙투아네트 드네펠드와 피퀼로 역의 피에르 드레를 비롯한 전 출연진의 열연 덕분이었고, 민첩하면서도 우아한 선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클레리아 카피에로의 뒷받침 덕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단원이 주도적인 에너지를 보여준 합창단의 열창 역시 다시 한번 리에주를 찾겠다는 다짐을 갖게 했다.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사진 리에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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