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시벨리우스에 깊이를 더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3월 1일 9:00 오전

SPOTLIGHT

 

시벨리우스에 깊이를 더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2년 만에 국내 6개 도시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여는 콩쿠르 위너의 새로운 도전

 

 

2022년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이후, 양인모의 일상은 바빠졌다. 핀란드에서만 22번의 연주가 이어졌고, 거의 모든 핀란드 악단과 호흡을 맞췄다. 국내 무대에도 부지런히 올랐다. 지난해 3월에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와, 9월에는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과 협연을 펼쳤다. 그는 바쁜 시간 속에서도 음악적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휘자 없는 현악 앙상블과의 협연, 시벨리우스의 재해석, 뉴욕필 데뷔 등 그의 말대로 ‘안 쓰던 근육’을 쓰며 균형 잡힌 도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양인모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의 일상을 묻자, “잦아진 공연 일정 때문에 주로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특히, 하루의 시작을 텔레만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12개의 환상곡’ 연습으로 연다고. “텔레만은 바흐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예요. 최근 무대에서 앙코르곡으로 종종 연주하고 있는데, 다음 시즌에 한국에서 전곡을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매일 한 악장씩 연습하고 있어요.” 그는 다음 시즌을 기약했지만, 어쩌면 곧 앙코르곡으로 그의 텔레만 연주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막연한 바람은 아니다. 올봄, 그의 ‘내한’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양인모는 오는 3월, 2년 만에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다. 시벨리우스와 슈베르트의 작품만으로 꾸민 무대다. 대전·울산·서울·대구·고양 그리고 춘천까지, 총 여섯 번의 공연을 이어간다. 새로운 음악적 파트너도 찾았다. 그는 이번 투어의 모든 일정을 피아니스트 조나단 웨어(1984~)와 함께 한다.

 

 

피아니스트 조나단 웨어 ©Kaupo Kikkas

조나단 웨어(피아노)와는 어떤 인연으로 함께하게 됐나요?

이번 리사이틀을 계기로 처음 만났어요. 웨어는 소프라노 골다 슐츠(1983~), 엘자 드라이지히(1991~)와 음반을 발매하는 등 성악 반주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슈베르트를 포함해 서정적인 곡들이 많은 이번 프로그램의 섬세한 면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하기로 했어요. 최근에 한 번 연주를 맞춰봤는데, 서로의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한국에 가기 전까지 계속 리허설을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 계획입니다.

프로그램을 시벨리우스(1865~1957)와 슈베르트(1797~1828)의 작품으로 구성했어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곡이기도 한데요.

시벨리우스 콩쿠르 때부터 구상했던 프로그램이에요. 바이올린 협주곡 외에도 60곡 이상의 바이올린 소품을 남긴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을 한국 관객에게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함께 연주할 작품을 고민하다가 그와 정서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고르게 되었고요.

두 작곡가의 어떤 면이 특히 비슷하게 느껴졌나요?

어느 날, 시벨리우스의 악보를 보는데 슈베르트가 썼던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슈베르트의 악보를 펼쳐보니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았죠. 둘은 시대적으로 봤을 때, 중심에서 벗어난 작곡가들이었어요. 마치 숲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말이에요. 두 작곡가를 같은 프로그램에 배치하면 페어링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보완해 주는 느낌이 있어요. 제가 음악학자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두 작곡가 사이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벨리우스의 소품들과, 널리 알려진 슈베르트의 곡을 함께 연주하며 이들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 보고 싶어요.

시벨리우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애정이 느껴지네요. 콩쿠르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시벨리우스와 양인모의 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콩쿠르 이후, 핀란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곳에 머무는 동안 자연, 사람, 언어, 음식 등 핀란드 문화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시벨리우스 음악을 듣고 처음 느낀 감정은 무뚝뚝함이었는데, 그 무뚝뚝함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돼요. 아마도 핀란드 특유의 화법이나 정서가 반영된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부분들을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연주하려는 편이에요.

 

새로운 도전과 배움의 시간

지난해 국내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등 지휘자 없는 현악 앙상블과의 협연 무대를 이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단원들과의 호흡은 어떻게 맞췄나요?

지휘자 없는 연주는 2023년 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와 함께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다 보니 낯설고 어려웠죠. 리허설도 직접 리드해야 하고, 솔리스트를 넘어 리더로서 보여줘야 하는 것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악보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제 음악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한 시즌에 한 번은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지휘자 없이 연주할 땐 악단과 솔리스트 간의 ‘케미’도 조금 더 각별해지는 것 같아요.

올해는 뉴욕필 데뷔 무대(2.11)를 비롯해 리치몬드 심포니와의 협연(3월), LA 필하모닉의 ‘서울 페스티벌’(6월) 등 미국에서의 공연도 여럿 예정되어 있습니다.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던 만큼, 미국 무대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보스턴 유학 시절은 제 음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비록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경험하기 위해 유럽에 왔지만, 미국 오케스트라만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다고 생각해요. 따듯하고 너그러운 소리라고 할까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서 그런지 가끔은 그 소리가 그립기도 해요. 사실, 미국에 연주하러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앞으로 미국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며 그들의 소리를 더 들어보고 싶어요.

최근 음악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요?

소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연주를 할수록 다양한 홀에서 제 소리를 듣게 되는데, 소리가 어떻게 퍼지고 전달되는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어보려고 하죠. 요즘은 ‘어떻게 하면 잡음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요. 예전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음을 지탱해 주는 소음이 소리가 뻗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3월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었인가요?

이렇게 다양한 레퍼토리로, 다양한 지역에서 연주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에요. 준비를 잘해서 연주를 잘 마무리하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저는 이제 학생 신분에서 거의 벗어나서, 따로 레슨을 받지 않아요. 스스로 음악적인 영감을 찾아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함께 연주할 지휘자와 동료 음악가들, 그리고 수많은 공연의 리허설을 통해 새롭게 배워나갈 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홍예원 기자 사진 프레스토컴퍼니·평창대관령음악제

 

양인모(1995~)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안티에 바이타스 사사로 한스 아이슬러 음대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현재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양인모·조나단 웨어 듀오 리사이틀

3월 14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3월 15일 오후 5시 울산 현대예술관 대공연장

3월 16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19일 오후 7시 30분 춘천문화예술회관(강원의 사계 ‘봄’)

3월 21일 오후 7시 30분 대구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3월 22일 오후 5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D384, 론도 브릴란테 D895, 시벨리우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전원 춤곡 Op.106,

바이올린 소나티나 Op.80,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Op.116,

리스트 ‘슈베르트 비엔나의 밤에 의한 왈츠 카프리스’ S.427/6(오이스트라흐 편곡)

 


 

REVIEW FROM_USA

 

티엔이 루/뉴욕 필하모닉(협연 양인모)

2월 11일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펀홀

 

©Chris Lee

뉴욕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는 미국 내 동양인이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오케스트라의 연례행사다. 첫 곡으로 선보인 리 환즈의 ‘춘절서곡’은 신년음악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경쾌한 걸음으로 무대 위에 걸어나온 지휘자 티엔이 루는 빠른 도입부에 맞는 에너지를 내뿜으며 신명나게 첫 곡을 이끌어갔다. 두 번째로 연주된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미친 다과회의 서막’은 리듬과 다이내믹, 독창적인 색채를 가진 흥미로운 구성으로, 상상하는 것을 실제 음악에 구현하는 작곡가의 역량이 돋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뉴욕필 데뷔곡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첸 이(1953~)의 ‘중국 민속 무용 모음곡’(2000)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었다. 중국의 문화적 배경과 서양음악을 조화롭게 표현한 작곡가 첸 이의 업적은 릴리 불랑제 상·링컨센터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엘리스 스토거 등을 수상하며 인정받았다. 연주는 바이올린 솔로의 화려한 도입부로 시작했다. 타악기 앙상블과 현악기 군의 피치카토로 리듬이 생기다가 곧 금관악기가 가세하면서 바이올린 솔로도 빠른 패시지로 이어 나갔다. 곡의 구성상 타악기와 다른 악기 소리 속에서 솔로의 소리가 충분히 주목받지 못해서 아쉬웠다.

2악장에서는 중국 음악의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벼운 리듬 위에 단원들이 악기 대신 입으로 리드미컬한 바람 소리를 내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바이올린 솔로 역시 중국다운 느린 선율로 연주되었고, 아카펠라와 같은 소리와 어우러져 공간의 여유를 만들어냈다. 중국과 아라비안, 스페인계 음악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혼합된 3악장은 흥미로웠다. 양인모는 카덴차에서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며 명쾌한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섬세하고 부드럽게 연결하는 구간에서 빠르고 강렬하게 이어가는 곳을 절묘하게 오가며 그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곡은 잘 알려진 오페라 ‘카르멘’의 모음곡 1번. 앙코르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2번과 8번이 연주되며 공연이 마무리됐다.

양승혜(뉴욕 통신원) 사진 뉴욕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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