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감독 제임스 맨골드
음악 스티븐 기지키
출연 티모테 샬라메, 에드워드 노턴, 엘 패닝, 모니카 바바로, 보이드 홀브룩
‘컴플리트 언노운’
전설의 시작 혹은 완성된 전설, 그 사이의 어딘가
사람들은 예술이, 그리고 예술이 담고 있는 동시대성이 저항적이고 사회 문제를 강하게 비판할 때 가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예술가는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계는 물론 사회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랬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저항적인 예술을 찬미하던 사람들이, 정작 그것이 기존 질서를 위협하고 사회와 예술계를 망친다며 밀어내기 시작한다. 전복의 가치와 가치의 전복, 그 사이에서 예술은 어디쯤 있어야 할까?
1960년대의 밥 딜런 행적을 좇다
1961년, 미네소타 출신의 청년 밥 딜런(1941~)은 음악을 하기 위해 뉴욕에 도착한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포크 음악의 거장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턴 분)의 지지를 받으며 대중에게 유명 가수로 알려진다. 포크 음악의 여왕이었던 존 바에즈(모니카 바바로 분)와의 만남은 음악적으로도 큰 성공을 이끌어 밥 딜런(티모테 샬라메 분)은 포크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자신을 계속 억압하는 듯한 포크 음악계와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을 요구하는 팬들에게 질린 그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원성을 사게 된다. 대부분의 전기 영화가 인물의 격변기와 흥망성쇠를 극적으로 그리며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과 달리, 제임스 맨골드(1963~) 감독은 음악이 저항의 수단이기도 했던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꾼 밥 딜런의 5년을 뚝 잘라서 보여준다.
1960년대는 모더니즘의 등장과 핵전쟁의 공포, 인권과 여권 신장 등이 이슈로 떠올랐던 시절이었고, 2차 대전 이후 앤디 워홀(1928 ~1987)의 팝 아트와 포크 음악이 미국의 중심을 이루었던 때였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컨트리 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조니 캐시(1932~2003)의 일대기를 그린 음악영화 ‘앙코르’(2005)로 음악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이미 인정받았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1960년대를 향한 향수와 복고에 대한 달콤한 추억보다는 한 시절을 살았던 전설적인 음악인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영화에 담긴 읽고 듣는 재미
사실 밥 딜런은 여전히 현존하는 아이콘이다. 그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앞으로 더욱 거대한 전설이 될 예정이다. 그는 음악 인생 60년 동안 정규음반 40개를 발매할 정도로 부침 없이 꾸준히 활동했다. 2016년에는 시적인 가사를 인정받아 팝 가수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라는 전설적 인물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프리퀄 같기도 하다.
뚝 끊어서 보여주는 밥 딜런 인생의 5년에는 대단한 기승전결이 있지 않다. 그래서 왠지 심심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기승전결은 밥 딜런 역의 티모테 샬라메(1995~)가 완성한다. 그는 캐스팅부터 촬영까지의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밥 딜런이 되기 위해 연습하고 학습했다. 티모테 샬라메는 강한 인상을 지닌 밥 딜런과 달리 훨씬 더 예쁘지만, 외적 싱크로율에 집착하지 않고 밥 딜런에게 음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살피며 그 진심을 가장 밥 딜런다운 모습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모든 노래를 직접 부르고,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도 직접 라이브로 소화했다.
영화의 제목인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 최고의 노래 중 하나인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에서 발췌한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큼 밥 딜런 노래 가사는 시적이다. 아름다운 선율뿐만 아니라, 자막을 따라 시적인 가사도 함께 느끼고 감상하면 더 즐겁다. 보고 듣고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영화의 장점에 읽는 재미를 더한 셈이다.
밥 딜런이 만든 거대한 변화
영화 속에서 포크 음악의 선구자인 피트 시거(1919~2014)가 ‘창발 이론’에 대해 말한다. 이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새로운 파장을 만든다는 것은 곧 기존의 파장에 맞서 이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완전한 무명(complete unknown)’이었던 밥 딜런은 뉴욕 포크 음악계에 낙석처럼 던져져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고, 그가 만들어낸 변화는 태풍처럼 거대한 것이 됐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밥 딜런이 포크 페스티벌에서 ‘구르는 돌처럼’을 부르는 장면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22분짜리 공연을 그대로 현장 중계하듯 촬영하여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박진감을 준다. 사람과 사유 사이에서 굽히지 않는 밥 딜런의 실험정신이 관객과 만나는 순간, 전율을 일으킨다.
밥 딜런은 안정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음에도 음악에 자신의 신념을 담는다.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포크 음악 대신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며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세상이 규정하는 예술이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음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밥 딜런의 음악에 담긴 저항과 혁명에 열광하던 관객이 그의 파격적 변신에 저항하는 모습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 맞서 자신의 음악을 밀어붙이는 밥 딜런의 뚝심은 묘하게 짜릿한 면이 있다. 동료들이 “배신자”라며 그를 폄하하던 밤, 밥의 변화는 배신이 아니라 그가 진짜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유일하게 인정한 우디 거스리(1912~1967)의 마음은 이제 모두가 이해하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전복의 가치와 가치의 전복 사이에서 예술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사회적 맥락에서 동시대성을 저버리지 않는 정신, 그것은 반항이라기보다 시대를 읽는, 즉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는 시대정신으로 보인다. 밥 딜런은 포크 음악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포크 가수로 규정하는 일에 맞선다. ‘완전한 무명’이 되더라도 자기 정체성만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그의 선언은 꽤 울림이 크다.
[OST] 음악감독 스티븐 기지키 | 콜롬비아 레코드
‘라라랜드’(2016)의 음악감독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음악상을 수상한 스티븐 기지키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음반은 23곡을 담은 2CD 버전과 16곡을 담은 LP 버전, 두 가지 형태로 출시되었다. 음반에는 티모테 샬라메가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 버전이 수록돼 있다. 밥 딜런이 부른 음악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정서와 분위기를 비교하며 티모테 샬라메의 노래를 감상하다 보면 소리의 깊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놀라게 될 것이다. 티모테 샬라메 외에도 음악가로 등장한 다른 배우들 역시 직접 연주하고 노래했다.
| | | set-list
01 Highway 61 Revisited 02 Mr. Tambourine Man 03 I Was Young When I Left Home 04 Girl from the North Country 05 Silver Dagger 06 A Hard Rain’s a-Gonna Fall 07 Wimoweh (Mbube) 08 House of the Rising Sun 09 Folsom Prison Blues 10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11 Masters of War 12 Blowin’ in the Wind 13 Subterranean Homesick Blues 14 Big River 15 The Times They Are a-Changin’ 16 When the Ship Comes In 17 There but for Fortune 18 It Ain’t Me, Babe 19 Maggie’s Farm 20 It Takes a Lot to Laugh, It Takes a Train to Cry 21 Like a Rolling Stone 22 It’s All Over Now, Baby Blue 23 Song to Woody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