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부천아트센터의 파이프 오르간
수천의 소리가 만드는 천상의 조화
오르간 마이스터 박상률과 함께한 파이프 오르간 내부 탐방기
2023년 5월 19일 문을 연 부천아트센터(대표이사 태승진)는 국내 자치단체 공연장 중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해 큰 화제를 모았다. 국내 1,000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의 경우로는 세종문화회관(1978년), 롯데콘서트홀(2016년)에 이은 3번째 콘서트용 파이프 오르간이다. 그리고 올해 6월 20일 개관이 예정된 부산콘서트홀은 비수도권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 설치를 발표했으며, 스톱 62개, 파이프 4,406개의 규모로 알려졌다.
콘서트용 파이프 오르간은 점차 우리 주변에 다가오고 있는데, 문뜩 우리는 파이프 오르간에 관해 충분히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파이프와 여러 단의 건반, 웅장한 음성과 같이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알지만, 그 벽 너머의 세계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부천아트센터의 파이프 오르간을 관리하는 박상률 마이스터와 함께 파이프 오르간 속 세상에 다녀왔다.
수많은 파이프·스톱 속에 담긴 비밀
부천아트센터의 파이프 오르간은 1879년 창립한 캐나다 회사 ‘카사방 프레르(Casavant Frères)’가 제작한 것으로, 4,576개의 파이프와 63개의 스톱을 가지고 있다. 스톱은 파이프에 바람이 들어가게 하는 문의 역할을 하는 장치로, 조합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이는 오르간에 앉은 연주자가 직접 조정하거나, 미리 저장한 조합을 버튼을 통해 불러올 수 있다.
“스톱에 적힌 숫자는 파이프의 길이를 뜻합니다. 8이라 적혀있으면, 8피트를 뜻해요. 숫자가 길어지면 파이프의 길이는 더 길어지니, 더 저음으로 내려가죠. 스톱 조합은 건반 아래 버튼을 눌러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오르간의 경우 20번까지 버튼이 있는데, 20번을 넘기면 새로운 그룹에 또 저장할 수 있어요. 20개씩 수십 그룹을 저장할 수 있으니, 무척 많은 양의 스톱 조합을 넣어 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연주 도중 스톱 조합을 바꿔야 하는데, 손이 바빠서 버튼을 누를 수 없을 때는 발로 조정할 수 있는 버튼이 있죠.”
마이스터의 설명을 듣고 발건반을 살피니, 스톱을 변경하는 버튼과 함께, 파이프 외 다른 소리가 담긴 여러 버튼, 더불어 음량을 조절하는 스웰 박스도 보인다. 다른 소리 버튼에는 ‘차임’ ‘글로켄슈필’ ‘마림바’ 등이 쓰여 있고, 이를 누르면 해당 타악기 소리가 들린다. 파이프의 소리가 아닌 이런 장치들은 각 제작사가 부가적으로 넣어놓는 선물 같은 것이라고. 스웰 박스는 파이프 오르간의 음량을 조절하는 장치이다. 마이스터가 스웰 박스를 조정하자, 파이프 틈 사이의 가벽이 움직였다.
“음량은 바람의 압력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소리를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바람의 압력을 줄이면 파이프의 음높이가 변하기 때문이죠. 파이프 오르간 안에는 여러 방이 존재하고, 그 방에 건반의 2·3단에 해당하는 파이프를 배치합니다. 밀실을 만들어서 개폐하는 구조로 음량이 조절되죠. 건반의 1단인 ‘그랑 오르그(Grand-Orgue)’나, 4단의 ‘레조넌스(Resonance)’, 발건발의 경우 무척 거대한 파이프를 사용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스웰 박스로 음량을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특히 발건발은 콘서트홀 전방에 바로 보이는 파이프를 사용하기 때문에 방을 만드는 방식으로 음량을 조절할 수 없죠.”
부천아트센터의 파이프 오르간은 4단의 건반을 사용하고 있다. 파이프 오르간 본체 가까이에서 소리를 들어보면, 각 건반마다 오르간의 다른부분을 사용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발건발은 바로 앞의 광채가 나는 거대한 파이프에서, 2·3단의 소리는 파이프 안쪽 깊숙한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할 때는 이런 뒤쪽의 소리가 전면부 소리에 가려지지 않도록, 소리 밸런스를 조절하는 기간을 거친다. 이 작업은 제작사의 여러 전문가가 직접 파이프를 설치하며 확인한다.
오르간의 소리를 좌우하는 콘서트홀
음향 파이프 오르간 내부에 들어서니, 다양한 파이프와 함께 여러 기계 장치의 모습이 함께 보였다. 전통을 가진 악기이지만 현대 기술의 발전이 이 악기만을 빗겨갈 리 없었다.
“유럽의 건물을 보면 겉모습은 옛날 양식이지만 안에는 현대식 난방 장치를 갖춘 것처럼, 오래된 악기라 해도 현대의 디지털 시스템을 갖춘 것이 많습니다. 옛날에 제작된 악기여도 말이죠.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간은 화재가 있기 전에도 겉모습은 오래된 옛 악기지만, 이미 안쪽은 최첨단 디지털이었습니다. 프라이푸르크 대성당은 여러 시대의 오르간 4대가 한 공간에 존재하는데, 그 오르간들을 하나의 콘솔과 연결해서 동시에 연주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교체해 놓기도 했죠.”
내부의 파이프는 총 3층의 규모로 나뉘어 있다. 앞서 설명한 파이프가 담긴 여러 방이 1층에 자리하고 있고, 한 방에는 약 400개의 파이프가 들어있다. 사다리를 타고 2층에 올라서니, 다양한 소재로 된 파이프가 줄지어 있었다.
“제작 회사에서 파이프를 만들 때, 커다란 방에 여러 파이프를 꽂아 각각의 음높이, 음색을 확인하고, 그 밸런스를 서로 맞춥니다. 이렇게 덩어리 금속을 명확한 음을 가진 파이프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보이싱’이라고 부르며, 각 회사는 이를 확인하는 ‘보이싱 룸’을 갖추고 있어요. 보이싱 작업을 위해서는 소재가 톱으로 깎을 수 있는 경도여야 하고, 단단하면서도 변형이 가능한 비율을 계속 연구해온 여러 기록을 통해 지금의 비율을 유지하게 됐죠. 딱밤을 때리면 한 번에 푹 들어갈 정도로 약하니, 작업할 때 무척 주의해야 합니다.”
제작 회사는 보이싱 작업을 마친 파이프 전부를 모아 90퍼센트까지 악기로 조립하여 다시 소리를 확인한다. 이 단계를 통과하면, 모든 파이프를 해체하고, 하나하나 포장하여, 컨테이너에 실어 해외 배송을 보낸다. 현장에 도착한 파이프는 다시 콘서트홀에서 조립된다. 조립하면서는 장소의 환경에 맞추고, 조명과 전기 장치도 설치한다. 전면부의 디자인은 콘서트홀의 모습에 맞추어 현장에서 제작된다. 제작 회사에서 확인한 파이프의 밸런스는 콘서트홀에서 다르게 들리기 때문에, 다시 100개씩, 200개씩 확인을 거쳐 지금의 4,576개까지 밸런스 조정을 끝낸다. 이 모든 조정과 제작에 약 4달이 소요됐다.
“밸런스를 맞추고 파이프가 고정되면 좋겠지만, 금속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속성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조금씩 변합니다. 가만히 두면 조율이 변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소리를 확인해 주어야 하죠. 또 관악기이다 보니 온도에 굉장히 민감해요. 콘서트홀의 온도가 올라가면 음높이가 변하죠. 그래서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콘서트홀은 항온·항습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홀이 21도로 맞춰져 있다가, 연주 때 2도가 상승했다고 하면, 오케스트라와 조율이 안 맞기 시작해요. 연주 당일에 잘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죠.”
수많은 파이프를 조정하여 만든 소리의 끝에는 결국 콘서트홀의 음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이프의 개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물론 파이프가 많으면 낼 수 있는 소리의 선택이 늘어나지만, 그 소리의 질은 다른 이야기이다. 박상률 마이스터는 2,0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이 지나치게 큰 오르간을 소유할 필요가 없으며,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천아트센터는 그런 점에서 훌륭하죠. 잔향의 길이도 좋고, 콘서트홀과 오르간의 궁합이 아주 좋습니다.”
그 하모니를 감상하고 싶다면
악기가 품은 이 섬세한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바로 이달에 열린다. 라트비아의 오르가니스트 이베타 압칼나(1976~)가 4월 초 내한으로 부천아트센터와 롯데콘서트홀을 방문하는 것. 그는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의 상주 오르가니스트로, 엘프필의 개관 공연에서도 오르간을 초연한 연주자이다. 또한 5월에는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티에리 에스카이쉬(1965~)가 트럼피터 로맹 를뢰(1983~)와 함께 내한한다. 빈필·베를린필·파리 오케스트라·시애틀 심포니 등과 협연한 에스카이쉬는 이번 시즌에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간 재개방을 위해 ‘테 데움’을 작곡하여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초연하기도 했다.
오르가니스트는 악기를 소유하지 않고, 악기에게 가는 연주자이다. 그래서 매 공연, 콘서트홀마다 다른 울림에 적응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긴 리허설 시간을 갖는다. 설령 악보에 스톱 조합이 적혀 있더라도, 각 홀의 오르간에서 더 활용할 수 있는 소리가 있는지, 적합한 소리가 있는지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기 전에도 오르간 마이스터에게 장문의 질문지를 보내 오르간의 가능 범위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레퍼토리를 넘어 건물을 연주하는 그들, 공간의 울림이 만드는 조화로운 소리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➊➋ 내부의 나무 파이프와 금속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로 흔히 금속을 떠올리기 쉽지만, 내부에는 목재로 된 파이프도 수백 개가 존재한다. 목재는 단풍나무로 만들며, 만듦새가 더 복잡하여 단가가 높다. 금속 파이프는 보통 주석과 납의 합금으로 만들고, 아연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면부에 쓰이는 파이프는 단단해야 하고, 광택이 필요해서 주석과 납의 비율을 80:20으로 맞춘다. 그러나 안쪽 파이프의 비율은 55:45 정도로, 납을 많이 사용해서 표면에 뱀 무늬 같은 문양이 생긴다.
➌➏ 파이프가 꽂혀 있는 받침대의 모습. 스톱을 뽑으면 이 받침대 내부로 공기가 흐르게 된다. 이 받침대는 스톱의 개수만큼 존재하며, 파이프 오르간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해당 받침대가 어떤 스톱에 해당하는지 적혀있다. 연주자가 스톱을 모두 뽑아 통로를 모두 연 채로 속주를 하더라도, 공기의 압력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어야 한다.
➍➎ 파이프 끝의 모습. 각 파이프는 조율하는 방법이 다른데, 사진➍에 있는 파이프의 경우 말려있는 금속의 길이로 조정한다. 말린 부분을 올리면 파이프가 길어져서 저음이 되며, 이를 내리면 파이프가 짧아져서 고음이 된다. 사진➎의 경우 뚫린 구멍의 크기를 조정하여 조율한다.
➐ 별도로 존재하는 모터실. 송풍 모터가 돌아가면서 바람이 공급된다. 콘서트의 파이프 오르간의 경우 소음의 문제로 모터실을 따로 두기도 한다. 외부 공기를 사용하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없기에, 콘서트홀 내부의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모터가 가열되어 공기의 온도가 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제작 회사에서 면밀하게 제작한다.
박상률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종교음악과 오르간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했다. 국내 4번째 파이프 오르간 제작 마이스터로, 독일 오르간 제작 회사 슈패트에서 7년간 근무하며 오르간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였다. 현재 부천아트센터·부산콘서트홀의 파이프 오르간을 관리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이베타 압칼나 오르간 독주회
4월 2일 롯데콘서트홀 / 4월 5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중 파사칼리아, 바흐 ‘음악의 헌정’ 중 리체르카레,
파사칼리아 c단조 BWV582, 샤콘 BWV1004(켈러 편곡), 구바이둘리나 ‘빛과 어둠’ 외
티에리 에스카이쉬·로맹 를뢰 오르간 리사이틀
5월 24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에스카이쉬 ‘춤 환상곡’ ‘즉흥 연주곡’ ‘자유 즉흥곡’,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