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공연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4월 7일 9:00 오전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양인모·조나단 웨어 듀오 리사이틀

3월 16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스페셜리스트’라는 명칭은 작곡가에 대한 전문성을 의미하는 한편, 해당 작곡가의 이미지로만 굳어질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을 핀란드에서 보내며 수차례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연주해 온 양인모에게 이 작곡가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꼬리표이자 이정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정표는 시벨리우스의 소품으로 향했다. 양인모는 시벨리우스와 슈베르트의 작품을 병치하는 새로운 조합으로 3월 한 달 동안 국내 6개 도시에서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주말 오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양인모와 조나단 웨어가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는 피아니스트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찾아들었지만, 첫 곡인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D384의 첫 음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프라노 골다 슐츠(1983~), 엘자 드라이지히(1991~) 등과 앙상블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의 피아노 연주는 서정적인 슈베르트의 작품과 퍽 잘 어울렸으며, 특히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균형 잡힌 대화가 오가는 3악장에서 두 연주자의 호흡이 돋보였다.

이어 극적인 도입부로 시작한 시벨리우스의 ‘전원 춤곡’ Op.106은 1악장부터 5악장까지 각기 다른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린의 기교와 화려함이 더해져 앞선 슈베르트와는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부 마지막 곡인 리스트의 ‘슈베르트 빈의 밤에 의한 왈츠 카프리스’ S.427/6은 오이스트라흐 편곡 버전으로, 양인모의 섬세한 활 조절과 조나단 웨어의 부드러운 연주가 조화를 이루며 왈츠 특유의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전체 프로그램 구성에서 슈베르트의 낭만적인 정취를 살리며, 양인모의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1부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적합한 작품이었다.

이어진 2부는 시벨리우스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바이올린 소나티나 Op.80과 3개의 소품 Op.116으로 이어지는 두 작품에서 양인모와 조나단 웨어의 연주가 특히 조화를 이뤘다. 최근 공연에서 소리가 작다는 평을 들어온 양인모였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와 소리의 균형을 맞춰가며 듀오로서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의 론도 브릴란테 D895로, 섬세함과 화려한 연주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나눴던 두 악기의 대화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공연이 끝난 후, 두 연주자는 세 곡의 앙코르곡을 연주하며 객석의 환호에 열렬히 응답했다. 겨울과 봄의 사이에서 시벨리우스와 슈베르트라는 두 작곡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선보인 양인모의 음악적 발전, 그리고 피아니스트 조나단 웨어의 새로운 발견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홍예원 기자 사진 프레스토컴퍼니/Soongan

 

 

최소한의 동작, 최고의 효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

2월 26일~3월 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미국 작곡가 카일 갠(1955~)은 2001년 미니멀리즘 음악 사조에 관해 ‘최소한의 음악, 최고의 효과’라는 논문을 썼다. 이는 아주 작은 요소만 사용하는 음악 양식이 음악사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서술인데, 이날 앰비규어스댄스컨퍼니의 공연을 보노라면, 그 표현이 이들에게 어울리는 듯하다. 데뷔 및 제작 15주년 기념하며 오랜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온 그들의 레퍼토리 ‘바디콘서트’가 총 15회의 공연을 마쳤다.(3월 6일 관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예술은 형식을 쌓기 위해 필연적으로 ‘모티프’와 ‘반복’을 사용한다. 다른 사조 음악은 여기에 많은 요소를 더해 의미를 만들어 내지만, 미니멀리즘 음악은 이 두 가지를 극대화한 양식으로, 반복‘을’ 모티프로 사용한다. 계속되는 반복에 변화를 조금씩 섞으면, 흐르는 시간은 동일한 것과 변화한 것을 구분시켜 두 시점 사이의 차이로 의미를 만든다. 그 의미는 작품마다 다르다. 예술가가 의미 만들기에 성공하려면 무엇을 동일하게 두고, 무엇을 변화할 것인지 잘 선별해야 한다. 그리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이에 도가 텄다. ‘바디콘서트’ 속 11개 작품은 최소한의 몸짓으로 너무나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

소품도, 무대도, 의상도 더없이 미니멈이다. 개인의 개성을 가리는 동일한 수영모와 물안경은 인체를 무척 간소화한다. 배경도 없는 텅 빈 무대에 효과는 오직 조명뿐이다. 이때, 이 조명은 맥시멈이다. 온갖 색 조명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암전부터 관객석의 조명까지 단계도 수없이 쪼개 나눴다. 이렇게 다양하게 나눈 조명의 역할은 음악, 그리고 시간과 궤를 같이하여, 동일한 동작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관객석까지 환하게 밝힌 조명에서 관객들 옆에서 춤을 추는 안무가, 그리고 같은 춤을 같은 장소에서 추지만 이를 암전 속에서 출 때의 차이(‘Superheroes’). 홀로 무대 가운데에 서서 하나의 동작만 반복하지만, 배경음악의 음량과 조명의 색이 바뀌었을 때 동작이 주는 인상의 차이(‘Emotion’). 의미는 관객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곡이 끝나고 ‘유머’나 ‘안쓰러움’ ‘슬픔’ 등이 다가왔을 때, 이는 안무의 모양새와 관계없이 오직 처음과 끝이라는 두 시점 사이 달라진 차이가 만든 감정이었다.

무용이 시간 예술이라는 말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공연은 현장에서 그들과 모든 시간을 함께 통과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성된다. 이는 그들의 동작이 구체적인 대상을 형상화하거나, 난도 높은 동작을 한순간 성공해 내 기록할 수 있는 멈춘 예술을 추구하지 않고, 끝없이 변하고 적응해 나가는 살아있는 예술을 추구하기 때문이란 것을. 공연을 모두 지켜본 관객은 느낄 수 있었다.

이의정 기자 사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감동을 연주하는 배우들

뮤지컬 ‘원스’

2월 19일~5월 31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동명의 음악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원스’가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영화는 아일랜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가이(guy, 글렌 핸사드 분)와 체코 출신의 이민자 걸(girl, 마르게타 이르글로바 분)이 음악을 통해 교감하고 꿈을 찾는 작품이다. 개봉 당시 아름다운 음악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성원에 힘입어 2012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제작됐다. 영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이 뮤지컬은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오케스트라 없이 모든 배우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작품의 특성 때문에 2014년 한국 초연과 2015년 오리지널 팀 내한 이후에는 공연을 만날 수 없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배우들이 10개월간 레슨과 합주 등 맹연습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공연 첫 장면부터 그간의 연습량이 단번에 느껴졌다.(3월 1일 관람) 모든 배우가 무대를 누비며 춤을 추면서도 흔들림 없는 음정으로 연주를 소화한 것. 그중에서도 곽희성(은행원 역)이 첼로를 몸에 묶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연주하는 장면이 특히 놀라웠다. 곽희성은 첼로뿐 아니라 기타도 연주했는데, 악기 연주와 정확하게 불협화음을 이루며 음치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 전 진행된 ‘프리쇼’도 특별함을 더했다. 공연 10분 전 배우들이 무대로 나와 즉흥 연주를 펼치는데, 이때 관객은 무대에 올라 음료를 주문하며 가까이에서 배우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었다. 공연장은 음료 반입이 불가하기에 이례적인 방식이기는 했지만, 관객을 자연스럽게 공연에 녹아들게 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영화가 은유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로 전개되었다면 뮤지컬은 곳곳에 유머를 가미해 극의 재미를 살렸다. 영화의 잔잔한 흐름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이러한 감정선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덕분에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원작의 걸(girl)이 영어에 서툰 체코 여성이라는 설정을 살리기 위해 한국어 대사를 외국인 억양과 어색한 말투로 표현하는 등 현지화에 신경 쓴 점도 눈에 띄었다.

뮤지컬 ‘원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감성적인 음악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노래 ‘Falling Slowly’를 비롯해,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추가된 ‘골드’ ‘슬리핑’ 등의 넘버가 귀를 즐겁게 했다. 배우들의 합주를 고려해 헤드를 낮춘 디자인으로 특별 제작된 피아노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충주(가이 역)와 이예은(걸 역)이 눈을 맞추며 연주하는 순간이 특히 아름다웠다.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역시 가이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걸이 체코어로 “밀루유 떼베(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대답하는 순간이다. 뮤지컬에서도 이 장면에 체코어와 한국어 자막을 사용하며 섬세하게 연출해 여운을 남겼다.

김강민 기자 사진 신시컴퍼니

 


 

요나스 카우프만 리사이틀 & 오페라 콘서트

중후한 음성, 스타의 매너

3월 4일(리사이틀)·7일(오페라 콘서트) 롯데콘서트홀

 

10년 만에 내한한 요나스 카우프만(1969~)은 한층 중후해진 가창을 선보였다. 360도로 돌아가며 청중에게 답례한 따스한 매너는 변함없었다.

4일 가곡 리사이틀은 슈만으로 시작했다. ‘방랑의 노래’는 두껍고 밝은 소리 층을 선보였다. 호흡은 유장했고, 고음은 빛났다. ‘신록’에서는 호흡이 옅게 바뀌며 넉넉한 호흡과 맺고 끊기가 귓가에 머물렀고, ‘너의 뺨에 기대어’에서는 비장하고 강렬했다. ‘고요한 눈물’은 과감했고, ‘헌정’은 중저음이 도사린 고음이 매력적이었다.

리스트 가곡은 ‘성스럽게 흐르는 라인강에’로 시작했다. 겹겹이 부드러움이 존재했고, 꿈꾸듯 띄우는 고음은 피아노 연주로 완성됐다. ‘툴레에 왕이 있었다네’에서는 정중한 이야기꾼이면서 선 채로 격정에 떠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 명의 집시’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노래했는데, 헬무트 도이치(1945~)의 피아노와 대화를 나누는 앙상블이 좋았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흉성으로 이끌어낸 호소력이, ‘마를링의 종’은 몽환적인 피아노와 늠름한 가창이 일품이었다. ‘로렐라이’에서는 두꺼운 고음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성정이 엿보였다.

2부를 여는 곡은 브람스 가곡이었다. 넉넉한 호흡의 ‘그리움’, 자연스러운 고음의 ‘내 사랑은 초록’이 와 닿았다. ‘숲의 적막 속에서’는 어둡고 까칠한 통로를 통과하는 듯, 숨이 가느다랗게 유지됐다. ‘항해’는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밀어 올리는 고음이 감탄을 자아냈다. ‘아, 이 눈길을 거두어 주오’는 탄식하는 듯,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는 어둠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리사이틀은 R. 슈트라우스로 이어졌다. 카우프만의 노래는 ‘헌정’에서 화려하면서 어둡게 빛났다. 명랑하게 소화한 ‘아무것도’, 차분하게 침잠하면서도 부드러운 거품 같았던 ‘황혼을 지나는 꿈’을 거쳐, ‘은밀한 초대’에서 그는 당당하고 씩씩한 존재감의 현현이었다. ‘밤 산책’에서는 밤의 오묘함을,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비밀스레 간직할까’에서는 반짝이는 장식의 특징을 드러냈다.

열광적인 청중의 요청에 카우프만과 헬무트 도이치는 앙코르로 슈만 ‘달밤’, 리스트 ‘기쁨과 슬픔’, R. 슈트라우스 ‘체칠리에’를 선사했다.

가곡 리사이틀이 세밀한 표현에 수렴했다면, 7일 오페라 콘서트(요헨 리더 지휘·수원시립교향악단)는 남성미와 스타성의 발산이었다. ‘오묘한 조화’(‘토스카’)에서 카우프만의 음성은 짙은 유화 같았다. 쌉싸래한 맛의 카바라도시였다. ‘내가 그 용사였다면! 정결한 아이다’(‘아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힘찬 음성이 매력이었다. ‘그대가 던진 이 꽃’(‘카르멘’)은 띄워놓고 유지하는 고음으로, 내지르지 않으면서도 절절한 돈 호세를 노래했다. ‘어머니, 이 술은 독하군요’(‘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무리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곧 쩌렁쩌렁한 성량을 자랑했다. ‘아 모든 것이 끝났구나! 오 주님, 오 판관, 오 아버지여’(‘르 시드’)는 의연함과 비정함이 서린 목소리를 폭발시켰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안드레아 셰니에’)는 배역과 어울리는 열창이었다. 마지막 곡 ‘공주는 잠 못 이루고’(‘투란도트’)는 굵직한 어둠이 감도는 두꺼운 목소리로 시작, 지르지 않고 만들어내는 훌륭한 가창력이었다.

카우프만은 ‘별은 빛나건만’, 카르딜로 ‘무정한 마음’, ‘그대는 나의 모든 것’, 데 쿠르티스 ‘물망초’로 앙코르를 하고 떠났다. 노래의 완성도를 떠나, 객석을 이토록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 수 있는 가수가 또 누가 있을까.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롯데문화재단

 

 

노부스 콰르텟 리사이틀

서서히 녹아드는 셔벗 아이스크림 같았던 브람스 현악 4중주

3월 8일 롯데콘서트홀

 

노부스 콰르텟(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김영욱, 비올리스트 김규현, 첼리스트 이원해)이 지난 2021년에 이어 한 번 더 브람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를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최근 아파르테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 ‘브람스’(현악 4중주 1~3번 수록/2CDs)를 기념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탄탄한 팬층과 19년이라는 팀의 역사, 또 갓 공개된 음반이 기대감을 높였다.

이들의 시간을 기념하고 축하하려는 많은 관객이 롯데콘서트홀을 찾았다. 악기를 든 연주자와 전공생들도 자리해 귀 기울여 감상할 준비를 하는 순간, 콘서트홀 내 반짝이는 오르간 파이프 아래 윤이 나는 무대와 어울리는 노부스 콰르텟이 등장했다. 넷이지만 너른 무대를 꽉 채우는 존재감이 있었다.

첫 곡은 브람스 현악 4중주 1번. 화려한 음향 효과들이 이어지는 도입부가 정확하게 연주되었다. 지적이면서도 언뜻 차가운 느낌까지 드는 음색이었다. 2악장에서 계속 이어지며 변화하는 화음들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크리스털 클리어’였다. 수정처럼 깨끗하고 명확하게 다듬은 느낌이었다. 화성의 네 성부가 조화로울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음과 어떤 음을 더 긴밀하게 연주할지, 혹은 살짝 더 고개를 내밀게 표현할지를 깊이 연구했음이 보였다.

현악 4중주 2번에서는 앙상블의 온도가 살짝 올라갔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솔로 선율들에서 절제된 감정의 소용돌이가 언뜻언뜻 비쳤다. 그럼에도 네 연주자 모두 흐트러짐 없이 아티큘레이션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3악장에서 뉘앙스나 현과 스침의 정도까지 정밀하게 맞춘 보잉이 압권이었다. 4악장에서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빠르게 이어지는 선율에서 각자의 개성과 음색이 드러나 귀를 즐겁게 했다. 짧은 솔로 부분 속에서 비올라와 첼로의 감정선도 잘 전달됐다.

인터미션 후에 연주한 3번은 첫 곡보다 확연히 따뜻한 소리로 시작되었다. 브람스 작품의 난관 중 하나인 갑자기 커지는, 또는 갑자기 작아지는 프레이즈들이 효과적이고 완성도 있게 표현됐다. 곡 자체가 지닌 밝은 분위기도 있었지만, 노부스 콰르텟의 1·2·3번의 해석 역시 점점 풍부해지고 따뜻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닿은 것은 그만큼 그 해석이 단단하고 설득력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첫 곡의 약간은 냉철한 첫 악장으로 시작해 차츰차츰 더 친해지고, 끝으로 가면서 마침내 서로의 매력을 깨닫게 되는 앙상블과 관객의 관계. 이는 전곡 연주라는 과제 속에서 모든 단체가 추구할 만한 지점일 것이다.

현악 4중주 2번과 3번 연주에서 제1 바이올린을 맡은 김재영이 최근의 서면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돈다. “앙상블에서 실질적으로 소리를 섞이게 하는 건 완벽한 음정이지요.”(본지 2025년 1월호) 과연 노부스 콰르텟은 서로 맞닿아 큰 울림을 내는 좋은 음정을 들려주었고, 이는 그들이 현악 4중주에서 서로의 심정까지 이해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19년은 긴 세월이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30주년, 40주년까지도 마음에 두고 이야기하는 이 앙상블이 앞으로도 책임감을 간직한다면, 이는 K-실내악에 보석보다 귀중한 마음으로 남을 것이다. 앙코르곡으로는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중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가 연주되었다.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목프로덕션/김신중

 

 

국립창극단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

소리로 그려낸 꿈속 도원(桃源)

3월 13~20일 국립극장 달오름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은선) 신작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가 관객의 기대 속에 무대에 올랐다. 배삼식 작가의 신작이자 연출가 김정의 창극 도전이라는 점, 새로운 감각으로 음악적 변주를 꾀한 한승석 음악감독의 작창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최고의 창작진이 모였는데, 작품의 제목은 알쏭달쏭하다.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라니. ‘보허자’는 원래 고려시대 들어온 궁중음악 이름이지만 이 작품은 한자 그대로의 뜻, 허공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누가, 왜 허공을 걷는 것일까? 세 제작진은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를 소리로 구현하면서 허공을 걷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3월 13일 관람)

시간은 조선 초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 일어난 27년 후인 1480년으로 거슬러 간다. 노비로 전전하다 면천된 안평대군의 딸 무심, 안평대군이 총애한 화가 안견, 안평대군의 첩 대어향이 안평의 집이었던 수성궁 터에 모였고 안평과 친했다던 나그네가 끼어든다. 이들은 조선 왕실의 사찰 ‘대자암’으로 와달라는 전갈을 듣고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각자 안평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나그네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대자암에서 몽유도원도를 만나게 된 네 사람은 안평의 바람이 무엇이었으며 왜 폐허가 되었는지, 그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느끼면서 나그네이자 안평이었던 존재를 떠나보낸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안평대군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다. 서화와 문예에 관심이 많았던 안평대군은 자신이 꾼 꿈을 안견에게 이야기했고, 이를 들은 안견이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인 듯 모든 사람이 흩날리는 복숭아꽃 아래서 행복하기를 꿈꾼 것이다. 그 꿈을 폐허로 만든 것은 안평대군이 왕자였다는 사실과 형인 수양대군의 권력에 대한 야망이었다. 즉, 안평대군의 신분과 주변이 꽃, 달, 바람, 봄처럼 무용(無用)한 것들을 사랑하도록 놔두지 못했던 것이다. 창극 속에서 나그네 안평과 붉은 끈으로 연결된 수양대군의 영혼이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권력에 대한 회한을 토로한 것도, 대자암 가는 길 꽃잎이 흩날리던 시절, 그 아래 함께 있던 동생과 자신이 찬란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삼식 작가의 허공은 그저 텅 빈 곳이 아닌 꽃잎들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그래서 모두가 평온하고 따뜻한 허공이었다. 무용한 것들로 가득 찬 허공은 맹목적인 추종과 무한경쟁 속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울림을 준다.

감각적 연출을 선보여 온 김정은 창극 속에서 무대와 소리로 그 감각을 돋보이게 했다. 이태섭(무대 디자인)은 폐허인 듯 궁궐인 듯, 혹은 몽유도원도의 한 부분인 듯 몽환적인 무대를 만들었고, 한승석은 판소리로 만들어낸 오페라처럼 다층적인 화음을 사용해 장엄한 음악을 작창했다. 무대와 음악은 연출가의 감각적 장면 구현으로 잘 이어져 작품 전체에 큰 갈등이 없음에도 관객의 몰입을 높였다.

최근 국립창극단은 ‘정년이’ 같은 유행 소재나 ‘리어’처럼 번역극을 올리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는데, ‘보허자’는 오랜만에 만난, 농담(濃淡)이 짙은 수묵화 같은 창극이었다. 무용한 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산돌배나무의 꽃이 곧 피어날 것이다. 그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세상 근심 잠시 내려놓고 꽃놀이 한 번씩 가보면 어떨까? 그곳이 마치 무릉도원인 듯이 말이다.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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