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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보엠’ 2024.11.13~6.6
막이 오르니 갈채가 쏟아졌다
제피렐리의 프로덕션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김기훈(바리톤)의 성공적인 메트 데뷔

©Marty Sohl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는 시즌마다 ‘라 보엠’을 올린다. 4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의 연출로, 메트 오페라 역사상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다. 이번 시즌, 바리톤 김기훈은 이 오페라의 쇼나르 역으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했다. 음악가 쇼나르는 미미와 사랑에 빠지는 시인 로돌포의 친구로, 김기훈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필자는 3월 13일 관람).
미미와 로돌포, 그리고 세 친구
‘라 보엠’은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다. 로돌포의 세 친구,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 철학자 콜리네는 파리의 낡은 다락방에 모여 있다. 병들어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불운의 여주인공 미미도 바느질하던 여인으로, 불을 켜기 위해 성냥을 빌리러 오며 로돌포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미미의 역할은 오페라에서 단연 중요하다. 미미 역을 맡은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므히타랸은 ‘리골레토’(질다), ‘투란도트’(류), ‘예브게니 오네긴’(타티아나) 등 다양한 역할로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음색으로, 가냘프면서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노래하며 관객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25년간 오페라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돌포 역의 조셉 칼레야는 초반에 안정적인 모습으로 장악했지만, 뒤로 갈수록 절정에 다다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무대에서 메트 오페라 데뷔를 하게 된 바리톤 루카 미켈레티(마르첼로 역)와 김기훈(쇼나르 역)은 관객에게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사실 그간 루카 미켈레티는 쇼나르 역을, 김기훈은 마르첼로 역을 맡아 노래한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뀐 셈이다. 특히 김기훈은 노래뿐 아니라 뛰어난 연기와 무대매너, 특유의 익살스러움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특별한 웃음을 선사했다.
섬세함으로 쌓은 입체적 감동
제피렐리 연출의 ‘라 보엠’은 그 명성에 어울리는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특히 2막에서는 막이 올라가자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실제로 당나귀와 말이 끄는 마차도 등장한다. 막에 따라 무대도 매번 바뀐다. 각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의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배치됐다. 눈에 띄지 않는 행인, 눈이 내리는 거리의 배경, 인물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섬세함이 모여 입체감을 덧입혀 주고, 관객을 극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조명과 합창단의 연기도 극의 요소를 극대화해 준다. 대규모 합창, 두 주인공과 세 친구의 선율이 정신없이 엉켜가는 2막의 도입부에서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정교함이 떨어진 부분도 있었지만,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그들만의 깊이와 풍성함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글 양승혜(뉴욕 통신원) 사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INTERVIEW 바리톤 김기훈
무대에서 빛난 자연스러움의 주인공

‘라 보엠’ 쇼나르 역의 김기훈 ©Marty Sohl
김기훈은 ‘라 보엠’으로 이번 시즌 메트 오페라에 성공적 데뷔를 마쳤다. 네 명의 친구 사이에서 활약한 그를 보며 무대를 즐길 줄 아는 매력과 재능이 메트 오페라의 무대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가 좋아서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메트 오페라 데뷔를 꿈꿔왔다고 들었다. 소감이 어떤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라고 적힌 계약서에 사인한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말 설레는 순간이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지만, 사실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행운이 찾아왔다. 좋기도 하고, 긴장도 했다.
주로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많이 활동했다. 메트 오페라만이 가진 특징을 느꼈나?
우선 극장 크기에서 오는 놀라움이 있었다. 유럽은 가장 큰 극장이 2천석 정도인데, 메트 오페라는 4천 석 규모에 음향이 훌륭했다. 처음에는 극장 크기 때문에 동료들이 소리를 크게 내는 걸 보고 나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오페라는 마라톤과 같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는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뛰어가야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허설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메트 오페라는 매 시즌 ‘라 보엠’을 하기에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번 공연은 이례적으로 일주일 정도 리허설을 했다. 단원들은 익숙하지만, 지휘자나 출연자들은 처음이었기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쇼나르 역은 어땠나. 함께 호흡을 맞춘 성악가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간 ‘라 보엠’에서는 마르첼로,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제르몽 역을 주로 해왔다. 쇼나르는 내 성격과 잘 맞는 부분이 있었다. 진짜 친구들과 노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얘길 들었다. 4명 중 막내여서 다들 동생처럼 챙겨주었는데, 잘 웃는다고 ‘스마일 보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 또한 결과물이 잘 만들어지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BBC 카티프 싱어 오브 더 월드 한국인 최초 우승, 오페랄리아·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등 콩쿠르 경력이 화려하다. 음악에 대해 추구하는 방향은 어떤 것인가?
경쟁을 싫어한다. 콩쿠르에 나간 것은 실력을 증명받기 위함이었다. 성악가가 된 것은 노래에 대한 즐거움, 음악의 예술적 가치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은 뭔가 결여되기 마련이다. 음악은 점수나 심판의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경쟁의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별한 징크스나 루틴이 없는 편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공연을 망치거나 핑계를 대고 싶지도 않다. 물론 과정이 중요하지만, 예술은 결국 보이는 결과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항상 긍정적인 태도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싶다.
해외 일정이 많다. 쉴 때는 주로 무얼 하며 보내는지?
가족이 있는 고향, 곡성에 가서 쉰다. 아버지와 낚시하러 가는 것을 좋아하고, 게임이나 야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원래는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데, 직업상 그럴 수 없어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한다. 나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가족이다.
다음 공연 계획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브리튼 ‘전쟁 레퀴엠’(4.6), 서울시오페라단 ‘파우스트’(4.10~13)에서 마그리트 역으로도 오른다. 5월에는 유럽으로 돌아와 베를린 도이체 오퍼의 ‘돈 카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양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