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박수길, 배움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흐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5월 12일 9:00 오전

HIS LIFE

 

바리톤 박수길

배움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흐른다

 

하고 싶던 일을 여전히 해나가는 어른의 이야기

 

 

 

스승의날인 이달 15일, 바리톤 박수길은 제자인 테너 이인학과 함께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무대에 올린다. 교수가 된 제자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노장. 그리고 스승의날을 떠올려 보니, 문뜩 이 거목의 씨앗을 심은 스승은 누구였는지 그 계보가 궁금해졌다.

누구나 매일의 삶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지만,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이는 적다. 나아가 그 배움에 신념을 갖고 수십 년 동안 일관성 있는 노력을 가하는 이는 더욱 드물다. 바리톤 박수길과 대화를 나누며 기자는 “언제부터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여러 번 하였는데, 그 날짜가 계속 30년, 40년 뒤로 돌아가 몇 번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배움의 시절 익힌 깨달음을 여전히 실천하고 있었고, 당시 만들었던 체크리스트를 여전히 지우고 있었다.

 

고등학교 끝자락부터 성악을 시작하여 제1회 졸업생으로 한양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됐는데, 운이 좋았죠. 입학 때 교수님들께서 장학생으로 넣어주셨으니, 그때 한양대는 신입생을 여러 번 모집했습니다. 제가 거의 마지막으로 입학하는 학생이었죠.

재학 당시 한양대의 커리큘럼은 어땠나요?

한양대 총장님이었던 김연준 작곡가부터, 성악가 조상현 선생님, 테너 안형일 선생님, 피아니스트 이성균 선생님 등이 해외 유학을 다녀오고 교직을 맡았기에 커리큘럼은 이미 서구적이었습니다. 독일 방식에 가까웠죠.

학생은 몇 명 정도였나요?

제 입학 번호는 66번이었는데, 도중에 그만둔 학생이 많아서 음악대학 한 학년에는 항상 서른 명 정도가 함께 공부했어요. 졸업할 때도 그 정도 인원이었던 같습니다.

졸업 이후에는 선생님께서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대학 졸업 직후는 아니었습니다. 한양대 덕에 연이 닿아서 한양여자고등학교의 음악 교사로 일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종일 교편에 서서 말을 하니, 저녁에는 목이 칼칼해져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어요. 그게 아쉬워서 대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오현명 선생님이 음악대학에 계셨는데, 제게 무급 조교 자리가 하나 있다고 제안 주셨거든요. 월급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지만, 노래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한양대학교 전임교수가 될 수 있었죠.

그렇다면 미국 매네스 음악대학은 한양대학교 전임교수로 임명된 이후에 입학한 건가요?

맞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당시 김연준 총장님이 저의 유학 2년 동안 월급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한양대학 재단에서 운영하던 해운공사를 통해 제게 매달 100달러씩을 더 붙여주셨어요. 책을 사 보라고 말이죠. 그 시절 100달러는 정말 굉장히 큰돈이었어요. 20달러만 있어도 일주일 식비를 충당할 수 있었으니까요.

매네스 음악대학의 가르침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성악에 관해서는 발음에 관한 부분, 그리고 언어에 관한 부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국제 음성 기호(IPA)로 유럽어 발음을 익혔고, 이런 방식은 국내에 없었거든요.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귀국한 뒤 이를 강의에 포함했습니다.

 

우리 사람에겐, 우리 언어를

(왼쪽부터) 이인학, 김우재, 이윤정, 박수길

언어에 관한 깨달음은 무엇이었나요?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가 미국 성악가의 독창회를 발견해서 들어간 적이 있어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부르는 공연이었죠. 근데 이를 영어로 부르지 뭡니까! 저는 독일어를 꾸준히 공부해도 국내 관객에게 그 시구가 바로 와닿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왔거든요. 그걸 보고 ‘아, 나도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야겠다. 한국에 가면 이 운동을 일으켜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국내에서 한국어로 부르는 독일 가곡과 오페라를 여럿 선보였군요. ‘우리말로 부르는 슈베르트 가곡집’을 출판했고, ‘오페라 체험’에는 번안 오페라에 관한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원어의 표현을 최대한 맞춰서 번역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우리말로 새로 쓴 독창회는 여러 번 했습니다. 이미 독일어가 익숙한 관객은 ‘이상하다’ ‘어색하다’라고 하죠. 그렇지만 누군가는 ‘괜찮더라’ ‘좋더라’라고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가곡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은 제게 여전히 매력적이라, 저는 지금도 우리말로 부르는 걸 좋아합니다.

이달에 예정된 공연은 우리말로 하는 것 외에도 독특한 편곡이 더해졌습니다. 피아노 대신 기타가 함께합니다.

페터 슈라이어(1935~2019)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기타와 가곡을 부른 적이 있어요. 1970년대 말의 일이었는데, 그 음악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죽기 전에 기타와 가곡 독창회를 하려고 했죠. 그런데 기타리스트를 찾는 게 참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 이제야 김우재 기타리스트와 함께하게 되어 한국 최초로 기타와 독일 가곡을 부릅니다.

공연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제 연가곡을 혼자 부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인학 테너와 번갈아 노래하며 진행하게 됐습니다. 또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는 기악 선율에 잘 어울리는 곡들도 있어요. 오보에로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 이윤정 오보이스트를 섭외했습니다. 모쪼록 많은 분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80세가 넘었는데도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계속 있습니다.” 84세의 연세에도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책을 쓰고, 자료를 모으는 활동이 가능한 것은 그가 쌓아온 연륜이 빈틈없이 견고하기 때문일 터다.

이의정 기자 사진 송종석(studio BoB)

 

박수길(1941~) 한양대 음대와 매네스 음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양대 음대 교수 및 학장을 역임했고, 국립오페라 단장,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우리말로 부르는 슈베르트 가곡집’ ‘오페라 체험’ 등이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아름다운 물방아간 아가씨’

5월 1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박수길(바리톤), 이인학(테너), 이윤정(오보에), 김우재(기타), 최아름(나래이터)/ 손수연(해설), 김형식(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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