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미리암 프리드, 현의 계보를 잇고 다음 세대에 건네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5월 12일 9:00 오전

COVER STORY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꼽는 최고의 스승

미리암 프리드

 

현의 계보를 잇고, 다음 세대에 건네다

 

 

미리암 프리드가 기른 제자들은, 이제 세계 유명 대학의 스승이 되어 또 다른 제자들을 기르고 있다. 그의 교수법은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진하게 흐르는 가르침이 있으니, 이른바 ‘미리암 메소드’이다. 단순히 음악을 가르치고 배운 시간이었는데, 그 속에 삶-인연-시간-인생-미래를 돌아보는 가르침이 녹아 있다. 파가니니 콩쿠르(1968)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71)에서의 우승 후 연주자로, 실내악단의 멤버로, 교단의 스승으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 시대 진정한 스승의 이야기와 네 명의 제자 이지혜·김다미·장유진·이수빈의 인터뷰로 5월 스승의날을 기념해 본다.

김강민 기자

 


 

01 INTERVIEW

 

한국에서 오전에 보낸 메일이 불과 40분 만에 ‘수신 확인’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이미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미리암 프리드와 보름에 걸쳐 주고받은 메일은 총 여섯 통. 아무리 늦어도 6시간 안에 답장이 도착했고, 그 내용은 늘 명확하고 단정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감탄하며 그의 제자 이지혜(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김다미(서울대학교 교수)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들 역시 학생 시절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임을 다하려면 시간만 잘 분배하면 돼. 아주 단순하지!”라고 했다는 프리드의 말도 들려주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프로필에서였다. 사사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이름은 이후 현존하는 유명 여성 연주자들에 관한 자료를 찾던 중 다시 눈에 들어왔다. 197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역사상 첫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우승자. 흑백 사진을 보며 그 시절 그가 불러일으켰을 반향을 상상할 수 있었다. 유학 시절 힘든 시간을 스승 덕분에 버텼다는 제자 이수빈의 이야기나 “프리드 선생님을 모르는 학생은 없다”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학생들의 말까지, 이후에도 그의 이름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종종 들려왔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명스승’ 미리암 프리드에게 교육자로서 살아온 삶과 시간을 물었다. 그의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보며, 기자도 좋은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을 떠올렸다. 학생시절처럼 다시 악기를 연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의 답장을 받았다. 그는 긴 질문에 더 긴 답변으로, 음악과 사랑을 어떻게 가르쳐왔는지 들려주었다.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한 바이올린

명스승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음악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요?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고, 저는 어머니의 연주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셨고, 제 첫 선생님도 어머니였죠. 그 시절의 기억은 많지 않지만, 저는 제법 잘 연주했고 실력도 빠르게 늘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 아버지가 저에게 바이올린을 배워보라고 권하셨고, 저는 “악기를 사주시면 연주할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여덟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어요. 한동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진지하게 공부하던 중 열 살이 되었을 때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에 더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선택한 건 온전한 제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바이올린과 평생을 함께하게 되었네요! 첫 번째 바이올린 스승은 누구였나요?

저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웠거든요. 앨리스 페니베스(1912~1973) 선생은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야노스 슈타커(첼로), 죄르지 세보크(피아노), 게오르그 솔티(지휘) 등과 함께했던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작곡가이자 교육자였던 레오 바이너의 제자들이었고요. 페니베스 선생은 따듯한 교육자이자 열정적인 음악가였어요. 저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과 탄탄한 기초를 선물해 주셨죠. 매주 수업 시간을 늘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네요.

이 외에도 음악 현장에서 스승으로서 영향을 준 이들이 있다면요?

사유하고 분석하는 법을 알려준 로랑 페니베스, 음악과 바이올린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열어준 요제프 긴골트, 철저한 학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반 갈라미안까지,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이분들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후디 메뉴인, 아이작 스턴, 나탄 밀스타인, 헨리크 셰링, 레너드 번스타인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과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을 기회도 있었지요.

그들로부터 배운 가르침은 무엇이었나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만남이 얼마나 귀한 경험이었는지 점점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바이올린 계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저도 언젠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제 일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무 살 무렵,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을 거머쥐었으니, 음악 인생에 전환점을 맞았을 것 같습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의 우승(1968)은 정말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학교로 돌아갔기 때문에 제 삶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많은 공연을 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요. 반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의 우승(1971)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1971년 당시에는 어느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보장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승 다음 날 새 매니저를 만났는데, 곧장 공연 스케줄을 건네주더군요. 그리고 그해 시즌에만 약 60회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레퍼토리를 배우고, 시간과 에너지를 관리하는 방법과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어요. 정말 도전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피아노 부문)가 열리는데요. 당시와 비교할 때 오늘날 콩쿠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콩쿠르 현장은 정말 극적으로 달라졌어요. 제가 우승했을 당시에는 1년에 서너 개의 대회가 전 세계에서 열렸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매주 콩쿠르가 열리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제는 콩쿠르가 지닌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약해졌고요. 그래서 저는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려는 시도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은 콩쿠르에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우승’이 아니라는 거예요. 진짜 목표는 연주할 기회를 얻는 것이죠. 콩쿠르 참가의 동기는 우승에 대한 열망이 아닌, 음악과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는지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심사위원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무작위로 뽑힌 심사위원단의 호감 여부와 상관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탄탄히 쌓아 올린 연주자의 삶

연주자로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특정한 공연을 꼽기는 어렵지만, 훌륭한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쿠르트 잔덜링과의 브람스 협주곡, 루돌프 켐페와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클라우스 텐슈테트와의 베토벤 협주곡 등이 떠오르네요. 지휘자와 음악적으로 완벽히 공감하고, 오케스트라가 열정을 다해 연주한다면 그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죠.

실내악단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연주자로서 협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항상 실내악을 연주해 왔고, 그 레퍼토리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멘델스존 콰르텟의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때도 기쁘게 응했고, 10년간 제1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어요. 정말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또, 콰르텟뿐 아니라, 피아노와 함께하는 연주도 실내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저는 훌륭한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정말 좋아합니다. 열정적인 연주자들과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음악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경험입니다. 물론 독주도 아주 좋아합니다. 그 순간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온전히 제가 주도할 수 있으니까요.

무대에 오르기 전, 작품을 해석하고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제가 연주하는 곡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제 마음이 이끌린 음악들입니다. 마음에 와닿지 않는 작품은 연주하지 않겠다고 오래 전부터 결심했어요. 그리고 작품을 해석할 때는 시대적 맥락, 작곡가의 생애, 작품의 성격과 형식 등을 함께 고려합니다. 음을 익히면서 그 안에 담긴 음악적인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항상 처음부터 악보를 공부하는데, 먼저 작품의 ‘지도’를 그리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요소들을 찾아나갑니다. 연주는 관객과의 감정적인 소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의 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청중에게 잘 전달할 방법에 대해서 늘 고민합니다.

연주자로서의 생활이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까요?

음악이 과연 제 삶에 맞는지 고민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삶을 살며 동시에 가족을 돌보는 일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주할 곡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고, 동시에 다가오는 프로그램도 준비해야 하죠. 연주를 위한 여행도 시간 소모가 크고, 악천후와 비행기 결항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우 외롭기도 하고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도 정말 큰 부담입니다.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이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음악에 대한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은 제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오랜 시간 무대에 오르며 음악관에도 변화가 있었을까요?

제 기본적인 철학이 크게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제 연주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니까요. 신뢰하는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며 배우고, 연주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다른 아티스트의 연주를 듣고, 음악에 관한 책을 읽는 등, 이 모든 과정이 제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참여하는 일도 도움이 되었고요.

 

스승으로 살아간다는 것

미리암 프리드가 교육자로 활동한 시간은 어느덧 40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는 여전히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한다. 그 이유를 묻자, 제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음악적 성장’을 꼽았다. 언제나 학생을 한 명의 연주자로 존중하고, 그들의 해석과 의견에 귀 기울이며, 개개인에게 꼭 맞는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는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연주를 함께 준비하는 파트너들을 섬세하게 살피는 덕분에 피아니스트들 역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미리암 프리드의 수업에서는 음악 이야기만 오가지 않는다. 일상의 소소한 고민부터 인생의 방향, 사회적 이슈까지 다양한 주제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음악 교육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향까지 제시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반영된 모습이다. 그래서 막 유학을 시작해 영어가 서툰 학생에게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고. “나는 너와 깊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어. 그러니 네가 영어를 더 잘했으면 좋겠구나.”

이처럼 분명한 교육 철학을 가진 그이지만, 처음부터 교직 생활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세계 무대를 누비던 그가 한평생 학생들과 함께하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교육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주 우연한 일이었어요. 1986년, YMCA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인디애나 음악대학의 현악과 학과장을 만났는데, 제게 학교에서 강의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가진 지식을 젊은 세대와 나눌 좋은 기회였습니다. 막내아들 조너선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이기도 해서, 저도 교직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해 가을부터 인디애나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추구한 ‘좋은 스승’에 대한 기준이 있나요?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가르치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학생들에게 바이올린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많은 제자가 “미리암 선생님을 만난 이후, 새로운 음악적 관점이 생겼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있다면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표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종종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해 목표를 세우는 것조차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신의 믿음을 따를 수 있도록 격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려면 스승과 제자의 신뢰가 두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렇기에 교육자에게는 학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바이올린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어느 정도는 심리학자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다음에는 바이올린과 음악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하고요.

이러한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수업에서는 어떤 방식을 사용하나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음악적인 질문부터 삶에 관한 질문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연습할 때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들이죠. 또, 연습의 첫 단계는 ‘주의 깊게 듣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잘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분석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개선할지 생각하고 시도해 보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반복 연습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늘 학생들에게 연주하는 곡의 총보를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화성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마음은 연주 생활을 하는 내내 살아 있어야 해요. 너무 오랫동안 비효율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자신이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수업을 통해 저 스스로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 저의 열정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개인 교습 외에도 ‘스튜디오 클래스’라는 그룹 수업도 운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서로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수업입니다. 스튜디오 클래스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들 대부분이 운영하는 방식인데, 정말 훌륭한 시스템이에요. 가장 큰 목적은 모든 학생에게 연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건 정말 중요하니까요. 또, 다른 학생들의 연주를 비판적으로 듣는 방법, 서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전하는 방법도 배우게 됩니다.

수업에서 음악적 역량 외에 강조하는 가치나 태도도 있나요?

학생들에게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 오랜 친구이자 비올리스트인 킴 카쉬카시안(1952~)이 시작한 비영리 프로젝트 ‘뮤직 포 푸드(Music for Food)’야말로 좋은 예예요. 음악가들은 연주를, 관객은 지역의 푸드뱅크에 음식이나 돈을 기부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죠. 물론 학생들은 다른 방식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교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고요.

그리고 저는 제자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계속해서 나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실패의 원인을 차분히 돌아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실수야말로 가장 값진 배움의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이런 점 때문에 전 세계의 학생들이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음… 이 질문에는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렵네요. 스승에 관한 평판이란 결국 제자들의 성공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저는 감사하게도 좋은 연주 경력을 쌓아나간 많은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온라인에 제가 진행한 마스터클래스 영상도 꽤 있어서, 그 영상들을 보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육의 길을 찾다

오랜 시간 음악가들을 양성해오고 계신데, 앞으로 이들이 활동할 음악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아마도 몇 년 안에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입니다.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건, 결국엔 음악이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 음식이 필요하듯,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음악이 필수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음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음악가들이 앞으로 더욱 빛날 것이라고 믿어요. 젊은 음악가들이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길 바랍니다.

교육 방식에서도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가 생길까요?

그럼요. 과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전기를 통해서도 교육 환경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알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지, 억지로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교육자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교육 방식을 만들기 때문이죠. 저는 팬데믹 기간 중 화상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의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몸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수업만큼 깊이 있는 소통을 해주는 방식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시간을 보내는 중인지요? 요즘 특별히 계획 중인 일이 있을까요?

지금도 유럽과 미국에서 마스터클래스 등의 초청을 받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런 활동에 조금 거리를 두고 진지하게 휴식을 고민 중입니다. 몇 년 동안 꿈꿔왔지만 미처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이제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예를 들어, 남편과 함께 여름 한 달 동안 파리를 천천히 여행하며 마법 같은 순간들을 발견하는 일이요. 공연을 위해 여행할 때는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음악가이자 한 사람으로서 삶의 지향점을 알려주세요.

저는 언제나 정직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타인을 위한 봉사도 제게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평생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그 가치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는 일도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 방향에서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과 바이올린에 관해 쌓아온 저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아직은 여유가 없었지만, 조만간 꼭 해보려 합니다.

김강민 기자 사진 뉴잉글랜드 음악원·라비니아 페스티벌

 

미리암 프리드(1946~) 파가니니 콩쿠르(1968)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71)에서 우승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펼쳤고, 멘델스존 콰르텟에서 제1바이올리니스트로 10년간 활동했다. 1994년부터 30년간 청년 음악가들의 여름 프로그램인 라비니아 페스티벌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02 DIALOGUE

 

네 명의 제자가 말하는 ‘나의 스승 미리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김다미·장유진·이수빈

 

많은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미리암 프리드와 함께 공부했다. 이들에 관해 묻자, 미리암 프리드는 “정말 특별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었다”라며, “모두가 성실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노력을 한 점”에서 “존경스러웠다”라고 전하기까지 했다. 제자들이 한 사람의 음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스승의 진심 어린 표현이었다. 제자들은 그 존중에 화답하듯, 미리암 프리드와의 소중한 일화를 꺼내놓았다.

 

이지혜와 미리암 프리드

미리암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이지혜 메뉴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콩쿠르 기간 중 열린 심사위원 마스터클래스를 참관하며 처음 뵈었다. 선생님의 학구적이면서도 학생 개개인 맞춤형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유학을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미리암 선생님이 떠올랐다. 연락을 드리자, 선생님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며, 함께 공부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김다미 미국에서는 이미 명교수로 유명하셨기에 선생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지도를 받았는데,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짚어주셨다. 아이디어에 설득력이 있었고, 음악적인 힘이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을 꼽는다면 단연 미리암 선생님이다.

장유진 2004년 메뉴인 콩쿠르에서의 첫 만남 이후 마스터클래스 등을 통해 인연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선생님이 언제나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신다는 점에 크게 이끌렸다. 늘 나의 중심이 되어주셨기에 석사부터 박사 과정까지 약 10년간 선생님과 공부했고, 이 시간은 내게 큰 자산이 됐다.

이수빈 유튜브에 담긴 연주와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통해 선생님을 알게 됐다. 잘 알고 지내던 선배들이 미리암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있었고, 선생님이 연주자뿐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얼마나 열정적인지 이야기를 들으며 유학을 결정했다. 첫 수업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음악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가르쳐주셨다.

미리암 프리드와 장유진

“미리암 선생님은 음악을 통해 나에게 ◯◯◯을 가르쳐주셨다”라는 문장을 완성한다면?

이지혜 깨달음. 선생님은 내가 왜 음악을 하고 싶은지를 알게 해주신 분이다. 그냥 열심히만 하던 나에게 음악의 본질을, 그리고 바이올린이 내 인생의 일부라는 걸 진심으로 느끼게 해주셨고, 그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내게 큰 의미로 남아 있다.

김다미 책임감. 단지 음악인으로서 실력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의 소통 방식,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까지도 가르쳐주셨다. 무엇보다도 항상 솔선수범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신 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장유진 진실함. 음악이 지닌 의미를 더 넓고 깊게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셨고, 정말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묻는 태도가 작품 해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걸 배웠다. 결국 음악은 사람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기에 진실한 태도는 연주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수빈 사랑. 이 단어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선생님은 늘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음악을 사랑하는 일 외에도, 가족과 제자를 포함해 주변과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시는 모습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미리암 프리드와 김다미

힘들었던 순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도움은?

이지혜 콩쿠르를 준비할 때 “넌 지금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라던 격려. 그리고 독일행을 결정했을 때 “너는 나에게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라던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김다미 슬럼프를 겪었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양로원에 봉사 연주를 다녀왔다. 어르신들의 환한 미소와 “정말 좋은 연주였다, 네가 이곳에 와줘서 행복하다”라는 따뜻한 말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미리암 선생님께 배운 것 중 다른 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 싶은 것은?

장유진 음악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본인의 목소리를 스스로 찾아가고 음악에서 표현할 방법을 돕고 싶다.

이수빈 음악적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렇기에 자신의 음악을 할 때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김강민 기자

 

이수빈과 미리암 프리드

5월, 한국에는 스승의날이 있고, 미국은 5월 첫째 주가 스승의날 주간이다. 선생님께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는?

이지혜 선생님께 배운 모든 것에 늘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의 지혜가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제 마음속에 계세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다미 음악가로서의 진정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음악의 기쁨을 발견하게 해주신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장유진 음악으로 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진실함과 너그러움은 제가 음악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선생님께 받은 모든 것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립니다.

이수빈 선생님의 사랑과 지혜는 제 연주뿐 아니라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제게 진심으로 전하는 나눔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어요. 그 마음은 늘 제 안에 남아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줍니다.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지혜(1986~) 2014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 입단해, 2017년 제2바이올린 종신단원이 되었다. 발트앙상블 음악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김다미(1988~) 커티스 음악원·뉴잉글랜드 음악원·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뉴욕 주립대학에서 수학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유진(1990~)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석사·최고연주자·박사 과정을 마쳤다.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에서 활동 중이며, 이스트만 음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수빈(2000~)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했다. 2024/25 시즌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다미 바이올린 리사이틀

6월 29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발트앙상블 리사이틀(음악감독 이지혜)

8월 1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리사이틀(바이올린 장유진)

8월 20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이수빈 바이올린 리사이틀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