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설공주’, 어느 시대건 소녀에겐 꿈꿀 자유가 있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5월 12일 9:00 오전

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백설공주’

어느 시대건, 소녀에겐 꿈꿀 자유가 있다

 

감독 마크 웹

음악 벤지 파섹 & 저스틴 폴

출연 레이철 지글러, 앤드루 버냅, 갤 가도트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그리 예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왠지 몽글몽글하고 폭신폭신한 감정이 밀려온다. 이는 대부분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때론 허황하고 때론 간절하기도 했던 우리의 ‘꿈’ 덕분일 것이다. 아이들은 늘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눈을 감고도, 눈을 뜨고도 꿈꾼다. 나를 가둔 이 어두운 방에서 나를 구해줄 왕자님이, 피터 팬이, 요술 할머니가, 재스민 공주가 나타나리라 믿는다. 나는 앨리스 덕분에 지금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낙하하는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노력하지만…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밤에 태어난 백설공주(레이철 지글러 분)는 온정이 넘치는 왕국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어둠의 힘으로 왕국을 빼앗은 여왕(갤 가도트 분)의 계략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백설공주는 가까스로 달아나 마법의 숲에서 일곱 광부의 도움을 받아 지낸다. 백설공주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왕은 독사과로 그녀를 죽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백설공주는 빼앗긴 왕국을 되찾기 위해 여왕과 맞선다.

줄거리와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 2025년의 실사영화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의 동화가 아니라 1937년 제작된 월트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원작으로 한다. 아름답지만 나쁜 여왕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공주, 왕자는 아니지만 백설공주와 사랑을 나누는 의적 조너선(앤드루 버냅 분), 그리고 개성이 강한 일곱 명의 난쟁이 등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사전적으로 우리말의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를 뜻하지만, 영어의 ‘페어리 테일(fairy tale)’은 마법이나 상상 속의 환상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의미한다. 판타지를 바탕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백설공주’를 비롯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동화라기보다 페어리 테일에 더 가깝다.

최근 페어리 테일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들과 이야기가 차별적이라는 비판에 따라, 디즈니는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인종·성별·장애·종교·직업 등에 관한 편견이나 차별이 섞인 언어 또는 정책을 지양하려는 신념, 혹은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 운동을 일컫는다.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에 동성애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인어공주를 레게 머리를 한 흑인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틴계의 백설공주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낭만적 정서와 어린 시절의 판타지는 이러한 1차원적인 변화만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어설픈 변화 때문에 낯설다기보다 왜 이래야 하는지 줄곧 어리둥절할 뿐이다.

낯설지만 새롭지는 않은 따분함

세상을 낯설게 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익숙해서 그냥 넘어갔던 문제를 바르게 투영하는 새로운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백설공주’가 투영해 보여주는 풍경은 낯설긴 하지만 전혀 새롭지는 않다. 눈처럼 하얘서 ‘백설(snow whit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원작의 설명과 달리, 눈보라가 몹시 몰아쳤던 날에 태어나서 백설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설명부터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없다.

라틴계 배우가 백설공주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 백설공주의 상징인 삼원색 의상을 재해석 없이 그대로 입은 레이철 지글러의 모습은 솔직히 너무 촌스러워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공주 옷을 사 입은 철부지 소녀처럼 보인다. 어중간한 단발 역시 어색하다. 따지고 보면 피부색 말고 무엇이 달라졌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발랄한 성격을 강조한 나머지 간혹 드러나는 예의 없어 보이는 표정과 태도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조차 원작의 백설공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는 원작의 플로리안 왕자의 존재를 지우고, 대신 전형적인 도적 캐릭터인 조너선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역할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조너선은 왕자가 아닐 뿐 실질적으로 공주를 돕고, 잠든 그녀를 키스로 깨운다. 왜소증 배우들을 배제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일곱 난쟁이 CG는 기묘하게 어색하고 현실감이 없다. 어정쩡한 관계 설정 탓에 백설공주와 난쟁이들 사이에 언제 친근함이 생겼나 갸웃하게 된다.

백설공주는 자기주장을 또박또박 내세우기만 할 뿐 전혀 주체적이지 않다. 그저 타고난 공주 캐릭터로 사람을 쉽게 부리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교화시킬 뿐이다. 여왕에게 속아 독이 든 사과를 덥석 베어 물어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남자의 키스로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덜 자란 성격이야말로 이번 영화에서 제대로 바뀌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날의 동화가 갖춰야 할 덕목

디즈니는 항상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사랑받아 왔다. 믿고 싶은 판타지, 언젠가는 이뤄질 것 같은 꿈이 담긴 선물 상자 같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아직도 따뜻하게 기억된다. 하지만 2025년의 ‘백설공주’는 20세기를 살았던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의 낭만을 추억할 기회도, 21세기를 살아갈 소녀들에게 꿈꿀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는 따분한 이야기가 되었다.

21세기 소녀라도 낭만적인 꿈을 꿀 수 있다고, 꿈을 꾸면서 살아남아도 좋다고 긍정할 순 없었을까? 악한 것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남의 도움을 받기 전에 본인부터 단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면, 21세기 소녀라면 공주라는 신분과 사랑에 집착하기보다 더 공정하고 바른 것을 스스로 성취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소녀들을 긍정하고 격려할 수 있다면, 그게 판타지라 한들 무엇이 문제겠는가?

 

[OST] 음악감독 벤지 파섹 & 저스틴 폴 | 월트 디즈니 레코드

원작 애니메이션의 OST 일부가 리메이크됐고, 대부분은 새롭게 만든 뮤지컬 넘버로 채워졌다. 음악은 역시 디즈니답게 완성도가 높다. 레이철 지글러 또한 이를 꽤 잘 소화하는 편이다. ‘하이호(Heigh-Ho)’나 ‘휘파람 불며 일해요(Whistle While You Work)’ 등과 같이 리메이크된 곡도 원작만큼이나 잘 들리고, 이번 영화에서 새로 작업된 곡들도 아름답다. 하지만 원작의 가장 상징적인 노래인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올 거예요(Someday My Prince Will Come)’는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이번 영화의 새로운 설정 때문에 빠졌는데, 정서적으로 워낙 아름다운 곡이라 아쉽다.

 

 

SET-LIST

01 Good Thigs Grow 02 Good Things Grow(Villagers’ Reprise) 03 Waiting On A Wish 04 Heigh-Ho 05 All Is Fair 06 Whistle While You Work 07 Princess Problems 08 The Silly Song 09 A Hand Meets A Hand 10 All Is Fair(Reprise) 11 Waiting On A Wish(Reprise) 12 Snow White Returns 13 Good Things Grow(Finale)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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