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ING STAR
피아니스트 김세현
건반으로 탐독해, 음악을 성취하다
만 17세에 롱티보 콩쿠르 우승!
정제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로 또 하나의 스타가 탄생하다
김세현(2007~)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하여 월넛힐 예술고등학교·뉴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를 졸업했다. 2023년 클리블랜드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하버드 대학 복수 학위 과정 재학 중이다.
3월 30일, 파리로부터 낭보가 날아왔다. 롱티보 콩쿠르에서 김세현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만 18세를 하루 앞두고 결선을 치르게 된 그는, 2001년 같은 대회에서 만 17세의 나이로 우승했던 임동혁과 같은 기록을 남기게 됐다. 더불어 올해는 쇼팽 콩쿠르, 밴 클라이번 콩쿠르, 부소니 콩쿠르 같은 대표 피아노 콩쿠르들이 열리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도 피아노 부문 개최를 앞두고 있어 김세현이 전해온 첫 우승 소식은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프랑스 음악 전문지 ‘디아파종’은 “올해 인상적인 예술가가 우승을 거뒀다”며, 절제된 몸짓에서도 다양한 음색으로 선명한 표현을 선보인 김세현에 대해 호평했다. 김세현은 우승 외에도 청중상·평론가상·파리 특별상(2만 명 이상의 파리 음악학도들의 투표로 선정)을 모두 받았다. 결선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선보였는데, ‘디아파종’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상자 연주회에서 다시 연주해야 하는 힘든 순간에도, 김세현은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며, 강렬한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예고했다. 준결선 독주 무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3번과 쇼팽 연습곡 Op.25 전곡을 연주했는데, 쇼팽 연습곡 해석 곳곳에 본인만의 재치 있는 관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세현은 예원학교 재학 중 신수정·최영미를 사사하다 일찍이 도미했다. 특별한 점은 16세에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와 하버드 대학교 학사 복수 학위 과정에 합격했다는 것. 현재 피아노는 당 타이 손과 백혜선을 사사 중이며, 영문학 전공으로 복수 학위를 계획 중이다. 이번 콩쿠르로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시간을 경험했다는 김세현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현재 복수 학위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문학과 음악 공부를 병행하며 얻는 이점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 모두 표현을 위한 수단입니다. 인간의 삶, 혹은 그 너머의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죠. 특히, 문학은 다른 사람의 삶이나 환상 속 세계에 저 자신을 투영해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합니다. 이 요소가 음악의 본질과도 가깝다고 느끼고요.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언제부터 키워왔나요?
네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여덟 살쯤부터 최영미·신수정 선생님께 지도를 받으며 흥미가 급격히 늘었던 것 같아요. 제 안의 잠재력을 끌어내 주셨는데, 물려주신 음악에 대한 열정과 겸손함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교를 넘어 음악으로

롱티보 콩쿠르 결선 영상
콩쿠르 우승을 축하합니다. 본인에게 이 콩쿠르는 어떤 의미였나요.
저명한 음악가들이 발자취를 남긴 유서 깊은 콩쿠르에서 과분한 상을 받아 감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음악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몰두했습니다. 음악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자세와 연주에 대한 사명감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습니다. 고난도 작품이라 콩쿠르 이후에도 자주 회자될 것 같은데요. 표현하고 싶었던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폭넓은 감정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기교보다는, 악보 너머에 숨어 있는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의 고뇌나 다스릴 길 없는 벅찬 가슴의 두근거림 같은, 여러 삶의 애환이 음악에 담겨 있어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엔 차가움 속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그 온기가 연주회장 끝까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피아노에 제 숨결을 불어 넣으려 노력했습니다.
정제된 선율을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명상적인 관점이 느껴졌달까요?
명상적이라고 느껴졌다면 가장 최근 가르침을 받게 된 당 타이 손 선생님의 영향이 클 것 같아요. 고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게 노래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선생님의 연주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백혜선 선생님으로부터는 음악의 문법과 음악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세, 당 타이 손 선생님으로부터는 상상력으로 몰입하는 방법과 특유의 자연스러운 루바토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6월부터는 콩쿠르 우승으로 프랑스 순회 연주, 라 로크 당테롱 독주회를 갖고, 8월에는 국제 음악제(예술의전당 주최), 부산 콘서트홀 개관 기념 연주회 등으로 한국 공연을 선보입니다. 앞으로를 관심 있게 지켜볼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각오 한마디가 있다면?
서두르지 않고, 늘 꾸준히 겸손하게 정진하겠습니다. 공연장에서 뵐 날을 고대합니다.
글 허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