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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임윤찬 피아노 독주회 4.3
스무 살의 아드레날린, 그 매혹적인 도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다시 한번 파리 무대를 사로잡은 임윤찬의 리사이틀 현장

©Ondine Bertrand/CHEEESE
얼마 전, 필하모니 드 파리의 프로그래밍을 주관하는 예술감독은 임윤찬의 공연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임윤찬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가 있던 날,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위기는 마치 아이돌 스타의 공연장을 방불케 했고, 관객의 평균 연령이 한 세대 젊어졌다.”
2023년 2월, 루이비통 재단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데뷔 독주회 이후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활약은 해를 거듭할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같은 해 11월, 정명훈/라디오 프랑스필과 협연 및 악장 박지윤과의 실내악 연주, 2024년에는 클라우스 메켈레/파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파리의 관객과 평단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에는 필하모니 드 파리 대공연장에서 리사이틀을 선보였다.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의 무대라는 점, 21세기 문화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 출신의 연주자라는 점도 청중의 관심을 자아냈다. ‘K-클래식 스타’ 임윤찬의 신드롬을 실감케 하듯 공연장은 평소보다 현저히 젊은 관객으로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팬들의 뜨거운 성원과 매진 사례는 열기를 더했다. 아이돌 스타의 무대를 방불케 했던 화제의 현장을 찾았다.
스승에게 바치는 오마주,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가 악보에 ‘애호가들을 위한 정신적 유희’라고 명기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가 존경했던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라 카프리치오사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 주제를 인용했기에, 바흐가 스승에게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 곡은 바흐가 절친했던 러시아 대사 카이제를링크 백작의 요청으로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불면증을 앓던 백작이 바흐에게 “밤에 들을 수 있는 조용하고 즐거운 음악을 써달라”고 부탁했고, 젊은 쳄발로 연주자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가 매일 밤,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하니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자장가였던 셈이다. ‘카이제를링크를 위한 변주곡’으로 출발한 이 작품은 베토벤에서 불레즈에 이르기까지 변주곡을 시도한 수많은 작곡가를 매료시킨 음악적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스무 살의 바흐, 그리고 청출어람
스승 손민수의 연주를 듣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꼭 연주하고 싶었다는 스무 살의 임윤찬은 이번 무대에서 스승 못지않은 해석으로 다시 한번 이목을 집중시켰다. 2023년 독주회에서 바흐의 신포니아(3성)를 통해 드라마와 서정이 어우러진 연주로 바흐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건반 레퍼토리의 에베레스트라고 불리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파리 관객에게 들려주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장장 한 시간 반이 소요되는 대장정이다. 그는 이 어마어마한 대곡을 전체적으로 날렵하게 주파했다. 스타인웨이 앞에서 열과 성을 다하던 그는 종종 두 손으로 이마의 땀과 머리카락을 함께 쓸어 넘기며 다음 변주를 위해 정신을 가다듬기도 했다. 풍부한 잔향 속에서 울리는 현대 악기의 울림을 고려한 듯 페달 사용을 자제했으며, 따라서 그가 처리한 꾸밈음은 비교적 단순하고 담백하게 울렸다.
그만의 독특한 프리즘을 통과한 바흐의 선율은 이번에도 2023년 연주에서처럼 변화무쌍한 성격소품을 떠올리게 했다. 각 변주의 상반된 캐릭터에 집중한 임윤찬은 격렬한 리듬 속에서 스윙을 살렸고, 지난 공연에서 연주한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을 떠올리게 하는 파워풀한 드라마를 다시 한번 펼쳐냈다.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건반을 주파할 때는 쇼팽의 루바토가, 왼손 베이스라인을 대담하게 살릴 때는 브람스의 낭만이 들렸으며, 강렬한 불꽃이 번져나갈 때는 스크랴빈의 신비주의가 꿈틀거리기도 했다. 임윤찬이 대가들의 다양한 연주를 들으며 폭넓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했음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젊은 피아니스트는 이렇게 흡수한 영감을 기반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본인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신나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임윤찬의 테크닉을 관찰하면, 난해함이라는 용어는 그의 사전에 없는 듯하다. 가벼운 손가락 놀림으로 건반을 누비며 주파하는 두 손은 수없이 교차하지만(하나의 클라비어를 위한 변주곡과 두 개의 클라비어를 위한 변주곡이 돌아가면서 전개), 흐름은 유연했다.
관조적 담백함으로 시작된 아리아가 끝나고, 첫 번째 변주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분위기는 급변했다. 다이너마이트가 장착된 듯, 자그마한 체구에서 쏟아져 나오던 에너지는 각 변주곡에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분배되었다. 스토리를 리드하던 날렵한 왼손 테크닉과 레가토-논 레가토-스타카토의 상이한 질감 표현도 또렷했으며, 시적인 꾸밈음(13번 변주), 멜랑콜리한 서정의 독특한 음색과 템포 조절(25번 변주)도 개성적이었다.
진정성과 대담함, 그 사이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직전에 연주한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는 이하느리(2006~)가 작곡한 작품이다. 짧지만 예리하게 번뜩거리는 섬광을 특징으로, 임윤찬이라는 연주자를 최단 시간 내에 스케치한 초상화처럼 다가온 곡이었다.
다만, 원래 예정되었던 안톤 베베른의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 Op.27이 빠진 점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베베른과 바흐의 ‘변주곡’을 나란히 배치한 프로그램이었기에, 그가 ‘변주’라는 개념에 어떻게 집중하며 전개해 나갔을지에 대한 궁금함이 남았다. 또한, 조성진이 연주했던 알반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와 임윤찬의 베베른의 변주곡을 통해 K-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두 피아니스트가 제2빈악파를 각각 어떤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공연에 함께했던 현지 기자들은 그의 연주에 대해 ‘자기 내면을 향한 해석과 탁월한 기교가 놀랍다’ ‘화려한 기교가 앞서 메시지 전달의 강렬함은 다소 부족한 점이 아쉽다’ ‘인위적이지 않은 심플한 연주, 통념이나 기준에 갇히지 않은 주관적 해석이다’는 평을 내놓았다.
리사이틀(Récital)의 어원은 이야기하다(Réciter)이다. 임윤찬은 이번에도 그 어원의 의미와 본질을 제대로 상기시켜 주었다. 자신이 느끼는 바에 충실한 연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순수한 접근은 진정성으로 평가할 만하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경험해 보고픈 스무 살의 혈기와 아드레날린, 그리고 거침없는 자유로움은 아름답다.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에 대한 비전을 개성적인 대담함으로 관철한 해석이었다.
글 박마린(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필하모니 드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