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1
피아니스트 조성진
건반 위의, 라벨 마라톤 라벨
음반 발매 후, 카네기홀을 거쳐 대대적인 국내 투어에 나서는 그의 근황 이야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오는 6월과 7월에 걸쳐, 전국에서 대대적인 국내 투어를 진행한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발매된 독주 피아노 전곡 음반(DG/4866814)의 실황을 만나볼 기회다.
올해 초부터 조성진은 월드 투어를 계속 이어왔다. 1월 빈을 시작으로, 뉴욕·베를린·함부르크 등 유럽과 북미의 주요 공연장들을 거쳤다. 한국 관객을 위해서는 라벨 전곡 외에 하나의 독주 레퍼토리를 더 선보인다. 리스트 ‘에스테장의 분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5번, 버르토크 ‘야외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네 작품 모두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자세한 지역별 프로그램은 공연 정보 참고)
지난 2월 5일, 카네기홀에서 열린 조성진의 독주회 또한 라벨 전곡 프로그램이었다. 두 번의 인터미션을 가지며 세 시간에 달하는 말 그대로 마라톤 연주다. 열세 곡을 한자리에서 모두 감상하는 대장정을 앞두고, 그 현장의 열기가 무엇이었을지 카네기홀에서의 공연 후기를 통해 미리 만나보자.
REVIEW 음반 발매 후 긴 호흡으로 뛴 섬세한 라벨 독주회

2월 카네기홀 독주회 ©Stephaine Berger
3시간 동안 진행된 조성진의 독주회는 라벨로 가득 채워졌다. 마라톤 콘서트는 연주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혼자 오롯이 무대를 감당해야 하고, 장시간 연주자와 관객 모두 집중해야 하는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우, 보스턴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보로메오 콰르텟이 버르토크 현악 4중주 전곡을 2시간 반 정도 연주했고, 최근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막심 벤게로프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라벨 작품을 깊이 있게 다뤘지만, 짧은 곡들은 제외하고 비중 있는 곡 위주로 연주했었다.
모리스 라벨은 20세기 초 파리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물의 유희‘ ‘거울’ 등 정교하게 구성된 피아노 작품들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명료함을 추구하며 불필요한 음표와 제스처를 가차 없이 제거하며 예술 세계를 펼쳐냈다.
조성진은 라벨이 표현하고자 했던 과거의 작곡 스타일과 초현대적인 화성, 작곡 기법을 통합했다. 생동감 있고, 정교하면서 장엄하기도 하고, 서정적인 라벨의 폭넓은 음악 세계를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감탄이 날 만큼 완벽하게 구현했다.

©Stephaine Berger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어린 공주가 한때 스페인 궁정에서 추었을 법한 파반느를 떠올리게 한다는 곡의 설명처럼, 그 시간을 상상하며 추억을 불러일으키듯 아련함을 살려서 연주했다. 이어지는 ‘물의 유희’에서는 물이 흘러가듯 유연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건반 위에 펼치며, 하나하나의 음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섬세하고 투명한 모습을 그림처럼 펼쳐놓았다.
라벨은 변화와 도전을 향한 작곡가다. 라벨이 변칙적인 화성의 사용과 기존의 어법을 허무는 진보적인 시도를 선보였던 것처럼 조성진은 음악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했다. 각 작품의 특성은 살리되, 기교와 연주는 흔들림 없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그의 세계를 보여주며, 긴 호흡의 마라톤을 완주했다. 관객은 숨을 죽여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나오는 다양한 음의 색깔에 함께 취하며 그의 완주에 환호했다. 화려한 기법이나 강렬한 울림을 넘어선 음악적 세계가 확실하게 드러나, 그가 왜 3시간에 걸친 라벨의 전곡 연주를 선택했는지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굳이 ‘완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반드시 ‘완벽성’으로만은 대체되지 않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AI가 사람보다 더 완벽하게 수행하는 분야는 많아지고 있음에도,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조성진의 무대는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타협점 없는 예술의 경지에 감탄하는 관객의 끝없는 박수갈채와 커튼콜을 뒤로하고, 무대에서 퇴장하는 조성진의 발걸음은 잃어버린 길을 찾은 새처럼 보였다.
글 양승혜(뉴욕 통신원) 정리 허서현 기자 사진 카네기홀
【1부】
그로테스크한 세레나데/고풍스러운 미뉴에트/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물의 유희/소나티네
【2부】
거울/밤의 가스파르
【3부】
하이든 이름에 의한 미뉴에트/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프렐류드/보로딘 풍으로/샤브리에 풍으로/쿠프랭의 무덤
조성진(1994~)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했으며,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2016년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지난 1월에는 라벨의 피아노 독주 작품 전곡 음반을, 2월에는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발매했다. 2024/25 시즌 베를린필 상주 음악가이며, 2025/26 시즌 런던 심포니 ‘아티스트 포트레이트’다.
PERFORMANCE INFORMATION
라벨 피아노 독주곡 전곡 연주회
6월 12일 오후 7시 아트센터인천 | 6월 1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월 20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7월 2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피아노 독주회
6월 15일 오후 3시 성남아트센터 | 6월 1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월 21일 오후 5시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 7월 6일 오후 4시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리스트 ‘에스테장의 분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버르토크 ‘야외에서’,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