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아’, 칼라스가 아닌 마리아로서 살았던 마지막 일주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6월 9일 9:00 오전

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마리아’

칼라스가 아닌, 마리아로서 살았던 마지막 일주일

 

감독 파블로 라라인

음악 존 워허스트

출연 앤젤리나 졸리,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알바 로르바케르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대명사이고 한줄기의 역사라서 굳이 관심 두고 찾아보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아하거나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그의 이름과 많은 가십이 사람들의 곁에 공기처럼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다 알고 있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제대로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고전소설과 같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우리가 몰랐던 더 깊은 이야기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들의 감정이 보인다.

디바의 마지막 초상

1977년 가을, 파리에 머무는 마리아 칼라스(앤젤리나 졸리 분)는 약에 의존해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성대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대중 앞에 설 수 없지만, 다시 노래하고 싶은 욕망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 기억으로 자서전을 쓰듯, ‘선박왕’으로 불린 애리스토틀 오나시스(1906~1975)와의 스캔들, 트라우마로 남은 유년 시절 등이 계속 떠오르며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다.

파블로 라라인(1976~) 감독은 2016년 ‘재키’(재클린 케네디)를 시작으로 2021년 ‘스펜서’(다이애나 왕세자비)와 2024년 ‘마리아’(마리아 칼라스)까지, 세기의 아이콘으로 남은 여성들의 전기 영화 3부작을 만들었다. ‘마리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을 환각과 현실, 실제와 소문을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 연출로 세심하게 그려내고, 마리아 칼라스가 지닌 음악을 향한 열정을 관객에게 전한다.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감독이었던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가 “오페라의 역사는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평했을 만큼, 마리아 칼라스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진정한 오페라 디바이다. 오페라는 본래 16세기에 시작된 대중적인 음악극이었지만, 점차 세련된 예술 형태로 변해왔다. 마리아 칼라스는 그러한 오페라를 다시 대중 곁에 돌려놓았다고 평가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인물의 내면을 상징하는 아리아

앤젤리나 졸리(1975~)는 대중에게 익숙한 마리아 칼라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7개월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직접 아리아를 소화했다. 성악을 위한 호흡과 자세, 발성의 기본은 물론 이탈리아어 강습까지 받았다. 앤젤리나 졸리가 직접 녹음한 아리아는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것과 비율을 조정하여 믹싱했다고 한다. 실제로 앤젤리나 졸리의 노래와 칼라스의 노래에서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다.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그린 영화답게 오페라 연주곡과 아리아는 극의 순간순간에 마리아 칼라스의 내면을 투영하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등장한다. 영화는 베르디의 ‘오텔로’ 중 ‘아베 마리아’로 시작되며, 벨리니의 ‘노르마’, 푸치니의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등 여러 오페라 의 대표적인 아리아와 오케스트라 연주곡이 흐른다. 입체적이고 선명한 음향이 구현되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더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무대 위에서 내려온 한 명의 예술가, 마리아의 삶으로 들어간다. 목소리가 상해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없는 현재를 비참하게 그리거나, 그의 암울한 유년기 혹은 스캔들을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마리아’는 칼라스의 삶을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라, 마리아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영화다. 사생활을 드러내지만 모욕하지도 동정하지도 않고, 마리아의 삶에 깊이 동화되지 않고 멀리서 관찰자의 시선에 머문다.

마리아가 되고 싶었던 라 칼라스

극 중 인물 간의 감정 교류, 환각과 현재 사이를 오가는 극의 구성을 산만하지 않게 이끌어가는 것은 조연 배우들이다. 집사 역의 피에르 프란체스코 파비노, 마리아의 환각 속에 등장하는 리포터 역의 코디 스밋 맥피, 다정한 가정부 역의 알바 로르와처, 마리아의 언니 역의 발레리아 골리노 등 배우들의 무게감이 ‘마리아’의 큰 뼈대가 된다. 그래서 한 편의 실내극처럼 소수의 등장인물이 두 시간 동안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도, 배우들의 내밀한 표현과 시너지 덕분에 이야기가 느슨해지지 않는다.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은 대부분 마지막 장면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여인의 삶과 오페라 주인공의 삶이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리아 칼라스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리아와 현실에서 내뱉는 호흡에는 비극의 한숨이 담겨있다. 소문에 의하면 무례하고 당당하고 강인한 예술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과 남자,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여성이었다고 라라인 감독은 말한다.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늘 마리아가 되고 싶었지만, 항상 칼라스가 자신을 누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리아’는 ‘라 칼라스’라는 거대한 직조물 사이에 뾰족하게 비집고 나온 마리아라는 실 끝을 쥐고 새로운 실타래를 감아보려는 영화다(‘라 칼라스(La Callas)’는 마리아 칼라스의 별칭이다. 이탈리아어로 ‘그 칼라스’라는 뜻으로, 마리아 칼라스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향한 존경이 담긴 표현이다). 영화는 그렇게 감아낸 실타래로 마리아라는 한 여인의 숨소리에 집중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 전체를 던져 ‘라 칼라스’가 되었지만, 삶의 끝에서 다시 마리아가 되어보려 했다고 말한다.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고 세상에서 홀연하게 사라진 마리아의 모습에서 동화 속 인어공주의 비극이 보인다. 인어공주는 사랑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은 순간 다리를 얻었지만, 라 칼라스는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순간에 마리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마리아라는 예술가는 사라졌고, ‘라 칼라스’라 불리는 예술만이 남았다. 어쩌면 예술가가 소멸하는 순간, 예술이 영생을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OST] 음악감독 존 워허스트 | 워너 클래식스

마리아 칼라스가 남긴 녹음을 실제로 사용하여 새로운 사운드로 만들어냈다. 영화 속 아리아 장면은 마리아 칼라스와 앤젤리나 졸리의 노래를 믹싱하여 사용했지만, 음반을 통해 앤젤리나 졸리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음반에는 영화의 편집 때문에 다 듣지 못한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는 물론이고, 지휘자 피터 일레니(1974~)가 지휘한 오케스트라 연주곡도 담겨있다.

 

 

▶ SET-LIST

01 Ave Maria 02 Casta Diva 03 Anvil Chorus 04 O Mio Babbino Caro 05 I Showed Him The Diary 06 Ave Maria (Piano Version) 06 La Traviata – Intermezzo 08 Ebben? Ne Andro Lontana 09 Medea – Intermezzo 10 E Che Io Son Medea 11 Why I Snort Cocaine 12 That Will Be 100 Drachma 13 Habanera 14 Humming Chorus 15 Qui La Voce Sua Soave 16 Parsifal – Prelude 17 Sempre Libera 18 I Believe I’m Expected 19 Habanera (Jazz Version) 20 Last Night Before He Fell Asleep 21 Addio Del Passato 22 Ave Maria (Fully Orchestrated Version) 23 Piangete Voi 24 E Lucevan Le Stelle 25 Vissi D’arte 26 An Ending (Ascent) 27 Va Pensiero (Introduction) 28 Va Pensiero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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