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VERSARY
40년의 울림, 내일을 준비하다
창단 40주년을 맞는 KBS국악관현악단. 작품과 사람을 잇고, 옛과 미래를 이어나갈 악단을 꿈꾸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은 KBS국악관현악단이 ‘40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특별한 음악 여정을 이어간다. 3~10월의 시청자 감사음악회와 6·9월의 정기연주회는 그간 악단이 축적해온 레퍼토리와 인물을 통해 국악관현악의 동시대성을 묻는 시간이다. 1985년 창단 이래 한국 국악계의 주요 인재를 배출해온 악단은, 젊은 상임지휘자 박상후의 리더십 아래 새로운 음악적 국면을 모색하고 있다.
촬영을 위해 무대에 함께 오른 여덟 명의 협연자들은 모두 수십 년간 국악의 깊이를 새겨온 명인들이다. 6월 정기연주회를 빛낼 문양숙(25현 가야금)·류경화(철현금)·강은일(해금)·김정승(대금)과 9월 정기연주회를 장식할 이용구(단소)·허윤정(거문고)·정수년(해금)·김일륜(25현 가야금)은 각자의 고유한 음색으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카메라 셔터가 울리는 짧은 순간, 국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프레임에 담겼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황필주·KBS국악관현악단
PREVIEW
KBS국악관현악단 ‘40, 그리고 내일’
창작국악사를 바꾼 작품과 음악가(협연)들이 함께 하는 무대들
이번 무대는 KBS국악관현악단의 지난 40년 역사와 국악관현악의 현재를 균형 있게 조명하고자 기획됐다. 먼저, 10월까지 이어지는 시청자 감사음악회는 악단의 역사를 되짚는다. 8월 공연(8.21/KBS아트홀)에서는 전임(前任) 상임지휘자 원영석이 관객과 호흡했던 대표곡들을 선보이며, 10월 공연(10.24/KBS아트홀)은 현 상임지휘자인 박상후가 악단이 맞이할 새로운 방향성과 변화된 국악계의 흐름을 아우르는 무대를 선보인다. 6월과 9월의 정기연주회는 악단의 현재를 증명하는 무대로, 각각 네 명의 협연자가 무대에 올라 연주자의 철학이 담긴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통-사람-지금-미래를 잇는 소리

문양숙(25현 가야금), 류경화(철현금), 강은일(해금), 김정승(대금) ©황필주
제264회 정기연주회(6.5/KBS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가야금 수석 단원인 문양숙이 손다혜의 25현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린 꽃’으로 문을 연다. 그는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주제를 품은 작품으로, 정인이 사건을 접하며 느낀 깊은 슬픔과 책임감이 이번 연주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며, “한 아이가 아파하고, 쓰러지고, 지쳐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같은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연주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두 번째 곡은 김성국의 철현금 협주곡 ‘금(琴) 노래’다. 협연자인 류경화에게 이번 무대는 13년 전 ‘망각의 새’ 이후 KBS국악관현악단과 함께하는 두 번째 협연이다. 그는 “KBS국악관현악단이야말로 대중과 가장 가까운 국악관현악단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시대적 담론과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동시대적 미감과 가치를 담아내는 악단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 번째 무대는 황호준의 해금 협주곡 ‘산곡’이다. 협연자 강은일은 해금을 ‘소프라노의 음역대를 책임지는 악기’라고 정의하며, 장중한 국악관현악의 사운드 속에서 해금 특유의 음색과 농현, 장단감, 즉흥적인 감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는 “KBS국악관현악단의 지난 40년은 한국 음악의 정수와 전통을 지켜온 위대한 시간”이라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형식과 자유가 교차하는 경계 위에서 새로운 ‘기억의 울림’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했다.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대금 연주자 김정승이 토마스 오스본의 대금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하늘을 향한 노래’를 연주한다. 그는 “동해안별신굿의 장단을 소재로, 첼로와 대금의 리듬, 다이내믹이 관현악과 조화를 이루는, 동해안별신굿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며, “동해안의 장단 위에서 펼쳐지는 비트박스 부분을 주목해 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연은 김대성의 교향시 ‘금잔디’로 마무리 된다.
함께 만든 소리, 시대를 잇는 마음

문양숙(25현 가야금), 류경화(철현금), 강은일(해금), 김정승(대금) ©황필주
창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명확하다. 전통의 명맥을 잇되 그 안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려는 국악관현악의 힘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제265회 정기연주회(9.25/KBS홀) 역시 이러한 맥락을 이어간다. 첫 무대에서 김회경의 단소 협주곡 ‘추산’을 연주하는 이용구는 이번 무대를 통해 단소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한다. 그는 “이번에 연주할 단소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연주법과 전혀 다르다. 산조의 시김새를 단소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국악관현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주의 깊게 감상해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지는 곡은 도날드 워맥의 거문고 협주곡 ‘Black Dragon’이다. 협연자인 허윤정은 이 곡의 서늘한 인트로와 거문고의 다이내믹한 표현이 부각되는 후반부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호흡하는 이야기”로 해석했다. 그는 “관현악 속에서 거문고 독주가 묻히지 않도록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히며, “연주자 간의 호흡이 자연스럽게 ‘함께 만든 소리’로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임준희의 해금 협주곡 ‘혼불V–시김’을 연주하는 정수년에게 KBS국악관현악단은 음악적 정체성이 깃든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1985년 창단 단원으로 입단해 약 1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그는 이번 무대에서 작품 속 여인의 내면에 자리한 사랑과 이별, 고통과 소망, 그리고 기쁨을 해금으로 노래한다. 정수년은 “해금의 활을 통해 희로애락의 감성을 깊고 섬세하게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김일륜이 박범훈의 25현 가야금 협주곡 ‘가야송’을 연주한다. 김일륜에게 이 악단은 가족 같은 존재다. 창단 당시, 남편(임재원)이 대금 부수석으로 입단하며 악단과의 인연을 맺은 그는, 1999년 KBS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이 작품을 초연한 바 있다. 김일륜은 “가야금이 전통음악에서 계승한 다양한 요소들(악기·연주법·창법 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유심히 들어봐 주시길 바란다”며, “낯설음을 낯익음으로 바꾸는 방식의 소리 또한 주목해달라”고 전했다. 정기연주회의 대미는 손다혜의 ‘빛나는 땅’으로 장식된다.
글 홍예원 기자
PERFORMANCE INFORMATION
시청자 감사음악회 ‘40, 그리고 내일 III’
원영석/KBS국악관현악단(협연 이윤호·강효주·제현정·천혜인)
8월 21일 오후 7시 30분 KBS아트홀
‘40, 그리고 내일 IV’
박상후/KBS국악관현악단(협연 이영호·노은아)
10월 24일 오후 7시 30분 KBS아트홀
제264회·제265회 정기연주회
박상후/KBS국악관현악단(협연 문양숙·류경화·강은일·김정승)
6월 5일 오후 7시 30분 KBS홀
박상후/KBS국악관현악단(협연 이용구·허윤정·정수년·김일륜)
9월 25일 오후 7시 30분 KBS홀
INTERVIEW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박상후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꿈꾸다
음악과 관객을 잇는 젊은 리더십
1985년 출범한 KBS국악관현악단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1965),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1984)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창단되어, 국악관현악의 정착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의 경계에서 젊은 상임지휘자 박상후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84년생인 박상후에게 40년은 단순한 역사를 넘어선다. “제가 태어난 지 1년 뒤에 악단이 창단됐어요. 제가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겪은 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특별한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젊은 지휘자로서 이 전통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책임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음악적 능력 외에 리더십까지 필요로 한다. KBS국악관현악단은 예술감독과 행정 책임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상임지휘자가 예산부터 기획, 대외협력 등 업무의 전반을 총괄해야 한다. “처음 상임지휘자가 되었을 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부지휘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을 체감했죠.” 그는 그러나 이 모든 역할의 중심에는 결국 ‘음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행정 능력이 뛰어나도 음악적 준비가 부족하면 지휘자로서의 설득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반면 음악적으로 탄탄하다면, 행정 경험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악단을 이끌 수 있는 힘이 생기죠.”
KBS국악관현악단은 국악계에서 뛰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해온 ‘인적 텃밭’이기도 하다. 박상후는 “현재 활동 중인 많은 연주자, 작곡가, 교수들이 이 악단 출신”이라며, 좋은 토양이 되어준 악단의 의미를 되새겼다. 방송국 소속이라는 안정성 덕분에 활발한 신작 위촉이 가능했고, 지금도 자주 연주되는 대표적인 국악관현악곡 대부분이 KBS국악관현악단의 위촉으로 탄생했다. 그는 “전통에 기반을 두되, 새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국악관현악의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하고 싶다”며, 유연한 음악과 실험적인 시도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했다.
박상후는 40주년을 맞은 악단이 지향해야 할 모습으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제시한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안정적인 골키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트렌디한 공격수의 역할을 한다면, 저희는 그 중간에서 전통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카멜레온 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방송국 산하의 악단이라는 정체성이 바로 그러한 다양성을 요구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술은 결국 관객과의 소통으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음악적으로 훌륭한 무대라도 관객의 공감이 없다면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술적인 곡이든, 대중적인 곡이든 관객과 함께 의미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전통을 딛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KBS국악관현악단의 다음 40년, 그 여정의 중심에는 음악과 관객을 잇는 박상후의 진심 어린 리더십이 있다.
글 홍예원 기자
박상후(1984~) 중앙대에서 국악지휘 전공, 독일 함부르크 브람스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지휘자로 활동했으며, 2023년부터 KBS국악관현악단 제6대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