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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4.24~9.7
런던의 밤을 물들인 화려한 파티
한국 제작 뮤지컬, 브로드웨이를 넘어 웨스트엔드까지 진출하다
한국의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선보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브로드웨이에 이어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랐다. 4월 11일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24일 공식 개막했다.
개막 당일, 런던 콜리세움 극장 앞 세인트 마틴스 레인. 일방통행로의 인도는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보려는 관객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가로등마다 개츠비 배너가 내걸린 골목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줄이 이어져,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일부 관객은 초록색 드레스나 재킷 등 상징적인 복장으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같은 극장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무대화한 작품을 봤을 때조차 경험하지 못한 진풍경이었다. 극장 앞에는 레드 카펫이 깔리고, 클래식 자동차가 전시되었으며, 유명인들이 그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폭발하는 에너지, 살아 움직이는 무대
공연은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인물의 등장과 곡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무대 위 앙상블은 포즈를 취한 실루엣만으로도 관객의 기대감을 고조시켰고, 이들이 큰 보폭으로 걸어 나오며 ‘로어링 온(Roaring On, 광란은 멈추지 않는다)’을 부르자 극장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파티는 여전히 요란하게 계속되고 있어!(The party’s roaring on!)”라는 가사에 맞춰 모두가 파티의 열기에 빠져들었다.
개츠비 역은 영국 배우 제이미 무스카토가 맡았다. 전작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아나톨을 연기해 올해 올리비에상 후보에 오른 그는, 이번 작품에서 데이지만을 바라보는 개츠비로 변신했다. 배우들의 고른 역량과 곡의 구성은 관객을 몰입하게 했다.
런던 콜리세움은 로열 앨버트홀과 로열 페스티벌홀을 제외하면 런던에서 가장 큰 극장으로, 가장 넓은 프로시니엄 아치를 갖추고 있다. 무대 깊이 28.04m, 폭 16.76m, 높이 10.36m에 이르는 압도적인 규모 역시 특징이다. 제68회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무대 디자인상을 받은 ‘위대한 개츠비’는 이 광대한 무대를 입체적으로 활용했다. 수영장이 딸린 웅장한 저택과 파티 공간, 이에 대비되는 잿빛 골짜기 등 다양한 장면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였으며, 클래식 자동차가 무대를 누비며 주요 장면을 구현했다.
무대 디자인은 소설 속 상징을 긴밀하게 형상화했다. 개츠비가 갈망하는 녹색 불빛은 부와 욕망, 미래에 대한 집착을 상징한다. 이 초록빛은 공연 전반에 걸쳐 금색과 결합해 고전적이면서도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냈다. 세트뿐 아니라 의상, 분장, 홍보물의 타이포그래피에도 1920년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의상은 제77회 토니상 의상 디자인상을 받을 만큼 시대성을 반영한 화려함으로 주목받았다.
공연 내내 영상·조명·폭죽·퀵 체인지·재즈 댄스·탭댄스 등 뮤지컬의 총체적 매력을 집약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넘버는 반복되며 관객의 기억에 남았고, 조명은 공간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구분했다. 녹색 불빛과 파란 자동차 등의 메타포는 시각적 인상을 더욱 강화했고, 잿빛 골짜기를 응시하는 얼굴 없는 눈동자 간판은 기울어진 채 무대 위에 불길한 긴장감을 드리웠다.
비극적인 결말 이후, 초반 넘버 ‘로어링 온(Roaring On)’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고, 앙상블은 화려한 댄스를 통해 마지막까지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4층까지 빈틈없이 들어찬 2천 359석의 전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낸 순간은 뮤지컬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었다.
세계로 향한 한국 뮤지컬의 실험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 발표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필독서로 읽히며, 시대를 초월한 주제 의식으로 20세기 미국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경제적·사회적 계층 간 갈등과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담아낸 이 작품은 1920년대 금주법 시대, 소비주의와 사치, 재즈, 플래퍼 문화가 정점이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다. 플래퍼란 짧은 머리와 치마로 대표되는 신여성으로, 전통적인 성 역할에 도전하며 자유롭고 대담한 삶을 추구했던 세대의 상징이었다.
이번 작품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엇갈렸다. ‘가디언’지는 별 다섯 개 중 한 개라는 혹평과 함께 ‘지나치게 활기차며, 뮤지컬로서의 강렬함에 집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가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2013년 배즈 루어먼 감독의 동명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평가는 엇갈렸다. 그만큼 이 작품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살아 있는 고전’임을 뜻하기도 한다. 콘텐츠 창작자들은 혹평조차 콘텐츠화하며 공연을 주목하고 있으며, 인기 넘버와 댄스 챌린지가 확산되며 온라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고전문학의 상징을 대중 공연 예술로 재해석한 이 뮤지컬은 ‘물랑루즈’보다 고급스럽고, ‘백 투 더 퓨처’보다 상징적이며, 정서적으로 더 깊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이 작품이 디즈니 같은 세계적 기업이나 앤드루 로이드 웨버, 캐머런 매킨토시 같은 대형 극장 그룹이 아닌, 신춘수 대표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영국, 그리고 한국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이례적인 글로벌 프로젝트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지난해 4월 25일 공식 개막 이후 공연 중이며, 웨스트엔드 공연은 9월 7일까지 이어진다. 서울 공연도 8월부터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GS아트센터에 오른다. 한국 관객들은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검증된 글로벌 콘텐츠를 동일한 규모와 완성도로 직접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각기 다른 배우들이 각 도시에서 같은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단순한 내한 공연을 넘어 뮤지컬 역사에 남을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오디컴퍼니
PERFORMANCE INFORMATION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오리지널 프로덕션 내한)
8월 1일~11월 9일 GS아트센더
연출 마크 브루니, 극작 케이트 케리건, 작사 네이슨 타이슨, 작곡 제이슨 하울랜드
매트 도일(제이 개츠비 역), 센젤 아마디(데이지 뷰캐넌 역)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