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발레 무용수 전준혁, 살아 있다는 감각 위에 춤추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7월 1일 9:00 오전

BALLET STAR | IN LONDON

 

로열 발레 무용수 전준혁

살아 있다는 감각, 그 위에 춤추다

 

20년 만에 내한하는 로열 발레의 샛별. 그의 날개와 몸짓이 서울 창공을 가른다

 

 

런던에서 걸려온 전화 너머,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단했다. 로열 발레의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급한 소감을 묻자, “그저 매일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렀다”고 답했다. 전준혁의 하루는 오전 10시 반에 시작된다. 1시간 15분 동안 클래스를 진행한 뒤, 짧은 휴식을 거쳐 12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리허설이 이어진다. 무대 리허설이 있는 날이면 아침 9시 반부터 12시간 이상 이어지는 강도 높은 일정이 펼쳐진다.

 

‘최초’라는 타이틀과 부상 중!

그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최초’의 연속이다. 전준혁은 로열 발레 스쿨에 입학한 첫 한국인 남학생이자, 아시아 출신 남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생 중에서만 단원을 선발하는 로열 발레에 한국인 남성으로서는 ‘최초’로 입단했으며, 2024/25 시즌부터는 솔로이스트 승급 1년 만에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다시 한번 도약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2017년 입단 당시, 재일교포 4세인 최유희(1984~)가 유일한 한국계 단원이었으나, 현재는 전준혁을 비롯해 퍼스트 솔로이스트 최유희, 퍼스트 아티스트 김보민, 아티스트 박한나가 활동하고 있다.(※로열 발레는 ①프린시펄(수석) ②프린시펄 캐릭터 아티스트 ③퍼스트 솔로이스트 ④솔로이스트 ⑤퍼스트 아티스트 ⑥아티스트의 총 여섯 등급으로 무용수를 구분하는데, 퍼스트 솔리스트는 무대의 중심을 책임지는 발레단의 핵심 단원에 해당한다.)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움직이는 무용수, 무대에 몰입하고 눈물짓는 런던의 관객, 그리고 무용수의 성실함과 진실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로열 발레의 분위기 속에서 전준혁의 꾸준함은 퍼스트 솔로이스트라는 기회로 이어졌다.

 

흔들림 끝에 선 무대의 중심

물론, 그에게도 흔들리던 시기는 있었다. 드물게 주역을 맡기도 했지만, 배역 수가 적어 ‘과연 내가 이 무대에서 가능성 있는 무용수로 인정받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그를 늘 괴롭혔다. 그래서일까. 솔로이스트 승급 직전 생애 첫 주역을 맡았던 프레더릭 애슈턴의 ‘랩소디’는 전준혁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모든 장면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무대 정중앙에 서서 커튼이 올라가던 그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관객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죠.”

솔로이스트 승급 당시, 예술감독 케빈 오헤어(1965~)는 전준혁에게 “테크닉은 이미 훌륭하니, 이제는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와 예술성이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건넸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다시 한번 도약했다. “그때 감독님이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덕분에 요즘은 부담이 조금 덜해졌고 ‘지금 하는 걸 행복하게,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고전과 창작이 만나는 순간

로열 발레는 고전 발레부터 컨템퍼러리 발레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아우르며, 드라마 발레에 강점을 지닌 발레단으로 손꼽힌다. 전준혁은 로열 발레를 대표하는 두 안무가 프레더릭 애슈턴(1904~1988)과 케네스 맥밀란(1932~1989)을 언급하며, “맥밀란은 예술적 깊이에, 애슈턴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밝은 무대에 집중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이어링’이나 ‘마농’ 같은 맥밀란의 대표작은 비극적인 서사로 무게감 있는 무대를 보여주는 반면, 애슈턴의 ‘고집쟁이 딸’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오는 7월, 그가 속한 로열 발레가 20년 만에 서울을 찾는다.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선보이는 ‘더 퍼스트 갈라’(7.5·6)에서 드라마 발레부터 컨템퍼러리 발레, 세계 초연작까지 약 10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로열 발레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문을 엽니다. 저는 웨인 맥그리거의 ‘크로마’ 3인무를 맡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맥그리거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혁신적인 작품으로, 로열 발레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무대죠.”

박한나가 오르는 ‘아네모이’는 무용수로 뛰며 안무가로 활동 중인 발렌티노 주케티의 작품이다. 전준혁은 “주케티는 주로 고전 발레를 기반으로 안무를 구성하는데, 요즘 발레계가 현대적인 흐름을 따르는 추세라 오히려 이런 고전적인 감각이 더 주목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그리고 전준혁의 로열 발레 스쿨 동기이자, 안무가 조슈아 융커의 신작도 이번 무대에서 세계 초연된다.

전준혁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곧바로 두 개의 배역을 떠올렸다. “고전 발레에서는 ‘지젤’의 알브레히트 역을 꼭 해보고 싶고, 드라마 발레에서는 ‘마이어링’의 황태자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게 꿈이에요. 입체적인 역할을 통해 무용수로서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으로 채우지만, 그는 고단함보다 감사함을 먼저 꺼낸다. “지금 이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발레를, 전 세계에서 모인 재능 있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서로 의견을 나누고, 옆에서 보고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금이 무척 행복해요.”

발레는 그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이다. 전준혁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곧 다음 무대를 향한 일임을, 매일의 움직임으로 증명하고 있다.

홍예원 기자 사진 LG아트센터 서울

 

 

여름밤을 빛낼 발레 공연 미리보기

올여름, 발레 팬들을 위한 ‘별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먼저 유니버설발레단은 고전 발레의 정수인 ‘백조의 호수’(7.19~27/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를 선보인다. 작품은 1992년 마린스키 발레 버전으로 국내 초연 후, 국내외에서 꾸준히 공연되며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특히, 2막의 일사불란한 백조 군무는 공연의 백미다.

2020년 첫선을 보인 ‘발레스타즈’(7.26·27/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는 올해 보스턴 발레의 채지영과 이선우, 드레스덴 젬퍼오퍼발레의 김수민과 제임스 커비로저, 네덜란드 발레의 박상원과 레오 헤플러 등이 오른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 2월 로잔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박윤재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박세은이 동료 무용수들과 함께 서울을 찾는다(7.30~8.1/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022년과 2024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갈라 공연으로, 조지 발란신의 ‘소나티네’, 제롬 로빈스의 ‘인 더 나이트’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준혁(1998~) 2013년 영국 로열 발레 스쿨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듬해 로잔 콩쿠르 결선에 진출하고, 2016년 유스아메리카 그랑프리 대상을 수상했다. 2018년 로열 발레 입단 후, 퍼스트 아티스트(2022)와 솔로이스트(2023)를 거쳐 2024년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급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로열 발레 ‘더 퍼스트 갈라’

7월 4·6일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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