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 고요한 비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7월 1일 9:00 오전

CELEBRATION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

고요한 비상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결실을 보기까지 차분히 걸어온 시간

 

 

“1차 경연이 시작되기 전, 콩쿠르 측에서 참가자들을 시벨리우스 생가로 데려갔어요. 잔잔한 숲, 그 가운데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그의 집. 시벨리우스 작품 속 고독과 고요, 그리고 강인함을 떠올리게 했죠.”

박수예에게 이번이 생애 첫 핀란드 방문이었다. 콩쿠르를 위해 도착한 그 땅에서, 마침내 시벨리우스 음악이 지닌 고요와 강인함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참여한 시벨리우스 콩쿠르(5.19~29)에서 박수예는 1위에 올랐다. 이번 우승은 박수예가 네 번째 콩쿠르 도전 끝에 거머쥔 값진 결과다.

많은 연주자가 콩쿠르 우승 이후 기획사나 음반사와 계약을 맺지만, 박수예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남들이 콩쿠르 준비에 몰두하던 17세 무렵, 그는 BIS 레코드에서 파가니니 음반을 발표했다. 콩쿠르는 생존의 전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호기심이었다. 음악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도전 중 하나였던 것.

특히 2차 경연에서 연주한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는 오랜 시간 애착을 가지고 준비해 온 곡이었다. 결선에서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피에타리 잉키넨)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이 곡을 초연했던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지만, 호른 수석이 사용한 악기가 시벨리우스가 생전에 자주 들었던 바로 그 악기였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벅차오르게 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 우승은 그가 견뎌낸 시간에 대한 보답처럼 느껴졌다. 음악에 대한 진심이 응답받은 순간이었다. 박수예의 음악은 침묵과 고요를 지나, 이제 새로운 소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승을 축하한다. 2021년 서울시향과의 협연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5년 만에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쁘다. 따뜻한 인사 감사하다. 2021년 서울시향과의 협연은 나에게도 깊이 남은 순간이었다. 그때의 인터뷰도 또렷이 기억난다. 당시 발매했던 음반 ‘세기의 여정’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음악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렸던 시기였다. 이번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결과다. 콩쿠르에 참가하며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던 때도 있었지만, 무엇을 위해 연주하는지, 내가 어떤 음악가인지 잊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시간이 결국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 같다.

콩쿠르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두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이성주, 조진주)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장 분위기는 따뜻했다. 이전까지 두 심사위원과 특별한 인연은 없었지만, 이번 콩쿠르를 계기로 인사를 나누게 되어 기뻤다. 어릴 적부터 존경했고, 또 훌륭한 스승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온 분들이라 더욱 뜻깊었다.

시벨리우스 레퍼토리를 해석할 때 특별히 영감을 준 음악가가 있었다면?

의도적으로 레코딩을 많이 듣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시벨리우스 협주곡 녹음은 폴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헨릭 쉐링의 연주를 가장 자주 들었다.

 

자극과 자유가 공존하는 베를린

망명의 메아리 BIS BIS2332

그동안 콩쿠르 출전을 미뤄온 이유가 울프 발린 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우승 소식을 전했을 때 스승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정말 기뻐하셨다.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끼신 것 같아 나도 감회가 깊었다. 늘 “기본기를 먼저 다져라”는 그 말씀을 따랐고, 오랜 시간 묵묵히 준비한 끝에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출전 영상 속 유창한 독일어 실력도 인상 깊었다. 불과 9세에 독일 유학길에 오른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기쁨과 설렘만큼 외로움이나 그리움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감정을 음악으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나에게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은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다.

바이올린 사운드가 ‘미국식’, ‘독일식’으로 나뉘는 경우가 있다. 독일에서 오래 수학한 만큼, 독일 정통 사운드를 계승한 연주자로도 보이는데.

유학 초기에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독일식 바이올린 사운드’는 내면의 깊이를 중시하는 소리다. 독일에서 배운 것은 소리가 음악적 구조를 어떻게 지지하는가, 프레이징과 화성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소리의 중심이 묵직하고, 겉이 아니라 속에서 울리는 듯한 느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진정성 있는 나만의 소리’를 찾는 것이다.

현재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수학 중이다. 베를린에서의 일상은 어떤가?

베를린은 단순히 공부를 위한 도시를 넘어, 예술적 자극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아침엔 되도록 일찍 연습을 시작하고, 연습은 가능한 한 집중해서 짧게 끝내려 한다.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베를린 필하모니가 집과 가까워 연주를 자주 들으러 간다.

 

BIS 레이블과 함께 성장해 온, 박수예의 이름

베를린 필하모닉의 발트뷔네 콘서트에서 수예 씨의 연주를 들은 두다멜이, 그 자리에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녹음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타 지휘자이지만 그는 예상보다 차분했다. 내가 준비해 간 곡도 1·2부 사이 인터미션 시간에 짧게 연주했을 뿐인데 집중해서 들어주셨다. 이 앨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차차 공개할 예정이다.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의 협연 음반도 준비 중이다. 시벨리우스 소품이 수록된 음반도 곧 발매될 예정이다.

어느덧 BIS 레코드의 대표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오는 7월, 여섯 번째 인터내셔널 음반 ‘Echoes of Exile(망명의 메아리)’를 발매한다.

이번 음반은 솔로 바이올린이라는 형식 안에서 망명(exile)이라는 주제를 음악적으로 풀어내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단순히 물리적 의미의 망명이 아니라, 정체성, 소속감, 언어, 기억의 차원에서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 했던 예술가들의 내면을 조명하고 싶었다. 동시에 나의 음악적 색깔을 더욱 섬세하게 드러냈다.

음반사마다 작업 방식이 조금씩 다를 것 같다. BIS 레코드는 어떠한가?

어느 순간부터 ‘레이블과 예술가’의 관계를 넘어, 하나의 팀처럼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는 파트너가 되었다. 음악적 토론은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나눈다. 결국 모든 결정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왜 이 음악을, 지금, 이 시대에 녹음으로 남기는가?’

올해 예정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일정은?

곧 국내 무대에서 여러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9월 21일, 대전그랜드페스티벌에서 장한나 지휘자와 함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어 무척 설렌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앞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음악적 지향점이 궁금하다.

단순히 ‘연주를 잘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음악을 통해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사람. 콩쿠르는 물론 음반, 협연, 무대는 모두 그 지향점을 향한 여정이고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장혜선(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시벨리우스 콩쿠르

 

박수예(2000~) 17세에 BIS 레이블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했다. 세 번째 음반 ‘세기의 여정’은 영국 그라모폰지에서 ‘이달의 음반’ 및 ‘2021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현재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울프 발린을 사사하고 있으며, 202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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