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OF BOUNCE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소리꾼 이희문
민요로 만든 히트곡, 어때요?
서로 다른 12개 빛깔의 민요 판이, 다가올 여름을 들썩인다
이희문. 이제 ‘재미’ 보증 수표에 가까운 이름이다.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이희문이 선임됐다는 문장을 보자마자, ‘올여름은 꽤 시끌벅적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축제란 좀 들썩들썩한 맛이지 않느냐”며 민트색 머리카락 아래로 이희문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웃고 있다. 역시나.
그 눈빛을 보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보단 폴짝폴짝, 덩실덩실, 가끔은 나풀나풀 뛰기도 한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얼핏 머리를 스친다. 들썩들썩할 이희문 표 여우락의 세계에, 나풀나풀 뛰는 마음으로 입장할 시간!
‘민요국’ 수장의 요상한 상상
‘시끌벅적하겠다’는 기대감이 들자마자, 뒤따라 축제가 ‘과연 얼마나 이희문다워질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2010년,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는 뜻 아래 시작된 여우락 페스티벌은 2012년부터 매년 예술감독을 선임해 왔다. 양방언·나윤선·원일 등 존재만으로도 그해 축제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경기민요 소리꾼이자, 국악계의 ‘레이디 가가’ 이희문은 어떨까. 역대 예술감독과 동일 선상에 두고 본다면 자기만의 색깔이 가장 강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민요를 준비했답니다. 적어도 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한 경험치가 있는 분야니까요. 민요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고, 국립극장 측에서 그 제안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에 ‘요상한 민요 나라’가 건국되었다. 기획은 전적으로 예술감독에 맡겼다. 요상한 민요국의 수장 이희문이 가장 먼저 섭외를 시도한 인물은, 바로 “조용필”.
“민요를 불러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아티스트시니까요. 비록 아쉽게도 일정상 모시진 못하게 됐지만… 섭외 실패 목록을 더 말씀드려볼까요? 이상순·이효리 씨께도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었어요. 그분들이 진지하게 참여를 고려했었다는 사실!”
이 떠들썩한 라인업을 생각하며 이희문이 바란 것은 “히트곡의 탄생”이었다. 한때 민요는 우리네 삶에 가장 가까운 노래였기 때문. “그 시대의 유행가이자 가요였죠. 훌륭한 예술가들을 모셨으니, 그 유행이 다시 소환되길 바라고 있답니다.”
서로 다른 12개의 민요 시나리오

여우락 페스티벌 기자간담회
그리하여 모여든 이들은 축제 역대 최다 규모인 200여 명. 총 12개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전통 소리꾼부터 정가나 월드뮤직, 재즈나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은 물론이요, 밴드·현대무용계 재주꾼들까지 불러들였다. 이번 기회에 민요의 다양한 맛을 다 보여주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고 묻자, “사실 마음 밑바닥엔 그러길 바란다는 욕심이 있기도 하다”는 다소 솔직한 소회가 돌아왔다. 재밌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선, 고고한 백조의 물 아래 쉼 없이 움직이는 다리처럼 남모를 고충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 기획은 베테랑 무대쟁이 이희문에게도 처음이다.
“모든 공연의 무대 디자인을 제가 잡고 있어요. 예전엔 팀별로 원하는 바를 무대 디자이너와 논의했다면, 올해는 제가 팀별로 필요한 무대를 생각하고 무대 디자이너와는 저만 소통하는 방식으로요. 스태프들도 최선의 리허설 환경을 확보할 수 있게 고려했고요. 무대는 생각보다 간결합니다. 노래를 키워드로 한 해인 만큼, 화려한 무대보단 ‘요상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민요를 마음에 품고 무대에 서오며 그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민요를 듣게 하려면 친절한 설명보단,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매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죠. 그게 무엇인지는 예술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가수 최백호 선생님과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박승원 씨를 같이 묶었는데, 포스터용 사진을 찍는 날에 대체 무슨 이미지 아이디어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승원한테 슬쩍 “오늘 의상 뭐 입어?”라고 물었더니 “최백호 선생님 후드티 입고 찍으신다는데?” 하더라고요. 저로선 상상이 안 갔는데… 글쎄, 이번 포스터 사진 중에 가장 멋진 사진이 탄생한 거 있죠. 자기 매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하는 이들이 모였으니 멋진 음악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몇몇 작업 결과물을 들어봤는데 ‘이 음악 내가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 만큼 역시, 멋지더라고요!”
내일을 향하는 전통음악
여우락 페스티벌은 전통음악의 실험실이자 협업 한계의 확장 작업실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 축제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국가의 악기나 낯선 장르가 만나는 것은 익숙할 정도. 이희문도 이 실험에 누구보다 적극 동참해 온 이다.
“처음엔 서로 조심조심했었죠. 전통음악 특유의 3박자 흐름에 서양 악기가 맞추는 식으로요. 그러다가 제 소리를 서양의 4박 자에 맞춰보았어요. 처음엔 불편했고, 훈련도 필요했죠. 그러나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인간 대 인간으로도요. 밴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내 선입견만큼 거칠지 않구나, 이런 생활 루틴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들. 결국 협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쫀쫀한 관계가 되어가는 것이거든요.”
이제는 이희문의 혁신을 일상으로 보고자란 ‘이희문식 키즈’들도 탄생할 수 있을 만큼 전통의 확장도 역사가 쌓이고 있다.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연은 8도9룹의 ‘팔도민요대전’이다. 경기·충청·강원·경상·평안·황해·함경·전라·제주 각 지역의 차세대 음악가들이 민요와 소리를 한 자리에서 선보이기에, 이들을 ‘8도9룹’이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전국 팔도의 민요를 각 팀에게 미션으로 줬어요. 일부러 인디밴드와 전통 악기 기반 단체를 반 정도로 섞었죠. 서로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자극이 되도록요.”
마지막으로, 예술감독 이희문이 꼭 강조하고 싶은 공연은 남성 소리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남자라는 이유로’란다. 한 소리꾼의 인생 이야기지만, 그 속에 그네들의 인생이 담겨 같이 웃었다 울었다 하는 공연이라고.
“민요를 매개체로 가볍게 즐기고 가는 축제가 되길 바라요. 사실 ‘재미’라는 게 왁자지껄한 것만은 아니잖아요. 감동 혹은 몰입일 수도 있죠. 매력 넘치는 우리의 공연을 보며 잠시나마 삶의 모든 걱정을 잊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극장
이희문(1976~)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이자 이희문 컴퍼니 대표·예술감독이다. ‘씽씽’ ‘오방신과’ 등의 그룹 활동, ‘깊은사랑’ 3부작 등의 프로젝트로 장르를 넘나들며 전통음악을 활용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확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