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페라 발레 무용수 강호현, 맑게 빛나는 춤의 파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7월 14일 9:00 오전

BALLET STAR | IN PARIS

 

파리 오페라 발레 무용수 강호현

맑게 빛나는 춤의 파동

 

승급 이후, 발레단의 화제작마다 돋보이는 그녀를 파리 현지에서 만나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 강호현이 올해 1월, 프르미에 당쇠르(제1무용수)로 승급했다. 2018년 입단 후, 그는 놀라운 속도로 승급했다.

지난 5월의 어느 오전, 파리 오페라 극장 홍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무대 위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편안한 차림이었다. 강호현은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간 맡았던 역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높은 자리여도, 꾸준히

“승급 때마다 늘 실감은 나지 않아요. 제1무용수가 되어도 변한 것은 없죠. 이번 승급은 마르티네즈 단장이 그간의 작업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지정했습니다.”

승급에 대한 그의 첫 소감이다. 강호현이 파리 오페라 극장에 입단한 것은 우연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발레단 시험을 보게 되었다고.

“유럽 쪽에서 활동해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꼭 이 발레단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었죠. 워낙 유명한 발레단이고, 파리 구경을 하는 마음으로 왔다가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발레리나의 하루는 매일 아침 10시에 시작한다. 공연이 없는 날은 오후 6시에, 공연이 있으면 밤 11시에야 일정이 끝난다. 보수는 “잘 먹고 살 만큼”. 세금이 많아 사치를 부릴 만큼은 아니라며 웃어 보인다.

인터뷰 당시 강호현은 ‘실비아’(5.8~6.4)의 나이아데 역을 연습 중이었다. “일종의 물의 요정으로, 1막에 등장하는 역할이에요. 비중은 크지 않은데, 기술적으로는 어렵죠.”

레오 들리브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실비아’는 2018년 빈 슈타츠오퍼에서 마누엘 르그리(1964~)의 안무로 초연된 작품이다. 프랑스 발레의 전통을 전승하고자 했다는 그의 취지대로, 작품에선 순수 클래식 발레 어법이 수려하게 돋보였다. 이처럼 클래식 발레 전문가들을 만족시켰으나, 텍스트 위주의 리듬을 따라가는 구상이라 줄거리의 반전 혹은 누레예프 안무에서 볼 수 있는 복잡다단한 동선이 연출하는 짜릿함은 적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관람한 5월 28일 ‘실비아’ 공연에서는 두 에투알(수석무용수)인 발랑틴 콜라상트(실비아 역)와 기욤 디오프(아민타 역)의 비르투오소는 물론 고급스러운 무용수라고 평가받는 강호현의 활기 넘치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물의 요정인 그녀는 샘의 물방울이 통통 튀는 에너지와 활발한 움직임으로 무대 전체를 압도했다.

한편, 강호현은 지난 3월 14일 누레예프 안무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3.8~7.14) 중 주인공 ‘오로라’ 역으로 등장했다. 우아함과 가벼움, 완벽하게 이완된 감정 이입 등으로 갈채 받았다.

“어려운 역이었죠. 그러나 정말 동화 속 공주가 된 느낌이 들어 신기했습니다.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장식·의상이 주인공이 되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절로 몰입감이 들었어요. 7월에는 같은 작품에서 6번째 요정 역으로 오를 예정인데 이 역도 쉽지 않습니다. 1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준비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짧은 솔로 역은 부담감이 크거든요.”

 

마리 역으로 맞이한 전환점

강호현의 활동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역은, 2022년 화제를 불러온 ‘마이어링’(안무 케네스 맥밀란)의 마리 베체라 역이다. 당시 코리페(군무 리더)로 활동했기에 주역 경험이 별로 없었지만, 놀랍게도 “같은 역의 세 무용수 중 가장 설득력 있는 버전”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마이어링의 안무는 무척 드라마틱하죠.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막상 객석이나 청중을 잊어버리고, 파트너만을 바라보며 제 감정을 풀어나갔던 것 같아요.”

안무가 측에서 이 역의 적임자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무용수로서는 큰 자부심이기도 하다. “안무가가 원한 만큼, 제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역할을 받았으니 성공해야 한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래서 뭔가를 꾸미거나 연기하기보다, 나 자신처럼 춤을 추려고 한 것 같아요.”

상대역인 로돌프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마리 베체라 역은 로돌프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밀어붙이는 역할이라 “로돌프의 머릿속까지 휘어잡는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이 작품에서 앉은 채로 회전하며 로돌프의 무릎에 앉는 강호현의 동선이 극찬을 받았는데, 그는 “다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긴 했지만, 파트너가 책임감 있게 다루어 준다는 믿음이 생겨 용기를 냈었다”고 회상했다. 2024년, 그는 쉬제(솔리스트)로서 이 역을 맡아 한 번 더 무대에 올랐다.

“처음엔 동작 외우기나 에투알 파트너들과 함께하는 것에 벅찼는데, 두 번째는 좀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손을 스치는 단순한 동작도, 이제는 동작 사이에 내가 의미를 더 추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더 예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한계 없는 춤의 여정

“이제는 춤이 인생이 된 것 같다”는 강호현에게서 강한 탐구심이 느껴졌다. 그 탐구심이 춤을 추는 궁극적 이유 같기도 했다.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아, 배울 것도 많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르미에 당쇠르든 에투알이든, 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한번 확인해 보고 싶죠. 그래서 아마, 죽을 때까지 춤을 출 것 같아요.”

아직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강호현. “에투알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마리 베체라 역 같은 주역을 경험하니 에투알이 출 수 있는 역할에 욕심이 생겼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강호현의 키는 167cm 내외. 역할이 커질수록 파트너와의 키 차이도 중요한데, 최근 프랑스 무용계에는 키 큰 이들이 별로 없다고.

“중간에 속하는 키라, 오히려 여러 역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입단했을 때, 왜소하게 보이는 것 같아 어깨 운동도 많이 하고 단련도 했죠. 근육을 키우기 위해 많이 먹는 편이에요.”

“프랑스식이든 한식이든, 먹는 게 취미”라고. 애인도 있다. “이곳에선 마흔두 살까지 춤을 출 수 있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대부분 출산 후 다시 무대로 복귀한다. 오히려 그 후로 더 깊이 있는 춤을 추더라”며 활짝 웃었다.

신선한 표정으로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에투알을 응시하는 강호현의 화려한 비상에, 극장을 나서며 왠지 가슴이 뿌듯해졌다.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파리 오페라 발레

 

강호현(1996~) 예원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2018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했다. 2019년에 코리페, 2023년에 쉬제로 승급했으며 올해 프르미에 당쇠르로 승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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