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도시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7월 7일 9:00 오전

SPECIAL ISSUE

 

해양도시로 떠나보는 특별한 예술여행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도시들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은 예술가들의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이다. 게다가 산업적으로 항구는 물류의 중심지이자, 새로운 기회의 터전인 셈. 이번 특집에선 바다를 품은 도시들의 다채로운 예술 현장을 살펴본다. 다가오는 7월,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해양도시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총괄 허서현·홍예원 기자

 

DOMESTIC

01 영남권 창원 통영 울산 포항 부산

02 서해안권 인천 평택 부안 영광

03 호남권 목포 여수 진도

04 제주특별자치도

05 강원권 속초 고성 강릉

 

ABROAD

06 아시아

07 유럽

08 미국

 


 

COLUMN

 

물길을 따라 예술이 흐른다

바다를 문화 에너지 삼아,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도시들

 

해풍을 따라 음악이 흐르고, 파도 위에 연극이 실렸다. 바다 건너에서는 온 춤이 도시의 밤을 수놓는다. 해양 도시에서 예술이 삶을 바꾸는 풍경은 어쩐지 더욱 낭만적이다.

어쩌면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이 주는 ‘열린 공간’이 문화의 교류도 촉진시킨다. 예로부터 항구는 물자가 오가고, 사람들이 모이며,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는 현장이었다. 내륙 도시보다 빠르게 세계와 연결되고, 낯선 감각을 받아들이는 곳. 몇몇 전통의 해양 도시는 그렇게 문화의 발전에도 자신들의 교류적 DNA를 발휘한다.

바다의 파도소리가 그리워지는 여름을 맞아, 국내외의 해양 도시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물류의 중심지였던 공간이 예술의 거점으로 바뀌며 도시의 정체성이 새롭게 쓰이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철강 산업의 심장이었던 포항이 ‘철의 미학’으로 예술제를 만들고, 컨테이너가 즐비했던 부산항에 오페라하우스가 건설 중인 것이 그렇다. 과거의 생산력은 도시의 자부심이고, 예술은 그 위에 감성의 기반을 더한다.

우리나라 해양 도시들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지내온 뱃사람들의 전통이 담긴 문화도 뿌리 깊다. 그 문화는 때로는 전통의 모습 그대로, 때로는 동시대의 여러 장르와 손을 잡으며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를 지지하는 것은 지역의 문화재단과 공연장, 축제들이다. 다양한 층위를 살피기 위해서 미술이나 지역 축제의 전통으로도 범위를 넓혀 살펴보았다.

해양을 끼고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곳들로 영남권과 호남권의 여러 도시들이 눈에 띈다. 강원과 제주는 천혜의 자연이 주는 풍성함만으로도 풍성하다. 새롭게 발견한 점은 수도권과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서해안권에 두드러진 문화도시가 많지 않다는 것. 푸른 바다의 문화예술 축제도 물론 좋지만, 앞으로는 붉은 일몰의 바다를 배경 삼은 서해안의 문화예술축제가 새롭게 발견되길 기대해 본다.

거리로, 항구로, 시장과 바닷길로 흘러나와 사람들의 삶에 닿는 해양도시의 문화예술들. 그 움직임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신나는 여름의 항해가 기대되는 이유다.

허서현 기자

 


 

DOMESTIC

 

창원 사계절이 예술이 되는 순간

봄의 벚꽃부터 가을의 실내악까지, 계절의 축제들

 

해마다 봄이면 도시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드는 창원. 4월 진해군항제 기간이 되면 꽃잎이 흩날리는 거리 위로 해군 군악대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도시 곳곳에서 다채로운 축제가 이어진다. 진해의 벚꽃이 창원의 봄을 연다면, 이 도시의 예술은 사계절 내내 이어진다. 한때 산업의 중심지였던 창원은 이제 클래식 음악과 조각, 미술, 전통예술이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도시

창원 예술의 중심에는 성산아트홀이 있다. 클래식 음악,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연중 쉬지 않고 이어지며, 시민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수준 높은 예술을 선사한다.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창원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무용단·소년소녀합창단)은 정기공연과 기획 무대, 찾아가는 공연 등을 통해 지역 예술의 뿌리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성산아트홀을 중심으로 매년 11월 열리는 창원국제실내악축제(음악감독 김덕우)는 국내외 연주자들이 함께 만드는 클래식 음악 축제로, 섬세한 앙상블과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을 통해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의 다리가 된다. 이 외에도 3·15아트홀, 진해아트홀 등에서는 소규모 공연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꾸준히 펼쳐지며, 지역 예술단체와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근현대 미술의 보고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경남도립미술관이 중심을 이룬다. 2004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 중심의 기획전, 소장품 전시, 어린이 대상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통해 지역과 예술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전시 공간 자체도 창원의 또 다른 문화 자산이다. 창원은 김종영, 문신, 박종배, 박석원, 김영원 등 한국 현대조각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한 조각의 도시로도 손꼽힌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언덕에 위치한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은 문신(1923~1995)의 작품과 예술 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으로, 석고 원형 116점을 포함해 유화·수채화·드로잉, 그리고 작가의 유품과 공구 등 총 3천 9백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러한 조각 도시의 면모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대표 축제가 바로 창원조각비엔날레(9월)다. 격년으로 열리는 행사는 공공미술과 도시조형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800여 년의 전통을 잇는 축제

5월의 진동불꽃낙화축제는 창원의 또 다른 문화 자산이다. 예로부터 진동 지역에서는 경사나 축제일마다 고현 앞바다에서 불꽃을 피우는 낙화놀이가 열렸다. 이 전통은 느티나무 껍질로 만든 숯을 가루로 빻아 한지에 싸서 꼬아 만든 낙화를 줄에 매달고 불을 붙이며 즐기는 방식이다. 현재까지도 창원진동낙화놀이전수회 회원들은 손으로 직접 꼬고 줄에 매다는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광복 이후 한동안 소규모 친목 모임으로 이어져 오던 이 행사는, 1995년 진동면 청년회의 주도로 복원되었으며, 매년 5월 고현 앞바다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홍예원 기자

 

 

통영 바다의 땅, 예술의 고향

푸른 해원이 넘실대는 영감의 남해

 

통영의 바다는 뭇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에 등장한 ‘푸른 해원’은 분명 섬들과 함께 빛나는 통영의 풍경이었으리라. 지역을 대표하는 여러 예술가들이 있겠으나, 통영 출생의 예술가들은 특별하다. 평생 내 고향 통영을 그리워했고, 예술로 그려냈다. 그렇게 작품으로 남은 이들의 숨결은 오늘날 통영 문화 예술의 근간이 된다. 그렇기에, 통영은 진정한 예술의 고향, 예향 도시가 분명하다.

통영의 르네상스

현재 통영이 가진 문화의 위상은 ‘통영의 르네상스’ 시대로 불리는 1945년에서 시작됐다. 통영 출생의 시인 유치환은 당시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했고, 여기에 시인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당대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모였다. 비록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강렬한 업적이었다. 통영에 자리한 청마문학관은 시인 유치환의 호 ‘청마’를 딴 곳으로, 그의 시집과 더불어 당대의 활동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통영에 ‘조선의 나폴리’라는 별명을 붙인 박경리 기념관도 통영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공간이다. 작곡가 윤이상 기념관에는 그가 생전 독일에서 묵었던 집 ‘베를린 하우스’가 재현되어 있다. 피아노와 책상, 악보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와 공간들

남해 바다가 보이는 공연장, 통영국제음악당은 통영 문화예술의 상징적 공간이다. 2014년 개관했으며,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운영하여 봄에는 통영국제음악제, 가을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개최된다. 올해 11월 첼로 부문이 개최되며, 첼로에 대한 윤이상의 각별함을 생각하면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첼로 부문 개최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통영시립소년소녀합창단,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도 운영한다.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 통영의 모든 공연은 통영시민문화회관이 담당했다. 1997년에 개관했으며, 대극장과 소극장, 전시실 등이 운영된다. 시민문화회관은 남망산조각공원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밤이 되면 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디피랑’ 정원으로 관람할 수도 있다.

미술 분야로는 전혁림 미술관이 자리한다. 봉평동 골목 안쪽, 마치 하나의 미술 작품 같은 건물이다. 통영의 바다를 담아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한편, 통영은 나전칠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그 전통이 무려 이순신 장군이 통영에 부임했을 때부터다. 당시 군수품을 만들기 위해 12공방을 조성했는데, 이를 계기로 공예 기술자들이 모여든 것. 통영 옻칠미술관에서 그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바다로의 안녕을 빌며

새해가 밝아오면 매일 바다를 마주보고 살아야했던, 또 그 망망대해로 나서야 했던 어촌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여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남해안별신굿은 통영과 거제를 중심으로 남해안 지방에 이어져온 무형유산이다. 동해안별신굿과 함께 공동체적 제의 성격이 큰 굿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른 굿유산과도 차별되어 무녀를 ‘승방’ 혹은 ‘지모’라 부르고, 악사는 ‘산이’다. ‘산이’ 중 굿을 총괄하는 사람은 ‘대사산이’다.

이 외에도 통영에는 통영오광대, 승전무를 전수하는 통영예능전수관이 자리 잡고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 승전무보존호, 통영오광대보존회가 이곳에 입주해있다.

하반기, 통영의 축제들

통영연극예술축제가 오는 7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2005년부터 시작한 축제다. 올해 ‘콘텐츠창작’으로 경상남도연극제 단체 금상·희곡상을 받은 ‘숲을 지키는 사람들’, 통영연극예술축제 희곡상 수상작 ‘백기행’, ‘이시대가 주목할’ 작품으로 ‘상상병 환자’ ‘강제결혼’ ‘적의 화장법’ ‘벼랑 위의 오리엔테이션’ ‘대찬 이발소’ ‘택시 택시’를 선보인다.

넌버블 코믹 놀이극 ‘정크 클라운’ 외에도 ‘익스트림 벌룬쇼’ ‘서울사람 이야기’ ‘초보목수와 목각인형’ ‘바가 앤 본드’ 등 거리 퍼포먼스 등도 다수 선보인다. 통영하면, 충무공 이순신을 빼놓을 수 없다. 통영한산대첩축제는 8월 9~14일에 열린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 중, 13일 이순신공원에서 승전무가 공연되고, 14일 무전대로에서 통영오광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허서현 기자

 

 

울산 도시를 둘러싼 역사와 설화

산과 바다, 강변까지 모두 문화 자원이다

 

항구를 낀 도시에게 근대 공업 발전은 숙명이었다. 1960년대 ‘공업도시’로 지정되어 빠른 발전과 성장을 이룬 울산. 이로 인해 울산은 그간 회색빛 이미지가 강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가 품은 개성이 드러난다.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산, ‘처용무’를 탄생시킨 바위를 품은 동해, 그리고 국가정원도시로 지정된 태화강까지…. 둘러싼 자연환경도 풍성하다. 자원과 재원을 갖춘 도시 곳곳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울산문화관광재단을 통한 문화예술과 관광 산업의 통합적 연결이 기대되는데, 실제로 울산에는 울주문화재단·고래문화재단 등의 재단과 더불어 HD아트센터·중구문화의전당·서울주문화센터·울산북구문화예술회관 등 지역 곳곳의 공연장이 활성화되어 있다. ‘울산문화24’는 이 모든 문화예술 소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효율적인 온라인 플랫폼이다.

울산은 한 때, ‘고래의 고장’이었다. 지금은 고래잡이가 금지되었지만, 포경선으로 들썩였던 장생포는 현재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어 고래박물관·고래생태체험관을 운영 중이다. 장생포아트센터·장생포아트스테이·창작스튜디오131 운영 등도 ‘고래’와 연결된 문화적 결과다.

1995년 개관한 울산문화예술회관에는 울산시립예술단 소속의 단체들이 운영 중이다. 올해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사샤 괴첼을 위촉하며 기대를 모은 울산시향을 비롯, 시립합창단·시립청소년교향악단·청소년합창단이 운영 중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단체는 울산시립무용단. ‘처용’의 도시인 울산답게, ‘처용의 북소리’ ‘처용랑’ 등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처용과 관련된 신화는 신라 시대 때부터 이어져왔다. 동해용(龍)이 신라의 왕에게 자신의 아들인 ‘처용’을 데려가도록 했다는 것. 처용이 춤과 노래로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처용의 탈을 쓰고, 처용의 춤을 추었다. 이후 처용무는 잡귀를 쫓던 의식으로 전해져왔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울산에서는 울산공업축제를 한때 ‘처용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이어왔으나, 처용 설화가 가진 외설 시비와 정체성의 모호함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다시 울산공업축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10월 16일부터 3일간, 축제가 열릴 예정.

태화강 국가정원

순천만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국가정원이다. 울산을 대표하는 각종 축제와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300년 넘게 이어져온 울산의 전통 줄다리기 마두희도 이곳에서 ‘태화강마두희축제’(6월)로 개최된다. 태화강국제재즈음악제(5월), 연극협회 울산지회에서 주최하는 울산 태화강대숲납량축제(8월)도 울산의 여름을 떠들썩하게 한다.

새로운 문화 공간

지난해, 울산 중구에 태화복합문화공간인 ‘만디’가 개관했다. 울산의 천년고찰 백양사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특별한 점은 ‘라이트룸 울산’이 이곳 만디에 자리 잡은 것. ‘라이트룸’은 이머시브아트 체험관으로 영국 런던과 서울에 이어 울산에는 세 번째 공간을 마련했다. 라이트룸 울산에서 8월 31일까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체험할 수 있으며, 만디는 문화교육센터·국제 선 명상센터 등도 운영 중이다.

허서현 기자

 

 

포항 철과 바다가 빚어낸 예술

‘철의 미학’을 재해석하는 문화적 상상력

 

포항은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도시다. 1968년, 동해안 바닷가에 첫 삽을 뜬 포스코의 설립과 함께 거대한 제철소와 공장은 오랫동안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포항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기계와 불꽃이 머물던 자리에 축제가 열리고, 철을 다루던 손끝에서는 새로운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의 흔적은 어느새 문화적 상상력의 토대가 되어 있었다.

산업의 불꽃에서 피워낸 문화의 물결

‘철의 도시’로 불리는 포항은, 그 산업적 뿌리와 도시의 서사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일만과 포항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포항시립미술관은 ‘스틸아트뮤지엄’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지속적인 전시와 연구를 통해, 산업적 재료로 여겨지던 철을 시각예술로 확장한다. 금속공예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스틸아트공방을 운영하는 점도 특별하다.

여름의 포항은 밤이 되면 더 뜨거워진다. 형산강과 포항 운하 등에서 포항국제불빛축제(6.14~22)가 열리기 때문이다. 제철소의 용광로 불꽃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불꽃 쇼, 화려한 퍼레이드, 빛 조형물 등이 도시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가을의 포항은 오래된 신화가 예술로 깨어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연오랑(해)과 세오녀(달)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일월문화제(9~10월)는 포항의 오랫동안 쌓아온 문화적 정체성을 공연·전시·학술 행사·야외 설치미술 등 다양한 예술 콘텐츠로 풀어낸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일월문화제는 2023년에 이어 올해도 관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같은 계절, 철의 미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축제도 준비돼 있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10~11월)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을 중심에 둔 순수 예술제다.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설치 작품부터 관람객이 직접 철을 만지고 두드리는 체험형 전시까지, 오직 포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면 11월의 포항국제음악제를 주목하자. 포항 출신 첼리스트 박유신이 2021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아 이끄는 음악제로, 지역성과 국제성을 모두 담아내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 포항의 아티스트를 조명하는 ‘아티스트 포항’, 도시 곳곳에서 음악을 나누는 ‘찾아가는 음악회’ 등 도시의 이야기와 사람들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엮어낸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에는 포항문화재단이 있다. 포항문화예술회관은 클래식 음악·연극·무용·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교향악단·합창단·연극단으로 구성된 포항시립예술단은 자체 기획 공연은 물론 지역 축제와 연계한 무대를 통해 포항의 문화 기반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다.

김강민 기자

 

 

부산 뜨거운 문화 도시를 꿈꾸며

새 문화공간들과 함께 청사진을 그리다

 

부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설렌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도시가 주는 활력이 남다르기 때문일까? 기대감을 품고 부산에 도착하면, 알록달록 줄지어 늘어선 컨테이너 박스들이 ‘항구 도시’로서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무역항이자 지금도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에, 현재 오페라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2027년 개관을 예정 중인 부산오페라하우스다. 항구와 오페라! 무한한 확장을 꿈꾸며 부산은 해양 문화 도시로의 이미지를 열심히 지어올리고 있다.

도시를 가꿔온 문화 자원들

부산오페라하우스에 대한 기대는 지난 6월 개관한 부산콘서트홀로 인해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우리나라의 제2도시로 불리는 부산에 이제야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이 들어섰다는 것은 그간의 발전 정도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만큼 앞으로 발생할 변화에 대한 기대도 크다.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정명훈은 개관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부산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청중을 키운다면 10년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어질 수도 있다”며, “두 공연장을 통해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부산이 갖춘 문화 인프라는 그간 꾸준히 개발되어 왔다. 1993년 개관한 부산문화회관과 1973년 개관한 부산시민회관이 오랜 시간 문화의 토양이었고, 2000년에 개관한 금정문화회관, 2002년에 개관한 을숙도문화회관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부산시립예술단은 부산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부산시향과 부산시립무용단을 비롯, 시립합창단·시립국악관현악단·시립극단·시립소년소녀합창단·시립청소년교향악단이 있다.

민간 단체의 노력도 주목받을 만하다. 고려제강이 와이어 생산 공장을 개조해 만든 F1963은 2016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탄생해, 전시실·홀 등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엔 GMC(Gum Nanse Music Center)도 들어서 있다. 민간 오케스트라로는 창단 30년을 넘긴 사단법인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를 비롯 유나이티드코리안오케스트라·부산네오필하모니오케스트라·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이 활동 중이다. 민간오페라단으로는 그 수가 더 많다. 솔오페라단·그랜드오페라단·경상오페라단·뉴아시아오페라단·아지무스오페라단·올웨이코리아오페라단·온누리오페라단 등이 있다. 이들은 지난 2022년,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부산광역시오페라단연합회를 구성해 부산의 오페라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더하고 있다.

2011년 개관한 영화의전당, 2019년 개관한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씨어터는 도시가 가진 문화의 역량을 강화하고 넓혔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이 되는 영화의전당은 영화관·공연장·야외극장 등이 들어서 있으며, 넓은 도시 광장으로도 시민들에게 사랑받는다. 드림씨어터는 1,700석 이상의 객석 규모를 갖춘 초대형 극장이다. 이로 인해 ‘캣츠’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알라딘’ 등의 대형 뮤지컬들이 모두 부산을 거칠 수 있었다.

마, 축제는 부산 아이가!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동아시아에서 가진 문화적 역량의 위치를 확인한 의미 있는 축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로 시작,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만큼은, 부산이 문화의 중심지임이 분명하다. 각광받은 신인 배우부터 내로라하는 톱스타들까지 영화제를 찾아 자리를 빛내고, 이는 수많은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관객 동원, 좌석 점유율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콘텐츠를 거래할 수 있는 IP시장으로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부산이 가진 국제적 역량은 영화 분야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지난 5월, 22회를 맞은 부산국제연극제에서는 폐막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이탈리아 연극을 선보였다.

허서현 기자

 

현장취재 기자가 직접 만난 부산➊

부산콘서트홀 시민과 함께 연 클래식 음악의 문

부산이 클래식 음악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다. 수도권 외 지역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부산시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이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기대감을 미리 나누듯, 6월 7·8일 이틀간 부산시민공원 하야리아 잔디광장에서 야외 공연 ‘클래식 파크콘서트’가 마련됐다. 돗자리와 도시락을 챙겨온 수많은 관객이 잔디광장 4만㎡를 가득 메웠고, 소프라노 조수미와 테너 김현수(6.7), 클래식부산 예술감독 정명훈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6.8)이 올라 초여름 밤을 음악으로 수놓았다.

기자가 파크콘서트에 도착한 날은 6월 7일. 이날은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을 시작으로, ‘소프라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집시 카르멘’ ‘아리랑 랩소디’ 등 친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들이 연주됐다. 관객의 환호에 화답하듯, 김현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 ‘지금 이 순간’을, 조수미는 ‘챔피언’ ‘아베 마리아’ ‘라데츠키 행진곡’을 앙코르곡으로 들려주었다. 네 곡의 앙코르가 모두 끝난 뒤에도 박수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계속해서 “앙코르!” 외침이 터졌을 정도로 현장에 활기가 넘쳤다.

부산콘서트홀은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기획공연들로 관객을 맞는다. 특히 오르가니스트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 크리스티안 슈미트(7.12), 올리비에 라트리(9.10), 켄 코완(10.11), 토머스 트로터(11.28)가 선보이는 오르간 독주회를 통해 부산콘서트홀의 웅장하고도 섬세한 오르간 음향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9월에는 정명훈/라 스칼라 필하모닉(협연 니콜라이 루간스키), 독일의 전통을 간직한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합창단의 내한 공연도 예정돼 있어 기대감을 높인다. ◎ 김강민

 

현장취재 기자가 직접 만난 부산➋ 부산국제무용제(6.4~8)

춤의 물결, 부산을 물들이다

“무용제의 개막을 춤으로 열어보려 합니다. 춤은, 누구나 다 출 수 있어요. 우리 다 같이 춤으로 개막을 축하해볼까요?”

지난 6월 5일, 영화의전당 로비에서 부산국제무용제(조직위원장 박형준, 운영위원장 신은주)가 개막했다. 개막을 선언하러 무대에 오른 운영위원장 신은주의 제안에 따라 축제의 막은 모인 이들의 흥겨운 춤사위로 올랐다. 과연, 열정의 도시 부산에서의 개막다웠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부산국제무용제는 6월 4일부터 5일간 진행됐다. 국내외 30개의 공연 단체가 참가해 50여 작품이 소개됐다. 헝가리부터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에서 해외 단체가 부산을 찾았고, 창무회·김용걸댄스시어터·김숙자춤보존회를 비롯 여러 국내 단체도 참여했다. 개막의 현장부터 폐막 공연까지, 객석의 기자들이 직접 축제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DAY 1

6월 5일 PM 7:3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헝가리 세게드 현대 발레 ‘카르미나 부라나’

실로 장대한 대서사시였다.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에 맞춘 이 작품은 안무는 물론 짚으로 뒤덮인 무대 등의 연출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음악 없이 시작된 공연은 격정적 북소리와 함께 칸타타의 첫 소절 ‘오 운명이여(O Fortuna)’이 군무와 어우러지는 명장면으로 출발한다.

2001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번이 아시아 초연으로, 세게드 현대 발레의 대표작이자 예술감독 터마시 유로니치의 안무작이기도 하다. 헝가리의 민주화 이후, 1993년 헝가리의 한 도시 세게드의 발레단은 지금의 형태로 개편됐다. 공연 전 기자간담회에서 터마시 유로니치는 “헝가리가 가진 지리적 특별함이 있다. 유럽과 맞닿아 있기도 하지만 몽골 등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문화권”이라며, “작품에 직접적으로 전통 문화가 담겨있진 않지만, 헝가리에서 자란 나와 우리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특유의 열정이 묻어나오리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무대에 오른 열일곱 명의 무용수들은 작품을 체화한 듯 춤을 통한 감정을 완연히 드러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DAY 2

6월 6일 PM 6:00

해운대 특설무대 부산국제무용제 공식 초청 프로그램

6·7일 해운대 특설무대에서 열린 ‘공식 초청 프로그램’은 한국·프랑스·이탈리아 등 10개국의 30개 작품으로 꾸며졌다. 수평선과 파도 소리, 노을과 밤바다가 어우러진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3시간이 훌쩍 넘는 공연이 펼쳐졌고, 관객과 무용수 모두 자유롭고 흥겹게 축제를 즐겼다.

해운대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연으로, 초반에는 빗방울이 흩날렸지만 이내 하늘이 개면서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창무회의 ‘숨, 푸리’(한국)는 전통 살풀이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큰 호응을 얻었고, 이어진 하시아구라 무용단의 ‘위대한 파도’(일본)는 바다를 닮은 의상과 동작이 해운대의 풍광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멋을 더했다.

이 외에도 정열적인 탱고라이프의 ‘아르헨티나 탱고’, 가야금 산조와 발레가 어우러진 김용걸댄스시어터의 ‘바람’, 화려한 LED 조명으로 시각적 몰입을 더한 필리핀 라 카스텔라나의 ‘빛의 춤’ 등 다채로운 작품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타국에서 결혼으로 형성한 독특한 문화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전통적이면서도 뮤지컬적으로 풀어낸 싱가포르 댄스 앙상블의 ‘난양의 색깔’ 무대가 특히 흥미로웠다. 무용을 매개로 각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관객과 세계가 소통하는 즐거운 자리였다.

DAY 3

6월 8일 PM 7: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에르베 쿠비 컴퍼니 ‘노 매터’

한국-프랑스(부산-칸) 공동 협력 창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현대무용 ‘노 매터(No Matter)’가 무용제의 폐막을 장식했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 로젤라 하이터워 국립 고등 무용학교의 주니어 발레단의 특별무대로 시작됐다.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코니 장면 파드되와 ‘오케스트라’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선보였으며, 정제되고 깨끗한 몸짓이 아름다웠다.

이어진 ‘하얀 밤’과 ‘노 매터’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담아냈다. 먼저 ‘하얀 밤’에서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 읊조리는 남성의 노랫가락 등이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흰 천을 배경으로 흰옷을 입고 흰 가면을 쓴 여성 무용수들의 느릿한 움직임에는 강렬함이 숨어 있었다. 점차 고조되는 움직임과 간간이 터지는 ‘이얏!’하는 기합이 마치 ‘하얀 밤’을 불러일으키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노 매터’에서는 무용수들이 앞선 작품의 배경이었던 흰 천을 거칠게 찢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사이키 조명과 펑크록 음악 사이로 여성 무용수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무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던 안무가 에르베 쿠비의 말이 무대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하얀 밤’과 ‘노 매터’는 오는 11월 칸 무용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무대는 국제 교류의 성과와 가능성을 보여주며, 부산국제무용제의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 허서현·김강민

 

서울에서 만난 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

대한민국발레축제 ‘샤이닝 웨이브’

6월 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오페라·발레 제작극장을 목표하고 있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이를 위한 대비로 시즌 단원제를 운용 중이다. 2022년 ‘부산오페라시즌’에 이어 2024년 ‘부산발레시즌’을 시작,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을 선발했다. 무용수 김주원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발레단의 오프닝 공연으로 발표된 것이 바로 ‘샤이닝 웨이브’다. 부산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 이정윤이 참여했고, 박소연이 안무를 맡았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오프닝 공연이었던 ‘샤이닝 웨이브’를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부산의 정체성을 담은 ‘샤이닝 웨이브’는 명확히 대중 친화적이었다. 단순한 이야기 전개, 아름다운 영상과 익숙한 음악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고래 역의 이은수와 소녀 역의 정혜윤은 마임을 적극 활용했고, 무대에 흡수된 움직임들을 연이어갔다. 마치 ‘지젤’ 속 윌리들의 군무가 떠오르는 ‘바다의 정령’ 등장은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했지만, ‘고래잡이 사내들’의 군무는 춤보다는 스토리 전개를 위한 퍼포먼스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발레가 낯설 지역 시민들을 위한 작품이 ‘샤이닝 웨이브’라면, 제작극장으로서의 전문성을 다지는 과정에 있는 만큼 다음 작품에서는 남다른 예술적 감각이 돋보일 발레단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허서현

 

 

인천 & 서해안 도시들 (평택·부안·영광)

예술의 돛을 올리고

물길과 삶길이 만나는 곳에서 피어나는 예술

 

서해안의 주요 도시들이 변화하고 있다. 관문 도시 인천은 첨단 국제도시의 면모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예술 인프라를 구축하며 역동적인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도시들 역시 각각의 전통과 자연을 예술로 풀어내며 새로운 문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인천, 항구의 역동성을 품고

하늘길과 바닷길, 육로를 아우르는 관문 도시 인천은 역동적인 도시성과 다문화적 특색을 바탕으로 예술도시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트센터인천이 있다. 송도국제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이곳은 2018년 콘서트홀 개관 이후 클래식 음악,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며 인천의 예술 위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인천 전역에는 다양한 문화시설이 촘촘히 연결돼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은 클래식 음악, 연극, 국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유치하며 시민들의 일상 속 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남동소래아트홀은 지역 기반의 공연예술과 전시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만나는 예술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예술단체 역시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다. 인천시립예술단은 교향악단·합창단·무용단·극단·소년소녀합창단 등 5개의 예술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찾아가는 공연을 통해 학교, 복지시설, 공공 공간 등 일상 속 문화 확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다가오는 2028년에는 인천 문화예술의 새로운 거점이 될 인천뮤지엄파크가 문을 연다. 시립미술관과 박물관을 결합한 복합 문화예술 공간인 이곳은 지역 고유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도시 문화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호흡하는 문화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8.1~3)은 국내외 록·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대중음악 축제로, 매년 수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인천을 글로벌 음악 도시로 부상시키고 있다. 개항장과 차이나타운, 송학동 일대는 옛 건축과 현대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재생 공간으로 재탄생해 걷기 좋은 예술 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와 인천아트플랫폼은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한 전시·체험·버스킹 공연 등을 꾸준히 선보이며 인천의 예술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서해안을 수놓을 예술의 물결

푸른 바다와 넓은 갯벌이 펼쳐진 서해안의 해양 도시들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예술 축제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의 단발 행사들이 많지만, 바다와 마을, 주민 공동체가 함께 엮어내는 축제는 분명 지역만의 고유한 매력을 품고 있다.

서해 중부에 자리한 경기도 평택시는 산업과 물류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음악 도시로서의 존재감도 드러내고 있다. 지난 6월, 평택시문화재단이 주최한 2025 평택 실내악 축제(6.13·14·20·21/음악감독 김현미)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비올리스트 최은식, 첼리스트 이강호, 소프라노 홍혜란 등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40여 명의 연주자가 실내악 무대를 꾸미며 시민과 예술 간 거리를 좁히고, 도시의 문화적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

전라북도 부안군의 섬마을 위도에서는 매년 6월이면 독특한 해양 의례 축제인 띠뱃놀이가 펼쳐진다. 뱃사공들과 마을 주민이 함께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 풍어를 기원하고, 이를 뭍으로 되돌려 행렬과 음악, 춤으로 풀어내는 이 축제는 오랜 세월 어민 공동체의 삶과 신앙, 예술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의 법성포 단오제는 음력 5월 5일 단오 무렵에 열리는 유서 깊은 민속 축제로, 조선 중기부터 이어져온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본래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을 띤 이 행사는, 지역 공동체의 연희로 확장되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행사 뿐만 아니라 씨름대회, 민속놀이, 축하 공연과 각종 체험행사 등이 펼쳐지는 살아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연과 삶, 공동체의 이야기가 풍부한 서해안은 예술이 뿌리내리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해양 도시들의 문화예술 축제는 아직은 대부분 소규모지만, 전통·생태·지역 공동체라는 자산을 토대로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매우 크다. 바다를 닮은 너른 감수성과 소박한 삶의 미학이 어우러진 서해안의 해양 도시들. 이곳의 문화예술은 이제 막 새로운 출항을 시작했다.

홍예원 기자

 

 

목포 역사를 품은 골목

예술의 장으로 재탄생한 기억 속 공간들

목포는 개항 이후 교역과 해상 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도시의 정체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목포는 그저 ‘항구 도시’라는 익숙한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근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건물, 일제강점기의 시간이 스며든 거리를 걷다 보면, 목포는 어느새 살아 있는 박물관이자 예술의 무대가 된다.

도시의 시간을 예술로 엮다

목포가 예향의 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촘촘히 구축된 문화 인프라가 큰 몫을 했다. 1976년 전국 최초로 설립된 국악 전문 교육기관을 시작으로, 교향악단·합창단·무용단·연극단까지 고루 갖춘 목포시립예술단은 지역 예술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고, 시민에게 꾸준히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해 왔다.

근대사의 공간이 예술과 문화의 무대로 다시 쓰이는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 사찰이었던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오거리문화센터로, 항일 민족운동의 보금자리였던 청년회관은 청년회관(구 남교소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어 공연·전시·강연 등이 어우러지는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사용됐던 건물은 현재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운영되며, 식민지 시대의 상처와 저항의 역사를 생생히 전한다.

문학 역시 목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극작가 김우진(1897~1926)과 차범석(1924~2006), 소설가 박화성(1904~1988),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 등 한국 문학사의 주요 인물들이 이곳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했다. 이들의 문학적 유산을 조명하는 목포문학관이 운영 중이고, 2027년에는 원도심 일대가 전국 유일의 ‘문학마을’로 조성될 예정이다. 오는 10월에는 골목길 문학축제가 열린다. 골목길, 작가 생가, 마을 공터 등에서 축제가 진행되니, 거리를 걸으며 문학에 흠뻑 취해보는 건 어떨까. 한편, 거리에서 펼쳐지는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5.30~6.1)은 올해로 25회를 맞았다. 마당극·전통연희·공중곡예·인형극·탈놀이는 물론 가요와 클래식 음악까지, 매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거리 위에서 펼쳐지며 도시를 예술로 물들이고 있다.

바다와 일상을 잇는 감각적인 축제들도 빼놓을 수 없다. 목표를 대표하는 목포항구축제(9.26 ~28)는 해상 어시장 문화인 ‘파시’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수산물 경매 체험과 어등 터널을 통해 항구 도시의 매력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불꽃·분수·조명이 어우러지며 도시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야간 수상 멀티미디어 쇼인 해상W쇼(4.26 ~10.3)도 준비돼 있다.

김강민 기자

 

 

여수 남해의 푸른 빛 품은 예술도시

자연 감수성으로 무장한 공업 및 해양도시

 

나비 모양의 여수 반도는 팔면이 바다다. 905.87 km의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항만과 포구들이 옹기종기 살을 부대끼며 존재해 왔다. 웅천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자 GS칼텍스 예울마루와 맞닿은 섬 ‘장도’에는 상주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이 피어난다. 섬을 품은 바다 옆면으로 펼쳐진 가두리·전복 양식장이 알뜰살뜰 여수를 먹여 살린다. 여수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여수거북선축제’는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숨결을 되살리며, 강인한 정신과 공동체의 기개를 다채로운 공연과 퍼레이드로 되새긴다.

바다-섬-환경 감수성이 맞물린 곳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 외로운맘 끝이 없이 나홀로 서러워…’ 가곡 ‘여수’에서 구슬프게 토로하는 나그네는 아마도 여수항의 해안통 어귀에서 고독을 삼키고 있었을 터다. 그렇지만 여수는 더 이상 ‘낯설은 타향’이 아니라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다. 이것은 GS칼텍스가 사회공헌프로젝트로 망마산과 장도를 연계한 예울마루를 조성한 결과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1953~)가 설계를 맡은 GS칼텍스 예울마루는 지역인들을 넘어, 국내외 예술인들의 새로운 공연장으로 발돋움했다.

2012년 개관한 예울마루에 이어, 2019년에는 장도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만조 시 바닷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육지와 장도를 잇는 진섬 다리의 통제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장도에는 예울마루 창작스튜디오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는 공간이자, 지역 예술가들에게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하는 열린 예술 플랫폼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장도의 풍경과 더불어,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여겨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여수의 유일 문화재단인 범민문화재단은 범민(凡民) 박윤수 선생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지난 40여 년간 여수의 인재 육성과 예술문화를 위해 힘써온 선생의 뜻을 계승한 이 재단에서는, 매년 6월이면 탄탄한 국제음악축제로 자리 잡은 여수에코국제음악제와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조망하는 여수아트페어를 주관한다. 여수의 여러 섬 가운데 금오도(방풍막걸리)와 낭도(젖샘막걸리)에서 생산되는 생막걸리를 내세워, 10월 와인&스피릿 페스타도 펼쳐진다. 이처럼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은 지역 예술 생태계에 활력을 더하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여수 시민들의 정서 함양을 위한 예술단에는 여수시립합창단과 여수시립국악단이 있다.

거북선의 기개와 밤바다의 낭만

유서 깊은 호국 문화재인 여수거북선축제를 주목하자. 충무공 이순신이 왜군을 타파하고자, 당시 장졸과 영민으로 전라좌수영을 편성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사실을 기념하는 축제다. 하이라이트인 ‘통제영길놀이’는 거북선·판옥선 등 다양한 군선들의 위엄과 수천 명의 시민이 수군으로 분장해 여수의 거리를 거닐며 임진왜란 당시를 재현하는 퍼레이드다. 매년 5월에 개최된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불러일으켰던 감동을 고스란히 담아낸 축제가 여수에서 매년 가을 열린다. 여수밤바다불꽃축제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기 위한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을 환영하는 행사로, 2007년 4월 처음 개최되었고, 현재는 11월에 펼쳐진다. 프랑스와 독일, 일본, 포르투갈 등에서 참여하여 각국의 다양한 불꽃으로 여수 밤바다를 아름답게 연출한다.

유내리 수습기자

 

 

진도 남도 무형문화유산의 심장

전통 유산이 살아 숨 쉬는 예술의 섬

 

전라남도 남서단,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진도는 예로부터 전통과 예술의 보고로 불렸다. 다도해의 잔잔한 물결과 어우러진 이 섬은 진도아리랑, 진도씻김굿 등 독자적인 무형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바닷길이 열리는 신비로운 자연 현상부터 남도 회화, 삶의 애환이 담긴 소리까지. 진도의 문화는 일상과 예술이 맞닿아 있는 살아 있는 전통 그 자체다.

바다 위에 피어난 예술

매년 음력 2월 그믐이면 진도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약 2km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로 물러나며 약 한 시간 동안 바닷길이 열린다. 이 현상은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며, 1975년 주한 프랑스대사 피에르 랑디가 진도를 방문해 이를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음력 2월 초 또는 보름 전후)는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공연, 바닷길 체험, 뽕할머니 제례 등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진도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전통예술을 떠받치는 기반도 단단하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판소리, 진도북춤, 씻김굿 등 지역 고유의 예술을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리며, 마을 단위 전통예술단과 협업해 지역 곳곳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진도에는 남도의 전통예술을 계승·확산하는 국립남도국악원이 자리해 있다. 2004년 개원한 이곳은 국립국악원의 분원으로, 진도씻김굿·진도아리랑·강강술래와 같은 진도의 민속예술뿐 아니라 판소리·산조·시나위 등 남도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교육과 연구, 체험 프로그램을 폭넓게 운영하고 있으며, 굿음악축제를 비롯해 상설 공연과 다양한 기획 무대를 통해 전통과 지역, 예술과 대중을 잇는 소리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화선지 위에 펼쳐진 남도의 풍경

진도는 남도 수묵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허련(1809~1892)과 그 아들 허형을 중심으로 한 운림산방 화맥은 진도를 대표하는 전통 유산이다. 진도의 산수와 자연을 그린 허련의 예술세계는 남도 지역 화단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수묵의 정서를 품은 이곳에서는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내면을 화폭 위에 담는 예술가들이 꾸준히 활동해 왔으며, 지금까지 150여 명의 국전 특선 작가를 배출해 냈다. 현재는 10여 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은 물론,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과 관람객에게 예술을 더욱 가깝게 전하고 있다. 허련이 만년에 작품을 제작했던 운림산방을 비롯해 남도전통미술관, 운림예술촌 등에서는 지역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현대미술과 전통회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남도 회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8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리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문명의 이웃들–somewhere over the yellow sea’를 주제로, 수묵을 매개로 한 문명 간의 교류와 예술적 성찰을 펼쳐 보인다. 회화, 설치, 영상,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가 융합된 이 예술제는 전통 수묵화의 깊이를 현대적 시선으로 풀어내며 국내외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국제적인 문화의 장이 될 예정이다.

예술이 된 삶, 무형문화유산

진도는 삶 속에서 길러낸 소리와 몸짓, 신앙과 공동체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무형문화유산의 중심지다.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강강술래·진도아리랑·진도소포걸군농악)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전통은 전승자들의 손과 입을 통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먼저, 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고 천도시키기 위한 굿으로, 진도씻김굿은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고 예술성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강술래는 달빛 아래 여인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원형 민속놀이로, 진도에는 명량해전 당시 부녀자들이 군복을 입고 산허리를 돌며 적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관방산성(강강술래터)이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진도아리랑은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의 가락으로 널리 알려진 남도 민요로, 지역민의 삶과 정서를 담아내어 독자적인 전승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임을 그리는 애끓는 심사와 원망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며, 후렴 중 ‘응응응’ 소리에는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어우러진 감정이 드러난다.

홍예원 기자

 

 

제주 예술의 바람이 부는 곳

신화와 자연, 그리고 축제가 어우러지다

 

제주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 무대다. 바람이 오가는 길목마다 공연장이 되고, 전설이 깃든 땅은 무용과 오페라의 배경이 된다. 제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러한 예술 활동은 그 자체로 섬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관객에게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바람을 품은 예술, 관악

제주에는 사계절 내내 바람이 분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한라산을 타고 내려오는 산바람은 섬 전체를 감싸고 돌며, 제주의 지형과 사람, 그리고 예술에 흔적을 남겼다.

이 바람을 활용한 대표적인 음악제가 바로 제주국제관악제다. 야외 연주에 적합한 관악의 특성, 제주가 지닌 평화의 이미지와 낭만이 어우러져 매해 많은 이들이 이 음악제를 찾고 있다. 음악제는 봄 시즌(3.15~18)과 여름 시즌(8.7~16), 그리고 제주국제관악콩쿠르(8.7~16)로 구성된다. 공연에서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관악 연주자들의 공연과 관악 작곡가들의 작품 발표가 이루어지며, 콩쿠르에서는 호른·트럼펫·테너 트롬본·베이스 트롬본·튜바·유포니움·금관 5중주 등 다양한 부문에서 경연이 이뤄진다.

제주에는 이 바람을 소리로 풀어내는 관악단도 존재한다. 1998년 창단된 제주도립서귀포관악단이다. 전국에서 유일한 공립 관악단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제주도립서귀포관악단은 제주국제관악제의 무대를 함께하며 음악제를 풍성하게 꾸미고 있으며, 정기연주회·찾아가는 음악회·지역 축제 협연 등을 통해 관악 문화를 지역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바람이 깃든 공간

제주의 바람은 음악뿐 아니라 공간 설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귀포시 섭지코지에는 이러한 감각을 인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두 건축물이 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1941~)가 제주의 바람·빛·물·소리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와 유민 아르누보 미술관이 그것이다. 이곳에서 건축물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결을 직접 느껴보는 건 어떨까.

글라스 하우스는 섭지코지의 풍경을 탁 트인 시야로 감상할 수 있는 전망 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건물 중심에는 바람이 드나드는 길이 트여 있다. 이름은 ‘바람의 문’이다. 글라스 하우스로부터 도보 약 5분 거리에 있는 유민 아르누보 뮤지엄은 안도 다다오가 섭지코지의 원초적인 자연을 형상화해 설계한 곳이다. 특히 건물 야외에 조성된 ‘삼다의 정원’은 제주를 상징하는 돌·여자·바람의 요소가 반영됐다. 이 중 ‘바람의 정원’은 입구와 출구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바람이 자연스럽게 정원을 통과하도록 설계되었고, 이 덕분에 관람객은 정원을 거닐며 바람을 시각·청각·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미술관, 경관까지 한 폭의 그림이 되다

제주의 미술관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스며들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시의 외곽 중간산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주변을 둘러싼 얕은 연못이 마치 미술관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게 해 신비롭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 비엔날레(2024.11.26~2.16)를 주관할 뿐 아니라 지역 미술사 정립을 위한 전시도 이어오고 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의 예술세계를 담은 공간이다. 김창열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며, 현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연구한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을 모티브로 한, 큐브형 전시 공간이 눈에 띈다.

제주도립이중섭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삶과 예술을 기린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물며 남겼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등 주요작을 감상할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지난해 10월 전시를 종료하고 현재 건물 철거 및 확장 공사에 들어갔으며, 2027년 재개관까지 이중섭전시공간에서 임시 전시를 진행한다.

본태박물관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1941~)가 설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전통 공예품이 전시된 제1관과 현대미술을 다루는 제2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2관에서는 백남준·쿠사마 야요이·피카소 등의 유명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빛과 물, 콘크리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축 자체도 큰 감상의 대상이다.

유동룡미술관은 제주를 사랑한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 1937~2011)을 기리는 공간으로, 2023년 정식 개관했다. 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부친의 철학을 담아 미술관을 설계했다. 유동룡이 제주에 남긴 건축 유산과 더불어 회화·서예·조각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이 전시된다.

제주의 시간은 축제로 흐른다

제주에서는 계절마다 예술이 축제로 피어난다. 특히 여름에는 무대 위 아름다운 몸짓들이 무더위를 잊게 한다. 제주국제무용제(7.16~26)는 제주시 일원에서 열리며, 국내외 무용가와 지역 예술인이 함께 참여하는 포용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무용제의 일환으로 기획된 제주아시아퍼시픽국제무용콩쿠르(7.23~27)가 활기를 더한다. 탑동 해변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한여름밤의 예술공연(7.24~27)은 음악·무용·전통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바닷바람과 어우러지며 잊지 못할 여름밤을 선사한다.

봄의 제주연극제(4월)와 제주국제즉흥춤축제(5월), 겨울의 제주국제실내악페스티벌(2월)과 제주국제합창축제(2월) 등 계절마다 다채로운 축제들이 펼쳐진다. 한편, 오랜 기간 제주에서 열렸던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은 2024년부터 코카카아트페스티벌로 새롭게 출발, 올해는 세종예술의전당 일원에서 개최(6.2~5)되었다.

김강민 기자

 

 

속초 실향의 도시에서 감성의 도시로

강원도 동해안에 위치한 속초시는 설악산과 오징어순대, 만석닭강정의 홈타운이지만 문화예술로도 은근한 입지를 자랑한다. 속초시립예술단은 시립합창단과 시립풍물단으로 구성되어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하고 있다. 1996년 창단된 시립합창단은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찾아가는 음악회, 시민합창페스티벌 등으로 시민과의 접점을 넓혀왔으며, 전통연희의 맥을 잇는 시립풍물단은 강원도 특유의 흥겨운 가락과 장단으로 지역 행사와 축제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속초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정책을 기획하고, 공연·전시·예술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속초 문화예술 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에서 실향민 비율이 가장 높은 속초에서는 2016년부터 실향의 아픔을 기억하고 나누기 위한 속초실향민축제(6.14~16)가 열리며,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을 주는 목적으로 시작된 속초예술제(5.30~6.1)는 속초 엑스포 광장 일대를 중심으로 속초예총 9개 지부(문인·미술·음악·무용 등)가 참여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속초아트페어(5.24~6.14)는 미술시장 생태계 확장을 목표로 시작한 축제로, 속초의 조선소인 칠성조선소의 마지막 목전에 영감을 받아 만든 설치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고성 금강산이 손에 닿을 듯

속초와 이웃한 강원도 고성군 역시 조용하지만 알차게 지역 예술문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DMZ와 금강산의 관문이며, 한적한 해안선과 시골 풍경이 어우러진 곳이다. 고성문화재단은 2020년에 설립되어,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군 단위 자치단체 중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다. 고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고성군여성합창단이 소속되어있다. 고성군청 인근의 고성군문화복지센터 공연장은 주요 기획 공연이 열리는 공간으로, 클래식, 국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무대에 오른다. 최근에는 작고 밀도 있는 공연을 지향하는 ‘찾아가는 공연 시리즈’와 어린이를 위한 예술 감성학교 등 군민 맞춤형 프로그램이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고성은 DMZ 평화문화제·청간정음악회 등 지역의 역사성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특색 있는 행사들도 점차 자리를 잡고 있으며, 조용하지만, 차근차근 예술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예술축제 당항포의 밤, 윤슬하지(6.21)는 고성군 당항포관광지 수변무대에서 개최된다. 당항포 바다에 비치는 ‘윤슬’을 배경으로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자연을 주제로 한 아트전, 해양 폐기물의 새로운 탄생을 직접 만들어보는 아트전, 고성의 윤슬을 직접 담아보는 눈 이벤트로 지역 사회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성 라벤더마을 꽃농장에서 펼쳐지는 고성라벤더축제는 매년 6월에 개최된다. 올해는 보랏빛 라벤더밭에서 고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여러 앙상블팀이 연주하는 향기 음악회를 만끽할 수 있다.

유내리 수습기자

 

 

강릉 발전하는 강원의 문화 중심지

전통예술부터 미술까지, 바닷가 축제 집합소

 

강릉의 초여름은 다소 떠들썩하다. 음력 5월 5일, 양력으로는 주로 5월말에 시작해 6월초까지 이어지는 강릉단오제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강릉을 대표하는 조선시대 문인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날 가서 단오제를 직접 보았다. 과연 일산이 쓰러지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치며 춤을 추었다. 공(김유신)은 살아서는 왕실에 공을 세워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고, 죽어서는 수천 년 되도록 이 백성에게 화복을 내려서 그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니, 이는 진정 기록될 만한 것이기이에 드디어 다음과 같이 찬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축제에 대한, 조선 문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도시. 이 단편적 사실만으로도 강릉의 동해와 석호가 가진 역사적·문화적 깊이가 가늠된다.

평창올림픽이 남긴 문화 인프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원 지역에는 ‘문화올림픽’의 바람이 불었다. 기존에 이어져오던 평창대관령음악제도 자연스럽게 힘을 받았고, 평창과 근접한 강릉 지역도 올림픽 특구 개발사업에 포함된다. 강릉문화예술회관 자리에 2017년 강릉아트센터가 준공됐고, 현재까지 강릉의 대표적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강릉시향과 강릉시립합창단이 이곳의 전속 단체이다. 강릉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명주예술마당, 작은공연장 단 등도 있다.

오는 7월 23일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예술감독 양성원)의 찾아가는 음악회 일부가 강릉에서 열린다. 박지윤·이지윤(바이올린), 율리아나 데이네카·헝 웨이 황(비올라), 레이 츠지모토·문태국(첼로)가 꾸린 ‘평창드림팀’이 강릉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실내악 공연(27일)을, 26일과 28일에는 강릉의 테라로사 커피공장에서 찾아가는 음악회가 펼쳐지기도 한다. 30일에는 트리오 오원(올리비에 샤를리에·양성원·에마뉘엘 슈트로세)이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

미래 세대를 위한 장

한여름의 강릉 바다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의 장을 연다. 올해로 24회를 맞이한 강릉국제청소년예술축전이 7월 30일~8월 4일에 개최될 예정. 10~23세의 청소년 공연단이 참가하며 음악은 물론 무용, 전통예술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청소년 예술단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 공연을 펼친다.

12회를 맞이한 명주인형극제는 올해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인형극은 강릉의 역사와도 밀접하다. 강릉단오제의 일부이자 연희극인 ‘관노 가면극’이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때문. 명주인형극제의 대표 캐릭터 ‘마리’도 관노가면극의 등장인물 ‘장자마리’에서 따왔다. 국내외 다양한 극단들이 참여하며,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여름의 축제를 즐긴다.

미술부터 체험 전시까지

지난해 강릉에 새로운 미술관이 개관했다. ‘백색 건축’으로 유명한 리처드 마이어가 설립한 건축회사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솔올미술관’이었다. ‘솔올’은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 리처드 마이어는 미국 L.A. 게티 센터 등을 설계한 건축가였기에, 개관 전부터 미술관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미술관은 위탁 운영이 종료된 이후 강릉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운영을 잠시 중단했는데, 올해 4월부터 강릉시립미술관 솔올로 새롭게 개관되어 운영 중이다. 재개관기념으로 김환기의 작품이 전시됐으며, 7월에는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테마전시를, 10월에는 미국의 팝아트 캐서린 번하드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 강릉은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경포호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아르떼뮤지엄은 디지털 디자인 컴퍼니 디스트릭트가 운영하는 상설 전시관으로 제주를 시작, 현재 여수·부산 등에서도 운영 중이다. 강릉은 아르떼뮤지엄이 들어선 세 번째 도시로, 현재 ‘벨리’라는 테마로 강원도와 강릉의 지역 특성을 반영한 미디어아트전시가 1,500평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하반기를 장식하는 이색 축제

최근 강릉 여행의 필수코스는 바로 카페다. ‘강릉=커피’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도시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커피, 바다와 다시 만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강릉커피축제가 10월 말에 펼쳐진다. 강릉커피거리로 불리는 안목해변 일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부스를 비롯해 커피 인문학 강연, 버스킹 공연들이 곁들여진다.

강릉의 관광자원으로는 정동진도 빼놓을 수 없다! 겨울에는 아름다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면, 여름에는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이 각광받는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올해 8월 1~3일까지 열리며,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다.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서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은 상영작 중 감명 깊게 본 영화에 직접 동전을 넣는 문화가 있는데, 동전의 개수가 가장 많은 작품에는 영화제의 유일한 상인 ‘땡그랑동전상’이 수여된다.

지난해, 강릉 곳곳의 장소에서 공연을 펼치며 첫 개최된 하슬라국제예술제(예술감독 조재혁)도 올해 하반기에 제2회를 준비 중이다. 10월 18~16일까지, 강릉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초당성당·아산병원·갈바리의원·아르떼뮤지엄 등에서 개최될 예정. 최우정 작곡가의 한국 가곡 초연, 미디어아트 ‘미인도’와 선우예권의 합작, 창단 60주년의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무대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축제가 예상된다.

허서현 기자

 

 


 

ABROAD

 

아시아  무역 중심지를 넘어 미래도시로

예술공간을 도시의 핵심 자산으로 삼는 도시들

 

아시아의 주요 해안 도시는 이제 단순한 무역 중심지를 넘어, 문화예술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시의 대표 공연장들은 단순한 예술 공간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아내고 동서양 문화를 연결하는 문화적 교차점으로 기능한다.

특히 바다와 맞닿은 지리적 특성은 예술과 도시 경관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공연장 등의 예술공간을, 도시 브랜드를 상징하는 핵심 자산으로 부각시킨다. ‘예술을 통한 도시 리브랜딩’을 전략적 비전으로 삼고 있으며, 다음은 각 도시를 대표하는 공연장들의 사례이다.

 

 

JAPAN

일본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곳

일본의 해안 도시 곳곳에는 지역의 자연 풍경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홀이다. 1998년에 개관한 이 홀은 요코하마의 대표 항구 지구인 미나토미라이에 위치하며 약 2,000석 규모의 슈박스형 콘서트홀로 설계되었다. 특히 미국의 명문 오르간 제작사(C.B. Fisk)가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 ‘루시’가 설치되어 있어 독주회는 물론 대편성 합창과의 협연에서도 탁월한 음향을 자랑한다.

가나자와에 위치한 이시카와현립 음악당도 지역성과 예술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사례다. 전형적인 일본 해안 마을의 정취를 간직한 이 도시는 조용한 분위기와 현대적인 건축이 어우러지며 음악당은 역과 바로 연결되어 뛰어난 접근성을 갖춘다. 지역 기반의 오케스트라인 ‘오케스트라 앙상블 가나자와’를 중심으로 실내악부터 대편성 공연, 교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활동이 연중 진행된다.

고베 지역의 효고현립예술문화센터는 2005년 개관한 종합 예술 공간으로 대형 콘서트홀을 비롯해 중극장과 소극장을 함께 갖추고 있다. 특히 퍼시픽뮤직페스티벌(PMF) 출신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용 관현악단 ‘PAC 오케스트라’와 함께 운영되며 오사카와 고베 양쪽에서의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르는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CHINA

중국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음악 무대

상하이는 중국 동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자, 아시아 문화 교류의 전초기지다. 오랜 세월 외세와 내륙이 만나는 창구 역할을 해온 이 도시는 오늘날에도 동서양 예술이 공존하는 무대로서 살아 숨 쉰다.

급속한 도시 발전에 발맞춰 상하이 공연장 역시 발전해 왔다. 상하이 콘서트홀은 상하이의 음악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적 장소다. 1930년 ‘난징 극장’으로 출발한 이 공연장은 서양 고전 양식 건축물로 로버트 판과 자오 첸의 설계 아래 흰 대리석 복도, 로마식 기둥, 아치형 문 등을 갖추며 우아한 외관을 자랑한다. 본래는 영화와 곡예,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던 다목적 극장이었으나 1959년부터는 본격적인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로 전환되었다. 2002년 도시 재개발로 인해 건물 전체를 이동시키는 공사가 단행되었고 2004년 재개관했다.

보다 현대적인 문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공간이 바로 상하이 동방예술센터이다. 푸둥 신구에 위치한 이 공연장은 2005년 프랑스 건축가 폴 앙드레와 화동건축디자인연구소가 공동 설계했으며 다섯 개의 꽃잎이 연결된 연꽃 형상의 유려한 외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재규어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홀은 상하이 공연장 중 가장 진보된 형태라 할 수 있다. 2019년 개관한 이 공연장은 쉬후이 지구에 위치하며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전용 공연장으로 설계되었다. 엘프필하모니와 디즈니 콘서트홀의 음향 설계를 담당했던 도요다 야스히사가 음향을 맡았으며 약 1,2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은 빈야드 스타일의 좌석 배치를 통해 무대와 관객 간의 음향적 거리를 최소화했다.

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상하이 콘서트홀, 국제성과 접근성을 갖춘 동방예술센터, 그리고 음향 기술과 창의성이 결합된 상하이 심포니홀, 이 세 공연장은 해안 도시 상하이가 음악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TAIWAN

대만 군사기지에서 문화 공간으로

대만 남부의 항구도시 가오슝은 우리나라 부산과도 닮은 점이 많다. 과거에는 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무역항 중 하나였고, 산업 중심지로 기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오슝은 더 이상 ‘물류의 도시’만이 아니다. 매년 400만 명이 찾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 그 상징이 바로 가오슝 국립아트센터(웨이우잉)이다.

아트센터가 자리한 부지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던 땅이었으나 가오슝시가 도시 재생과 문화도시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이 지역은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그 중심에 대만 최대의 공연예술 복합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설계를 맡은 네덜란드 건축회사 메카누(Mecanoo)는 이 지역의 기후와 환경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열대지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얀트리의 넓은 캐노피(수관)를 모티프로 삼아 하나의 유려한 곡선형 지붕 아래 공간을 통합했다. 아트센터 부지는 약 14만 1천 제곱미터(약 35에이커)의 면적을 자랑하며, 건축물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지붕 공연예술센터로 기록되고 있다.

거대한 지붕 아래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예술은 지역의 기후와 환경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자연과 도시, 시민과 예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오슝 국립아트센터는 도시 재생과 문화적 상상력이 만날 때 비로소 탄생하는 삶의 새로운 풍경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HONG KONG

홍콩 빛나는 도시,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고층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홍콩 도심은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작은 소호’로 불리는 사이잉푼역의 벽화 거리, 빌딩 숲 사이에 자리 잡은 명품 브랜드 매장 등 도시 고유의 개성과 다채로운 명소들로 밤거리를 수놓는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문화적 풍경이 스며드는 가운데 홍콩의 예술 생태계를 새롭게 그려나가려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구룡반도 해안에 조성된 서구룡 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WKCD)다. 2008년 홍콩 정부 주도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서구룡 문화지구 관리국 조례’에 따라 운영되며 문화예술 전문가와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해 홍콩 고유의 예술성과 창의 산업을 육성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WKCD는 빅토리아 항구를 마주한 40헥타르 규모의 매립지에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시추센터, 프리페이스, 아트파크, 엠플러스 뮤지엄(M+) 등 문화 시설이 들어섰고, 전시와 공연, 각종 문화 행사가 연중무휴로 이어진다. 특히 M+는 아시아 최초의 글로벌 현대 시각문화 박물관으로, 야요이 쿠사마를 비롯한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홍콩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22년 7월 개관한 홍콩 고궁 박물관 또한 자금성의 유물을 소개하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SINGAPORE

싱가포르 ‘두리안’ 아래 피어난 다문화 예술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 다양한 문화권이 교차하는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다문화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성장해 온 이 도시는 최근 들어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브랜드 재구축과 정체성 정립에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공간이 바로 마리나 베이 해안에 자리한 에스플러네이드이다. 열대 과일 두리안을 닮은 독특한 외관 덕분에 ‘두리안 공연장’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이 건축물이 진정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다문화 사회를 예술적으로 상징하는 데에 있다.

에스플러네이드는 연중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지만, 특히 중국계(Huayi 축제), 말레이계(Pasta Raya 축제), 인도계(Kalaa Utsavam 축제) 축제 시리즈는 싱가포르의 문화적 구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들 축제는 각각 독립된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에스플러네이드라는 하나의 예술 플랫폼 안에서 공존하고 교차한다.

에스플러네이드는 싱가포르가 지닌 다층적인 문화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킨 상징적인 공간이다. 문화 다양성은 단순한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과 공동체 구조를 설계하는 전략이 된다. 에스플러네이드는 예술로써 싱가포르가 지향하는 도시 모델-다원성, 공존, 열린 문화-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낸다.

 

 

AUSTRALIA

오스트레일리아 예술이 경제가 될 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 건축물 중 하나다. 조개껍데기나 돛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곡선의 지붕은 도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바다와 맞닿은 독특한 입지와 조형미는 호주를 대표하는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이 위상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수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1960년 착공 이후 완공까지 14년이 소요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예술을 빙자한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설계자 요른 웃존은 1966년 중도 하차했다. 이후 그의 아들 얀 웃존이 복원에 참여하며 원안의 철학을 반영한 공간 재구성이 이루어졌고, 2003년에는 ‘웃존 디자인 원칙(Utzon Design Principles)’이 공식 도입되어 개념의 연속성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현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연간 8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 명소이자, 1조 원이 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시 이미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국가 전략 자산으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대표적인 플레이스 메이킹 사례다. 처음에는 실패한 프로젝트로 평가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예술과 건축, 정책과 예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이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일깨우며 오페라하우스는 예술적 상상력과 공공성이 만날 때 탄생하는 도시 혁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유럽  음악제 사이로 흐르는 물길

바다와 호수가 만든 음악 축제의 지형도

 

거칠고 변화무쌍한 북해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발트해, 문명의 교차로가 된 대서양과 따사로운 지중해까지. 유럽을 둘러싼 서로 다른 성격의 바다는 이 대륙이 다채로운 생활상과 문화로 차오른 이유 중 하나다. 매해 여름이면 유럽의 해안가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클래식 음악 축제도 펼쳐진다. 끼고 있는 바다의 특성에 따라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주로 해안가 소도시에서 개최되는 이런 축제는 지역 문화 부흥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축제 전용 공연장 등의 ‘인프라’와 매력적인 연주자 라인업, 확실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 등의 ‘소프트웨어’가 맞물려 타지의 음악 애호가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에서 공연함으로써 문화 사각지대를 밝히는 역할도 했다.

몇몇 축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물길로 연결된 다른 도시나 국가들의 협업을 통해 더욱 활발한 교류의 환경을 만든다. ‘경계’라는 주제에 특히 관심을 둔 이런 축제들은 개방적 접근방식을 타 장르 예술이나, 다른 관심사를 둔 사회 집단 등에도 적용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등의 중부 유럽에선 바다 대신 호숫가가 이러한 축제의 태반이 된다. 수평선과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호숫가에 사람이 모이고 음악이 흐른다. 자연과 음악, 때때로 지역 공동체가 어울려 만드는 유럽의 수변 클래식 음악 축제들을 소개한다.

 

 

MEDITERRANEAN

라벨로·토레 델 라고·망통

지중해 풍광을 배경 삼다

온화한 기후의 지중해(Mediterranean) 국가들은 탁 트인 바다를 배경 삼은 야외 공연을 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먼저 이탈리아 남부로 떠나보자. 나폴리만을 따라 펼쳐지는 아말피 해안은 거친 바위산이 파도와 부딪히며 깎아낸 절벽, 그 위에 장난감처럼 매달려 있는 마을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그중 라벨로는 버지니아 울프, 리하르트 바그너 등 많은 예술가를 사로잡은 예술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1953년 이래 라벨로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노을에 붉게 물든 바다와 해풍 타고 밀려오는 바다 내음, 이탈리아 대표 오케스트라들의 풍성한 음악이 어우러져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린다. 올해 축제에는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새 음악감독 정명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대니얼 하딩 등이 방문한다.

라벨로에서 해안가를 따라 이탈리아 북서부로 올라가면 작은 마을 토레 델 라고에 다다른다. 이곳은 푸치니가 30여 년을 살며 대표작들을 창작한 곳이다. 이 마을은 수천 년 전 지중해의 염분을 머금고 형성된 석호, 마사추콜리 호수에 맞닿아 있다. 이 호수와 그 뒤로 펼쳐진 광활한 소나무 숲, 아푸안 알프스산맥이 한 폭에 펼쳐져 푸치니 페스티벌의 무대가 된다. 1930년 출범한 축제는 오는 7~8월에 걸쳐 ‘토스카’ ‘투란도트’ ‘나비부인’ ‘라 보엠’ ‘마농 레스코’까지 작곡가의 대표작을 연이어 공연한다. 푸치니 음악 애호가라면, 축제와 더불어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 박물관, 작곡가 탄생지인 루카(이동 거리 약 30km)로 이어지는 ‘푸치니 투어’를 계획해 볼 수 있다.

토레 델 라고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 망통과 마주 본다. 망통 역시 매년 여름 망통 페스티벌로 낭만적인 한여름 밤을 연출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 음악 축제로, 고풍스러운 생 미셸 대성당 광장에서 열린다. 웅장한 성당 외벽이 무대 배경이 되고, 그 옆으로는 해안가 절경이 펼쳐진다. 광장은 200여 석이 겨우 들어설 정도로 작지만, 오밀조밀한 마을 특성을 살려 성당 맞은편 건물 베란다 등에도 좌석을 마련해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올해는 바이올리니스트 네만야 라두로비치,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 르노 카퓌송·키안 솔타니·후지타 마오의 트리오 등의 공연이 기대를 모으고, 하프시코디스트 쥐스탱 테일러가 베르사유 로열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선사하는 바로크 음악의 밤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WESTERN EUROPE

보덴호·킴제호·첼호

바다 닮은 호수를 품은 도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세 나라의 접점에는 보덴 호수가 있다. 약 6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큰 면적, 아름다운 풍광, 세 나라 문화의 용광로라는 지리적 특성은 다양한 축제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그중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벌은 보덴호를 스펙타클한 연출로 꾸며 늘 주목받는다. 올해는 작년 이곳에서 초연된 베버 ‘마탄의 사수’ 프로덕션을 다시 선보인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마을이 호수에 반쯤 잠겨 있거나, 사탄과 거래한 인물 카스파르가 깊은 물웅덩이에서 불에 휩싸이는 등 호수를 적극 활용해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독일 뮌헨 남쪽의 킴제 호수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의 첼 호수에서도 자연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축제들이 열린다. 헤렌킴제 페스티벌은 관객이 배를 타고 호수 위 헤렌 섬에 발을 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루트비히 2세가 머물던 궁전에서, 바로크 음악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듣는 특별한 경험이 이어진다. 매해 바로크와 고전 음악에 일가견 있는 단체들을 초청하는데, 올해는 콘체르토 쾰른,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등이 함께할 예정이다.

한편 첼암제 페스티벌은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가 큰 꿈을 안고 창립했다. 작은 호숫가 마을에 처음 등장한 클래식 음악 축제로, 젊은 음악가에게는 다양한 무대 경험을, 주민들에게는 풍성한 청취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축제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캠프와 마스터클래스 등으로 세계 각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첼 호수로 초대한다. 평화로운 자연의 한가운데서 동료 음악가들과 화합하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Western Europe

보덴호·발트해·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물 위에 피어난 화합의 선율

종종 바다와 호수는 국경을 나누는 자연 경계선으로 역할 한다. 하지만 이를 이웃 국가들의 만남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축제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보덴 호수 인근에서 열리는 보덴제 페스티벌이 그중 하나다. 이 축제는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리히텐슈타인 네 나라에 걸쳐 열린다. 지역 경계를 넘나들 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연극·무용·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협업을 독려한다.

2023년에는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음악과 문학, 타악과 무용 등의 긴장감 넘치는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는 한편, 방문객들이 국가 간 경계선을 체험할 수 있는 자전거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도, 4개국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착안해 ‘자유’를 키워드로 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발트해 페스티벌도 바닷길로 이어진 북유럽 국가들의 협업이 돋보이는 축제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자연, 기후 위기 등의 주제를 조명해 ‘해양’이라는 공동의 유산을 함께 지킬 방안을 고민한다. 매해 ‘발트해의 날’이 있는 8월의 마지막 주에 스웨덴 스톡홀름 베르발트홀에서 개최되며, 발트해 연안 국가들의 악단과 음악가들이 참여한다. 올해는 함부르크의 NDR엘프필하모니가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한편, 덴마크에 가까운 독일 최북단 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역에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축제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지역 공간을 활용해 관객에게 신선한 시청각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키엘 요트 클럽의 선착장이나, 평소 섬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배 선상 등에 무대가 마련되기도 한다. 관객은 해풍과 음악에 몸을 맡기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축제는 문화 사각지대였던 곳을 밝히는 셈이다.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월드뮤직·재즈 등 다채로운 장르를 아우르는 이 축제는 올여름 포커스 아티스트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와 또 다른 항구도시 이스탄불의 음악 유산을 관객과 나눌 예정이다.

박찬미(독일 통신원)

 


 

미국  역사를 쌓고 문화를 만든다

태평양 혹은 대서양, 그리고 강과 호수

 

거대한 대륙, 미국의 양 끝과 드넓은 오대호 연안을 따라가다 보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양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도시들은 그 물길을 따라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들고 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대서양과 태평양 바다를 둘러싼 뉴욕·샌프란시스코·시애틀, 내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미시간 호수 옆에 있는 시카고, 그리고 유서 깊은 항구 도시 보스턴까지 각 도시는 저마다 다른 물의 성격을 닮아 고유한 매력을 발산한다.

수변 풍경은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휴식과 레저의 장이 되고, 도시의 건축과 삶의 양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특징은 문화와 예술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서 펼쳐지는 야외 오페라, 보스턴 항구의 해양음악축제, 시카고의 미시간 호수 변에서 열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샌프란시스코 베이 주변의 수상 퍼레이드, 그리고 시애틀 워터프론트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페스티벌 등 물을 무대로 한 다채로운 예술 행사는 그 도시의 정체성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미국을 대표하는 다섯 해양·호수 도시를 둘러보며 이들이 어떻게 물과 함께 숨 쉬고, 그들만의 문화 예술을 길어 올리는지 살펴보자.

 

 

New York

뉴욕 강과 강 사이의 예술공간들

뉴욕은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을 따라 예술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카네기홀·링컨 센터 등은 그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특히 뉴욕에서 여름에 열리는 다양한 무료 야외 공연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뉴욕 필하모닉의 연례행사인 콘서트 인 더 파크(6월)는 센트럴 파크 그레이트 론을 시작으로 브롱스·브루클린·퀸즈·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열린다. 지휘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맡았다. 이 밖에도 24년째 이어지는 맨해튼 로어 웨스트사이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리버 투 리버 페스티벌은 5월부터 10월까지 강변과 항구 지역의 공간으로 확대되어 댄스, 음악, 연극, 퍼포먼스 등을 선보인다.

해양 도시로서 뉴욕의 역량을 보여주는 곳은 허드슨 강변의 버려진 부두를 예술 공간과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피어 57과 리틀 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허드슨 강을 따라 도시 경관을 보면서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공연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는 유서 깊은 항구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현대 미술 갤러리, 야외 콘서트 등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유치하여 물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동체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거대한 태평양을 닮다

샌프란시스코는 샌프란시스코만과 광활한 태평양을 배경으로 자유로운 예술혼을 불태우는 해양 도시다. 지휘자 김은선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샌프란시스코 발레는 도시 고전 예술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바다와 인접한 공연장들과 갤러리들이 많다. 피어 15에 위치한 익스플로라토리움은 과학 박물관이지만, 바다의 물리적 현상을 예술적으로 탐구하고 시각화하는 전시를 통해 해양 환경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7월 5일부터 6일까지는 36년의 역사를 가진 서부 해안 최대 규모의 재즈 축제인 필모어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45년째 이어지는 샌프란시스코 유대인 영화제는 7월 17일부터 8월 3일까지 다문화적 감성으로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또한 도시 중심을 흐르는 엠바카데로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공공미술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큐피드 스팬은 도시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Seattle

시애틀 해양과의 공존을 꿈꾸다

태평양과 연결된 거대한 해협과 워싱턴 호수를 품고 독특한 해양 환경을 가진 시애틀은 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시애틀 아쿠아리움은 해양 생물 보호를 주제로 한 전시와 함께 지역 원주민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인디저너스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순히 경관을 넘어 해양 생태계 보전과 공공 예술 설치를 결합하여 시민들에게 바다와 예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의 장을 만들어주었다. 물과 예술이 일상적으로 교차하며, 자연에서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예술적 형태를 창조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49년부터 시작된 아르고시 크리스마스 함선 축제는 11월 24일부터 12월 23일까지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배들의 퍼레이드에 배 안에서는 합창단의 공연이 울려 퍼진다. 물 위에서 들리는 음악은 시애틀 특유의 낭만적인 감성을 잘 드러내는 독특한 해양 문화예술 이벤트이다.

 

 

Boston

보스턴 전통으로 자리 잡은 문화

보스턴은 역사 깊은 항구 도시이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보스턴 발레단·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등이 대표적인 문화 단체이다. 특히 보스턴 티 파티 선박 박물관에서는 역사적인 해양 사건 전시와 더불어 배우들이 직접 재현하는 공연을 통해 과거의 해양 유산을 생생한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시킨다. 이밖에도 보스턴 항구워크를 따라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들은 항구의 역사와 현대 예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매년 독립 기념일 전후로 열리는 보스턴 하버페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연례 축제 중 하나로 7월 2일부터 4일까지 이어질 예정. 불꽃놀이부터 해상 퍼레이드, 해군 함정 공개, 그리고 다양한 공연과 예술 전시가 어우러져 도시의 해양 역사와 활기찬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Chicago

시카고 호수를 두고 펼쳐지는 음악

미시간 호수를 따라 형성된 시카고는 ‘내륙의 바다’를 끼고 있는 미국 중서부의 대표적인 문화 중심지이다. 이러한 자연 환경은 시카고의 예술적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호수 변에 위치한 밀레니엄 파크는 단순히 공원을 넘어 도시의 야외 갤러리이자 공연장 역할을 한다. 클라우드 게이트와 크라운 분수 같은 유명 공공미술 작품들은 호수의 풍경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해 준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심포니 센터에서 다채로운 정기 공연과 특별 콘서트를 선보인다. 또한 시카고 리릭 오페라는 시빅 오페라 하우스에서 품격 높은 오페라 프로덕션을 통해 시카고 예술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시간 호수를 배경으로 그랜드 파크 뮤직 페스티벌, 시카고 블루스 페스티벌 등이 열리며, 오는 8월 시카고 재즈 페스티벌이 도시를 재즈의 선율로 물들여 준다.

양승혜(뉴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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