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무지크페스트 & 뮌헨 무지카 비바 예술감독, 우리는 ‘새로움’으로 ‘전통’을 만들어가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8월 18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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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리히 호프

베를린 무지크페스트 & 뮌헨 무지카 비바 예술감독

 

우리는 ‘새로움’으로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독일 현대음악 중심부에서 작곡가 박영희 작품과 부산시향의 연주가 울려 퍼지기까지

 

 

올해 가을, 부산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 홍석원)은 독일의 두 축제 베를린 무지크페스트와 뮌헨 무지카 비바에 연이어 초청받았다. 9월 23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열리는 무지크페스트의 폐막 공연, 25일 뮌헨 무지카 비바의 특별 기획 ‘한국에서 온 손님(Zu Gast aus Korea)’은 유럽 중심부에서 한국 교향악단의 예술성과 현대성이 공인받았음을 상징하는 뜻깊은 자리이다. 두 공연의 지휘는 홍석원이 맡고, 베를린 공연에는 벤 킴(피아노), 뮌헨 공연에는 강별(바이올린)과 닐스 묀케마이어(비올라)가 협연자로 함께한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두 공연 모두 올해 80세를 맞은 작곡가 박영희의 음악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공연은 빈리히 호프 예술감독과 홍석원 부산시향 예술감독의 큐레이션 아래 이루어졌다.

동시대 음악과 역사적 통찰을 아우르는 두 플랫폼(베를린 무지크페스트와 뮌헨 무지카 비바)의 예술감독인 그는 아시아 음악과 유럽 페스티벌 간의 다리 놓기에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지난 7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주독일한국문화원의 해외주요인사 초청 프로그램으로 서울에 방문한 그를 만나 예술감독으로서의 철학, 한국과 아시아 음악에 대한 관심, 그리고 동시대 음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베를린 무지크페스트를 소개한다면?

베를린 무지크페스트는 매년 8월 말과 9월 초에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로, 베를린 필하모니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베를린 필하모니 재단(Stiftung Berliner Philharmoniker)과 협력하여 주최되는 축제로 1951년 서베를린에서 ‘베를린 페스트보헨(축제주간)’으로 시작되었고, 2004년 개편되어 지금은 베를린 무지크페스트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계기로 무지크페스트의 예술감독을 맡게 되었나?

요아힘 자르토리우스(1946~)는 2001~2011년에 무지크페스트 총감독이었는데, 2005년에 내게 예술감독직을 맡겼다. 당시 무지카 비바의 예술감독을 맡아 현대음악과 동시대음악을 프로그래밍하던 나를 인상 깊게 보고 권유했다. 베를린 무지크페스트에 오르는 ‘유명한 악단’들과 함께 ‘덜 유명한 음악’(현대음악)들을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현대음악으로 잇는 베를린과 뮌헨

2023년 베를린 무지크페스트가 열린 베를린 필하모니 ©Fabian Schellhorn

현재 베를린 무지크페스트와 뮌헨 무지카 비바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탁월한 운영 능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겸직이라 생각되는데, 음악을 시작하여 예술행정가로 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나 역시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나의 실력은 충분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음악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공연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이 내게 타고난 능력처럼 잘 맞았다. 학창 시절, 무대에 서기 위해 직접 연주회를 조직하며 몸으로 익히며 배운 셈이었다.

2006년부터 무지크페스트를, 2011년부터 무지카 비바를 이끌면서, 둘 사이에 오가는 시너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무지크페스트는 오케스트라를 포커스하는 페스티벌이고, 무지카 비바는 시즌 동안 펼쳐지는 공연 시리즈다. 무지카 비바는 전후(戰後) 독일에서 현대음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작곡가들의 최신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신작 초연이 자주 이뤄진다. 반면 베를린 무지크페스트는 오케스트라라는 단체에 중심을 두고 있다. 베를린필이 무지카 비바에 초청되는 등 두 축제는 지속적으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도시와 오케스트라 간의 지속적인 교류를 촉진하고, 현대음악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두 음악의 장을 이끌어오면서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었고, 202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은 사이먼 래틀은 현대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가 중심이 되어 세 개의 오케스트라와 세 명의 지휘자가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연주하는 슈톡하우젠의 ‘그루펜’(1958)을 2008년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의 비행기 격납고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다. 축제의 일환이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이 함께 했고 사이먼 래틀과 그의 제자 대니얼 하딩, 마이클 보더가 지휘를 맡았다. 세 오케스트라와 마주한 관객은 좌석을 바꿔가며 다양한 음향적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지크페스트는 10여 년 전부터 르네상스나 바로크 음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간의 층위가 완전히 다른 ‘지금의 음악’과 ‘과거의 음악’을 함께 놓고 보며 음악의 다양성을 느껴보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2019년 바로크 음악의 권위자 존 엘리엇 가디너(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와 함께한 몬테베르디 오페라 시리즈(오르페오·율리시스의 귀환·포페아의 대관식)였다.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유럽에서 주목받는 한국음악과 함께

박영희(1945~) 서울대 졸업,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 수학. 독일 최초의 여성 작곡가 교수로 브레멘 국립대 주임교수로 임명되었고 부총장을 역임했다. 1995년 여성예술가상 수상, 2020년 베를린 예술대상 여성 최초 수상자이자 전부문 최 초 동양인 수상자이다.

부산시향의 베를린과 뮌헨 공연이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은 박영희(1945~)의 작품이 오른다는 점이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박-파안 영희(Younghi Pagh-Paan Park)’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녀는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작곡과) 졸업 후 197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나 클라우스 후버, 브라이언 퍼니호 등 현대음악 거장들을 사사했다. 빈리히 호프는 “전후(戰後) 독일의 현대음악계는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여성 작곡가들이 자신만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며, “이런 독일의 상황이 변화하게 된 데에는 박영희의 존재와 공헌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영희는 아시아인이라는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가지며 이중적 타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국에서 습득한 문화와 양식들을 혼합해 고유한 음악 어법으로 발전시킨 그녀는 브레멘 국립대 작곡과 주임교수로 임명되고, 1994~1998년에 부총장직을 역임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작곡가 교수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독일어권 음악대학 작곡과 정교수로는 처음 임용된 여성”으로 기록된 박영희는 1995년 하이델베르크시로부터 여성예술가상 수상, 2020년 베를린 예술대상(독일예술원) 여성 최초 수상자이자 전부문 최초 동양인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번 베를린·뮌헨 연주에서 중심을 이루는 3개 작품 ‘소리’(1980),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2023), ‘높고 깊은 빛’(2011)은 박영희의 대표작으로, 각각 소리의 근원, 성경적 존재론과 여성의 아픔, 빛의 영성과 상승적 미학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 곡들은 이어지는 메시앙의 ‘4개의 명상곡’ 및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과 조화를 이루며, 동서양의 초월적 사유가 교차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올해 무지크페스트는 피에르 불레즈의 탄생 100주년, 90세를 맞은 아르보 패르트와 헬무트 라헨만, 80세를 맞은 박영희 등 그들의 인생과 함께 하는 현대음악에 많은 신경 쓰고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도 창단 75주년을 기념하고자 무지카 비바(2024/25 시즌)에서 베르나르트 랭(1957~)의 ‘라디오 루프’를 초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음악과 동시대 작곡가들에게 열정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베토벤은 브람스의 전통이고, 브람스는 쇤베르크의 전통이고, 쇤베르크는 볼프강 림의 전통이다. 고전음악이 갖는 전통을 유지하려면, 그것을 ‘전통’으로 보이게 하는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내야 한다. 따라서 현대음악과 오늘날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늦춰선 안 되고, 작곡가들이 고인이 되었을 때는 이미 늦다. 음악은 미술과 달리 역사 속에 레퍼토리로 정착할 때까지 재연을 거듭하며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한다. 연주자나 단체들이 작품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무지크페스트와 무지카 비바는 이러한 안착을 위한 기회를 마련해주는 장이다.

한국에 많은 교향악단이 있는데, 부산시향과 함께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지크페스트와 무지카 비바의 프로그램을 놓고 이정일 온;아티스트(on;Artist) 기획실장과 함께 한국의 악단을 탐색했다(이번 공연은 무지크페스트·무지카 비바 공동 주최, 온;아티스트가 주관).그는 내게 국립국악원이나 한국의 오케스트라 문화와 특징에 관해 훌륭한 정보를 제공하며 호흡을 함께 맞춰온 동료다. 부산시향에 초청 제의를 했을 적에도, 준비해야 할 현대음악 곡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의 초청에 응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독일에서 윤이상이 남긴 음악적 유산과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박영희에 대한 독일과 유럽 음악계에서의 평가도 궁금하다.

윤이상(1917~1995)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에 아시아의 음악으로 유럽 음악사에 새로운 문을 연 예술가다. 그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가 음악으로 새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윤이상의 다음 세대인 박영희는 독일에서 활동한 첫 한국여성 작곡가이다. 공통적으로 그들의 활동과 정착은 독일과 유럽 음악계가 새로운 음악을 갈구하고 있을 때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박영희는 1980년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소리’를 초연하며 유럽은 물론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축제는 1921년에 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음악제이다.

박영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견해는 어떤가?

남성 작곡가의 틈에서 여성 작곡가로서 눈에 띄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음악가 이전에 인간적인 따듯함과 매력이 많았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박영희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과 개성이 있다. 그것은 본인의 음악언어일 수도 있겠고, 그 안에 녹아 있는 민족의 소리일 수 있겠다. 단순한 소리로 표현되었어도, 그 내면을 상상하고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전통과 오늘의 음악을 찾아서

종묘제례악 같은 한국의 전통음악과 요소는 윤이상의 ‘예악’을 비롯해 오늘날의 한국 작곡가들에게 중요한 영감과 소재가 되고 있다. 2022년 무지크페스트에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악’ 공연을 직접 초청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큐레이션의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예술과 마주할 때, 그것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그로부터 겪는 혼돈과 혼란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알던 예술을 달리 보게 하고, 익숙한 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슈톡하우젠, 메시앙, 스트라빈스키 등도 예술은 항상 변해야 하며, 그러한 예술과 마주한 청중의 생각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르고, 낯선 문화가 갖는 힘이다. 2022년 무지크페스트에서는 종묘제례악은 물론 몬테베르디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새로움과 혼란이 축제를 물들인 시간이었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선과 시각을 제공하고 싶었다.

최근 한국의 문화가 유럽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목 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나 예술이 있다면 무엇인가?

종묘제례악, 박영희와 부산시립교향악단 등 한국의 예술에 관심이 많다. 나 역시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러면서도 한국문화에 관한 많은 것을 공부하려고 노력한다. 한국과 교류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번 프로젝트가 제발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하려고 한다. 한국의 현대음악이든, 전통음악이든.

송현민(편집장) 사진 베를린 무지크페스트·뮌헨 무지카 비바·온;아티스트(on;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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