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19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대금연주자 임재원
소리의 길, 삶의 길
글 임재원(1957~) 서울대 음대, 한양대 대학원,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국립국악원 단원, KBS국악관현악단의 차석·수석을 역임했으며, 실내악단 어울림 동인,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지휘자, 대금연구회 이사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국립국악원장 등을 역임했다. 목원대·서울대 교수 역임 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금의 첫 숨결
#‘청성곡’ #삶의 방향성을 일깨워준 곡
김성진(대금)
감상 포인트 김성진 명인의 유려하고, 장쾌한 대금 음색을 느낄 수 있는 곡
어린 시절 저는 노래를 좋아해 합창단 활동도 하고, 풍금도 곧잘 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국악은 낯선 세계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중·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면서 처음 국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대금을 전공 악기로 배정받았을 때도 국악이 무엇인지, 연주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막연함을 단번에 걷어낸 음악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금 독주곡 ‘청성곡’입니다.
197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녹성 김성진(1916~1996) 선생님의 ‘청성곡’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였습니다. 대나무 관에서 울려 퍼지던 낮고 무거운 음색이 어느 순간 높고 맑은소리로 바뀌며, 극장 안의 답답한 공기마저 청량하게 느껴졌습니다. 힘 있고 꿋꿋하게 한 음을 길게 뻗다가 장식음을 붙여 마무리하는 선율은, 시원하고 장쾌하게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 이게 국악이구나!’ 그 순간, 목적지가 생겼고, 길이 보였으며, 삶의 방향이 그려졌습니다.
‘청성곡’은 전통 가곡 ‘태평가’의 선율을 변주한 기악곡으로, 높은 소리를 맑고 청청하게 뽑아내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박자의 일정한 구분 없이, 호흡과 흐름에 따라 연주자의 역량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 고난도의 기량을 요구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저의 스승이신 김성진 선생님은 대금 정악에 탁월한 명인으로, 유려한 음색을 긴 호흡에 담아 갈대청의 울림을 담백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학교에서 ‘청성곡’을 연습할 때면, 그 일대 산으로 퍼져 나가던 대금 소리가 스승의 귀에 닿기를 바랐던 어린 마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손끝으로 새긴 선율
#한주환 #대금산조 #산조의 매력을 알게 해준 곡
한주환(대금)
감상 포인트 점점 빨라지는 속도감 속에서 대금의 다채로운 음색과 농음을 느낄 수 있는 곡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정가의 명인 김호성 선생님께 대금산조가 담긴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한주환(1904~1966) 명인의 대금산조가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테이프 돌아가는 잡음을 뚫고, 우렁찬 대금 소리가 거침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양조의 우조 선율은 역취에서 저취, 다시 평취로 높고 낮은 음역을 바꿔가며 계면조로 이어졌고, 깊은 농음이 더해지며 극적인 긴장감이 고조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장단이 빨라지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허공을 운지하며 따라갔고, 얼른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조는 악보 없이 구전심수로 전해지는 음악입니다. 초기 연주에는 즉흥성이 살아 있어, 같은 연주자라도 녹음 시기에 따라 선율이 달라집니다. 한주환 명인의 산조도 전해지는 음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제가 받은 테이프에는 알고 있던 한주환류 산조보다 훨씬 많은 선율이 담겨 있었습니다. 재생 버튼과 되감기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며 30분 남짓한 연주를 오선보로 채보했습니다. 채보를 모두 마쳤을 때는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완성한 악보를 보며 다시 음악을 들었을 때,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귀로만 들었을 때는 알 수 없던 산조의 구성 원리가 악보를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나며 명료하게 이해됐기 때문입니다.
산조는 연주자가 곧 작곡가이기도 한 음악입니다. 한주환 명인은 대금산조의 창시자이자 스승이었던 박종기(1880~1947)의 산조에 새로운 가락을 더하고 악장을 추가해 자신만의 대금산조를 완성했습니다. 느린 장단에서 점점 빨라지며 청(중심음)과 조를 변화시켜 악절을 만들어가는 산조는 국악 속 자유로움의 상징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게 하고, 개성 있는 해석을 고민하게 하는 음악이죠. 처음 산조를 배운 이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조는 매번 다른 질감과 감동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이 산조의 가장 깊은 매력입니다.
음악이 깊어진 순간
#이상규 #대금협주곡 ‘대바람소리’ #음악으로 마음을 나눈 소중한 인연
박상후/국립국악원 창작악단(협연 임재원)
권성택/국립국악원 창작악단(협연 임재원)
감상 포인트 대금과 국악관현악으로 섬세하게 묘사되는 신석정의 ‘대바람소리’ 시정
창작 음악에 갈증을 느끼던 저는 1985년, KBS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되자 그곳으로 이직했습니다. 당시 초대 상임지휘자였던 이상규(1944~2010) 선생의 지휘로, 그의 작품 ‘대바람소리’를 관현악단과 협연했던 첫 순간은 지금도 제 음악 인생에서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바람소리’는 1978년 대한민국작곡상 대통령상을 받은 대금협주곡의 대표적인 명곡입니다. 신석정의 시 ‘대바람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이 곡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해탈에 이른 장자풍의 정취를 노래한 곡으로,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단악장 협주곡입니다. 첫 단락은 느린 템포의 현악 도입부로 시작해, 대금이 깨끗하고 절제된 선율로 첫 번째 카덴차를 연주합니다. 관과 현이 섬세하고 정중하게 대응하면서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창을 두드리는 대나무를 스친 바람소리와 서실(書室)에서 한가로이 삶을 관조하는 화자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락에서는 대금과 관현악이 서로 조우하듯 가락을 주고받으며 시의 청각적 이미지는 물론, 관조적 삶이라는 철학적 이상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 곡을 협연했습니다. 음향적으로는 최근 연주가 훨씬 훌륭할지 모르지만, 이상규 선생의 지휘 아래 처음으로 이 곡을 연주했을 때의 감동은 남다릅니다. 당시 저희는 국악관현악단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 음색과 음향의 균형, 협연자와 관현악 간의 이상적인 앙상블, 작품 해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지음(知音)이라고 합니다. 이상규 작곡가는 저의 스승이자, 한편으로는 음악적 지음이기도 하셨습니다. 음악이 제게 다가온 순간은 찰나였지만, 그 짧은 순간 덕분에 제 삶과 인연이 충분히 영글고 무르익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