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 부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8월 1일 9:00 오전

WORLD HOT_REPUBLIC OF KOREA

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부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 6.21~28

예술을 향한 항구 도시의 꿈

 

예술감독 정명훈이 이끄는 6일간의 축제. 새 공연장을 찾은 관객의 반응은?

 

지난 6월, 드디어 부산콘서트홀의 문이 열렸다. 부산에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 역사의 첫 장이 펼쳐진 순간이기도 했다. 그 시작은 뜨거웠다. 개관 페스티벌은 스타 연주자들이 함께하며 대부분 매진을 기록했고,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또 하나의 빈야드 스타일 공연장 혹은 오르간 설치 공간 탄생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이제 막 태어난 콘서트홀의 생존 여부는 현장의 관객이 쥐고 있다. 지역의 공연장은 그 지역 시민의 사랑을 먹어야 자라는 법. 2027년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까지 앞둔 지금, 과연 부산 시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공연예술을 품어내고 있을까. 자신들의 터전에 새롭게 들어선 ‘건물’을 구경나선 이들은, 한 번 더 ‘공연장’을 찾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을까. 새 공연장, 그리고 이곳을 방문할 관객들의 표정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개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공원을 품은 ‘포도밭’ 공연장

부산콘서트홀에 도착하면 푸른 바다 대신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산시민공원 내에 있기 때문. 덕분에 공연장은 넓은 공원을 제 앞마당으로 쓸 수 있다. 위치의 이점을 활용해 공연장 입구는 지면과 같은 높이로 연결되어 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의례 걸어 올라갔던 계단이 필요하지 않다.

로비로 진입하면 콘서트홀 2,011개의 객석이 지하 1층으로 이어져 있다(챔버홀은 400석 규모). 로비에선 콘서트홀 안을 볼 수 있는 유리 벽이 눈에 띈다. 콘서트홀 건축 소재로 유리라니. 관객의 접근성을 우선순위에 둔 철학이 엿보인다. 음향적 문제는 삼중으로 포갠 유리를 이중으로 배치하고, 흡음 보드를 설치해 해결했다.

콘서트홀 내부는 붉은색 의자, 촘촘하게 벽돌을 쌓은 듯한 벽 무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3개의 구역으로 객석이 나뉜 빈야드 스타일이다. ‘포도밭’이라는 뜻의 빈야드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서 유행하는 형태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터전인 베를린 필하모니가 1963년 개관하며 빈야드 스타일 유행에 불을 지폈고, 함부르크 항구의 랜드마크가 된 엘프필하모니 역시 오늘날까지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빈야드 스타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미묘한 기대감이 더해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무대를 둘러싼 빈야드의 객석 형태는 연주자와 관객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을 줄인다. 부산콘서트홀 역시 무대가 가깝게 느껴진다. 2,000석이 넘는 공연장임에도 무대의 크기나 공연장의 앞뒤 거리가 그리 크지 않다. 친절하고 아늑한 공간. 부산콘서트홀이 주는 첫인상이었다.

 

부산을 넘어, 국제적 위상을 꿈꾸며

6일간의 개관 페스티벌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부산콘서트홀·부산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하는 ‘클래식부산’의 예술감독 정명훈이 선봉에 섰고, 그가 1997년 창단한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가 뒤따랐다.

개관 첫날인 6월 21일에는 베토벤 3중 협주곡(협연 정명훈(피아노)·사야카 쇼지(바이올린)·지안 왕(첼로))과 교향곡 9번 합창이, 다음날인 22일에는 피아노 협주곡 5번(협연 조성진),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협연 조재혁) 등의 연주가 콘서트홀에서 이어졌다.

챔버홀에서도 이구데스만&주의 패밀리콘서트(21·22일), APO 단원들의 실내악 공연(23·25일)이 이어졌으며, 27·28일에는 베토벤 ‘피델리오’의 콘서트 오페라 버전이 콘서트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개관의 화제를 모은 것은 연주자뿐만이 아니었다. 예술감독 정명훈이 최근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으로도 선임되며 밀라노와 부산의 교류를 기대하는 시선도 커졌다. 이에 부응하듯, 개관 첫날 라 스칼라 극장의 신임 감독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가 부산을 찾아 인터뷰에 응했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오페라하우스의 성공적 운영 비결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도시의 시민들이 공연장을 ‘우리의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명훈도 부산과 밀라노 극장 간의 교류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며 “오페라는 1년 반, 2년 정도 앞서 준비하는데, 2027년 시즌 공연을 두 극장 동시에 기획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제작 노하우와 인력 등을 공유한다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대, 부산의 자부심이 되어라

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8.28), 브라이언 레거스터(좌)·흐라추히 바센츠(우)

기자의 공연 관람 일은 28일. 정명훈의 지휘 아래 베토벤 ‘피델리오’가 무대에 오르는 날이었다. 공연 앞뒤로 관객들의 들뜬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삼삼오오 가족들이 콘서트홀 밖에서 “엄마아빠, 여(여기) 서보세요. 하나둘, 셋!” 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나, 인터미션에 공원 앞 벤치에 앉아 “그니까 이 여자(마르첼리네)는 야(레오노레)가 남자인 줄 알고 좋아했다 이 말이가?”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이날 공연은 공연장을 처음 찾는 이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완성도를 갖췄다. 정명훈이 이끄는 APO는 서곡에서부터 각 악기군이 가진 앙상블을 자랑했다. 금관의 음향이 풍성했고, 반대로 현악·목관 악기 군의 소리는 질감 하나하나까지 느껴질 만큼 선명했다. 오케스트라 음색의 뚜렷한 방향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레오노레(흐라추히 바센츠 분)를 남자인 피델리오로 착각해 사랑하는 마르첼리네 역의 소프라노 박소영, 마르첼리네의 아버지 로코 역의 베이스 알베르트 페센도르퍼가 콘서트홀을 장악하며 만족감을 선사했다. 감옥 소장 돈 피차로로 분한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은 극의 흥을 끌어올리는 연기로, 객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따뜻한 박수를 받은 것은 정명훈이었다. 오페라를 이끄는 그의 솜씨는 단연 노련했다. 연이은 커튼콜에서는 극 중 사용된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객석의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오페라와 발레 모두 획기적이고 새로운 작품 제작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시민 모두가 사랑할 ‘부산의 예술가’가 필요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부산 시민이 한마음으로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듯, 공연장을 기점으로 이들이 문화예술에 애정을 가진다면 수도권 부럽지 않은 부산만의 공연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지역을 기반으로 사랑받는 오페라 가수, 발레 무용수가 탄생할 수 있다면! 이날, 좋은 공연에 열렬히 화답하며 흠뻑 음악에 빠진 관객들의 모습에서 부산콘서트홀의 긍정적 미래, 희망이 엿보였다.

허서현 기자 사진 클래식 부산

 

 

PERFORMANCE INFORMATION

백혜선 피아노 독주회

8월 7일 오후 7시 30분 부산콘서트홀

 

국악 칸타타 ‘흘; 들풀처럼, 불꽃처럼’

8월 15·16일 부산콘서트홀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합창단

9월 12일 오후 7시 30분

 

부산콘서트홀 정명훈/라 스칼라 필하모닉(협연 니콜라이 루간스키)

9월 18일 오후 7시 30분 부산콘서트홀

 


 

REVIEW

제14회 부산사람이태석기념음악회 7.2

 

콘서트홀 오르간의 가치

부산사람이태석이태석기념음악회

부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이 계속되던 초여름, 홀 최초의 대관 공연이 열렸다.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이기도 한, 이태석 신부(1962~2010)를 기리는 오충근/부산심포니의 음악회였다. 새롭게 문을 연 콘서트홀이 반가워 연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 있던 청중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의료 봉사활동을 하던 이태석 신부의 영상에 숙연해졌다.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은 금관의 첫 3음부터 달랐다. 훨씬 풍성하고 여유로운 소리가 났다. 그와 대비되는 플루트의 가녀린 음이 잘 들렸다. 대조적인 다이내믹의 표현이 탁월했다. 가녀린 고음현과 중저역음의 분리도도 좋았다. 하프 소리도 옆에 있는 것처럼 잘 들렸다. 총주가 묵직하면서도 끝이 산뜻했다.

다음으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명장면들이 1부를 수놓았다. 뭉근하고 비극적인 전주곡에 이어서 소프라노 황신녕이 질다로 분해 ‘그리운 이름이여’를 불렀다. 플루트의 청아함과 악장 김주영의 바이올린 소리가 드러나는 가운데 기교적인 고음으로 인상을 남겼다. ‘신하들아’에서 리골레토로 분한 바리톤 안세범은 안개에 싸인 듯한 저음을 선보였고, 이중창 ‘말해봐 우리뿐이야’는 베르디 오페라의 어둡고 멋진 측면을 부각했다. 내년 말 모습을 드러낼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의 공연들이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2부에서는 알렉상드르 길망(1837~1911)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1번이 부산 초연됐다. 드디어 부산콘서트홀의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연주자가 앉은 오르간 콘솔은 협연자들이 서는 지휘자 왼쪽에 있었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무대 중간이어서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의 4단 건반 타건과 발 움직임이 자세히 보였다.

오르간이 단단한 소리로 오케스트라를 리드했다. 신동일은 발놀림으로 묵직한 저음을 내고 손으로 선명한 고음을 만들며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2악장에서 오르간의 서정적인 푸가에 이어 관현악이 시작될 때도 단단한 저음을 만끽할 수 있었다. 3악장은 신동일의 손과 발 하나하나가 1대1로 대응하는 명료함으로 다가왔다. 격렬한 악구를 소화하며 오케스트라와 오르간,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어우러지고 대립했다. 대립과 긴장을 아우르는 조화의 모습이 형언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음악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길망 교향곡 1번 오충근/부산심포니(협연 신동일)

마무리 후 지휘자 오충근이 객석을 돌아봤다. “부산콘서트홀이 개관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클래식 부산 박민정 대표를 비롯해 많은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할 때는 감격에 겨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초기 자문에서부터 참여했던 그는 박형준 부산광역시 시장에게 홀의 오르간 설치를 강력히 건의했던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

앙코르가 시작됐다. 뒤편 상단의 오르간 석에서 신동일이 연주했고 황신녕과 안세범이 좌우에서 프랑크 ‘생명의 양식’을 노래했다. 전자식 콘솔 연주뿐 아니라 기계식으로 조작하는 오르간 연주도 들을 수 있었던 이날의 관객은, 부산콘서트홀의 탄생을 지켜보고 진화를 경험하는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부산심포니

 

PERFORMANCE INFORMATION

오충근/부산심포니(협연 신동일)

9월 2일 오후 7시 30분 부산콘서트홀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