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성재·작가 김하나, 별이 되어 돌아온 대구의 유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8월 1일 9:00 오전

LIVING MEMORY

 

작곡가 김성재·작가 김하나

별이 되어 돌아온 대구의 유산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구오페라하우스에 민족시인 이육사를 품은 ‘264, 그 한 개의 별’이 오른다

 

김성재

오페라 ‘264, 그 한 개의 별’은 대구오페라하우스 ‘카메라타 창작오페라 연구회’의 산물이다. 카메라타 창작오페라 연구회는 오페라를 통해 우리나라와 대구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2023년 이곳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된 ‘264, 그 한 개의 별’은 다음 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전막으로 무대에 올랐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시인 이육사(1904~1944)의 삶과 시를 소재로 한다. 제목의 ‘264’는 그의 수감 번호에서 비롯된 것.

오는 8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이 오페라가 다시 대구 무대에 오른다. 오페라의 작곡가 김성재, 대본을 쓴 작가 김하나와 이메일로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도시가 품은 ‘우리 이야기’

오페라가 창작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성재 16세기 피렌체의 ‘카메라타’ 정신을 계승해,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오페라 제작을 목적으로 구성한 모임 ‘카메라타 창작오페라 연구회’에서 작곡된 작품입니다. 네 명의 작곡가 중 하나로 참여했죠. 극작가 또한 네 명이었는데, 그중 이육사 선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둘, 혹은 셋의 인격체로 나타낸다는 김하나 작가의 대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학창 시절 감명 받은 이육사의 시 ‘광야’도 떠올랐습니다. ‘이 오페라를 쓰기 위해 그 시절 그렇게 큰 감동을 받게 됐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작곡을 시작하게 됐죠.

김하나

극본을 쓴 입장에서, 이육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하나 그의 시와 산문, 삶을 접하면서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깊은 경외를 느꼈습니다. 이육사의 문학은 단순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시대를 살다 간 한 영혼의 고백이자 의지였어요. ‘이육사’라는 이름이 가진 강인함과 고결함, 그리고 그가 남긴 시 한 편 한편에 스며든 절절한 소망을 무대 위 음악과 노래로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그간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고유의 오페라를 창작, 발표해 왔습니다. 이러한 오페라들의 의의가 무엇일까요?

김하나 오페라는 한 도시가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술입니다. 대구는 그간 역사와 인물, 서사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묵묵히 이어왔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시간에 대한 예술적 성찰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오페라는 우리의 언어, 감정, 삶의 고민이 담긴 ‘우리 이야기’이며, 이는 곧 도시의 정체성과 예술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행위입니다. 다양한 창작 활동이 대구를 더욱 풍요로운 문화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실존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법

오페라 속 주인공 이육사는 ‘투쟁 이육사’나 ‘문학·남편 이육사’ 등 여러 개체로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설정을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하나 사람은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누구나 그 안에 여러 얼굴이 존재합니다. 사회 속의 나, 혼자일 때의 나. 그때마다 말투도, 태도도 달라지죠. 하여, 여러 이육사를 설정했습니다. 그는 시인이었고, 독립운동가였으며,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했죠. 그 안엔 용기 있는 모습이나 흔들리는 마음, 때론 외로운 인간적인 모습도 있었을 겁니다. 다양한 얼굴을 각기 다른 존재들로 나누어 표현하고자 했어요. 서로 다른 이육사가 표현될 때, 그의 진짜 모습이 완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떤 구조인가요?

김성재 극적 상황 위에 기초한 오페라입니다. 1막부터 4막까지 모두 교도소 안이 배경이며, 이육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번민과 회상을 여러 캐릭터로 그려내죠.

김성재 작곡가께선 대구의 인물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작품 ‘청라언덕’(2012)을 이미 선보인 바 있죠. 기존의 작품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김성재 ‘청라언덕’은 당시 201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었습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작곡가 박태준과 그의 형 박태원(민족시인 이상화와 절친했던 사이로, 외국민요를 번안해 알렸고 독창회를 개최할 정도로 성악적 열정이 큰 인물), 현제명, 김태술, 추애경, 그리고 유인경(실존 인물인지 정확하지 않음)과 같이 실존 인물들이 대구라는 한 지역에 같이 살고 있었다는, 마치 드라마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합니다. 특히 박태준의 가곡 ‘동무 생각’과 문학적·음악적 측면에서 상호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대본을 따라 수채화처럼 다소 가볍게, 계절의 흐름같이 흘러가는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죠. 반면 ‘264, 그 한 개의 별’은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급변 구간도 많고,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해 상반된 성격의 표현과 혼재된 심리적 구간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깊은 내면에 집중해야 하는 음악들이죠.

 

오페라가 마음에 물드는 시간

대구오페라하우스 ‘264, 그 한 개의 별’

가장 추천하고 싶은 한 장면을 꼽는다면요?

김성재 3막 2장에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이육사의 부인 안일양의 아리오소, 여성합창과 ‘투쟁 이육사’의 등장, ‘문학·남편 이육사’와 안일양의 레치타티보와 2중창, ‘투쟁 이육사’ ‘문학·남편 이육사’와 안일양의 3중창이 이어지죠. 교도소 철문을 나오며 안일양이 피로 물든 옷을 가슴에 안고 부르는 소박한 아리오소 ‘내 님의 흰 저고리 붉은 꽃 피었네’가 여성합창과 3중창으로 확대되어 막을 내리는 흐름입니다. 특히 이육사와 안일양 부부의 2중창은 작품 전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들의 대화와 노래를 통해 한국 특유의 정서를 쉽게 전달합니다. 특히 안일양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고초는 오직 그 당시 한국 여성만이 가진 모순된 표현인 ‘아무 걱정마오’로 노래되어, 정작 이육사 자신보다 더 깊은 슬픔을 노래로 표현합니다. 이 부분의 음악적 서사는 3년간 안일양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윤경의 해석과 연주로 완벽히 재현되기에, 제게는 이육사 선생에 대한 강한 슬픔과 연민으로 특별히 기억되는 장면입니다.

김하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동명의 이육사의 시가 있는데요, 그의 시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별’을 노래하고자 하는 마음의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그 별은 그가 간절히 바라던 독립된 나라, 자유로운 세상, 새로운 내일의 상징이었죠. 특히 이 장면은 웃음과 해학, 그리고 눈물과 절절한 고백이 한데 어우러져 이육사의 삶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이 때의 별은 이육사의 고해이자 누군가의 희망이며, 더 나아가 모두의 시작이길 바라는 마음이라 생각해요.

오늘날의 오페라가 대중에게 어떠한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나요?

김성재 오페라가 대중과 다소 멀어지는 장르가 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작품의 지속적 공연과 새로운 작품의 발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문화 향유와 지역사회, 국가적 차원에서의 한국적 오페라 창작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우리’라는 국민적 일체감이 지금까지 그나마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중적 무대 예술은 급성장했지만, 오페라는 위축된 모습이죠. 향유 대상자의 세분화에 따른 새로운 소재의 한국어 창작 오페라 작곡, 청중의 관심과 선호도에 따른 다양한 연출과 기획을 시도한다면 대중에게 의미 있는 장르로서의 오페라가 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손수연(오페라 평론가)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김성재(1969~) 경북대를 졸업하고, 대구국제현대음악제·서울국제음악제 가곡과 실내악의 밤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1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페라 대상을 받았고, 대구시립교향악단·대구음악제·창원시립예술단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현재 경북대·창원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며, 대구작곡가협회 이사다.

 

김하나(1985~) 문화공동체대가야·극단 난연의 대표. 오페라 ‘윤심덕, 사의 찬미’ ‘왕평’, 뮤지컬 ‘왕의 나라’ ‘선인장 꽃피다 시즌1, 2’를 썼다. 연극 ‘호야, 내 새끼’로 2012년 나눔연극제 희곡상, ‘백봉-죽다’로 2020년 울산연극제 희곡상을 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대구오페라하우스 ‘264, 그 한 개의 별’

8월 20~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작곡 김성재, 작 김하나/이동신(지휘), 디오 오케스트라·대구오페라콰이어·극단 늘해랑/테너 권재희·노성훈(투쟁 이육사), 소프라노 이윤경·김진솔(안일양), 바리톤 김승철·제상철(문학·남편 이육사) 외/표현진(연출)

 


 

PREVIEW

 

광복(光復), ‘빛’(光)을 되찾은(復) 감동을 기억하며

광복 80주년 기념 문화행사들

 

서울시향 광복 기념 음악회

8월 15일, 광복(光復). 어두운 역사의 터널을 지나, 빛나는 자유를 되찾은 이날을 기념한 지 80년. 이 뜨거운 8월이 되면 우리는 과거의 투쟁을 기리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오늘날 지켜나가야 할 가치를 묻는다. 이를 위해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치유와 기억, 화합의 행위에 동참한다. 지난 역사 속 광복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조명 아래 다시 반짝일 오늘날의 ‘빛’으로 기억하는 공연 현장들을 소개한다.

우리의 광복과 광장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광화문 광장에선 광복절 전야음악회 ‘8.15 SEOUL MY SOUL’(8.14/광화문 광장)이 열린다. ‘조선팝’을 주제로 한 무료 음악회에선 타악그룹 타고·서도밴드·유희스카·악단광칠·송가인이 출연해 자유로운 흥을 돋운다. 한편, 서울문화재단은 도심 곳곳을 태극기로 꾸며낸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8.9~17)의 라이브하우스 건물 외벽은 1919년 제작된 것으로 추적되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 래핑 전시로 꾸며지며, 야외 노들스퀘어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 ‘데니 태극기’부터 시대별로 변화해 온 16개의 대형 태극기가 연대순으로 전시될 예정. 대학로에선 서울과 중앙아시아 예술인이 공동 창작한 뮤지컬 ‘열차 37호’(8.14·15/대학로극장 쿼드)가 오른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가졌던 독립에의 의지를 기억하는 뮤지컬이다.

음악가들은 한데 모여 화합과 평화를 노래한다. ‘국립극장 광복 80주년 기념음악회-화합’(8.20/국립극장)은 홍석원의 지휘 아래 1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부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른다. 국립합창단(8.21/예술의전당)은 안중근을 그린 뮤지컬 ‘영웅’의 주요 넘버를 대규모 합창 편곡으로, 부산시립합창단(9.18/부산문화회관)은 ‘아리 아라리’ ‘밀야의 전설’ ‘진도의 소리’ ‘별을 헤며’ 등 우리나라 30여 종의 아리랑을 집대성한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모은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광복의 얼을 기리는 데에는 전통음악이 앞장선다. 국립국악원 ‘빛을 노래하다’(8.14·15/국립국악원)에선 연희무대부터 판소리 ‘열사가’, ‘진도씻김굿’을 비롯 윤동주의 시에 구이임이 노래를 붙인 ‘새로운 길’, 그리고 임동창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까지 우리 가락의 노래들을 한자리에 오른다. 예술감독 김성진이 이끄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8.23/경기아트센터)는 ‘빛이 된 노래’를 제목으로 아리랑·애국가 모음을 재구성한 국악 칸타타를 선보이며, 서울남산국악당이 기획으로 참여한 ‘축제의 땅’(8.16/서울남산국악당)에선 일본 나고야시에서 우리의 소리와 몸짓을 이어오고 있는 예술단체 ‘놀이판’이 한국을 찾아 신나는 춤판을 벌인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남겨진 지역에서도 공연이 활발하다. 독립운동 성지인 천안(8.15/천안예술의전당)에서는 시립예술단 전체가 총출동한 대규모 무대를 꾸린다. 창작 칸타타 형식으로 진행되는 ‘동방의 빛’은 국악과 클래식 음악, 합창과 무용이 어우러질 예정. 제주(8.3/제주문예회관)에선 ‘나의 조국, 나의 제주’를 제목으로 음악회가 열린다. 제주 출신 작곡가 오민주의 동명의 위촉곡을 비롯, 제주의 자연을 노래한 가곡들이 무대에 오른다. 하남(8.15/하남문화예술회관)에선 하남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열사 4인(이대헌·김교영·김홍렬·구희서)을 재조명하는 음악회 ‘하남시 그 날의 함성’을 준비 중이다. 특별히 청소년들이 기획과 제작 과정에 참여해 의미를 더한다. 그 외에도 광복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되찾은 빛, 광복’(8.15·16/부천 오정아트홀), 연극 ‘다 그렇지는 않았다’(8.7/청주아트홀), 역사 콘서트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8.13/이천아트홀), 낭독 뮤지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8.8·9/봉산문화회관) 등이 지역 곳곳의 공연장을 채운다.

허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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