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레조낭스 페스티벌 & 르 콩세르 드 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8월 1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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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조낭스 페스티벌 6.30 & 르 콩세르 드 파리 7.14

건반의 야누스, 김세현의 과감한 비상

 

파리의 여름을 사로잡은 롱티보 콩쿠르의 별

 

레조낭스 페스티벌 ©Melanie Florentina

연중 시즌 공연이 서서히 막을 내리는 가운데, 여름 페스티벌 시즌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롱티보 콩쿠르(피아노 부문)에서 다른 후보들과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이며 우승과 동시에 청중상·기자상·학생 투표상(파리 18개 음악원에 재학하는 2만 명 이상의 학생들 투표)을 차지한 김세현(2007~)은 마치 날개를 단 듯, 과감한 비상을 시작했다.

레조낭스 페스티벌 공연(6.30)을 시작으로, 프랑스 혁명기념일 콘서트(7.14),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7.23) 등 이번 여름 김세현이 누빈 무대는 화려하다. ‘건반의 야누스’ 김세현은 콩쿠르 우승 후 첫 파리 독주회에서도 대담하고 변화무쌍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빛의 성전에 울려 퍼진 섬세한 감성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과 함께 ©연주자 제공

고딕 양식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라 생트 샤펠은 파리 시테 섬에 위치한 문화유산이자 관광객들의 숨은 명소다. 13세기 중엽 루이 9세의 명으로 건축이 시작되어 1248년에 완공된 이곳은, 예수의 가시 면류관 등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성스러운 공간이다. 정교한 건축미와 더불어, 약 15미터 높이의 15개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성경 속 주요 장면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빛의 성전’이라 불린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한 피아노 축제 ‘레조낭스’는 이곳에서 다양한 장르의 젊은 연주자들을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한국 출신의 롱티보 콩쿠르 우승자들이 선보인 무대는 K-클래식 음악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6월 15일에는 2022년 우승자 이혁이 올 쇼팽 프로그램으로, 6월 30일 폐막 무대에는 올해 우승자인 김세현이 바흐-부소니·모차르트·쇼팽·라벨의 작품으로 파리 관객과 만났다.

공연 당일은 폭염이 기승을 부렸고, 저녁이 되어도 식지 않은 열기는 한국의 신예 피아니스트를 향한 기대와 맞물려 공연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롱티보 콩쿠르 재단 대표 제라르 베커만은 폐막 공연의 소개를 맡아 “페스티벌의 정점은 최연소 연주자의 무대이며, 그는 천사의 마음과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른 테크닉으로 한 시간 동안 무아지경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김세현을 소개했다.

최근 음악계에 부쩍 많아진 아시아계 신동 피아니스트들의 앳된 이미지에 익숙한 관객들은, 김세현의 점잖고 성숙한 분위기에 다소 놀란 듯했다. 무대에 배치된 중형 사이즈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200석 규모의 라 생트 샤펠 공간에 적합하게 느껴졌다. 프로그램은 부소니가 편곡한 바흐의 코랄 전주곡(BWV645·639), 모차르트 소나타 3번, 쇼팽의 마주르카 Op.33,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로, 한 시간 동안 시대순으로 배치된 작품 선정이 훌륭했다.

공간과의 연계성을 염두에 둔 첫 곡의 배치는 적절했고, 작품 접근 방식도 탁월했다. 김세현의 연주는 성전의 의식이 거행되기 전 연주되던 전주곡처럼, 이어질 순서에 앞서 관객의 마음을 차분히 다듬어주었다. 점차 밀도를 더해가던 코랄은 오르간 음향을 연상시켰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향해 경건히 뻗어 올라가며 공간 전체를 전율시켰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할 때의 표정은 마치 오페라 속 인물을 방불케 하며, 그가 작품 해석에서 얼마나 극적인 요소를 중요시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세미파이널에서 이 곡으로 주목을 받은 이유도 그 지점에 있었을 것이다.

 

밤의 심연을 건너는 피아노와 여운

쇼팽의 마주르카 4곡은 그가 콩쿠르에서 연주하진 않은 곡으로, 이번이 첫 공개 무대였다. 폴란드 민속춤의 삼박자 리듬은 경쾌했고, 장단조를 넘나드는 구간에서는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색채가 돋보였다. 그의 스승인 당타이손이 198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음을 떠올릴 때, 그 가르침이 제대로 적중했으리라는 짐작이 스쳤다.

공연의 정점은 단연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였다. 작품의 치밀한 구조에 집중한 김세현의 연주는, 감성에 함몰되지 않고 작품 전체를 조망하며 이성적으로 컨트롤하는 해석으로 다가왔다. 라벨이 상징주의 시인 알루아시위스 베르트랑(1807 ~1841)의 산문시를 회화적으로 묘사한 이 곡은 작품이 요구하는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관건인데, 그는 각 악장의 다층적 레이어를 정교하게 구성하며, 디테일을 세공하듯 다듬어갔다. 제1곡 ‘옹딘’에서는 반짝이는 음색과 아르페지오로 요정의 유영을, 제2곡 ‘교수대’에서는 음울한 긴장감을, 제3곡 ‘스카르보’에서는 무시무시한 광기와 공포가 엄습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곡을 들을수록 대형 그랜드 피아노와 2천석 규모의 대형 연주홀이 그리워졌다. 라 생트 샤펠의 무대는 건조하고, 성전 출입구 쪽 객석은 잔향이 과도하여 음향적으로는 균형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에서도 김세현은 작품별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표현을 위해 집중했고, 관객은 힘찬 박수로 경외심을 표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은 앙코르에서 찾아왔다.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가 편곡한 ‘4월의 파리에서(April in Paris)’가 여유로운 루바토 속에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짜릿한 행복감에 젖었다.

 

‘혁명기념일’에 만난 김세현의 ‘혁명’

르 콩세르 드 파리

프랑스 혁명기념일인 7월 14일, 바스티유의 날을 기념하는 ‘르 콩세르 드 파리’는 매년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 축제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행사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 유명 성악가 및 연주자들이 함께하며 프랑스2 채널(France 2)과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를 통해 유럽 전역에 생중계된다.

올해는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소프라노 아이다 가리풀리나, 테너 벤자민 베른하임 등이 출연했으며, 롱티보 콩쿠르 우승자의 무대는 이 축제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 김세현은 2023년 바이올린 부문 우승자인 보단 루츠와 함께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에 삽입된 미셸 르그랑의 곡을 재즈풍 편곡으로 선보였다.

김세현은 프랑스를 기반으로 한 공연예술기획사 알베르 사르파티(Albert Sarfati)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7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 기획사는 미하일 플레트뇨프·예브게니 키신·얀 리시에츠키 등 세계적 연주자들과의 파트너십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까다로운 아티스트 선정과 기획으로 유명한 이들이 17세 한국 피아니스트의 잠재력을 단숨에 알아보고 선택한 것은, 김세현이 예술계의 관심을 자극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박마린(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유로뮤직·크레디아

 

 

PERFORMANCE INFORMATION

김세현 피아노 독주회

8월 5일 오후 7시 30분 부산콘서트홀 콘서트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3번 K281, 포레 즉흥곡 2번, 쇼팽 마주르카 Op.33,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S178 외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김세현 피아노 독주회

8월 8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곡목은 부산·서울 공연 동일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

9월 21일 오후 5시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박수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김세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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