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 세종솔로이스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8월 4일 9:00 오전

COVER STORY

 

장르를 넘나드는 동행의 미학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X 세종솔로이스츠

 

현실과 환상, 말과 음악을 엮는 상상력의 힘

 

 

작가의 글과 작곡가의 악보가 만나고, 바로크 춤곡과 오늘날 태어난 동시대 음악이 무대와 공존한다. 세종솔로이스츠는 ‘지금, 여기(힉엣눙크)’에 필요한 예술이 무엇인지 묻고 생산하며, 예술과 악단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올여름 문학과 음악이 뜨겁게 만나는 무대부터 세종솔로이스츠가 펼쳐낼 축제의 장까지, 그들과 함께 음악·문학·기술,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어우러진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문을 여는 주문을 외쳐보자. 힉엣눙크!

총괄 허서현 기자 사진 세종솔로이스츠

 


01 TEXT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실내악 축제에서 만나는 이야기꾼

 

SF 소설과 클래식 음악의 만남, ‘힉엣눙크!’ 공연 ‘키메라의 시대’에서 그가 직접 무대 위에 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 프랑스 출생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글을 발표해오다가 1991년 120여 차례 개작을 거친 ‘개미’를 출간, 프랑스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 전 세계에서 3천 만 부 이상 판매됐다. 1994년 이후, 아홉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의 사랑을 받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오는 8월, 한국을 찾는다. 세종솔로이스츠 주최의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 ‘키메라의 시대’의 낭독자로 등장할 예정. 그는 이번 공연에서 출간을 앞둔 신작 소설 ‘키메라의 땅’을 낭독하며, 소설의 내용에 따라 작곡된 김택수의 ‘키메라 모음곡’이 함께 초연된다.

지난 7월 1일, 공연을 앞두고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 특별한 공연의 제작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가 프로듀서로 나선 것. “세종솔로이스츠라면 베르베르와의 협업에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드니 성호가 협업을 제안, 강경원 총감독과 함께 프랑스에서 베르베르를 만나 새로운 텍스트 작성과 낭독을 제안했다. 강경원 총감독에 의하면 그가 “흔쾌히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고.

클래식 음악 공연 무대에 설 베르베르의 모습이 선뜻 상상되진 않지만, 그는 음악과 의외로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기자 간담회 이후, ‘객석’은 한 번 더 베르베르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접하면서 자랄 수 있었다”고 밝히며, “카페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늘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그 순간 세계와 내가 분리되면서, 몰입에 빠져든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7월 한 달간 ‘객석’을 통해 이뤄진 소통을 바탕으로 SF 평론가 심완선이 소개하는 베르베르의 모습들이다.

허서현 기자

 

창작과 연결된 음악

《키메라의 땅》 프랑스어 판 커버. 8월에 한국 번역본이 출간된다. 근 미래에 동물의 DNA와 합쳐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 ©Albin Michel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꾼’이라고 소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의 힘을 느꼈다는 그는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와중에도 첫 장편소설인 ‘개미’를 집필하고 120여 차례 개작하는 등 창작에 노력을 쏟았다. 그렇게 1991년에 마침내 ‘개미’를 출간한 뒤로, 베르베르가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은 30종이 넘어간다. 30여 년간 거의 매년 하나씩 소설을 완성했던 셈이다. 베르베르의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유독 한국에서는 3천 쇄를 기록하며 사랑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소설가보다는 ‘이야기꾼’인 이유는, 소설이라는 형태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베르베르가 처음 희곡을 시도했던 작품인데, 소설보다는 희곡에 가깝긴 하지만 기존 희곡의 형식에도 어긋난다. 또한 단편 영화 제작을 경험했던 그는 ‘우리 친구 지구인’처럼 장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작가 개인의 경험을 털어놓는 책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에 따르면, 베르베르는 다른 사람의 공연에 초청받아 짧게나마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이 경험은 이야기꾼에게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었다. 작가가 혼자서 작업하는 글쓰기와 달리, 공연 예술에서는 관객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덕분에 그는 공연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가능성에 주목했다.

예술의전당에서 8월 27일에 최초로 막을 올리는 ‘키메라의 시대’는 8월 출간되는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키메라의 땅(Le Temps des Chimères)’을 바탕으로, 이야기꾼을 자처해 온 베르베르가 처음 공연자(performer)로 등장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는 “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지만…”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공연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원칙을 말한다. 공연은 관객과 실시간으로 교감이 이루어지는 예술이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려주는 건 바로 관객”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컴패니언 피스’, 즉 동반 작품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베르베르가 텍스트를 낭독하는 한편, 세종솔로이스츠가 김택수의 신작 ‘키메라 모음곡’을 연주한다. 베르베르는 공연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정말 독창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며 호감을 표했다. ‘키메라의 시대’에서 텍스트와 음악은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하나의 소리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앙상블을 이룬다. 그리하여 개별적으로 존재할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동반자로서 서로를 북돋아 ‘1+1=3’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베르베르가 오랫동안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제시했던 덧셈 공식이다.

 

SF와 공연예술의 궁합은?

‘키메라의 시대’는 설정상 현실이 아니라 근미래의 가능성을 다룬다. 베르베르는 극의 바탕이 되는 소설 ‘키메라의 땅’에 대해 “SF라기에는 너무 가까운 미래”라는 이유로 SF 소설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더라도 SF 장르의 공연 예술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 이 분야는 비록 주류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역사가 있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카렐 차페크의 ‘R. U. R.’ 역시 처음부터 희곡으로 집필되었다.

국내에서도 SF 장르가 꾸준히 무대에서 상연되는 중이다. 소극장 혜화당에서 개최하는 ‘SF 연극제’의 경우 올해로 10회를 맞이한다. SF 소설로 사랑받은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은 연극 및 뮤지컬로 제작되어 큰 호응을 받았다. 작중에는 로봇인 ‘콜리’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런 비현실적 측면을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 연극과 뮤지컬은 각각 ‘로봇 배우’와 퍼펫을 활용했다. 공연 예술로서의 SF는 소설과는 다른 형태로 자유롭다.

공연 형식 중에서도 낭독극은 무대가 간소하다는 특성 때문에 SF와 궁합이 맞기도 한다. 낭독극의 중심은 목소리 연기다. 동작 연기나 무대장치처럼 시각적 요소는 제외되기 때문에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무대를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낭독극은 상상 속의 모습을 공연에 소환할 수 있다.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낭독하는 동명의 낭독극은 배우 1명, 의자 1개, 책 1권만으로 무대를 구성했다.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을 매개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낭독극은 관객이 능동적으로 상상하기를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키메라의 시대’는 ‘보여주기보다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베르베르의 희망에 적합한 성격을 지닌다. 상상을 자극한다는 낭독의 장점을 극적으로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에는 낭독회가 별로 없다며, 작가로서 느끼는 낭독의 중요성을 말했다.

“목소리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억양이나 어조 등이 글의 느낌을 바꾸죠. 작가들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뉘앙스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키메라의 시대’는 전 세계에서도 이번 한국 공연이 초연이다. 베르베르가 한국을 “제2의 조국처럼 생각한다”는 점도 관련이 있으리라 보인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지 이제 30여 년, 베르베르에게 그간 한국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에 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을 아주 단단한 나라라고 여기고 있었다.

“저에게 한국은 용기, 민주주의, 기술 혁신 등 여러 강점을 지닌 나라입니다. 한국의 아픈 역사도 잘 알고 있으며,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도 강한 회복력을 보여준 점에서 이스라엘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주변에 강대국들이 인접해 있다는 점은 분명 도전이지만, 오히려 그런 여건이 한국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뷔시, 사티, 바흐에 빠져든 이유

이번 공연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을 뜻하는 ‘힉엣눙크’는 클래식 음악을 ‘여기’와 ‘지금’의 것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힉엣눙크!’에서는 그동안 수백 년 전에 창작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한편, 현재의 창작자들이 새로이 만드는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음악과 문학처럼 다른 형태의 예술을 융합하는 시도 역시 처음이 아니다. 다만 융합을 시도하는 작품이 ‘키메라’를 이야기한다는 점은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인다. 생물학에서 키메라는 하나의 생물체에 유전 형질이 다른 세포가 공존하는 경우를 말한다. 종류가 다른 염색체가 한 몸에, 그러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공연 ‘키메라의 시대’는 소설 ‘키메라의 땅’에서 태어난 텍스트와 김택수의 ‘키메라 모음곡’이라는 음악을 한 몸에 품는다. ‘키메라 모음곡’은 이야기 속의 ‘키메라’에 맞춰 섬세하게 텍스트를 반영한다. 그러나 독자적인 흐름을 지닌다. 베르베르는 “음악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베르베르의 창작 과정에서도 텍스트와 음악은 밀접하게 연계되는 듯하다.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늘 음악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비발디의 피콜로 협주곡은 11살의 베르베르에게 “음악과의 접촉에서 가장 큰 충격”을 선사했다. 드뷔시와 에릭 사티도 그가 많이 찾는 작곡가다.

“특히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 곡은 제가 소설 ‘타나토노트’를 집필할 때 계속 들었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또한 그가 즐겨 듣는 곡이다.

“바흐의 ‘인벤션’도요. 이번 작품을 쓸 때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을 모두 쓰고 나면, 책을 쓸 때 들었던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생성됩니다. 주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요. 카페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헤드폰을 끼는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분리되면서, 몰입을 할 수 있게 해주죠.”

 

오늘의 상상은, 미래의 힘이다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한국에서는 이번 공연을 기해 ‘키메라의 땅’이 출간된다. 10년 이내의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삼는 ‘키메라의 땅’은 인간과 동물의 DNA를 융합한 키메라가 신인류로 등장한다. 에어리얼(박쥐), 노틱(돌고래), 디거(두더지) 등은 각기 하늘, 바다, 지하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이들은 현생 인류와 어느 정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에어리얼의 유전자에 새가 아니라 박쥐가 융합한 이유는 베르베르가 “박쥐가 날개 있는 새보다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커뮤니티’,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이동하고 모여 살면서 그것에 맞는 건축물도 짓죠. 마치 개미처럼요. 거기에 걸맞은 음식 문화도 발달하고 공간도 구성합니다. 두더지도 마찬가지죠.”

키메라들은 인류와 형태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인류의 어리석은 과거를 반복한다. “우리의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의 의식 상태를 바꿔야만 한다”는 것이 베르베르의 결론이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신인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인류는 폭력과 그 폭력이 만들어내는 사이클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 두려움의 사이클을 반복하지 않는 이들이죠.”

베르베르는 절망하기보다는 낙관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재에 대한 걱정은 그에게 있어 창작의 동력이다.

“저는 디스토피아, 즉 우울한 SF를 쓰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유토피아, 긍정적인 SF를 쓰려고 합니다. 정치든 환경이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긍정적인 해법을 상상하는 작가들 덕분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상력, 다시 말해 ‘상상하는 힘’은 미래를 그리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확고하게 말한다.

“오직 미래를 그리는 작가들만이 진정한 자유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베르베르 자신도 작가로서 ‘상상력’의 책임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를 스스로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한 인간으로서 여행, 창작하는 것,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요. 제 책을 읽고 사람들이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더 나은 인류가 되기 위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독서를 하길 바랍니다.”

심완선(SF 평론가)

 

Representative books

《개미》 1993년에 발행(국내 기준)된 베스트셀러. 전 2권. 개미의 눈으로 본 인간 묘사가 흥미롭다.

《뇌》 2002년 발행했고, 전 2권. 체스 챔피언의 사인을 쫓다 뇌 속의 최후 비밀에 다가서는 이야기.

《신》 2008년 발행. 기독교부터 불교, 그리스 신화까지 어우러지는 세계관이다. 전 3권.

《나무》 18개의 단편 소설이 담겼다. 2003년 발행. 투명 피부 등 기상천외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타나토노트》 1994년 발행. 전 2권. 그리스어로 ‘죽음(Thanatos)’와 ‘항해자(Nautes)’를 합성한 단어다.

《파라다이스》 있을 법한 미래 혹은 과거를 상상한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 모음집. 2010년 발행됐다.

《심판》 천국에 있는 법정이 배경이다. 소설이 아닌 희곡 작품. 2020년 발행됐다.

《퀸의 대각선》 2024년 발행. 두 여성이 소련 붕괴·911 테러와 같은 국제 정치를 무대로 격돌했다면?

《고양이》 2018년 발행, 전 2권. USB 단자가 꽂힌 천재 고양이가 전쟁 위기 속 인간과의 소통을 꾀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996년 발행됐고, 2021년 내용이 추가됐다. 베르베르의 창작 비밀 노트를 엿보는 듯한 에세이.

 


02 MUSIC

 

작곡가 김택수

‘키메라 모음곡’ 작

 

업기 소설을 읽고, 춤곡을 지었다. 작가와 작곡가, 예술 단체의 소통으로 탄생한 낭독 음악 공연!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세종솔로이스츠가 함께 하는 ‘키메라의 시대’ 공연은 베르베르가 소설 ‘키메라의 땅’ 집필은 물론 무대에 올라 직접 낭독까지 한다. 그의 글과 목소리와 함께 할 음악은 김택수가 작곡했다. ‘키메라 모음곡’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새로운 작품에 대해 작곡가와 대화를 나눴다.

 

세종솔로이스츠의 위촉으로 네 대의 바이올린과 현을 위한 협주곡 ‘with/out’을 작곡했고, 작년 10월 서울에서 아시아 초연을 했습니다. 올해도 같은 단체로부터 위촉을 받았는데, 끈끈한 관계의 비결이 있을까요?

세종솔로이스츠 자체가 주는 영감이 있습니다. 민간단체로서 미국·한국에서 음악적 질을 유지할뿐더러, 작년 AI를 활용한 작업이나 올해 베르베르 프로젝트처럼, 이들의 행보는 제게 큰 자극이 됩니다. 제 음악 세계도 많이 존중해주고요. 사실 작년에 큰 작업을 같이하며 우여곡절도 겪고, 정도 들었어요. 단체 자체가 끈끈하면 저도 붙임성이 한층 강력해지는 편인데, 세종솔로이스츠가 바로 그런 단체입니다.

낭독과 함께하는 이번 공연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세종솔로이스츠와 베르나르의 공연이 확정된 후, 제가 합류했습니다. 협연자들도 정해져 있었고요. 본래 기획은 내레이션 사이에 기존의 바로크 음악이 들어가고, 제 음악은 마지막에 얹어지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기획이 거듭 수정을 거치며, 결국 제가 음악 전체를 쓰는 것으로 함께 결정했고, 베르나르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작품을 위해 소설 ‘키메라의 땅’을 읽어보셨을 텐데요, 어떤 감흥을 느끼셨나요?

SF와 종말 이후의 세계, 그리고 판타지가 잘 융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어요. 서로 연관 있는 장르임에도, 막상 섞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특히 주인공이 여행하는 과정은 ‘반지의 제왕’이나 ‘왕자의 게임’ 같은 중세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졌고, 세계관 또한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 가상의 제3차 세계대전 이후로 설정되어 있어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흡입력도 강하고요.

 

바로크를 비틀어 표현한 ‘돌연변이’들

그간 흥미로운 제목과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여럿 발표해 왔습니다. 평소 주제와 음악의 관계를 어떻게 연결 짓나요?

제 작품은 절반 이상이 일상적 경험이나 기억을 기반으로 합니다. 감상자들이 제 의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길 바라는 편이라, 제 작곡의 첫 단계는 크로키 같은 묘사입니다. 하지만 음악은 시간예술이라 서사가 있어야 하죠. 문학적·음악적 서사는 중요합니다. 전체적인 전개에는 언어적 사고를 자주 동반합니다. 디테일은 음악적으로 처리하는 편이죠. 음악 자체의 흐름이 어색하면, 감상자들은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스타일 또한 그간의 작곡 경험에 영향을 받은 것이겠군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음악들도 듣고 따라 했어요. 대학교에서 화학 전공을 할 당시에는 종교단체에서 실용음악 활동도 꽤 했고, 재즈도 조금 배웠죠. 이 경험들이 나중에 여러 장르를 클래식 음악과 융화하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제 학창 시절 영웅 중 한 분이 ‘다양식주의’의 선구자인 알프레드 시닛케였습니다. 저는 다양식주의가 21세기를 보여주는 데 적합한 방식이라 생각해요. 다양한 장르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이 뒤엉킨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고 싶어요.

공연 ‘키메라의 시대’ 또한 여러 장르가 융합합니다. 낭독과 음악이 어떤 형태로 공존하나요?

작업 과정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현실적인 리허설 횟수, 지휘자의 부재, 공연장의 특성 등을 고려해 음악과 낭독이 가장 효율적으로 교차하는 포맷을 선택했습니다. 음악회의 목적이 소설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라, 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작품의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특징을 여러 악장으로 나누어 음악화하기로 했죠. 음악 작업을 하면서 각 악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음원을 베르나르에게 보내면, 베르나르가 다시 한번 본인의 의견을 반영해서 최종적으로 글을 정리했어요.

‘키메라 모음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직접 결정한 거군요?

악장과 낭독 스크립트를 정하는 것은 제가 했지만, 그래도 글이 주는 틀이 있죠. 악장의 뉘앙스나 음악적 어법 내에서, 구조에 충실하며 작곡했습니다. 뉘앙스에 초점을 맞춘 건 ‘있을 법한 돌연변이’를 음악으로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바로크 춤곡이라는 기존 장르를 출발점으로 삼고, 그 변이의 정도를 다양하게 했죠. 바로크 춤곡 형식이 어떻게 미래의 키메라와 연결되고 변이되는지 궁금합니다.

1악장 ‘서곡’의 시작 부분은 바흐의 ‘바디네리’(관현악 모음곡 2번 마지막 곡)의 향이 진하게 나겠지만, 바로크적이지 않은 요소 역시 많이 갖고 있어요. 2악장 ‘창세기’는 여러 장르가 섞이고, 3악장 ‘디거스’는 ‘지그’로, 곡의 리듬을 제외하고는 바로크 음악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4악장 ‘노틱스’는 ‘부레’로, 물에서 헤엄치는 느낌의 기타 독주곡이고, 5악장 ‘에어리얼’은 플루트 독주곡으로 사라방드에서 출발하지만, 리듬적 요소나 화성 반복 이외에는 그다지 바로크처럼 들리지 않을 겁니다. 6악장 ‘충돌’ 역시 다양한 장르와 솔로가 섞여 있고요, 7악장 ‘악셀’은 아리아로서 바로크다운 선율이지만 현대적 스타일을 덧입혔어요. ‘진노의 날’ 인용도 바로크와 아포칼립스(종말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키메라 모음곡’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우선, 낭독에 집중해 주세요! 음악을 들으면서 낭독된 글이 다시금 떠오를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크와 바로크가 아닌 것들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지, 그 변이의 정도를 짐작해 보시는 것도 감상의 포인트가 될 수 있겠네요.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PREVIEW

베르나르 베르베르 X 세종솔로이스츠 ‘키메라의 시대’

공연 ‘키메라의 시대’는 세종솔로이스츠가 선보이는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하나로 서울(8.27/예술의전당) 이외에도 8월 말 지역의 공연장을 찾아간다. 대전예술의전당(23일)·국립아시아문화전당(24일)·세종예술의전당(29일)·부산콘서트홀(30일)·대구 수성아트피아(31일)에서 이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베르나르는 “한국의 지방 공연장들도 직접 함께 다니며 낭독할 예정”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연 1부에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내레이션이 함께하는 김택수 ‘키메라 모음곡’이 연주된다. 초청 아티스트인 플루티스트 최나경, 이번 프로젝트의 프로듀서로도 활약한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의 음색이 더해진다.

2부는 R.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변이)’이 연주된다. ‘키메라 모음곡’이 제3차 세계대전 이후를 상상해 그려낸 음악이라면, ‘메타모르포젠’은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문명과 상실된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다. 낭독과 음악의 만남, 그리고 1·2부 작품의 연결은 공연의 깊이를 더하는 세종솔로이스츠의 새로운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허서현 기자

 


 

03 PREVIEW

 

여기, 그리고 지금의 음악에 집중하다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강경원 총감독이 말하는 앙상블의 비전과 축제의 방향

 

라틴어 ‘힉엣눙크(Hic et Nunc)’를 영어로 풀면 ‘Here and Now’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이다. 창단 31년을 지나고 있는 세종솔로이스츠가 이 의미를 품고 축제를 시작한 것도 벌써 올해가 8회째. 동시대를 추구하는 이들의 방향성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연의 형태도 새롭게, 소개되는 연주자들 또한 국내에서는 익숙지 않은 얼굴들이다.

세종솔로이스츠 역사가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의 강효 교수를 주축으로 시작됐다면, 힉엣눙크의 역사는 2017년 ‘인천뮤직: 힉 엣 눙크!’로 시작됐다. 송도국제도시를 기반해 인천대학교와 공동 주최로 시작, 매해 발전을 거듭하며 특정 지역명을 떼어내고 현재의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이하 ‘힉엣눙크!’)로 자리 잡았다.

2018년 축제에서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외르크 비트만이 자신의 창작곡을 직접 연주했고,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바흐와 필립 글래스를 엮은 독주회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9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이 축제를 빛냈고, 팬데믹 기간인 2021년에는 메타버스를, 2022년에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의 줄임말.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를 활용한 공연을 선보였다. 2023년에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의 협업, 2024년에는 MIT 교수이자 작곡가인 토드 마코버의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 ‘힉엣눙크!’는 여러 장르의 작품을 연결하는 ‘컴패니언 피스’(기존 예술 작품과 서로 짝을 이룬 작품)를 메인으로 삼았다. 시공간이나 장르를 초월한 작품을 엮음으로 동시대적 사유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단체의 창단 때부터 총감독으로 단체를 이끌어온 강경원 총감독은 “융합과 협업은 클래식 음악의 본질에서 멀지 않다”며, 올해 축제의 주제를 강조했다.

 

그간 만나온 ‘힉엣눙크!’의 강점은 꾸준한 초연작 발표와 신선한 국제 예술가의 소개다.

우리의 주요 가치는 ‘동시대성’이다. 이름에 담긴 ‘눙크(Now)’처럼, 지금 시대의 음악을 어떻게 찾고, 만들지 고민한다. 실험적 신작과 국제 아티스트의 국내 소개도 그 연장선이다.

매년 신선한 축제를 구성하기 위해선 광범위한 정보 수집 등 최전선의 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 같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이를 유지하나?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직접 경험하려 한다. 특히 뉴욕은 신작은 물론 기존 레퍼토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접할 기회가 다양하고, 놀랄만큼 대담한 제작도 많다. 음악적으론 언제나 세종솔로이스츠와의 접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물을 듣는다. 예술 외 분야의 강의도 지속적으로 들어 융합적 접근을 수월하게 한다.

매년 초연작을 선보이고 있지만, 동시대 음악에 관한 관심을 끌긴 쉽지 않다. ‘21세기 클래식 음악’을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고민하는 지점이 있나?

오늘날의 고전도 본래는 그 시대의 ‘현대음악’이었고, 우리 단체 역시 오늘과 내일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가치를 기본으로 삼고, 장기적 안목을 가지려 한다. 홍보 방식도 뉴욕과 서울의 환경 차이를 고려해 조율한다.

올해 축제는 ‘컴패니언 피스’에 집중했다. 서로 다른 장르를 융합하는 공연 형태가 동시대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기간 떠올려온 아이디어들에 최근 몇 년 간의 생각이 더해지며 부상한 주제다.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감성적 주제가 있다면 ‘고통 속의 변화와 희망’이다. 더 나아가,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고통이 승화되는 과정이다. 융합은 클래식 음악의 본질과 멀지 않으며, 이것이 동시대적 사유와 연결되며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지난해 세종솔로이스츠가 창단 30주년을 지났다. 강효의 제자들로 시작하여 다수의 유명 연주자가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 단체 운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듯하다.

창단 당시, 강효 교수가 줄리아드 음악원에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무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출발했다. ‘세종’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앙상블이 되길 꿈꾸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가치는 여전히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단원 커뮤니티도 예상을 넘어 다양하게 확장되었고, 단원을 거쳐 간 이들도 연주 기간에는 다시 모여 마치 고향 친구들처럼 서로를 반가워한다. 이들이 젊은 단원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선순환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세종솔로이스츠에 대한 고민은 무엇인가?

내부적으론 지속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며 전략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시니어 단원들이 후배들을 이끌며 자연스럽게 전통이 이어가고 있다. 운영 측면에선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서의 구조를 더 강화 중이다. 안정적 재정 기반, 후원자 네트워크 확장, 중장기적 기획 역량 확보 등이 주요 과제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훌륭한 이사진은 큰 힘이다. 세종솔로이스츠가 긴 호흡으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경영 기반을 다지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허서현 기자

 

 

PREVIEW

제8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8.22~9.5

길 샤함·아델 앤서니 커플부터 기타리스트 지지의 한국 데뷔까지!

 

‘힉엣눙크!’의 첫 공연은 기타리스트 지지의 리사이틀(8.22/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이다. “세종솔로이스츠가 리처드 용재 오닐을 적극적으로 국내에 소개한 것처럼,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연주자의 데뷔 무대를 개최하는 취지”라는 것이 강경원 총감독의 설명. 이번 공연에서 자작곡을 비롯하여, 바흐부터 막스 리히터의 곡까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무대를 선보인다.

바이올리니스트 부부 길 샤함·아델 앤서니의 공연(8.26/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의미 있는 작품이 연결됐다.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과 아브너 도만(1975~)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슬퍼할 때와 춤출 때’로, 아브너 도만의 작품은 세종솔로이스츠 공동 위촉작이며 아시아 초연이다. 강경원 총감독은 “슬픔 속에서도 기쁨의 순간을 기억하는 인간의 회복력을 그린 작품”이라며, “지난해 카네기홀 세계 초연 당시, 단원들이 단 1초도 집중을 놓으면 안 된다고 연주 소감을 말할 만큼 도전적인 곡이다”라고 언급했다.

복합문화공간 소전서림(서울 청담동)에서는 공연 ‘T.S. 엘리엇 & 베토벤-철학적 탐구’(9.5)가 오른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Op.132와 T.S. 엘리엇의 시 ‘네 개의 사중주’ 낭독이 함께한다. ‘네 개의 사중주’는 엘리엇이 친구에게 “베토벤 현악 4중주 Op.132와 비슷한 것을 시로 남기고 싶다. 베토벤이 음악을 초월하려 노력했던 것처럼, 시를 초월하고 싶다”며 편지를 쓴 후 남긴 시다.

젊은 연주자의 무대로는 첼리스트 여윤수 리사이틀(9.2/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관 중강당)이 있다. 멘델스존·이자이·풀랑크 등의 소나타를 선보일 예정. 외에도 미취학 아동을 위한 공연 ‘어머니가 불러준 노래들(Songs My Mother Taught Me)’(9.3/광진어린이공연장), 찾아가는 음악회(9.4/해성여자고등학교·선덕원), ‘힉엣눙크! NFT 살롱’(9.1/언커먼 갤러리)까지가 ‘힉엣눙크!’가 집중한 생생한 공연의 현장들이다.

허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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