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몰입, 예술의 새로운 흐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8월 11일 9:00 오전

SPECIAL ISSUE

 

공연 예술의 새 코드 ‘몰입’

이머시브

 

무대를 빠져나온 예술, 관객 안으로 들어오다

 

 

우리는 수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것이 온전한 감각으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예술은 이제 단순히 ‘무엇을 보는가’를 넘어, 관객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느끼고 체험하는가’에 더 큰 의미를 둔다.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중세의 문학과 미술, 그리고 오늘날의 ‘몰입형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늘 관객을 작품 속으로 초대해왔다. 최근에는 펀치드렁크의 이머시브 연극 ‘슬립노모어(Sleep No More)’처럼, 관객에게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예술과 관객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경험하고, 참여하고, 체험하는’ 과정을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몰입’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예술이 관객과 어떻게 새롭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몰입의 경험이 다양한 장르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총괄 홍예원 기자

 

COLUMN 몰입형 공연의 역사 | Overseas 해외 화제의 몰입형 공연 및 전시 | DOMESTIC 국내 화제의 몰입형 공연 및 전시

PREVIEW 이머시브 연극 ‘슬립노모어’ | INTERVIEW 클래식 위크엔즈 예술감독 홍혜란

 


 

01 몰입형 공연의 역사

 

우리가 몰랐던 신비의 체험 공간으로

고대 비극에서 오늘의 이머시브 공연까지, 관객을 참여로 이끄는 여정

 

뮤지컬 ‘캣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1940~)는 저서 ‘해방된 관객’에서 “관객의 해방이란 관객 자신이 본 것을 감각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관객은 이미 자신의 이야기의 배우이다”라고 강조하며, 관객은 단지 무대 밖에서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세계를 읽고 구성하는 능동적 주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머시브 공연은 전통적 극장 구조가 제한해온 감각과 움직임, 해석의 자유를 다시 관객에게 돌려주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정보의 파도에 휩쓸린다. 스마트폰 속 끝없는 쇼츠와 릴스, 도심의 광고판과 스크린 사이를 헤매며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피로는 깊어진다.

이 디지털 과잉의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만의 호흡을 되찾는 깊이 있는 체험을 갈망하게 되었다. 몰입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감각의 회복을 위한 본능적 반응이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예술 형식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이머시브 공연, 넌버벌 콘텐츠, 관객 참여형 설치미술 등은 관객을 수동적인 감상자 위치에서 벗어나게 한다. 관객은 이제 서사의 일부가 되고, 동선을 선택하며, 예술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다. 기술 또한 이 몰입을 정교하게 지원한다. VR·AR·공간음향·인터랙티브 미디어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거기에 있는 듯한’ 감각을 창조한다. 특히 팬데믹 이후 실재 공간과 신체 경험에 대한 욕망이 커지면서, 몰입형 콘텐츠는 더욱 강력한 예술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몰입 공연의 역사와 원형을 찾아서

‘몰입’이라는 개념은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예술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오감과 감정, 사고를 자극하며 몰입을 유도해왔다. 시대에 따라 몰입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예술의 핵심은 언제나 관객이 작품 안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몰입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고대 그리스 비극만큼 중요한 예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비극의 목적을 “연민과 두려움을 일으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술이 단순히 현실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을 잘 다듬어 마음 깊숙이 영향을 주는 모방(mimesis)이라고 보았다.

고대 비극은 인간 존재의 운명과 한계를 무대 위에서 응시하게 함으로써 관객의 내면을 흔들었다.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작품은 예언과 숙명, 무지와 인식 사이에서 관객에게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일으키며, 그 감정을 해소하는 심리적 균형의 경험을 제공했다. 이는 감정이입을 넘어선 정서적 몰입의 체험이었다. 무엇보다 비극 공연은 사회 전체가 함께하는 집단적 사건이었다. 모두가 동시에 숨죽이고, 놀라고, 안타까워하며 동일한 감정선을 따라갔다. 이 집단적 감정의 공유는 오늘날의 개별적 몰입과는 다른, 공동체적 몰입의 원형이었다.

중세 미술이 상징과 위계 중심이었다면, 르네상스 회화는 인간의 눈으로 본 세계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 몰입은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체화 되었고, 그 핵심은 선형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이었다. 모든 선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면서 그림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화가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1427년경)는 실제 건축 공간과 그림 속 가상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해, 관람자가 거룩한 공간 안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등의 작품은 감각적 확장과 존재의 동화를 동시에 유도하며, 오늘날 이머시브 아트의 시각적 몰입이 지향하는 바의 선구로 평가된다.

 

문학이 만든 또 하나의 무대

몰입은 단지 감각에 그치지 않는다. 문학은 오랜 시간 독자를 이야기 속 여정으로 끌어들이며 몰입을 실현해 왔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작가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1678)은 신앙심 깊은 남성이 천국을 향해 가는 여정을 그린 기독교 우화로, 독자가 그 시련과 깨달음을 함께 겪게 한다. 18세기 중엽 청대(淸代) 조설근의 장편소설 ‘홍루몽’은 몰락해가는 명문가의 젊은이들이 겪는 사랑과 좌절을 통해 풍부한 감정과 시대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두 작품 모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를 통해 독자의 정체성을 잠시 다른 인물에 겹쳐지게 만든다.

이러한 몰입은 특히 인물의 이동과 변화를 축으로 삼는 로드 노블(Road Novel) 장르에서 두드러진다.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39)는 대공황기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조드 가족의 여정을 통해 실직, 차별, 분노를 함께 체험하게 만든다. 이들은 단지 장소만 옮기는 게 아니라 감정의 변화도 함께 겪으면서,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현실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문학은 이렇게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그려내고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몰입의 길이었다. 독자는 글을 따라가며 장면을 상상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에 함께 빠져들었다. 이런 경험은 오늘날 이머시브 콘텐츠가 추구하는 몰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몰입형 공연의 진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Chad Batka

1981년 초연한 뮤지컬 ‘캣츠’는 배우들이 객석 통로를 자유롭게 다니며 관객을 극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초기 몰입형 연출을 선보였다. 2012년 뉴욕 아르스 노바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관객 주변과 사이에서 배우들이 움직이며, 공간을 작품 세계로 바꾸는 진화된 몰입형 공연으로, 한국에는 2021년 소개되었다.

오늘날 몰입은 펀치드렁크의 ‘슬립노모어’처럼 관객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이머시브 공연으로 더욱 확장됐다. 넌버벌 공연, 관객 참여형 작업도 몰입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끊임없는 자극에 노출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빠른 소비 대신 천천히 깊이 체험하는 감각적 몰입을 원하며, 설치 미술, VR 퍼포먼스 등이 몰입 범위를 넓히고 있다.

몰입은 각자의 경험이 쌓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예술의 한 방식이다. 관객은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사람이 된다. 요즘 공연예술은 특별한 장소에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이 어떻게 그 자리에 존재하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몰입은 예술이 관객을 능동적인 주인공으로 다시 만나게 해주는, 우리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물음이다.

정재은(영국 통신원)

 


 

02 해외 화제의 몰입형 공연 및 전시

 

감상 방법과 감동의 크기가 다르다!

몰입형 공연과 전시는 이제 장르를 넘어 관객들에게 미래의 감각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화제가 되어 예술계와 관극 체험의 구도를 바꾸는 공연과 전시를 만나본다

 

 

클래식 음악 + 시각

경계를 넘는 클래식 음악, 우주로 향하다

‘몰입형 스페이스 심포니’ 8.1~31  미국 템플 에마누엘

 

‘몰입형 스페이스 심포니’ ©Courtesy of Miami Music Festival

몰입형 기술이 클래식 음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특히 실내 공연장에서 구현되는 프로젝션 매핑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기존과는 다른 감각의 클래식 음악 체험을 제공한다. 프로젝션 매핑은 건물 외벽처럼 불규칙한 표면에도 생생한 영상을 투사할 수 있도록 3D 모델링과 특수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기술로, 기존 콘서트홀에서는 보기 어려운 몰입감을 제공한다.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비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Miami Beach Classical Music Festival, 이하 MMF)은 몰입형 기술을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그중에서도 ‘몰입형 스페이스 심포니’ 공연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홀스트의 ‘행성’, 한스 짐머의 ‘맨 오브 스틸’, 제임스 호너의 ‘아폴로 13’ 등 우주를 주제로 한 영화음악과 클래식 음악 작품이 연주되며,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이어가는 동안 회당의 천장과 벽면, 바닥 곳곳에는 우주의 풍경을 형상화한 대형 영상이 펼쳐진다. 관객은 음악과 영상을 따라 마치 우주 공간을 함께 떠도는 듯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MMF의 몰입형 공연은 오페라 무대로도 확장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존 코릴리아노의 ‘베르사유의 유령’ 등이 상연됐다. 이 공연들 역시 영상, 조명, 움직이는 프로젝션을 적극 활용해 무대 전체가 변화하는 듯한 몰입형 오페라로 구현됐다.

 

 

클래식 음악 + 시각

야외 무대에서 선보이는 몰입형 공연

‘비바 비발디’ 8.27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비바 비발디’ ©Fondazione Arena di Verona

몰입형 공연은 여러 기술적 요소가 수반되기 때문에 보통은 내부 공간에서,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야외에서도 몰입형 공연이 시도된 바 있으니, 바로 고대 원형 경기장 아레나 디 베로나가 그렇다.

지난해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중 ‘비바 비발디’라는 명칭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조반니 안드레아 자논이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했다. 공연은 홀로그램을 활용해 거대 야외극장 허공에 영상들을 띄운 채 진행됐다. ‘사계’의 색채에서 영감을 얻은 거대한 영상들은 관객에게 연주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이 공연은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기간에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아레나 디 베로나는 몰입형 공연을 기획하기에는 야외 무대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며 현시대에 들어서는 야외 공간에서도 몰입형 공연의 시도가 가능해졌다. 더군다나 중세의 옛스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극장’이라는 유일무이한 특징 때문에 이곳에서 체험하는 몰입형 공연은, 타 공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콘서트 + 공간

비현실적인 규모가 선사하는 압도감

스피어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스피어 외부 ©Y2kcrazyjoker

2023년 9월, 비현실적인 크기의 초대형 구체가 각종 뉴스 채널을 뒤덮었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현실인지 그래픽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스피어’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스피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구체형 건축물로 자리매김했으며, 외관 전체를 뒤덮은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동시에 수많은 질문도 따라붙었다. ‘저 건물의 용도는 대체 무엇일까?’

거대한 건축물의 크기만큼 내부에는 가공할만한 규모의 극장이 조성되어 있다. 극장을 진입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마치 관객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준의 초대형 스크린은 경이로움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다. 관객은 영상이 재생되는 순간부터 시각적으로 압도당하고, 마치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몰입을 증폭시킬 요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극장 전체를 에워싼 음향 시스템은 물론, 온도·바람·객석의 진동까지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관객의 감각 전반을 자극한다. 스피어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영화 ‘지구에서 온 엽서’에는 이러한 장치들이 극대화되어, 관객들에게 압도적이고 몰입도 높은 체험을 선사한다.

홍예원 기자·최성혁 수습기자

 

 

연극 + 참여

진실의 경계를 탐색하다

‘스토어하우스’ 6.4~9.20 런던 뎁트퍼드 창고

 

연극 ‘스토어하우스’

공연 제작사 세이지 앤 제스터(Sage and Jester)가 디지털 시대의 ‘기억’과 ‘진실’을 대규모 몰입형 연극으로 풀어낸다. ‘스토어하우스’는 런던 뎁트퍼드 지역에 위치한 9,000㎡ 규모의 옛 종이 저장고에서 펼쳐진다. 이곳은 과거 영국 신문사 ‘뉴스 인터내셔널’ 그룹이 사용하던 공간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거대한 디지털 기록 보관소로 탈바꿈했다.

관객은 ‘1983년 인터넷이 시작된 이래 인류의 모든 뉴스, 메시지, 기억, 밈이 이곳에 비밀리에 보존되어 왔다’는 설정 아래, 데이터의 수집과 분류를 통해 보편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한 집단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후 데이터들이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보관소의 마지막 창립자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을 새로운 계승자가 시급히 필요해진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지우고, 다시 쓸지를 선택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스토어하우스 내부의 일원으로서 극 안에서 선택하고 개입하며, 진실과 기억, 권력의 의미를 직접 탐색한다.

작품은 ‘허위 정보의 확산’이라는 현대 사회의 중대한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조작된 기억인지에 대한 탐색을 무대 경험 자체로 확장하며, 우리가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 + 체험

스크린을 뚫고 현실로

‘그리스: 몰입형 영화 뮤지컬’ 8.1~9.7 런던 배터시 공원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방식의 몰입형 공연이 런던의 여름밤을 수놓는다. ‘그리스: 몰입형 영화 뮤지컬’은 단순한 영화 상영을 넘어, 관객이 그리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는 체험 형식으로 구성된다.

1978년 개봉 이후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아 온 뮤지컬 영화 ‘그리스’는, 이번 공연에서 1950년대 미국 고등학교인 ‘라이델 하이(Rydell High)’를 무대로 재현된다. 관객은 대니와 샌디, 티버드, 핑크 레이디스 등 영화 속 상징적인 인물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스크린 속 장면을 현실에서 체험하게 된다.

라이브 밴드가 현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물론, 오락과 게임이 펼쳐지는 야외 축제 마당, 미국식 간이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음식과 음료 공간까지 마련되어 공연장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은 특정 캐릭터의 역할을 부여받거나, 자유롭게 라이델 하이의 일원으로 참여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연극 + 체험

고딕 미로를 걷는 50분의 몰입

‘비올라의 방’ 7.9~10.19 뉴욕 더 쉐드

 

펀치드렁크 ‘비올라의 방’

‘슬립노모어’로 널리 알려진 펀치드렁크의 작품이지만, ‘비올라의 방’에는 가면도 없고, 관객이 스스로 이야기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철저한 지침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무엇보다 현장에 배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소규모 체험으로 이뤄진다.

관람객은 6명씩 한 조가 되어 헤드폰을 착용한 채 약 50분간 주인공 비올라의 방으로 들어간다.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가 목소리로 안내자 역할을 하며, 관람객을 설치 미로로 이끈다. 전체 줄거리는 영국 작가 배리 페인(1864~1928)의 단편 소설 ‘달의 노예’(1901)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 속에서 비올라 공주는 왕자와 약혼하지만, 춤과 미로에 집착하다 시련을 겪는다.

여러 겹의 천으로 둘러싸인 복도와 방을 지나면, 만찬장과 예배당처럼 이국적인 공간들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조명 디자이너 사이먼 윌킨슨과 사운드 디자이너 개러스 프라이의 감각적인 작업이 특히 눈길을 끈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도 자극되는데, 맨발로 걷는 바닥의 질감은 부드럽고 폭신하면서도 거친 모래처럼 느껴진다. 관람 도중 얇은 매트에 누워야 하거나 좁은 통로를 기어야 하는 구간도 있어, 편안한 복장이 필수다. 뱀파이어 등 고딕 호러 장르에 관심이 많고, 모험심이 강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빠질 공연이지만, 폐쇄 공간이나 어둠에 공포를 느낀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홍예원 기자·유내리 수습기자

 

 

전시 + 촉각

에르네스토 네토의 특별전

‘노소 바르코 탐보르 테라’ 6.6~7.25

 

에르네스토 네토의 설치미술

파리 그랑팔레 2024년 파리 올림픽 당시, 태권도와 펜싱 경기장으로 사용되며 널리 알려진 그랑 팔레가 4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재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6월, 브라질 출신의 설치미술가 에르네스토 네토(1964~)의 특별전 ‘노소 바르코 탐보르 테라’가 열렸다.

네토는 전 세계를 잇는 항해와 그 과정에서 교차한 문화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서로 연결된 문화가 인류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주목하며, 밧줄과 천 같은 상징적인 재료들을 패브릭 작업에 담아냈다. 그는 그랑 팔레의 핵심 공간인 유리 아트리움 나브의 북쪽을 거대한 작품 ‘노소 바르코 탐보르 테라’로 채웠다.

크로셰, 나무껍질, 향신료, 밧줄 등을 늘어나는 패브릭에 가득 담고 천장을 수백 개의 패브릭으로 매달아 장식한 작품으로, 전시장 내부에 나무껍질을 깔아 바닥을 직접 걷고, 곳곳에 놓인 타악기들을 치고 놀며 자유로운 감상이 가능하게 했다. 시시각각 흥에 겨운 타악기 연주 소리와 탬버린·젬베드럼 등 각기 다른 국가에서 온 악기, 그리고 다양한 문화권의 관람객들이 내는 소리와 몸짓이 뒤섞이며 관객들에게 경이로움과 나눔의 경험을 선사했다.

 

싱가포르 IMBA 시어터

싱가포르가 아시아 몰입형 예술의 거점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오는 12월,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들어서는 IMBA 시어터는 대규모 몰입형 예술 체험에 특화된 첫 전용 공연장으로, 기술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체험형 예술’의 미래를 제시할 예정이다. IMBA 시어터는 싱가포르의 에듀테인먼트 그룹 허슬 앤 버슬(Hustle & Bustle)이 새롭게 선보이는 브랜드 IMBA(Immersive Media Based Arts)의 대표 프로젝트로, 관객은 관람을 넘어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공연장은 몰입형 전시, 퍼포먼스, 멀티미디어 쇼케이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싱가포르 출신의 예술가는 물론, 세계 각국의 창작자들과 협력해 지역성과 국제성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전시 + 미각

맛과 이야기의 몰입, 다이닝의 새로운 형식

몰입형 다이닝 ‘위 아 오너’ & ‘포크앤필름’

 

‘라따뚜이’ 정식 코스 ©포크앤필름 홈페이지

좋은 식사의 기준은 무엇일까? 함께하는 사람, 분위기 있는 장소, 매력적인 메뉴, 그리고 음식을 즐기는 방식까지, 머릿속에 다양한 요소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식사를 즐기는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2019년에 설립된 창의적인 요리 스튜디오 ‘위 아 오너(We are Ona)’의 창립자이자 셰프 루카 프론자토는, 새로운 장소와 메뉴에 따라 맞춤형 ‘몰입형 다이닝’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최대 100명이 함께하는 공동 만찬을 기획하고, 유명 셰프·건축가·사진작가뿐 아니라 하이엔드 브랜드와도 협업을 이어간다. 파리에서는 튈르리 정원이 보이는 오스만풍 아파트에서, 홍콩에서는 스카이라인을 연상케 하는 1,500점의 나무 화덕을 이용해 만든 조명 테이블에 식사를 내놓는다. 지난 5월에는 뉴욕 루프탑에서 패션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드 베탁과 협업해, 30미터 길이의 식탁을 중심으로 런웨이처럼 꾸민 특별한 저녁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전 세계 10개 도시에 지점을 둔 ‘포크앤필름(Fork and Film)’은 음식과 영화를 절묘하게 결합한 레스토랑이다. 크리스마스 영화 ‘나홀로 집에’가 상영되는 동안 토마토와 바질로 만든 트리 샐러드로 코스를 시작해, 케빈이 먹던 치즈 피자와 맥앤치즈가 차례로 제공된다. 애니메이션 ‘코코’와 ‘모아나’가 상영될 때는 멕시코 전통 요리, 구운 마히마히, 파인애플, 바다 칵테일 등이 식탁을 채우며, 영화 속 장면이 그대로 식탁에 펼쳐진다. ‘라따뚜이’ 상영 시에는 미니 쓰레기통에 담긴 유쾌한 샐러드로 식사를 시작해, 프랑스 전통 요리와 치즈, 그리고 메인 디시인 라따뚜이를 풀코스로 즐길 수 있으니 상상만으로 즐겁다.

 

 

전시 + 체험

미지의 세계를 꿈꿔온 그대에게

‘브리지 커맨드’ 7.22~10.5 런던 복스홀

 

‘라따뚜이’ 정식 코스 ©포크앤필름 홈페이지

“난 우주비행사가 될 테야”. 어린 시절, 많은 이들이 품었던 장래 희망이다. 하지만 우주비행사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다. 지구 궤도를 벗어나 우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로켓 엔진과 우주선이 필요하며, 중력의 약 9배에 달하는 추진력을 견뎌야 한다. 여기에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꿈을 놓지 않은 열정적인 개발자들 덕분에 이제는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우주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런던 복스홀에 자리한 몰입형 전시 ‘브리지 커맨드(Bridge Command)’다. 7명의 관람객이 팀을 이뤄 우주를 지키는 최강의 용사가 되는 설정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UCS 점프수트’를 입은 뒤, ‘물질 전송 장치’를 통해 우주 정거장 ‘나바리노’로 이동하고, 각자 통신·무기·시스템 담당 등 고유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들의 임무는 위험한 우주 구역에서 중요한 물품을 해적들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 관람객은 우주선과 교신하고, 항해사에게 경로를 지시하며, 적 전함을 파괴하는 핵미사일을 발사해 많은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네 가지 유형의 우주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모략 작전, 외교 작전, 첩보 작전 등 다양한 시나리오로 각기 다른 체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미 몰입형 콘텐츠가 넘쳐나는 런던 공연계지만, ‘브리지 커맨드’는 생생하고 실감나는 우주 체험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유내리 수습기자

 


 

03 국내 화제의 몰입형 공연 및 전시

 

이제, 참여와 몰입의 즐거움은 필수!

참여와 몰입 유도형 공연이 해외에서 오른다고 부러워만 할 건 없다.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소재가 되고 있는 몰입형 공연과 전시는 국내에서도 대세가 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 + 후각

귓가에서 멀어진 잔향이 코끝에 머물 때

‘소리의 향’ 8월 5일 오후 7시 30분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음악의 집

 

음악의 집에서 열린 ‘가이드와 함께하는 음악감상회’ ©서울문화재단

사람의 오감 중에서 후각은 흔히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한 냄새는 그와 연관된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청각과 후각이 함께 만나는 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소리의 향’은 소리와 향기를 하나로 엮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작품으로써 설치미술과 연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특별 제작된 키보드의 건반을 누르면, 건반마다 입력된 향이 초음파 디퓨저를 통해 즉각적으로 분사되는 방식이다. 어떠한 음악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향이 아닌, ‘특정한 음’이라는 소리 자체에 연결된 향이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키보드에서 비롯되는 화음은 곧 향의 조합이 되어, 다른 성질의 두 요소가 직접 연결되는 ‘소리의 향’이 이뤄진다.

이 만남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은 첼로가 수행한다. 키보드만으로는 소리의 공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첼로의 음색이 더해지며 폭넓은 잔향을 이끌어 관객들의 청각을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향은 소리보다 천천히 퍼지면서도 오랫동안 머무르는 특성이 있기에, 연주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그 공간에 남아 더욱 깊은 여운에 젖어볼 수 있다.

최성혁 수습기자

 

모든 감각을 여는, 음악의 집

‘음악의 집’(서울 서초구 신반포로19길 6)은 단순히 음악을 청취하며 즐기는 범주를 넘어 책·영상·향기·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음악을 다채롭게 경험하고, 일상 속에서 음악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구성한 몰입형 공간이다.

고품질 오디오 시스템과 영상 장비로 최적의 환경에서 공연 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리스닝 룸’, 고전 회화 속 악기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오래된 악기들의 정원에서’를 포함한 9개의 특색있는 상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공간 연계 프로그램으로 클래식 음악 전문가와 연주자들을 초청하기도 한다. 지난 7월에는 ‘리스닝 룸’과 연계해 클래식 음악 큐레이터 이상민,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참여한 음악 감상회가 열렸다.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은 8월까지 진행되며, 11월부터는 겨울 시즌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이 공간이 궁금하다면 서둘러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클래식 음악 + 시각·후각

계절을 간직하는 새로운 방법

‘플레이리스트: 언타이틀드, 가을’ 9월 27일 오후 2·5시 대구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플레이리스트: 언타이틀드’ ©달서문화재단

‘플레이리스트: 언타이틀드’ 시리즈는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이 귀로 듣는 음악 외에도 시각·후각적 요소까지 포괄하여 공감각적으로 계절을 경험하도록 했다. 2023년에 처음 시작된 공연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화제성에 힘입어 올해도 지속되는 중이다.

50명이라는 적은 수의 관객만을 허락하며, 무대 전체를 휘감은 장막은 무대 가까이에 앉아 있는 관객들의 모든 시야를 감싼다. 공연이 시작되면 계절감을 담아낸 곡들이 하나둘씩 연주되고, 장막 위로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영상들이 차분히 재생된다. 여기에 조화로운 향기까지 더해지면 관객들은 시각·청각·후각이 융화되는 현장에 놓이게 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연주 프로그램을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공연 당일, 책자를 통해 그날의 선곡을 알 수 있으며, 미리 공부하지 못한 프로그램을 마주한다. 청각 위주의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공감각적인 몰입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환기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만큼, 일상에서 벗어난 ‘힐링 타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 후에는 그날 사용된 향이 담긴 향수를 선물해 주니 잊지 말고 챙기도록 하자.

최성혁 수습기자

 

 

클래식 음악 + 체험

비행기보다 빠르게 여행지에 도착하고 싶다면

‘클래식과 떠나는 유럽’ 11월 21일 오후 7시 서초문화예술회관 아트홀

 

모두의 발이 묶였던 팬데믹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던 그 시절, 조금이라도 여행과 가까운 기분을 내기 위해 마련된 공연이 있었다. 바로 ‘여행어때요?’ 시리즈다. 공연이 시작된 2020년에는 취지 그대로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 수단에 가까웠을지도 모르지만, 이 시리즈는 공연으로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어 현재는 상표 등록까지 완료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여행어때요?’ 시리즈는 소리풍경·스토리텔링·라이브 연주를 결합한 몰입형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여행지에 직접 머무르는 듯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관객들이 느끼는 소리의 방향성을 입체화했다는 부분이다. 무대에선 기본적으로 특정 국가를 주제 삼은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되는데, 그와 동시에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ASMR 사운드가 재생된다. 음악의 선율 위로 음향적인 입체감이 더해져 효과적으로 현장감을 조성한다. 무대 후면에도 여행의 대상이 되는 도시의 풍경이나 연관되는 이미지가 배경으로 펼쳐지며, 스토리를 읊어주는 자막을 통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11월 예정된 ‘클래식과 떠나는 유럽’이 바로 이 시리즈로 이루어지는 공연이다. 현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파리’의 여행이 완성된 상태인데, 이 세계관이 꾸준히 확장될 예정이라 하니, 다음으로 떠날 여행지는 어디일지 기대가 된다.

최성혁 수습기자

 

 

뮤지컬 + 미각

무대 위의 미식과 쇼!

‘커튼콜 인 샬롯-브로드웨이 42번가’ ~9.14 샤롯데씨어터

 

샤롯데씨어터가 대학로 뮤지컬펍 ‘커튼콜’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공연장과 뮤지컬펍의 협업 공간을 선보인다. 이번 협업은 스토리텔링 레스토랑 ‘몽드샬롯’에 이은 ‘샬롯 프로젝트’ 두 번째 기획으로, 일상 속에서 공연의 감동과 재미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다.

‘커튼콜 인 샬롯’은 뮤지컬에서 영감을 받은 시그니처 칵테일과 메뉴를 선보이는 미식 공간인 동시에 펍 안쪽 무대에서는 평범한 테이블 서빙 직원들이 배우로 변신해 흥겨운 뮤지컬 퍼포먼스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무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첫 테마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로, 193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의 화려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재해석한 칵테일과 메뉴를 맛보며, 배우들의 생생한 쇼까지 즐길 수 있다.

 

 

연극 + 체험

당신이 지목할 오늘의 범인은 누구?

‘쉬어매드니스’ ~8.31 콘텐츠박스

 

미용실 위층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수사관이 출동해 용의자들을 심문하기 시작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도, 범인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수사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관객의 개입이다. 이 연극에서 진짜 수사관은 무대 위 배우가 아니라, 객석에 앉은 관객 자신이기 때문이다.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미국 보스턴에서 1980년 초연된 이후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코믹 추리 수사극이다. 한국에서는 2006년 라이선스 초연되어, 국내 최초의 이머시브 연극으로 관객의 눈도장을 찍었다. 작품은 미용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관객의 추리로 좁혀가는 독창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극의 초반에는 무대 위 배우들이 사건을 재현하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배우들은 관객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사건의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되짚어가며 자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관객은 자신이 포착한 단서와 캐릭터의 행동을 근거로 범인을 지목하게 되는데, 이 투표 결과에 따라 매 공연의 결말이 달라지는 것이 ‘쉬어매드니스’의 가장 큰 묘미다.

 

 

연극 + 체험

검열과 자유, 무대와 객석의 경계

‘미러’ 6.24~9.14 예스24 아트원 1관

 

하객으로 초대된 관객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리에 앉는다. 신랑 ‘조엘’과 신부 ‘레일라’의 결혼식이 시작되고, 사회자는 가볍게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식순은 어딘가 어색하고, 배우들의 말투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돈다. 잠시 후 관객은 깨닫게 된다. 이 결혼식은 ‘진짜’가 아니다. 신랑, 신부, 들러리는 모두 배우이고, 자신은 연극을 보기 위해 ‘하객’으로 위장한 셈이다. 결혼식을 가장한 연극은 어느 순간, 그 안에서 또 다른 연극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무대와 객석, 극 중 인물과 현실 속 인물 사이를 넘나들며, 마치 사건 한복판에 개입한 인물처럼 서사에 흡수된다.

6월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연극 ‘미러’는 관객을 극장이라는 공간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초대’한다. 작품은 검열의 시대를 배경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2023년 영국 알메이다 시어터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2024년 웨스트엔드 재연 당시에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창적 구성과 날카로운 사회 비판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연극 중반부에 이르러 드러나는 예상치 못한 반전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홍예원 기자

 

 

전시 + 체험

시대를 앞질러 먼저 도달한 작가

‘안소니 맥콜: Works 1972-2020’ 5.1~9.7 푸투라 서울

 

“위험합니다. 안전하게 이동해주세요.” 흑암에 잠긴 공간 안에서 안전을 우려하는 스태프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든다. 조심히 발을 내딛다가 마주한 전시 공간은, 관람객의 온전한 몰입을 도와주는 똑똑한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1m의 높은 층고에서 청량한 빛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빛에 의해 바닥에 그려진 둥근 선은 빛과 어우러져 마치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같다. 어둠 속 세 개의 둥근 원뿔을 휘둥그레 쳐다보다 이내 그 속으로 들어가 빛을 만끽해 본다. 빛 속에서 손을 휘저어보기도, 몸을 이래저래 흔들었다. 관람객은 곧 작품의 일부로 스며든다.

이 작품은 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안소니 맥콜(1946~)의 대표작인 ‘솔리드 라이트’로, 미국 휘트니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 시리즈다. 이 시리즈를 포함한 안소니 맥콜의 개인전이 아시아 최초로 푸투라 서울(대표 구다회)에 상륙했다. 현대적인 감각의 전시가 가장 한국적인 공간, 북촌에서 열리는 점 또한 이색적이다.

푸투라 서울의 이현지 큐레이터는 안소니 맥콜을 “21세기에 먼저 도착한 아티스트”로 소개했다.

“영화관에 가서 보는 영상은 간접적인 퍼포먼스 기록물이죠. 이머시브의 선구자인 안소니 맥콜은 그 점을 인식해 관객과 영상이 하나가 되도록 관객을 투사기 안으로 초대했어요. 이 작품은 드로잉-시네마(영상)-퍼포먼스가 하나로 결합된 맥콜의 의도였으며, 무려 반세기 전에 맥콜은 ‘이머시브’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입구 2.5층에는 그의 아카이브룸이 마련되어 있는데, 작가의 아이디어 및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주요 문헌들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지난 50여 년간 영화·설치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맥콜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주저할 것 없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길.

유내리 수습기자 사진 푸투라 서울

 

 

전시 + 체험

전쟁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존엄성

‘아더랜드 Ⅱ: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 6.3~8.1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원형전시실

 

‘드라마 1882’

어린 소년 눈에 비친 전쟁의 모습은 어땠을까? 전쟁 속에서 자란 소년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는 역사 속 사건을 재해석한 작품을 다룬 작가 와엘 샤키와 아크람 자타리의 대표작들로 오늘날 우리에게 깨우침을 준다. 중동 출신의 와엘 샤키의 ‘드라마 1882’는 19세기 말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 계기인 ‘우라비 혁명’을 총 8장의 입체적인 오페라 영상으로 보여준다. 무대는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 등 참혹한 도시 풍경으로 바뀌고, 느리게 움직이는 배우들은 마치 조종당하는 이집트인들 같다.

레바논 출신 아크람 자타리의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가가 겪었던 실화다.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당시 이스라엘 조종사가 레바논의 학교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거부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왜 명령을 거부했을까?’라는 의문이 작가의 성장기에 깊은 고민으로 남는다. 폭격을 당한 도시의 사진을 통해 전쟁의 참혹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다. 관람객 누구나 현장에 마련된 공간에서 전시 내내 마주한 기록된 역사를 떠올리며, 조종사와 작품 속 인물에게 자유롭게 편지를 쓸 수 있다. 별도의 신청 없이 참여할 수 있으니, 꼭 들러 느꼈던 감정들을 나눠보길 추천한다.

 

 

전시 + 체험

감각의 경계에서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 7.10~12.2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4관

 

‘데이터의 우주’ ©Tuomas Uusheimo

료지 이케다는 수십 년간 소리와 빛, 수학적 구조와 데이터를 탐구해온 사운드 아티스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김상욱) 개관 당시 첫 융복합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가, 10년 만에 다시 전당을 찾았다. 이번 개인전에서 이케다는 자신이 구축해 온 미술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DNA 패턴이 10m 길이의 LED 스크린 위로 쉼 없이 흐르고, 바닥에 깔린 스크린에서는 전자음과 함께 투사된 형체들이 공간을 바꾼다. 때로는 고주파 소리와 강렬한 빛, 빠른 영상의 전환이 감각을 압도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데이터를 눈으로 본다기보다, 그 안에 잠긴 채 끝없는 반복과 진동 속에서 인식의 경계에 부딪힌다. 스테인리스 패널·천·아크릴판 위에 바코드 패턴이 인쇄된 ‘잠자는 아름다움’ 시리즈와 ‘데이터 신호’가 전시에서 최초 공개된다. 40미터에 달하는 벽을 가득 채운 ‘데이터의 우주’를 보는 관객은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 앞에 선 채, 끝없이 이어지는 우주를 응시하게 된다. 이곳의 전시는 그저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닌, 작품 안으로 들어가 데이터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에 가깝다.

유내리 수습기자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아시아문화전당

 


 

04 한국에 상륙한 화제의 공연

 

PREVIEW

 

펀치드렁크 ‘슬립노모어’ 7.24~8.31

잠들 수 없는 호텔, 공연 관람의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 그 밤으로

 

관객의 감각과 동선을 중심으로 극을 구성하는 ‘이머시브 연극’은 최근 공연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새로운 형식으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이 극으로 직접 들어가 배우와 함께 서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의 공연이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공간을 걷고 냄새를 맡으며 등장인물과 호흡을 나누는 모든 감각적 경험이 서사의 일부가 된다.

이머시브 연극의 대표작이자, 정점으로 꼽히는 펀치드렁크의 ‘슬립노모어(Sleep No More)’가 서울 충무로에 상륙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한 이 공연은 2011년 뉴욕 첼시의 5층 건물에 ‘맥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이라는 간판을 달며 시작됐다. 관객은 흰 가면을 착용한 채 극장 곳곳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서사 순서도, 등장인물도, 관람 방식도 정해져 있지 않다. 관객의 선택과 이동에 따라 매번 다른 이야기 구조가 형성되며, 일부에게는 은밀한 일대일 퍼포먼스가 제공되기도 한다. 철저히 개별화된 동선 설계와 장면 구성은 기존 연극 관람의 틀을 넘어서는 몰입 경험을 선사한다.

2000년대 초, 런던의 버려진 군 막사에서 공연을 시작한 펀치드렁크는 관객의 감각을 일깨우는 독창적인 연출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현대 공연예술의 지형을 새롭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상하이·홍콩·보스턴 등으로 작품을 확장했다.

서울 공연은 공연계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충무로의 옛 대한극장을 전용 공연장 ‘맥키탄 호텔(The McKithan Hotel)’로 개조해 관객을 맞이한다. 1930년대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구성된 이 공간에서 관객은 숨겨진 단서를 따라 이동하며 이야기의 구조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간다. 공연 전후로 운영되는 ‘맨덜리 바(Manderley Bar)’는 단순한 대기 공간을 넘어, 드링크와 재즈 공연이 어우러진 감각적 무대로 확장된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이야기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처럼 관객의 선택과 해석에 따라 전개가 달라지는 이머시브 연극의 특성상,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사전 정보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맥베스’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슬립노모어’의 연출 구조를 미리 알고 관람하면 극의 상징과 장면 간 연결을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의 감각적 요소를 그대로 체험하는 것 또한, 다른 방식의 몰입이 될 수 있다. 단, 주요 장면이나 연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알려질 경우, 관람의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스포일러’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홍예원 기자 사진 미쓰잭슨

 


 

05 몰입형 공연 제작기

 

INTERVIEW

 

클래식 위크엔즈 8.8~24 예술감독 홍혜란

‘빛의 시어터’에 클래식 음악이 들어서는 순간, 작품-연주자-관객의 연결고리는 새롭게 변한다

 

오는 8월, 빛의 시어터(서울 광진구)에서 대규모 미디어아트와 음악이 조화되는 몰입형 페스티벌 ‘클래식 위크엔즈’가 열린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8.8·16·22·24)를 비롯해 임지영·문태국·손정범(8.9), 사무엘 윤·이동규(8.10), 손열음과 고잉홈프로젝트(8.15), 첼리스타 첼로앙상블(8.23) 등 다양한 연주자들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각 공연이 미디어아트와 어우러지며 어떠한 경험을 선사할지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예술감독 홍혜란에게 몰입형 음악 공연의 준비 과정을 들어보았다.

 

처음 빛의 시어터라는 공간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빛의 시어터는 공연이 가능한 극장 구조를 갖춘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이다. 넓이 1,500평, 높이 21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 한 폭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관객 1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임에도, 379개의 좌석만을 비치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무대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페스티벌의 특징은 ‘몰입형 클래식 음악’이다. 공연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공간 전체가 미디어아트로 뒤덮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무대 출입구 역시 객석 후면을 포함해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 ‘라 트라비아타’의 경우, 출연자들이 다양한 동선으로 등장하고 퇴장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자연스럽게 무대의 일부가 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화려한 라인업이 눈에 띄는데, 연주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기존의 틀을 깨는 공연인 만큼,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연주자들이 필요했다. 충분히 실력이 입증된 연주자를 우선으로 생각했던 이유다. 감사하게도 제안을 드린 모든 연주자들이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몰입형 무대를 준비하며 느낀 소감이 궁금하다.

음악 공연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감각적 영역이 확장되기를 바라며, 클래식 음악이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한다. 클래식 음악은 원형을 지키는 예술이지만, 미디어아트는 형식을 뒤흔드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두 특성의 충돌이 빚는 긴장감이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고, 음악 위에 시각적 감각이 덧입혀지며 관객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몰입형 클래식 음악 공연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라는가?

대중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되, 클래식 음악 본연의 정체성과 예술적 깊이는 반드시 지켜나가는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

최성혁 수습기자 사진 아트포드(ARTPOD)

 

홍혜란(1981~)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줄리아드 음악원 석사 및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우승했으며, 2019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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