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20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작곡가 정태봉
대작곡가들의 사유와 작품
글 정태봉(1952~) 서울대 음대 작곡과 및 동대학원 졸업 후, 독일 카를스루에 음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 한국음악상, 민족음악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유튜브를 즐겨 이용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참 쓸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한 곡 하나에 대한 자료도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주자와 연주단체도 다양하고, 음질이나 화질도 괜찮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세 작품에 대한 자료도 다양하게 올라와 있군요. 이 세상에 가장 좋은 연주는 있을 수 있어도 완벽한 연주란 없습니다. 열 가운데 여덟이나 아홉이 좋다고 추천하는 연주가 내 취향에는 잘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특정 음반이나 연주자를 추천하지 않으려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전원’과의 조우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음악과의 운명적 만남
감상 포인트 베토벤이 직접 붙인 각 악장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또 바람직한 일입니다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라디오 외의 오디오 기기는 없었기에, 클래식 음악이라면 가곡이나 소품, 혹은 교향곡의 한 악장 정도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가끔 접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저에게는 참 귀한 시간이었지요.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동요 멜로디 정도는 오선지에 옮겨 적을 수 있었으며, 한 번 들은 곡은 곧잘 기억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가의 꿈을 꾸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꿈은 꾸지도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군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늦은 저녁,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1악장을 소개하는 멘트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무렵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1869~1951)의 소설 ‘전원 교향악’(1919)을 어렵사리 구해 읽은 일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지요. 그날 그 방송에서의 ‘전원’은 1악장으로 끝이었는데, 저는 지드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를 상상하며,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영감으로, 어느 순간 그의 온몸에는 전율이 일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언젠가 전 악장을 다 듣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는데, 그 소망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습니다.
얼마 후, 중학교에 진학해 음악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합창단원 중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음악실로 오라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어서 방과 후, 음악실로 향했습니다. 얼마 모이지 않은 학생 중에서 저는 베토벤 교향곡 6번을 신청했는데, 다행히 다른 곡을 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품고 있던 ‘전원’의 전 악장을 모두 듣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음악을 들으며 저는 줄곧 베토벤이 자연에 대해 품었던 사랑, 사랑을 넘어선 외경심(畏敬心)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존경과 아울러 감히 공감을 표하고 싶었던 귀한 시간이었지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작곡가의 길을 택하다
#바흐 #b단조 미사 BWV232 #영성과 이성의 조화
감상 포인트 가톨릭교회 미사 통상문의 내용을 숙지한 후, 그것을 가사로 채택했던 루터교 신자 바흐의 종교관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갖고 접근하면 감동의 세계가 곧 다가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저는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기독교 신앙에 몰입하는 한편, 역사·철학이나 타 종교의 이념 등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요. 또 음악사에 등장하는 작곡가들과 그들이 작곡한 작품의 가치에 대해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작곡가의 길을 선택하는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평일 방과 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실에서 오디오 볼륨을 최대한 줄여 음악을 들었습니다. 오디오 볼륨을 줄인 이유는, 방과 후에도 교내에 남아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지요. 방학이나 공휴일에는 아예 도시락 두 개를 싸서 등교하여 종일 음악실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는 음악 선생님과 학교 열쇠를 관리하는 직원에게 ‘음악을 전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명목으로 미리 양해를 구해둔 덕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이 시기 비교적 자주 들었던 작품은 바흐의 b단조 미사 BWV 232였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 한 번에 전곡을 듣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지요. 대학 진학 후로 미뤘다는 뜻입니다. 일부분만을 들으면서도, 더할 수 없이 높은 종교적 영성(靈性)의 세계, 혹은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저는 결국 작곡가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세대를 넘어선 대가들의 공감대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구원의 시간을 향한 기원
감상 포인트 ‘메시앙의 현대음악은 어떤 양상인가?’ ‘메시앙의 작품에는 과연 새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타날까?’ 이런 식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집중해서 접근하다 보면 무언가 나타납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현대음악을 접하며 음악적 사고의 폭을 넓혀갔습니다. 20세기 현대음악사에 등장하는 작곡가들 가운데 독자적 기법과 독특한 사유의 세계로 제 관심을 끌었던 첫 작곡가는 프랑스의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입니다. 그의 작품 중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제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지요. 이 곡의 제목을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시간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이 지닌 내용적 의미가 서로 통하므로, 두 가지 번역 모두 인정받고 있습니다.
메시앙은 선법(旋法), 리듬, 강도(强度)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여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일생의 대부분을 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는데, 이는 루터교 신자로서 오랜 세월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던 바흐와 크게 닮았습니다. 한편, 그는 프랑스 안팎을 발로 뛰며 새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는데, 그 수준이 조류학계도 전문 학자로 인정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는 온갖 새소리를 채보하여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점은 조류학자로서의 자신과 현대음악 작곡가로서의 자신이 서로 동떨어진 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메시앙의 4중주에서도,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에서 읽을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사랑 또는 외경심이 드러나며, 아울러 바흐의 b단조 미사에서 접할 수 있는 종교적 영성의 세계, 혹은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성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 또한 읽힌다는 것입니다. 대가들의 사유 사이에서 공감대는 세대를 넘어 이러한 양상으로도 나타납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작곡되고 초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메시앙이 전쟁 중 징집되어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폴란드 어느 수용소에 갇혔는데, 그곳에 포로로 잡혀 와 있던 연주자들의 악기를 편성으로 하여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은 포로 중에 그 악기의 연주자가 있었으므로 편성에 포함된 것이지요. 피아노는 메시앙이 맡았는데, 수용소의 피아노가 엉망이라 그 상태를 감안해 곡을 쓸 수밖에 없었답니다. 건반에 문제가 있는 음이라면, 곡에서 아예 제외해 버린다는 뜻입니다. 1941년 1월 15일, 수용소 안 5천여 명의 포로들 앞에서 이 곡이 초연되었는데, 혹한의 겨울, 난방이 제대로 되었을 리 없는 상황인데도, 포로들은 모두 놀라운 집중력으로 이 음악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