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헤, 음악사 종횡무진, 바흐로 돌아오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9월 1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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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헤

종횡무진 음악사, 바흐로 돌아오다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함께 선보이는 농익은 고음악의 맛

 

필리프 헤레베헤의 첫 내한은 2006년 6월이었다.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LG아트센터에서 바흐 ‘b단조 미사’로 첫 공연을 마쳤다. 7년 뒤 2013년, 헤레베헤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38·40·41번을 연주했다.

2017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교향곡 5·7번을 들려줬고, 2023년 예술의전당과 부천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연주했다. 올해 다섯 번째로 내한하는 헤레베헤는 다시 바흐로 돌아간다. 9월 18일 예술의전당, 19일 대전예술의전당, 20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바흐 ‘b단조 미사’를 펼친다.

 

촉망받는 의대생이 고음악에 눈뜨게 된 계기

1947년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난 헤레베헤는 8세부터 18세까지 예수회 학교에 다녔고, 사제가 지휘하는 성가대에서 매일 노래했다. 12~13세부터 학교 합창단에서 쉬츠·바흐·팔레스트리나를 지휘하고 합창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동시에 겐트 음악원에서는 피아노를 공부했다. 그때부터 라흐마니노프보다는 오래된 음악 쪽에 매력을 느껴, 졸업 후에도 합창 지휘 활동을 계속하며 20세에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조직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고음악을 사실상 아마추어의 음악으로 간주하곤 했다. 헤레베헤도 고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으며, 정신과 의사가 되어 취미로 바흐를 지휘하려고 생각했다. 의대에 진학하고 쳄발로와 오르간도 공부하다가 고음악 명인 구스타프 레온하르트(1928~2012)를 만났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텔레풍켄 레이블에서 시작한 바흐 칸타타 전집 녹음에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가 참가해달라고 레온하르트가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헤레베헤는 레온하르트, 프란스 브뤼헨(1934~2014),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 안너 빌스마(1934~2019) 등과 함께 녹음 작업에 참여했다. 모두가 훌륭한 고음악 스승들이었다. 그때 ‘이것이야말로 내가 할 일’이라고 느낀 헤레베헤는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전문 합창단을 만들자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음악원으로 돌아와 성악과 지휘도 배웠다.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

바로크 음악에 대한 헤레베헤의 접근은 각광받기 시작했다. 1977년 프랑스 바로크의 황금기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앙상블인 라 샤펠 루아얄(La Chapelle Royale)을 파리에서 설립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는 프랑스 생트 음악 아카데미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서로 다른 그룹과 앙상블을 운영하면서, 헤레베헤는 르네상스에서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여러 레퍼토리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알맞은 그릇에 담아 해석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다성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앙상블 보컬 외로펭(Ensemble Vocal Européen)과 고전과 낭만 레퍼토리를 연주하기 위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등이 헤레베헤의 뜻을 펼치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2009년 이래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시에나의 아카데미아 무지칼레 키자나(Accademia Musicale Chigiana)의 초청으로 EU의 지원을 받아 높은 수준의 합창단 육성에 힘을 모았다.

2020/21시즌에는 막달레나 코제나와 앤드루 스테이플스와 함께 말러 ‘대지의 노래’를 원전연주로 선보였다. 2022/23 시즌에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빈 심포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베를린 방송교향악단·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콜레기움 보칼레 및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유럽 및 아시아 투어를 돌았다.

헤레베헤가 남긴 족적과 음반들

헤레베헤는 아르모니아 문디·버진 클래식·펜타톤 레이블 등에서 100장이 넘는 음반을 녹음했다. 라수스의 ‘성 베드로의 눈물’, 바흐 ‘마태 수난곡’, 베토벤과 슈만 교향곡 전곡, 말러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브루크너 교향곡 5번,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스트라빈스키의 ‘시편 교향곡’ 등 바로크 이전에서 20세기 음악까지 종횡무진이었다. 2010년 헤레베헤는 자체 음반사 ‘파이(Phi)’를 설립하여 그가 원하던 다양한 음악을 보다 자유롭고 풍부하게 펼쳐 보였다. 바흐·베토벤·브람스·드보르자크·제수알도·말러·모차르트·빅토리아 등의 작품이 파이를 통해 발매되었고, 2014년에는 바흐 ‘라이프치히 칸타타’, 하이든 오라토리오 ‘사계’, 윌리엄 버드의 ‘인펠릭스 에고’가 출시되었다.

“17세기 작곡가 사무엘 샤이트나 하인리히 쉬츠를 알면 19세기 브람스나 말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람스를 자세히 공부하고 싶다면 바흐·샤이트·쉬츠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브람스의 몇몇 곡은 낭만적인 화성을 가진 쉬츠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크·고전·낭만은 서로 통해요. 제가 스트라빈스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지휘하는 이유입니다”

헤레베헤의 지휘가 다른 원전연주 명인들과 구분되는 점은 ‘어슴푸레함’이다. 지극히 투명한 해석의 가장자리에 안개 같은 아우라가 걸쳐 있다.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감은 고해상도의 피로감을 줄이고 작곡가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에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가 연주하는 바흐 ‘b단조 미사’는 ‘음악의 헌정’ ‘푸가의 기법’과 더불어 바흐 후기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웅장한 푸가, 섬세한 솔로, 극적인 합창 등 여러 가지 기법과 형식이 동원된 바로크 예술의 결정체다. 이 작품을 세 차례나 녹음한 헤레베헤가 다시 바흐로 돌아온다. “이미 녹음한 명곡들도 다른 식으로 연주해보고 싶다”고 했던 헤레베헤. 그가 펼쳐 보일 인류 정점의 예술이 궁금해진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크레디아

 

필리프 헤레베헤(1947~) 겐트 대학과 겐트 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1970년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창단 이래 라 샤펠 루아얄·앙상블 보컬 외로펭·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잇따라 창단하였다. 생트 음악 아카데미 예술감독을 역임, 현재 고음악 전문 지휘자로 활동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필리프 헤레베헤/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9월 18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19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9월 20일 오후 5시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바흐 ‘b단조 미사’ 필리프 헤레베헤(지휘)/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예린 미라·마리 루이제 베르네부르크(소프라노), 알렉스 포터(알토), 가이 커팅(테너), 요하네스 캄러(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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