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ION 1 | ENVIRONMENT
한국국제예술학교장·바이올리니스트 남카라
모든 학생은 잠재력을 품고 있다
나열된 순위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는 교육
근래 들어 국내에서는 우수한 예술 인재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국내의 예술 교육 시스템이 충분히 잘 갖춰졌다는 방증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는 오랜 시간,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도한 경쟁 구조 속에 ‘최고’가 되지 못하면 따라붙는 낙인, 주입식 교육의 한계, 본질적인 예술 교육의 부재에 관한 문제점들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그 가운데, 기존에 없던 방식의 예술 교육을 제시한 학교가 있다. 바로 2022년 개교한 한국국제예술학교. 경기도 이천 사기막골 도예촌 산자락에 자리한 이 학교는 옛 음악가들처럼 자연에 둘러싸여, 그리고 이천의 도자기·쌀 등이 유명한 만큼 가장 한국적인 기운을 받으며 예술적 소양을 키워나가기를 바란 결실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안학교’라는 형태이다.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유연하고 탄력적인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대안학교를 채택함으로써 실현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선으로 예술 교육을 바라보다
일반적인 학교 교육과정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일반 교육 시수를 줄이고, 전공과 관련된 시수를 많이 늘렸다. 그 외에도 주법의 감각을 위한 체육 수업, 연기를 통한 무대 공포증 극복과 같은 특색 있는 수업도 진행한다. 학생들이 예술적으로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미술이나 무용, K팝과 관련한 수업도 구성하였다. 느슨한 일과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긴 연습으로 쏟는 에너지가 상당하여 학생들의 체력적인 관리도 병행하고 있다.
재학생들은 학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좋아한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생활하기엔 다소 동떨어진 입지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충분한 연습 시간과 수면시간을 확보하면서도, 일반적인 예중·예고에서 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수업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성장하며 오히려 ‘학교-학원-집’을 수없이 반복하던 일과보다 더욱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낀다.
2022년 개교하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개교 이래 성과가 있다면?
배출한 졸업생들이 거의 모두 지망하는 학교에 붙거나 원하는 유학길에 올랐다. 최근 이천문화재단과 상호협력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의 취지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음악인들이 많다. 해외 음악인들도 찾아와 며칠 머물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바이올리니스트, 1984~)도 방문했다. 아티스트들이 머무는 동안 마스터클래스 외에도 학생들과 식사도 함께 하고 담소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가까이 마주하는 경험은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수업 이상의 자산이 된다. 그렇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부터가 가장 큰 성과이자 보람이기도 하다.
교육자의 으뜸 덕목은 잠재력 찾기
예술 교육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지냈는데, 당시 배우던 선생님께 직접 “너는 교육자를 해야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제자들끼리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때마다 선생님은 서로 간의 코멘트도 요구하셨는데, 말을 아끼던 친구들과 달리 숨김없이 의견을 내놓곤 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이후로 동기나 선·후배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나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이것이 내 길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육자를 지망했던 것인가?
그때까지는 연주자로서의 꿈이 더 컸다. 그러다 한국에 일정 기간 머물러야 했던 상황에서 잠깐이지만 국내 예고를 다녔었는데, 그때부터 국내의 예술 교육 시스템에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물론 금방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귀국했는데, 내가 겪었던 시스템에서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그 후로 국내 예술 교육 환경에 더욱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여기는 것은?
당장 눈에 띄는 실력보다 ‘잠재성을 보는 것’, 그리고 ‘인성’을 갖추는 것이다. 각자의 잠재성이 어느 순간에 발현될지는 아무도 모르는데도, 많은 학생이 매 순간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하고 상처 입는다. 하지만 그 잠재력이 터지기까지 이끌고 가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다소 와일드한 성격이었던 나를 꾸준히 지켜봐 주신 선생님들 덕에 지금의 내가 있듯이 말이다. 이와 더불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인격적으로 모나지 않은 음악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학생들 개개인의 실기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대신 등급과 코멘트를 부여하는데, 지난번에 비해 나아진 부분에 초점을 둔 면밀한 코멘트를 통해 꾸준한 개선을 유도한다. 또한 끊임없이 소통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까지 꾸준히 소통하며 고충이나 애로사항을 최대한 없도록 만드는 편이다. 사실 학생들이 기숙사의 규칙 속에 함께 숙식하며 지내는 환경부터가 그들 간의 소통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자립심과 사회성 또한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살아야 한다
원래 연주자로서 왕성히 활동해 왔다. 개교 이래로 연주 횟수가 많이 줄었는데,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인생에서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 타이밍이 있다고 느낀다. 교육자로서 더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는 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이에 초점을 두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균형을 맞춰나간다. 본질적으로 연주와 교육 모두 사회를 밝히는 이타적인 행위이다. 연주를 통해 관객들을 마주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학생들을 마주하고 보듬는 경험이 결코 성취감 면에서 덜하지 않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살아야 한다. 음악인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 남길 수 있는 것은 교육이다. 학교 설립을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남겨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대해 한 말씀.
어떤 거창한 계획보다는 그저 ‘이런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며 설립한 학교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 학교의 교육 방식이 대외적으로 더욱 인정받으며 ‘가고 싶은 학교’가 되어 더 많은 학생을 육성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음악인들과 학교를 꾸준히 연결하고 있는데, 이러한 네트워크를 더 확장하여 한국에서도 가장 국제적인 문화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로 키워나가고 싶다.
글 최성혁 수습기자 사진 한국국제예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