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칼럼 | 두다멜과 LA필의 명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0월 10일 9:00 오전

RECORD COLUMN

음반에 담긴 이야기

 

태양 같이 뜨거운, 열정의 기록

10월 내한하는 두다멜과 LA필이 함께 담은 시기별 명음반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1981~)은 조국의 ‘엘 시스테마’를 상징하는 인물로 각인돼 있다. 올해 44세의 두다멜은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거쳐 2009년부터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LA필)의 음악감독을 맡아온 젊은 마에스트로다. 내년 9월부터는 동부로 옮겨 뉴욕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취임할 예정인 그의 LA필 시절 음반들을 반추해 본다.

 

말러에 방점을 찍으며

2009년 두다멜은 미국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명단에 들었다. 그해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켰던 역량을 지닌 채, 두다멜은 에사 페카 살로넨의 뒤를 이어 LA필에 취임했다.

월트디즈니홀에서 열린 취임 기념 연주회(DG)❶야말로 두다멜과 LA필의 공동 작업 중에서 가장 먼저 접해봐야 할 기록이다. 당시 28세의 두다멜은 재즈 드럼과 색소폰도 등장하는 존 애덤스의 ‘시티 누아르’를 세계 초연하고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지축을 울리는 혈기로, 젊은 지휘자가 그리는 젊은 말러는 크고 또렷하며 희망적이다.

말러 교향곡 9번(DG)❷은 2012년 2월, LA필의 본거지인 월트디즈니홀에서 실황으로 녹음됐다.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은 알반 베르크의 말처럼 죽음이 닥쳐오기 전까지의 세상에 대한 삶의 애착, 평화롭게 삼라만상을 향유코자 하는 갈망과 아픔이 드러나는 곡이다. 두다멜은 생의 아름다움과 애착을 또렷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길어 올린다. 29분대에 주파하는 1악장은 여느 거장들의 해석과 비교해 봐도 느린 축에 속하는데, 가슴을 뛰게 하고 아프게 하며, 부지불식간에 시간이 지나간다. 3악장 론도 부를레스케는 일반적인 해석에서 풍기는 냉소적인 분위기 대신에 따스한 격려가 스며있다. 4악장은 근래 녹음 중 손꼽을 만하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현악군의 연주가 빛나는 도입부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며 마지막으로 보인 따뜻한 미소 같은 연주다. 뛰어난 홀의 환경을 그대로 반영한 명료한 녹음도 우수하다.

말러 해석에 탁월한 두다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녹음이 있다. 2012년 2월 두다멜은 LA필 단원들과 카라카스로 향했다. 작곡가 서거 100주기를 기념해 말러 교향곡 8번 ‘천인’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LA필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합창단, 시몬 볼리바르 유스 코러스, 스콜라 칸토룸 베네수엘라, 소프라노 마누엘라 울·줄리아나 디 자코모·키에라 더피, 테너 부르크하르트 프리츠, 콘트랄토 안나 라르손·샤를로트 헬레칸트, 바리톤 브라이언 멀리건, 베이스 알렉산더 비노그라도프 등 1,400명이 넘는 음악가가 동원됐다. 현장감 넘치는 편집이 돋보이는 DVD와 블루레이(DG)❸는 큰 화면에 대형 기기로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영상물이다.

2013년 8월에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볼에서 연주된 베르디 ‘레퀴엠’ 실황(C Major)❹은 소프라노 줄리아나 디 자코모, 메조소프라노 미셀 드영,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베이스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등 화려한 성악진을 자랑한다. 한마디로 심플하고 대담한 두다멜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연주다. 야외 음악당이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인지 개방적인 울림과 장려함이 한결 더 느껴진다. 이 연주 뒤 9월 두다멜은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에서 베르디 ‘리골레토’를 지휘하는데, 그 또한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연주로 회자된다.

 

다양한 기획력으로 빛난 공연과 실황 녹음

2018년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전곡 음반(DG)❺은 디즈니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비밀의 왕국’ 개봉에 맞추어 발매됐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도 지휘는 두다멜이 맡았고, 그와 LA필의 10주년 기념반이기도 하다. 모음곡 발췌반은 흔하지만 전곡반이라는 점에 가치가 있다. 두다멜의 지휘는 생각보다 느긋하며 발레 전체의 흐름을 부감하고 있다.

‘존 윌리엄스를 기념하며’(DG)❻는 2019년 1월 LA 연주회에서 실황으로 녹음됐다. LA필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 ‘올림픽 팡파르와 테마’ ‘스타워즈’ ‘쥬라기공원’ ‘해리 포터’ 등 존 윌리엄스의 작품들을 부드럽게 해석했다. 강력한 사운드와 긴장감 높은 실황의 묘미가 팝콘처럼 터지는 매력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

존 애덤스의 피아노 협주곡 ‘좋은 선율은 악마가 다 가져야 하나?’는 작곡가의 세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다. 2019년 3월 초연하여 월트디즈니홀을 뜨겁게 달궜고, 그해 LA필의 내한 공연에서도 두다멜 지휘로 유자 왕이 함께 연주했다. 세계 최초 녹음되어 디지털과 LP(DG)❼로 발매됐다. 헨리 맨시니의 ‘피터 건’ 주제곡을 차용한 도입부부터 매력이 넘친다. 유연하고 능숙한 유자 왕의 연주는 솔로곡인 ‘차이나 게이트’로 이어진다.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음반들 중에 유자 왕과 두다멜, LA필의 음반(DG)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23년 2월 월트디즈니홀에서 열린 실황 녹음이다. 라흐마니노프 예술의 핵심인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를 집대성한 이 앨범에서 유자 왕은 마치 파도를 타듯 LA필의 관과 현에 면밀하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예각적인 기교와 함께 러시아적인 정서를 내뿜는다. 열정적인 협주곡 1번부터 너무나 귀에 익은 협주곡 2번과 3번의 로맨틱함과 격정을 거쳐 협주곡 4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까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과 작곡가의 전 생애가 유자 왕의 피아노와 두다멜의 열정에 투영된다. 두다멜은 이 연주에 대해 “실내악에 가까운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두다멜이 “풍부한 착상으로 독창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낸 아이브스의 교향곡은 세계를 향한 선물”이라고 말한 아이브스의 교향곡 모음반(DG)❾은 두다멜이 미국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서 우리 앞에 내놓은 선물이라 평가할 만하다. 아이브스는 순수한 미국인이다. 미국의 일상적인 음악과의 새로운 접점을 찾아,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의 형식 속에 다조성 음악이나 폴리리듬, 다양한 텍스처를 도입했다. LA필이 아이브스의 교향곡 전곡(4곡/2CD)을 녹음함으로써 미국 악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이 농후한 교향곡 1번, 찬송가·행진곡·민요와 자신의 오르간 곡으로부터 차용한 선율이 있는 교향곡 2번, ‘오래된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섞인’ 미국적인 교향곡 3번, 철학과 형이상학, 음악적으로 원숙한 착상이 들어간 교향곡 4번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다. 두다멜의 열정적인 지휘와 LA필의 미국적인 정신은 원 작품의 모호함에서 먼지를 더욱 털어낸다.

 

끊임없이 지속된 음악의 확장

내한 연주로 친숙한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와 함께한 2023년 11월 월트디즈니홀에서의 연주(Decca)❿. 하차투리안 피아노 협주곡은 알리시아 데 라로차, 베레좁스키 등의 협연이 유명하지만 요즘은 공연 레퍼토리에서 보기 힘들기에 상당히 반가웠던 음반이다. 티보데는 특유의 친밀감과 색채감, 향기를 부여하고, 두다멜과 LA필은 서정성과 경쾌함의 낙차를 즐길 수 있도록 담아내고 있다. 콜번 스쿨에서 녹음된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의 아다지오’ ‘칼의 춤’, 가면무도회 모음곡 등 하차투리안 피아노 독주곡들의 연주도 빼어나다.

토마스 아데스(1971~)의 발레음악 ‘단테’ 전곡(Nonesuch)⓫은 두다멜이 무용 음악의 역사에 남긴 족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2021년 단테 서거 700주기를 맞아 영국 로열 발레와 LA필이 첫 공동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지옥-연옥-천국 중 웨인 맥그레거의 안무로 2019년 10월 ‘지옥’이 초연됐고, 2021년 10월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3부 구성으로 전작이 무대에 올려졌다. 음반은 2022년 4월 월트디즈니홀에서의 실황 녹음이다. 웅장하고 미래적인 작품은 리스트나 프로코피예프, 홀스트의 작풍을 연상시킨다. 꽉 찬 듯한 공간감과 압도적인 파워, 풍부한 표현이 돋보인다.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PERFORMANCE INFORMATION

구스타보 두다멜/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월 21·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1일 |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22일 | 존 애덤스 ‘격노’,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봄의 제전’

 


 

뉴욕 현지 리뷰 | 두다멜/뉴욕 필하모닉·협연 임윤찬 9.11

뉴욕필의 첫 시즌을 장식한 그들의 첫 호흡

 

뉴욕 필하모닉 2025/26 시즌 개막 공연은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에서 막을 올렸다. 내년부터 음악감독을 맡을 두다멜의 지휘 아래 첫 음이 울리자마자 관객은 음악의 흐름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갔다. 두다멜 특유의 에너지와 자유로운 지휘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가 함께 만들어내는 긴장과 조화를 생생히 드러냈다. 그의 손끝과 눈빛, 몸짓이 악단과 하나 되어 음악은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이번 시즌 개막 프로그램은 예상 밖의 선택이었다. 널리 연주되는 곡들이 아니었지만, ‘고향’이라는 주제를 매개로 세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프로그램이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고 하면서 “란질로티의 하와이, 버르토크의 헝가리, 아이브스의 미국이 모두 전통과 민속음악의 풍부한 암시를 담고 있었으며, 협주곡과 교향곡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섬세한 언급까지 공유했다”고 평했다. 덕분에 개별 작품은 하나의 서사적 흐름 속에서 어우러졌고, 청중은 공연을 통해 통합적인 음악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첫 곡은 레일레후아 란질로티(1983~)의 위촉 신작 ‘빛과 돌’로, 하와이 칼라카우아 왕이 1888년 이올라니 궁전에 전등을 밝힌 역사적 순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곡은 마치 먼 바다를 바라보듯 고요하게 시작했고, 금관 악기의 울림과 현악기의 하모닉스가 궁전의 빛을 그려내듯 퍼져 나갔다. 플루트와 오보에, 바순의 교차 선율이 잔잔한 파도처럼 흐르다 비올라와 현악기의 반복 패턴이 겹겹이 쌓여 영화 음악 같았다. 우리나라의 동요 ‘섬집 아기’를 떠올리게 하는 애잔함도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에 현악기들이 하와이의 마지막 국왕 릴리우오칼라니가 쓴 ‘여왕의 기도(Ke Aloha O Ka Haku)’를 조용히 재현했을 때, 고요함과 따뜻함이 홀 전체를 감싸며 여운을 남겼다.

이어진 곡은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임윤찬이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는 자신만의 음악적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피아노의 선율을 덮는 순간도 있었지만, 곡의 서정성과 미묘한 감정은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특히 피아노와 목관, 현악기가 주고받는 대화는 순간적으로 긴장을 끌어올렸다. 또한 3악장에서의 신나고 불꽃 튀는 활력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선보인 임윤찬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 감정을 서사로 풀어내는 힘이 돋보였다.

마지막 곡은 아이브스 교향곡 2번이었다. 2021년 두다멜은 LA필과 그의 전곡 녹음을 발매한 경험을 바탕으로 악보 없이 자유롭게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확신과 유연함을 드러냈다. 아이브스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인용, 재치 있는 순간을 경쾌함과 정확성으로 살려냈고, 곳곳에 배치된 찬송가 스타일의 선율과 미국적 행진곡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예기치 않게 폭발하는 피날레는 시즌 오프닝의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공연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날의 연주는 단순한 시즌 개막이 아니었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녔지만 긴밀히 연결되었고, 두다멜은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관객은 하와이, 헝가리, 미국의 음악적 풍경을 넘나들며, 각기 다른 고향에 깃든 정서와 기억을 체험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연주는 두다멜과 뉴욕 필하모닉이 앞으로 만들어갈 음악적 여정의 서막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지휘 아래 펼쳐질 다채로운 해석과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도전은 올 시즌 무대를 더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양승혜(뉴욕 통신원) 사진 뉴욕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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