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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프스트골드 축제 9.10~21
예술을 수확하는 기쁨
하이든이 봉직했던 궁전에 터를 잡고, 음악의 절정으로 데려가다

헤르프스트골드 축제 ©Wearegiving_bearb
하이든은 1761년 헝가리계 귀족 집안이었던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부악장으로 재임을 시작해, 이 가문에서 40년 가까이 봉직했다. 현재 이 가문의 성은 부르겐란트 주도 아이젠슈타트 중심에 자리 잡아, 최고의 바로크 양식 성곽 중 하나로 꼽힌다. 성의 주요 연회장이자 약 600석 규모의 하이든홀은 화려한 바로크풍의 디자인과 뛰어난 음향 공간으로 하이든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 곳이며, 1797년에 초연된 현악 4중주 ‘황제’를 비롯하여 오페라·교향곡·실내악 등 수많은 작품을 초연한 곳이기도 하다.
헤르프스트골드 축제는 바로 이 성에서,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의 음악적 유산을 기리는 축제로 시작했다. 축제명(Herbstgold Festival)을 직역하면 ‘가을황금축제’를 뜻한다. 뜨거웠던 여름을 뒤로 하고, 풍성한 수확의 달인 9월이 되면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에 위치한 에스테르하지 성은 어느새 실한 음악의 곡창(穀倉)지대로 변모한다.
2017년부터 열려온 축제 초기에는 하이든이 남긴 전통에 집중했지만, 서서히 재즈·월드뮤직·크로스오버 프로젝트까지 여러 장르를 포용하며, 굳건한 음악축제로 성장했다. 2021년부터 축제를 이끌어온 예술감독 율리안 라흘린(1974~)은 클래식 음악에만 국한하지 않고, 연극·영화계의 인물들까지 초청하여 다른 장르가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장을 더욱 확장하는 중이다.
올해 축제는 음악으로 채워지는 순간을 뜻하는 ‘엑스터시’에 집중했다. 음악이 일상 너머로 관객을 데려가면서 깊은 울림을 주고 강렬한 음악의 세계로 이끄는 것으로, 이 축제의 본질을 함축하기에 딱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이번 헤르프스트골드 축제에서 만나게 된 ‘엑스터시’의 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올해의 화두, ‘엑스터시’
지난 10일 하이든홀에서의 개막 공연에서는 협연자·지휘자로 무대에 선 언드라시 시프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20번을 연주했고, 그 뒤로 드보르자크의 세레나데가 이어져, 고요하면서도 풍부한 색채로 무대를 채웠다. 율리안 라흘린이 지휘한 BBC 필하모닉과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가 드보르자크와 브람스 4번으로 열정을 담은 연주(9.12)를 선보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과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9.13)하고, 배우 존 말코비치가 무대(9.18)에 올라 축제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외 재즈의 밤(9.14), 실내악 시리즈(9.11·17),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공연(9.20)까지 더해져 풍성했던 헤르프스트골드 축제는 이제 오스트리아 주요 축제의 하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글 이선옥(오스트리아 통신원·코리아 리 문화예술원 대표) 사진 헤르프스트골드 축제
INTERVIEW
예술감독 율리안 라흘린
고풍스런 축제를 이끄는 힘
올해 주제는 ‘엑스터시’였는데,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엑스터시’는 그리스어 어원 자체가 ‘밖으로 나아간다’는 뜻이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주자로서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같은 거장의 작품을 연주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넘어, 작곡가 그리고 청중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또 ‘엑스터시’는 음악 속 절정의 순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 두 시간의 공연을 위해 수개월, 심지어 평생을 악보 연구에 바칩니다.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엑스터시’ 상태가 아닐까요? 저는 매년 축제의 주제를 정할 때, 레퍼토리 선택을 제약하지 않으면서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주고자 합니다. 음악이 자유롭게 해석되듯, 주제 역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축제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의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난해에는 이 축제가 오스트리아 주요 축제의 하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이제는 잘츠부르크·브레겐츠·그라페네크 축제와 함께 거론됩니다. 규모 면에서는 650석 규모의 하이든홀을 중심으로 한 ‘부티크 축제’이지만, 프로그램과 질적인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축제들과 견줄 만합니다. 우리는 그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예술감독 업무 수행에 어떤 강점을 더해주었나요?
2001년에 제가 직접 세운 ‘라흘린&프렌즈’ 축제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요. 12년 동안 이어졌던 음악 페스티벌이었고,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연주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를 몸소 체득했지요. 후원자 찾기·피아노 조율·포스터 인쇄·홍보·프로그램 북 제작·작품 해설 작성 등 수많은 과정이 있어야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음악회 구성뿐 아니라 호텔과 여행, 리허설 일정까지 세심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저는 에스테르하지 성 운영팀의 헌신과 전문성에 늘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2주간의 축제가 완벽히 운영될 수 있지요.
여타의 축제와 다른, 이 축제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큰 특징은 ‘친밀함’입니다. 하이든홀은 빈 무지크페라인이나 콘체르트하우스보다 앞서 지어진, 순수한 음악사의 공간입니다. 이 홀의 독특한 음향과 규모 덕분에 음악가와 관객이 더욱 가까이서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축제의 핵심입니다. 무엇보다 고전·재즈·월드뮤직·영화·성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들이 축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번 축제에는 배우 존 말코비치도 참여해, 아나스타샤 테렌코바(피아노)와 함께 했습니다.
2001년 드라마 ‘나폴레옹’ 촬영 현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개인적인 우정을 이어왔고, 그는 늘 무대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사랑합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여러 차례 함께했고, 헤르프스트골드 축제에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프로젝트에 늘 커다란 열정을 지닌 그가 헤르프스트골드 축제 무대와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의 축제 구상이 되어있나요?
이미 대부분 확정되었습니다. 밤베르크 심포니, 테너 롤란도 비야손·이안 보스트리지,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 그리고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등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INTERVIEW
하이든홀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
11월에 서울에서 만나요!
헤르프스트골드 축제의 열기가 더해지던 9월 13일 공연의 막은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로 열렸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한 재닌 얀센(1978~)과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율리안 라흘린 지휘)는 솔리스트의 빛나는 기교와 지휘자의 명확한 해석을 결합한 무대로 특별한 ‘엑스터시’를 만들어냈다. 그 놀라운 연주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 연주되며 장대한 마무리가 이어졌다. 연주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얀센은 오는 11월,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을 예정임을 전했다.
11월에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함께 내한합니다.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나게 된 소감은 어떤가요?
한국을 아주 좋아합니다. 2023년 10월, 메켈레/오슬로필과 함께 갔었지요. 한국 관객은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집중력이 대단해요. 다시 방문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긴밀히 협력해 온 오케스트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서울 공연 직전에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녹음할 예정인데, 같은 작품을 11월 5일 한국에서 연주하고, 11월 4일에 멘델스존 협주곡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멘델스존 협주곡 또한, 오늘 연주한 작품이죠. 지휘자는 없지만, 악장 그레고리 아스가 훌륭히 이끌고 있어 서울에서도, 영감 넘치는 무대를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합니다.
세계 각지의 공연장에 오르며, 각 홀의 고유한 차이는 어떻게 체감하나요?
홀마다 차이는 확실히 크죠. 오늘 처음 연주한 에스테르하지 성의 하이든홀은 역사적 공간이며, 그 자체가 영감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하이든이 실제로 활동했던 현장에서 연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니까요. 음향 또한 따뜻하면서도 투명해 모든 소리가 살아있습니다. 서울에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훌륭한 콘서트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네덜란드에서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같은 공간을 꼽을 수 있겠네요. 결국 각국이 가진 홀마다, 다른 이야기와 시간이 흐르고, 그 속에서 음악은 우리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이곳, 하이든홀의 음향은 특별했나요?
영감을 주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베토벤 ‘영웅 교향곡’을 들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하이든홀의 음향은 따뜻하고 영혼이 담겨 있으면서도 투명합니다. 모든 것이 또렷하게 들리지요. 연주자로서 이런 홀은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힘이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오늘 제가 연주한 바이올린이 스트라디바리우스였는데, 하이든홀도 하나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만남이었네요.(웃음)
오늘 함께한 라흘린/유럽 체임버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네, 저와 라흘린, 그리고 오케스트라와의 관계 덕분에 아주 특별했습니다. 사실 멘델스존 협주곡은 제가 처음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협주곡 중 하나입니다. 15살 때, 제 고향 위트레흐트 대성당에서 아버지의 지휘로 연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제 곁에 있었던 작품인데, 여전히 생동감을 잃지 않고 새로워요. 제가 무척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지휘자인 라흘린과는 오랜 동료이기도 하지요?
네, 우리는 20년이 넘는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것이 23년 전이었으니 정말 오랫동안 함께했지요. 수많은 실내악 무대를 함께했고,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음악적 동반자입니다. 무대의 어떤 순간에서도 제가 무엇을 하든, 라흘린이 그 자리에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신뢰가 자유를 만들어주고, 그 자유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젊은 음악가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삼습니다.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젊은 음악가들이 많다고 느껴져요. 몇몇은 직접 만나보았는데, 그들의 수준과 열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20년 넘게 네덜란드에서 위트레흐트 실내악 페스티벌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첼리스트 한재민을 ‘뉴 제너레이션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초청해 함께 연주할 예정이고, 올해 12월에 개최하는 위트레흐트 축제 오프닝(27일)과 폐막 공연(30일)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지난 4일, 피아니스트 김선욱·첼리스트 한재민과 크론베르크에서 피아노 3중주를 함께했습니다. 이런 젊은 연주자들과 연주하는 것 역시, 저 자신에게도 큰 영감이 되지요. 조언이라면, 제가 제 자신에게도 늘 하는 말입니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호기심을 잃지 말고, 열심히 연습하세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늘 귀를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겠죠. 음악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주자가 하루 10시간 연습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청중과 나누는지가 본질입니다. 이 길을 따른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재닌 얀센 &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11월 4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멘델스존 ‘이국으로부터의 귀향’,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베토벤 교향곡 7번
11월 5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모차르트 교향곡 10번,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