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 신임 예술감독 다니엘 호프, 진정한 ‘귀환’의 의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1월 17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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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 신임 예술감독 다니엘 호프

 

진정한 ‘귀환’의 의미

음악이 태동한 고향으로 돌아와, 스승 예후디 메뉴인의 명맥을 잇는 그의 포부

 

 

1975년의 여름, 두 살이던 다니엘 호프(1973~)는 스위스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이하 메뉴인 페스티벌)과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 엘레노어 호프가 예후디 메뉴인(1916~1999)의 매니저 일을 시작한 지 불과 2주 만에, 스위스 그슈타트로 향하게 된 것이다.

예후디 메뉴인은 “어머니와 아이를 떼어놓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 다짐하며, 몽트뢰에서 베르너 오버란트로 향하는 푸른 기차에 호프 가족을 태웠다. 베르너 오버란트 산자락 밑, 메뉴인이 마련해준 집에서 그들은 매해 여름을 보냈다.

11살의 다니엘 호프는 메뉴인 페스티벌에서 페이지 터너로 활약하며, 리허설 현장을 마치 정글짐처럼 누볐다. 메뉴인의 저택과 연습실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첼로)와 빌헬름 켐프(피아노) 등이 드나들며 파티처럼 연주를 벌였다. 풍요로운 음악적 환경 속에서 호프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자연스레 베토벤, 버르토크, 모차르트의 음악을 받아들이며 음악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호프는 메뉴인 페스티벌의 새로운 신임 예술감독으로 선출됐다. 올해 페스티벌을 끝으로 24년간 성공적인 임기를 마친 크리스토퍼 뮐러의 뒤를 잇게 된 것이다.

호프는 예후디 메뉴인과 함께 70회가 넘는 그슈타트 무대에 올랐으며, 전통 위에 새로운 정체성을 더해 독창적인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저의 첫 음악은 바로 여기, 그슈타트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번 임명은 그 자체로 ‘귀향’입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서 책임을 맡게 되어 더없는 영광입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내년이면 페스티벌은 70주년을 맞이한다. 남다른 미래를 열어갈 다니엘 호프와 나눈 일문일답.

 

나의 음악이 태동한 곳에서

1992년 8월, 메뉴인 페스티벌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음악적 출발점에 담긴 기억을 들려주세요.

당시 알프레드 시닛케의 작품으로 구성된 리사이틀로 페스티벌 무대에 섰습니다. 전 17살이었고, 연주 당일 메뉴인이 객석에 앉아 있었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제겐 그 현장이 음악과 함께하는 놀이터와 다름 없었는데, 페이지 터너이자 어린 관객이었던 제가 무대 한가운데 선 채, 페스티벌 주인공의 한 명이 되어 지극히 개인적인 프로그램을 들려주던 그 순간은 압도적인 경험이었으니까요.

2016년, 예후디 메뉴인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음반을 선보였죠.

예후디 메뉴인은 음악가이자 휴머니스트, 그리고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특별한 스승이었습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려 선보였던 음반은, 오랫동안 품었던 감사한 마음을 담은 헌정이었습니다. “음악은 평화와 인간애의 힘”이라는 말을 남겼던 그의 확고한 신념은 연주자로서도, 예술감독으로서도 매일 제 발걸음을 이끕니다.

 

시공을 넘어 새로운 그슈타트를 향해

올해 메뉴인 페스티벌에서 다니엘 호프(왼), 크리스토프 뮐러(오) ©Gstaad Menuhin Festival

신임 감독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메뉴인 곁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탁월한 연주자에 그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경제·사회·정치의 지평까지 움직인 인도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일, 그것이 제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음악에는 양심이 있다’고 믿었고, 누구보다 뜨겁게 다음 세대를 후원했으니, 그 정신도 이어가려 합니다. 청소년·신진들의 무대, 페스티벌의 개방성이라는 기둥을 견고히 세우고 고유한 제 미학을 더하고자 합니다.

전임자인 크리스토프 뮐러는 24년간 페스티벌을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계획인가요?

예술적 수준과 국제적인 위상을 눈에 띄게 끌어올렸지만, 그는 메뉴인을 직접 알지 못했기에 의도적으로 메뉴인의 영향력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저는 좀 다른데요. 제 삶의 절반을 메뉴인과 함께 보냈고, 감독직을 통해 메뉴인에게 무언가를 돌려 드리고자 합니다. ‘메뉴인’이라는 브랜드의 폭과 깊이를 선명히 하고,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며, 전통·혁신·사회적 책임이 만나는 장소로 그슈타트를 만들고자 합니다.

클래식 음악에 뿌리를 둔 페스티벌에서 전통과 혁신을 어떻게 조화시킵니까?

25년 넘게 자체 프로젝트를 기획해 오면서, 제 중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작품들을 서로 엮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줍니다. 저는 배우·무용수·팝 아티스트와도 협업하며, 음악이 중심에 서되 맥락·서사·관계의 그물망을 통해 새로운 차원을 선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페스티벌은 이러한 ‘열림’을 체감하는 공간이어야 하고요.

축제 프로그램 편성에서 레퍼토리와 새로운 시도, 거장과 차세대 간의 균형을 어떤 기준으로 설계하나요?

결국 ‘균형의 예술’입니다. 관객은 거장의 이름을 늘 기대하고, 그 기대는 지속적으로 충족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젊은 연주자에게 무대를 내어주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예술적 비전과 재정적 현실, 두 요소가 맞물려 하나의 퍼즐을 완성해야 하지요. 그 작업을 여러 음악가들과 치밀하게 이어가겠습니다.

페스티벌 내의 음악교육 프로그램과 사회적 연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메뉴인 페스티벌은 오랜 전통을 지닌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유아(0~2세)와 3~6세, 7~12세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과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꾸준히 운영해 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더욱 확장코자 합니다. 현재는 청각 장애 아동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청각학 전문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개발 중이며, 음악과 교육을 엮는 형식을 폭넓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메뉴인 페스티벌의 방향과 개성을 보여줄 작품이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직 프로그램이 구체화되는 단계라 아직 공개하긴 이르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과의 ‘진정한 연결’이죠. 그 연결이 생기면, 자연스레 관객과 음악으로 소통하게 됩니다. 잘 알려진 레퍼토리든 새로운 음악이든 경계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예술이니까요.

 

진실로 임했던 삶의 모든 순간

메뉴인과 호프 ©Urban Uebelhart

지금껏 본인의 음악적인 성장을 어떻게 돌아보십니까?

실수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를 지탱해 온 것은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진정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연주하겠다는 분명한 목표였어요. 돌아보면 솔로·실내악·오케스트라·페스티벌 운영·방송 활동까지, 모든 것이 천천히 완성되었지요. 그 점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도이치 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로,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샌프란시스코 뉴 센트리 체임버 오케스트라(NCCO) 음악감독과 베토벤 하우스 본의 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이토록 많은 일들을 어떻게 조율하나요?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웃음) 스태프들과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제 스태프들은 전문성과 실행력으로 큰 프로젝트들을 가능하게 하며, 가족들은 장기적인 출장과 부재를 견뎌주면서 이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많다고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운 프로젝트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순위를 세우고,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평소 “음악은 경계를 넘어선다”라고 자주 언급했습니다. 이를 본인의 실제 작업에서는 어떻게 구현하고 있습니까?

저는 남아프리카, 아일랜드, 동유럽의 음악가들과 협업했고, 재즈와 팝 아티스트들과도 함께 했습니다.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편곡하여 녹음했고, 인도 타블라 연주자들과의 협업이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흐름이 제게는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다양성 속에서 살아가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그것을 관객에게 전하는 일이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근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나요?

스트리밍과 소셜 미디어는 음악을 인식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유럽에서는 관객층의 고령화가 두드러지는 반면, 아시아는 훨씬 젊습니다. 저는 이것을 커다란 기회로 봅니다.

다음 세대를 향해 건네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이 길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한다면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반드시 나타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통권 501호를 맞이한 ‘객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500+1’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계속 전진하는 출발을 뜻합니다. 40여 년 동안 음악의 세계로 문을 열고 문화를 이어온 ‘객석’이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음악의 무한한 힘을 나누길 바랍니다.

이선옥(오스트리아 통신원·코리아 리 문화예술원 대표) 사진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

 

 

RECORD ‘예후디 메뉴인에게 보내는 헌정’

바젤 캄머 오케스트라, 다니엘 호프·시모스 파파나스·다니엘 로자코비치(바이올린), 첸 레이스(소프라노)

 

2016년, 다니엘 호프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예후디 메뉴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을 발매했다. 호프는 이 음반을 ‘소리로 그린 초상화’라 일컫는다. 음반에는 호프와 메뉴인이 함께 연주한 비발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RV 522를 비롯해, 멘델스존 d단조 협주곡,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이 즐겨 연주했던 버르토크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44개의 듀오’가 담겼다. 이 곡들은 2014년 메뉴인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2001~)와 함께했다. 또한 호프와 메뉴인 페스티벌이 메뉴인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위촉했던 베샤라 엘쿠리의 ‘끝나지 않는 여정’까지 폭넓은 레퍼토리가 담겨 있다. 음반 발매와 함께, 호프는 뉴욕·파리·베를린에서 헌정 음악회를 열며 스승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메뉴인을 기렸다.

유내리

 

다니엘 호프(1973~)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샌프란시스코 뉴 센트리 오케스트라(NCCO) 음악감독이며, 도이치 그라모폰 전속 아티스트로 다수의 음반을 발매했다. 팬데믹 기간에는 ‘Hope@Home’ 일일 라이브 스트리밍 시리즈를 통해 전 세계 음악가들과 연대했다. 2025년부터 스위스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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