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1
내한하는 연주자들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
똑같은, 그러나 또 다른 이야기
신동에서 거장까지, 짙은 성숙의 철학을 보여준 그가 들려줄 내면의 목소리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사람은 남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게 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 연주회의 관객은, ‘어떤 연주자가 오랫동안 유명하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정의를 내린다. 어릴 때 강한 인상을 남긴 연주자에게는 특히나 쉽게.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는, 주빈 메타의 지휘봉 아래 뉴욕 필하모닉과 성공적으로 데뷔한 열한 살 이후 끊임없이 유명했지만,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은 없었다. “음악적, 테크닉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한 명의 인간으로 한층 유연하고 편안하게 변화해 왔다”는 그와, 11월에 있을 내한 리사이틀에 대해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내한 독주회 프로그램은 어떤 기준으로 정했나요.
피아니스트 이에바 요쿠바비추테와 논의 끝에 곡목을 정했어요. 표면적으론 비슷해도 그 안에 놀라운 다양성이 느껴지죠.
구체적으로 어떤 연결점이 있나요?
저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항상 노래와 연관시킵니다. 시적이며 명인기적(virtuosic)인 슈베르트 환상곡 D934와 론도 브릴란테 D895가 연주되죠. 로베르트 슈만의 로망스 Op.94, 그리고 클라라 슈만의 로망스 Op.22도 흥미롭습니다. 둘은 부부였고, 그 작품들은 한 가정에서 나왔으니 이런 연결도 자연스럽죠. 가슴을 어루만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작품의 캐릭터는 전혀 달라요. 클라라 슈만의 작품이 과감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반면, 로베르트 슈만의 노래는 내향적이고, 달콤하며, 씁쓸하죠.
1부 시작은 베토벤, 2부 시작은 풀랑크의 소나타입니다.
풀랑크는 자기가 지은 작품을 많이 없앤 사람입니다. 조금이라도 남겨둔 작품이 있음에 고마워해야죠. 소나타 FP119엔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를 기리는 마음이 담겨있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려냅니다. 베토벤 소나타 5번 ‘봄’은 풀랑크 작품의 떠들썩함과 대조를 이룰 겁니다. 정교하고 차분하며, 화사한 작품이니까요. 정확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이 곡들을 이 순서로 한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음악을 통과하며 청중은 한자리에서 여러 대조적인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함께할 피아니스트 이에바는 어떤 연주자인가요?
제 안의 특별함을 이끌어내는 매우 섬세한 연주자입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방식이 중요하죠. 같은 곡을, 같은 조합의 연주자가 함께해도 늘 새로움이 발견됩니다.
활을 쥔 손을, 더 넓게
스물한 살에 비영리단체 ‘미도리와 친구들(Midori & Friends)’을 설립, 음악 교육과 지역 사회 문화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뉴욕을 기반으로 무료 음악 교육을 해온 ‘미도리와 친구들’은 30년 넘게 지속 중입니다. 서양음악과 일본 전통음악을 일본 전역과 아시아에 전달하는 ‘뮤직 셰어링’, 미국 소외 지역에 실내악을 전하는 ‘파트너스 인 퍼포먼스’ 등의 여러 프로젝트가 있는데, 목표는 하나입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동시에 각자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죠. 그 성장은 제게도 적용됩니다. 이 활동은 제게 늘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니까요.
그 사명감이 유엔 활동으로까지 연결되었죠. 2007년부터 ‘유엔 평화의 사절’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평화’를 말하기엔 작금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긴 합니다. 매일 거대한 폭력이 일어나는 것만 같아요. 그럼에도 음악가라면 반드시, 좋은 시민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음악이 소통에 대해,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이 많은 만큼 사람을 이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곳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위안을 줄 수 있다고요.
우리가 함께, 흘러가고 있는 곳
한국에는 자주 방문하는 편인가요?
한국에 처음 온 것은 십 대 중반이었어요. 요즘엔 거의 매년 오고 있네요. 한국 여행을 즐기게 되었거든요. 서울 대중교통에도 적응했습니다. 촘촘히 잘 연결된 버스를 타고 서울을 다니면, 독립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행복합니다. 서울과 각 지역의 공연장도 좋아하고, 한국 학생들과도 많이 교류하고 있어요.
재능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떤 영재나 천재, 혹은 모든 어린 연주자들은 다 달라요. 가끔 그들을 똑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서로 다른 흥미와 바람, 상황을 두고 있죠. 그러니 재능 있는 모두에게 통하는 조언도 없습니다. 그저 각자가 가진 개성이 존중받길 바랄 뿐이에요. 저 또한 매일 성장하며 악기를 대하는 자세와 사고방식이 유연해졌고, 그 모습이 음악에 다 반영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음악도 변합니다. 음악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큰 영향을 받죠. 음악을 만들어 나가며 다른 연주자들과 관계 맺기 등 모든 것이 함께 성장합니다. 그런 면에서 음악은 ‘살아있죠’. 같은 곳에 머무르고 싶다고 해도 머무를 수 없습니다.
보스턴 심포니와의 협연 도중 줄이 끊어진 악기를 악장, 부악장과 바꿔가며 세 악기로 한 음도 빼지 않고 완벽히 연주한 미도리를, ‘탱글우드의 전설’ 속 천재로만 마음속에 저장한 이들이 아직도 많을 터. 하지만 그녀는 사회와 호흡하며, 산소와 같은 음악을 공급하며, 한 명의 웅숭깊은 사회인으로 성숙해 왔다. 미도리를 통해 그 모든 경험과 의식을 한자리에서 오롯이 만끽하는 일은 듣는 이에게도 성장 그 자체일 것이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고토 미도리(1971~) 열한 살 나이에 뉴욕 필하모닉과 데뷔한 이후, 세계적 음악가들과 작업해 왔다. 현재 커티스 음악원 ‘도로시 리처드 스털링 바이올린 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으며, 1734년산 과리네리우스 델 제수 ‘엑스 후버만’으로 연주한다.
PERFORMANCE INFORMATION
미도리 바이올린 리사이틀
11월 22일 오후 5시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 11월 23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슈베르트 환상곡 D934·론도 D895,
풀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FP119, 클라라 슈만 로망스 Op.22, 로베르트 슈만 로망스 Op.94
INFORMATION +
세계 음악시장을 채우는 또 다른 일본 아티스트들
1970년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1935~2024)와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1948~)가 해외 무대에서 거둔 성과를 이어가며, 일본 연주자들은 국제 무대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아시안이 되었다.
바이올린에서 두각을 보이다

다이신 카시모토
1971년생의 고토 미도리가 신동으로 주목받기 시작할 때, 비슷한 연령대의 스와나이 아키코(1972~)도 완벽에 가까운 기교를 자랑하며 국제 무대로 부상한 연주자다. 1990년 차이콥스키의 최연소 우승자의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파가니니·퀸 엘리자베스에서도 입상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의 도로시 딜레이 문하에서 자랐다는 점에선 고토 미도리와 같으며, 데카 클래식에서 다수의 음반을 발매하는 등 오늘날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일본 연주자로 손꼽힌다. 호소카와 토시오·토오루 타케미츠 등 다수의 일본 작곡가 작품을 녹음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쇼지 사야카(1983~)가 다시 한번 일본의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았다. 슐로모 민츠 등에게서 배웠으며, 14세에 빈 무지크페어라인에서 연주했고, 1999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최연소 나이로 우승했다. 이후, 고토 미도리의 커리어 시작이 그랬듯 쇼지 사야카도 주빈 메타의 전격적인 지원 아래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예술계에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주는 일본 최고 권위 상인 마이니티 예술상을 받은 바 있으며,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10장 이상의 음반을 발매해 오고 있다.
카미오 마유코(1986~)도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과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연주자다. 같은 해 피아노 부문 입상자인 미로슬라프 꿀띠쉐프와 듀오 연주를 하며 가까워져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다. 소니 레이블 등에서 음반을 발매했으며 듣는 이를 매료하는 음색으로 사랑받았다. 2015년 내한해 김선욱·지안왕과 실내악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와 카즈키
한국을 찾은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선, 사와 카즈키(1955~)가 2023년 첼리스트 양성원과 듀오 공연을 선보이며 두 음악계 스승의 만남이라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도쿄예술대학의 교수로, 다수의 국제 콰르텟 멤버로 연주하며 일본의 사와 카르텟 창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 다이신 카시모토(1979~) 또한 일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야스나가 토루(1951~)를 이은 두 번째 일본인 악장으로 2009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에서의 활약으론, 시대악기 연주자로 활동한 사토 슌스케(1984~)도 있다. 2009년 거트현으로 된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를 최초로 연주한 음반(KLASSIK)을 발매한 바 있는 그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시대악기 앙상블인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의 악장을 맡아 활동했다.
외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다수의 일본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있지만, 최근 가장 최연소로의 화제를 다시 모은 것은 요시무라 히마리(2011~)이다. ‘히마리(Himari)’라는 활동명을 앞세운 10대 소녀는, 어딘가 ‘미도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올해 베를린 필하모닉 데뷔 무대를 치렀으며, 데카 클래식과 전속 계약한 역대 최연소 여성 예술가가 됐다. 현재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다 카바피안을 사사하고 있다.
비올라·첼로의 대표주자들

이마이 노부코
이마이 노부코(1943~)는 일본을 넘어 현시대의 대표 비올리스트 주자로 꼽힌다. 도쿄 비올라 콩쿠르를 창설했으며, 2022년 이 콩쿠르 우승자인 박하양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마이 노부코는 1967년 제네바 콩쿠르·뮌헨 ARD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02년 미켈란젤로 콰르텟을 결성한 바 있다.
첼리스트로는 카살스의 제자이자 산토리홀의 대표인 쓰쓰미 쓰요시(1942~)가 한국에서 자주 무대에 오른다. 1963년 한 해에 카살스 콩쿠르에서 우승과 뮌헨 ARD 콩쿠르에 입상한 그는 일찍이 도호 가쿠엔 음악원 창립자인 사이토 히데오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를 거쳤고, 첼로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모두 소화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최근 주목받은 일본 첼리스트는 1990년생들이다. 사토 하루마(1998~)는 2019년 뮌헨 ARD 콩쿠르의 우승자다. 도쿄에서 음악고등학교를 졸업,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옌스 페터 마인츠를 사사했다. 그는 한 해 전 루토스와프스키 콩쿠르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반면 1995년생의 우에노 미치아키는 2009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일본인 최초로 우승한 뒤 2021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를 거두며 새로운 인기 대열에 합류했다. 2022년 한국을 찾아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루토스와브스키 첼로 협주곡을 선보였다.
초초상을 넘어, 오페라에서 활약하다

미우라 타마키
오페라에서 ‘일본’을 언급하면 자연스럽게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속 초초상이 떠오른다. 미우라 타마키(1884~1946)는 이 배역으로 가장 먼저 명성을 얻은 소프라노다. 1911년 도쿄에서 데뷔한 그는 1915년 런던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나비부인’에서 처음 초초상 역으로 캐스팅, 그 후 수천 회에 이르는 초초상이 되어 무대에 올랐다. 이어 초초상 역으로 런던 로열 오페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카고 리릭 오페라까지를 모두 점령한 이는 와타나베 요코(1953~2005). 25세에 유럽 무대에 데뷔했으며 초초상 역은 물론 다수의 작품으로도 호평받았다.
일본 출신의 성악가 중 입지전적 인물로는 독일 가곡 해석의 권위를 가진 메조소프라노 시라이 미츠코(1947~)를 꼽을 수 있다. 1973년부터, 그는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휠과 듀오로 전 세계를 다니며 독일 예술가곡 성악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카를스루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후지무라 미호코(1966~)는 바그너 가수로 인정받은 메조소프라노다. 2022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프리카 역으로 데뷔했으며, 빈 슈타츠오퍼·베를린 도이치 오퍼 등에서도 링 사이클의 주역을 맡았다. 도쿄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뮌헨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2016년에는 호소카와 도시오의 오페라 초연에도 참여한 바 있다. 오페라 가수로 활약 중인 소프라노 나카무라 에리(1978~)는 오사카 음악대학을 졸업, 도쿄 신국립극장 오페라 스튜디오를 거쳐 제트 파커 영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일본과 유럽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글 허서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