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3
슬로베니안 필하모닉 수석지휘자 카키 솔롬니쉬빌리
슬로베니아, 그 낯선 곳의 매력을 안고
우리가 몰랐던 유럽 음악계의 ‘숨은 강자’, 슬로베니안 필하모닉의 첫 내한을 앞두고

우리는 슬로베니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슬로베니아를 둘러싼 국가들을 살펴보면 동쪽에는 이탈리아, 북쪽에는 오스트리아, 서쪽에는 헝가리, 그리고 남쪽에는 크로아티아가 있다. 여행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서적 및 각종 매체에서 어떤 형태의 정보라도 한 번 이상은 접해봤을 국가들이다. 이와 비교해 보면 슬로베니아가 우리와 얼마나 먼 나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슬로베니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악단은 사모 후바드·우로스 라요비치·마르코 레토냐 등 슬로베니아 출신의 상임지휘자들뿐만 아니라 카를로스 클라이버·리카르도 무티·샤를 뒤투아·대니얼 하딩 등의 지휘 거장들이 객원으로 함께한 바 있다. 이 ‘숨은 강자’의 역사는 18세기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00여 년의 역사를 담은 성장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는 1701년 이탈리아의 유사한 단체들을 본뜬 ‘류블랴나 아카데미아 필하모니코룸’이 설립됐다. 류블랴나의 음악적 풍요를 불러일으킨 이 단체의 활동은 1794년 ‘필하모닉 협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필하모닉 협회’의 결성은 저명한 인사들을 효과적으로 불러 모았으며, 류블랴나의 문화적 입지는 큰 확장을 이루었다.
1891년 슬로베니안 필하모닉 콘서트홀이 문을 열었다. 동일한 자리에 ‘국립극장’이 있었지만, 합스부르크 왕가 및 오스트리아의 오랜 지배 탓에 전반적으로 독일의 색채에 가까웠고, 슬로베니아인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87년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며 진정 슬로베니아인들을 위한 공연장을 세울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독일과 슬로베니아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1908년에는 슬로베니아의 민족주의를 위시하여, 기존의 사교계 악단을 정식 콘서트 오케스트라로 탈바꿈시켜 ‘슬로베니안필’ 명칭을 최초로 붙이게 되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웠던 당시 유럽의 정세에 악단도 난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1945년, 유고슬라비아로 통합된 이후 1947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슬로베니안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슬로베니아의 공공 음악교육이 크게 발전하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현재 4개의 전문 교향악단이 활동 중이며 류블랴나에는 슬로베니안필, RTV 슬로베니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류블랴나 국립 오페라·발레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마리보르에는 SNG 마리보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상주합니다. 마리보르에는 오페라하우스와 발레단이 있으며, 공립 음악학교에서 적은 학비로도 수준 높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11월에 내한하는 슬로베니안필 수석지휘자 카키 솔롬니쉬빌리는 슬로베니아의 음악 환경에 대해 이와 같이 소개했다.
그는 “이러한 기반 덕에 슬로베니안필의 공연을 찾는 관객이 많다”고 밝히며 “최근 5년간 젊은 세대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는데, 클래식 음악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하는 데는 어린 관객 교육에 큰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위한 ‘패밀리 콘서트’, 동물원·류블랴나 시장 등 특별한 야외 공간에서의 공연도 활발하다고. 그에 따르면 동물원의 사자와 코끼리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정도란다.
슬로베니아의 낙천성, 친근함을 위한 선곡
슬로베니안필의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에 대해 솔롬니쉬빌리는 “새로운 관객과의 만남은 짜릿한 영감을 주는 일”이라며, “큰 영광이자 설레는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슬로베니안필의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을 ‘섬세함’이라고 밝혔다.
“이 오케스트라가 지닌 표현력과 음악적 감수성에 늘 감탄합니다. 한국의 관객분들도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는 한국 관객과의 첫 만남을 위해 ‘가장 슬로베니아다운’ 곡을 택했다. “조르주 미체우즈(1805~1882)는 빈 후기 고전주의와 초기 낭만주의에 활동한 몇 안 되는 슬로베니아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베토벤·슈베르트와 동시대인이었지만, 그들과 달리 평온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죠. 그렇게 열정적인 음악가는 아니었음에도 빈에서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의 오페라 ‘요정 아이(The Fairy Child)’ 서곡은 슬로베니아 특유의 명랑하고, 낙천적인 기질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추가로 주목할 만한 슬로베니아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야코부스 갈루스 카르니올루스➊·빈코 글로보카르➋·니나 셴크➌·비토 주라이➍를 꼽았다. (뒷장 설명 참조)
서곡 다음으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브람스 교향곡 1번(11.19·21),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11.20)이 이어진다.
국내에서 익히 선곡되는 곡을 선택한 나름의 이유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접하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빈필·베를린필과 같은 악단은 기본적으로 기대감을 안고 찾게 되지만, 처음 듣는 오케스트라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소리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겠어요”.
솔롬니쉬빌리는 조지아 태생이지만, 사자와 코끼리의 감상까지 챙기는 그의 답변에선 ‘슬로베니아의 명랑함’이 묻어났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섬세하고 명랑한 지휘자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유서 깊은 악단을 이끄는 젊은 혈기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공연 전,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를 정말 좋아했죠. 피아노를 공부하던 시절, 선생님들께서 제 절대음감이 지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던 조언도 전향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됐는데,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없나요?
이 자리는 무엇보다 큰 책임이자 영광, 그리고 기쁨입니다. 물론 이런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은 큰 도전이지만, 단원들과 원활히 소통하며 깊은 신뢰를 쌓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모니’를 빚어내는 핵심이죠. 공연을 본 관객들이 저와 오케스트라의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활동은 어떤가요?
오페라에서는 여러 다른 앙상블을 하나로 연결해야 하고, 변화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은 지휘자로서 매우 큰 자산이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교향악을 지휘할 때는 교향악이, 오페라를 지휘할 때는 오페라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두 영역 모두 제 음악 인생의 소중한 축입니다.
지휘자 샤를 뒤투아의 어시스턴트로도 활동 중이지요?
그와 꾸준한 교류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최고의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리허설 현장에서 그분을 처음 뵌 날, 저에게 주신 조언은 제 지휘 철학과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지휘를 절제할수록,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더 들을 수 있다’ 지금도 제가 서는 모든 무대에서 마음에 새기는 문장입니다.
앞으로 지휘자로서 가진 목표가 있나요?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려 합니다.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어요. 훌륭한 오케스트라들과 함께하며 매일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제 경력이 어디쯤 와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한국에서 최초로 진행한 인터뷰는 ‘객석’의 통권 501호 기념호에 실리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잡지에 소개될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500호라는 놀라운 이정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과 축하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큰 기쁨이자 영광입니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빈체로
카키 솔롬니쉬빌리(1990~) 조지아 트빌리시 주립 음악원에서 지휘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고, 트시난달리상 음악 부문을 수상하였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테아트로 콜론에서 샤를 뒤투아의 어시스턴트로 활동 및 슬로베니안 필하모닉 수석지휘자, 조지아 필하모닉 및 트빌리시 오페라 발레 극장의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카키 솔롬니쉬빌리/슬로베니안 필하모닉(협연 손민수)
11월 19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11월 20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11월 21일 오후 7시 30분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조르주 미체우즈 ‘요정 아이’ 서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람스 교향곡 1번(19·21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20일)
슬로베니아 출신 음악가들
➊ 야코부스 갈루스 카르니올루스(1550~1591)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로 팔레스트리나, 오를란도 디 라소와 동시대인이다. 작품으로는 무반주 다성음악 ‘보라, 의인이 어떻게 죽는가를’ ‘놀라운 신비’ 등이 있다.
➋ 빈코 글로보카르(1934~)
프랑스-슬로베니아 국적의 전위음악 작곡가이자 트롬보니스트이다. 1960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하였으며, 성악 및 앙상블을 위한 ‘망명’, 오케스트라 작품 ‘역사의 천사’, 오페라 ‘극적인 조화’ 등을 남겼다.
➌ 니나 셴크(1982~)
슬로베니아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BBC 프롬스에 의뢰받아 실내악곡 ‘진주(Baca)’를 작곡하였으며,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고요함 속의 그림자’ 오페라 ‘마리보르인’등을 작곡했다. 현재 슬로베니아 과학예술 아카데미 최연소 회원이자 최초 여성 음악가이다.
➍ 비토 주라이(1979~)
2017년 베를린필 아카데미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을 수상하였다. 슬로베니아 내 악단 뿐 아니라 뉴욕필, BBC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업했다. ‘오토마톤’, 오페라 ‘블뤼헨(Blühen)’, 첼로 협주곡 ‘언베일드(Unveiled)’ 등의 작품이 있다.
ABOUT |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를 방문한다면 여기를!
➊ 칸카르예보 나브레제
류블랴니차 강변 산책로. 슬로베니아의 시인 이반 칸카르를 기념하는 명칭으로, 물길과 함께 이어지는 그림 같은 건물과 식당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선선한 날씨에 강변에서 식사를 즐기는 낭만을 만끽해 보자.
➋ 포스토이나 동굴 & 프레드야마성
류블랴나 당일치기 근교여행으로 추천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세계 3대 동굴 중 하나로 꼽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석회 동굴이며, 유네스코 등재 자연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동굴 내 기차를 이용한 이색적인 투어가 진행된다. 여기와 한 묶음으로 관광할 수 있도록 무료 셔틀을 지원하는 프레드야마성은 독특하게도 수직 절벽 동굴 틈새에 성이 지어져 있어 그 외형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곳 모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지원된다.
➌ 류블랴나성
류블랴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고지대에 있는 류블랴나성일 것이다. 푸니쿨라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으며, 성 내부 관람은 물론 테라스에서 한눈에 류블랴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