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34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위원장 라우리 라티아
사무총장 파이비 포우사르
라우리 라티아 & 파이비 포우사르(Lauri Ratia & Päivi Pousar)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의 운영을 함께 맡고 있는 부부. 라우리 라티아는 투르쿠 조선소, 스톡만그룹 등의 경영직을 거쳐, 2013년부터 시벨리우스 협회에 합류해 2022년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다. 파이비 포우사르는 바이올린을 전공한 교사로 2010년부터 콩쿠르에서 재직해왔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으로 이어지는 약속

끝없이 펼쳐진 숲과 투명한 호수, 백야의 여름과 침묵의 겨울. 핀란드의 장엄하고도 고요한 자연은 시대를 넘어 예술가들의 영혼을 일깨워왔다. 이 곳의 자연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길러낸 원천이다. 바로 그 자연의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어낸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1865~1957). 교향시 ‘핀란디아’를 비롯해 7개의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예술적 영감을 구현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이하 시벨리우스 콩쿠르)는 1965년, 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시작됐다. 5년마다 개최되며 열흘 남짓 이어지는 대회 기간에 참가자들은 바흐와 파가니니, 현대 위촉곡, 그리고 시벨리우스의 작품까지 여덟 곡을 연주하며 체력과 집중력, 나아가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받는다.
시벨리우스의 정신을 계승하며 콩쿠르를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중심에 선 두 인물을 만났다. 위원장 라우리 라티아와 사무총장 파이비 포우사르다. 영상 통화 화면 너머로 전해진 아내 포우사르의 따뜻한 미소와 남편 라티아의 예리한 시선은, 서로 다른 결을 지녔지만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조화를 이루며 대회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었다.
시벨리우스의 유산을 잇다

시벨리우스 콩쿠르(2025) ©Matias Ahonen
핀란드는 에사 페카 살로넨, 에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 등 오늘날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작곡가를 많이 배출하고 있는 ‘작곡가 강국’이다. 이곳에서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위상과 위치는 어떠한가.
포우사르 시벨리우스는 단연코 핀란드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독립운동의 격동기였기에, 그 음악은 우리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음악을 통해 핀란드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마음 깊이 새겨 넣은 인물이기도 하다. 매년 핀란드의 독립기념일(12월 6일)이면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전국에 울려 퍼지고, 12월 8일인 그의 생일은 ‘핀란드 음악의 날’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포우사르 교향곡 4번을 가장 좋아한다. 다소 어둡고 깊은 정서를 담고 있어, 늘 조금 더 희망적인 교향곡 5번과 함께 듣는다.
라티아 바이올린 협주곡들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시벨리우스’라는 이름을 내세운 콩쿠르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책임을 느끼나?
포우사르 그 명성에 걸맞게 최고의 콩쿠르를 만들고자 한다. 동시에 콩쿠르 참가자들이 환영받으며,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참가자들을 가장 잘 지원하는 콩쿠르’가 되고 싶다. 호텔에서 공연장까지 참가자들이 걸어갈 수 있기도 하고, 호텔 방도 충분히 넓어 편안하게 연습할 수 있다.
라티아 2차 예선에서, 참가자들은 판란드 작품을 세계 초연한다. 첫 대회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단순한 평가를 넘어 창작을 지지하는, 시벨리우스의 유산을 잇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파트너의 호흡으로 완성하는 콩쿠르
콩쿠르를 부부가 함께 이끌어간다는 점이 인상 깊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포우사르 2010년, 신문에서 콩쿠르 기사를 보며 채용 공고를 접했다. 바이올린 전공자라, 자연스럽게 지원하게 됐다. 운명과도 같은 시작이었고, 지금의 사무총장직까지 이어져왔다.
라티아 핀란드 음악 생태계를 비롯해 시벨리우스의 음악에 기여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시작하게 됐다. 기업 경영을 하다 2013년 협회 이사회에 합류했고, 2015년부터는 콩쿠르 모금을 총괄했다. 오랫동안 포우사르와 동료로 일했기 때문에, 부부가 된 뒤에도 역할 분담이 명확하다.
포우사르 우리는 작년 10월에 결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축하 연주를 해주었다. 우리가 그의 팬이라 그가 헬싱키에 오는 일정에 맞춰 결혼식 날짜를 정했을 정도다.
같이 일하다 보면, 서로에게 배우는 점 등을 발견할 것 같다.
포우사르 나는 예술적 방향 설정과 프로그램의 세부 기획 및 인력 운영을 맡는다. 라티아는 조직 운영과 재정, 파트너십 관리 등의 전략적 부분 담당이다. 음악과 경영, 서로 다른 배경이지만 이 두 영역이 만나 균형 잡힌 협업이 가능하다.
두 사람 모두 시벨리우스 협회의 임원이다. 협회에서 콩쿠르 외에 시벨리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인가?
포우사르 협회는 핀란드 국립 도서관, 브라이트코프&헤르텔 출판사와 협력하며 시벨리우스 전집을 출간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38권이 나왔고, 앞으로 30여 권이 더 출간될 예정이다. 5년마다 국제 시벨리우스 학술대회를 열며, 일본·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 등의 해외 시벨리우스 협회와도 긴밀히 협력한다.
재원 조성은 어느 단체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라티아 정부 지원의 비중이 줄어, 2015년 무렵에는 대회 총 예산의 약 15% 수준에 머물게 됐다. 콩쿠르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책임지고 힘을 보태야겠다고 느꼈다. 핀란드 비즈니스 커뮤니티에 있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기업인·동료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가 핀란드 문화와 음악적 명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득했고, 그렇게 기반을 넓혀 왔다.
음악의 힘으로 쌓아온 역사
시벨리우스 콩쿠르가 처음 시작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라티아 시작은 1965년, 시벨리우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면서다. 지휘자 카라얀, 바이올리니스트 메뉴인과 오이스트라흐,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등 당시 음악계 거장이 참여한 명예위원회가 꾸려지며 콩쿠르가 탄생했다.
오늘날 콩쿠르의 역할은 무엇인가?
포우사르 참가자들은 콩쿠르 이후에도 레퍼토리에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꾸준히 포함시키기에, 그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핀란드 음악계의 원로 두오마스 하아파넨 교수는 1965년부터 2022년까지 열린 모든 대회를 지켜본 인물로, “시벨리우스 콩쿠르 무대의 연주는 언제나 탁월했다”고 회고한다. 오늘날 정상급 음악가들의 저변은 과거에 비해 넓어졌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만큼 젊고 재능 있는 세대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우리의 책임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콩쿠르를 위한 작품을 쓴 작곡가들은 몇 명인가?
포우사르 첫 대회 이후 지금까지 12명의 핀란드 작곡가가 신작을 선보였다. 에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1928~2016), 에사 페카 살로넨(1958~), 아울리스 살리넨(1935~) 등이다.
협회에서 콩쿠르를 준비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일까?
포우사르 콩쿠르를 위한 예술위원회의 역할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결선에 현대음악을 과제로 포함했고, 심사위원단을 세계적인 지휘자·바이올리니스트로 구성했다. 특히, 2차 예선에서는 참가자가 원하는 곡을 선택할 수 있도록 레퍼토리를 다양화했다. 어떤 작품을 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예술적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으며, 개성도 뚜렷이 드러난다. 대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의미 있는 시도였다.
대회 주기가 5년인 이유가 있나?
포우사르 첫 콩쿠르 개최 당시만 해도 핀란드 인구가 적었고, 국제 콩쿠르를 꾸릴 여건도 충분하지 않아 5년 주기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주기가 더 짧아져야 한다는 논의도 있지만, 재정적 기반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대회를 열기 위해서는 최소 100~150만 달러(약 13억~20억 원)가 필요하다.
2015년부터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와도 협력해오고 있다.
라티아 재정 실무 지원뿐 아니라 예술위원회 구성에도 아카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음악대학과 함께 대회를 조직한다는 사실 자체가, 콩쿠르의 신뢰와 위상을 높여준다.
참가자들의 행복이 곧 대회의 발전
참가자들의 시벨리우스 협주곡 준비 과정을 돕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고 들었다.
포우사르 이번 대회를 앞두고, 참가자들이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의 야코 일베스 교수, 시벨리우스 전집 비평판 책임 편집자 티모 비르타넨과 온라인으로 만났다. 협주곡 해석에 대해 직접 질문하고 토론도 할 수 있다.
참가 연령 상한을 30세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포우사르 10대와 20대 이후는 음악적 성숙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폭 넓은 연령대를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몇 연주자는 콩쿠르에 두 번, 심지어 세 번 도전하기도 한다. 올해는 최연소가 15세, 최고령이 30세로 15년의 격차가 있었다. 다양한 성장 단계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콩쿠르의 특징이다.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내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20대 후반에 비로소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하는 이들도 있다.
제13회로 치룬 올해 결선 무대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포우사르 처음으로 현대음악 협주곡을 결선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참가자들은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에 4곡의 현대음악(핀란드의 카이야 사리아호(1952~2023)와 마그누스 린드베리(1958~), 한국의 진은숙(1961~), 영국의 올리버 너슨(1952~2018)) 중 한 곡을 해야 했다. 핀란드 청중도 호평했고, 국제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국제 음악 콩쿠르에 제시한 새로운 지평이었다.
수상자들에겐 어떤 혜택이 주어지나?
라티아 2022년부터 특별한 제도 두 가지를 운영하고 있다. 첫째는 저명 음악가들의 멘토링이다. 수상자들은 연주 조언을 받으며, 경우에 따라 연주 기회도 소개받는다. 올해 우승자 박수예는 199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 페카 쿠시스토 등에게 멘토링을 받았다. 2022년 우승자인 양인모 역시 쿠시스토와 핀란드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의 지도를 받았는데, 양인모는 당시 이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고 표현했다. 둘째는 고악기 대여제도다. 올해 우승자 박수예에게는 1777년산 과다니니 바이올린이 1년간 대여된다. 런던 현악기 딜러 J&A 비어스와의 협력으로 이뤄낸 것이며,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제도다.
콩쿠르가 끝난 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라티아 우승자와 후원자 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올해 재단·기금·개인 등 40곳이 넘는 단체와 인사들이 후원에 참여했다. 후원자들을 위해 매년 여러 차례 행사를 열어 우승자들의 연주 기회를 제공하며, 서로 지속적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세계 각국의 콩쿠르 우승자를 연결하는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우리는 콩쿠르가 참가자들을 충분히 지원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는지를 항상 점검한다.
다음 세대와 함께하는, 내일의 선율
최근 한국 연주자들의 활약에 대한 시선이 궁금하다.
포우사르 한국은 이제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 파워’로 자리잡았다. 세계 주요 콩쿠르 수상자의 17%가 한국 연주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무척 감탄했다. 많은 한국 연주자가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며 국제 음악 공동체 속에서 성장한 것이, 이 성취의 주요한 배경이라 생각한다.
다음 세대 청중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포우사르 2022년에 ‘어린이 그림자 심사위원단(Shadow Jury of School Chidren)’을 운영했다. 7~13세 어린이들이 공연을 듣고 의견을 나누었다. 공식 심사와는 별개였지만, 어린이들이 음악을 통해 뜻깊은 경험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한 SNS 활동을 강화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활발히 했다. 20대 팔로워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콩쿠르를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라티아 ‘살아있는 문화’를 전하고 싶다. 각 나라가 자기 땅에서 지켜내고 호흡하며, 세대를 잇는 문화 말이다. 인간은 단조로운 일상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삶을 지탱할 토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문화’다. 핀란드에서는 독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국민적 문화 각성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정신을 일깨웠다. 우리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힘과 가치를 굳게 믿고 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는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의 무대이자, 세대를 잇는 다리이다. 두 사람이 강조하듯, 시벨리우스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대의 변화 속에 새롭게 해석되며 젊은 세대의 연주로 살아 숨 쉰다. 콩쿠르는 경쟁을 넘어, 교감이 된다. 헬싱키의 겨울을 밝히는 선율처럼, 이 무대에서 탄생한 음악가들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이어지며 또 다른 세대의 음악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시벨리우스 콩쿠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