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 다시, 피아노 앞으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1월 3일 9:00 오전

FOCUS

 

피아니스트 김선욱

다시, 피아노 앞으로

 

지휘자에서 다시 피아니스트로, 베를린필과 4년 만의 재회를 앞둔 그의 고백

 

 

지휘자로서의 행보가 뚜렷해진 지금,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다시 건반 앞에 선다. 오는 11월, 그는 키릴 페트렌코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김선욱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21년 사카리 오라모의 지휘로 베를린필과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데뷔한 뒤, 4년 만에 베를린필과의 재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2015년 파보 예르비/도이치 캄머필하모닉, 2023년 야쿠프 흐루샤/밤베르크 심포니와 이 곡을 협연했던 그는 이번에도 자신만의 호흡으로 슈만의 음악을 마주할 예정이다.

“지휘를 시작한 뒤로 ‘피아니스트’나 ‘지휘자’라는 타이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게 되었어요.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니까요.” 오랜만에 피아니스트로 관객 앞에 서는 이번 무대는, 그가 지금의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021년 사카리 오라모/베를린필,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협연 무대 ©Frederike van der Straeten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으로서 지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지금, 이번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보여주는 무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점에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무대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요즘 무대에 설 때마다 ‘이게 지금의 나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휘 일정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 무대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피아노는 여전히 제 음악의 중심입니다. 하루는 여전히 24시간, 1년은 365일뿐이지만, 그 안에서 모든 시간을 음악에 바치며 제 믿음과 관념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오랜만에 피아니스트로서 관객 앞에 서는 무대라 더욱 특별합니다.

2021년 첫 베를린필 협연에서는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당시를 돌아봤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진은숙 작곡가의 협주곡은 극한의 기술과 감정을 동시에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기교를 넘어, 한 곡 안에 담긴 절실함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시간이었죠. 베를린필과의 데뷔 무대는 마침 그 곡을 열 번째로 연주하던 때였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사실이 영광이었고, 팬데믹 이후 처음 관객을 맞이한 공연이라 무대의 공기도 특별했습니다. 띄어 앉은 객석 속에서 오랜만에 실연을 마주한 관객들의 눈빛을 보며 저 역시 깊은 행복을 느꼈죠.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김선욱은 어떤 점에서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급하게 쌓은 것은 쉽게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년 1퍼센트씩이라도 발전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예술에 100퍼센트라는 것은 없고, 성장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만이 음악가의 자세라고 믿습니다. 베를린필 데뷔가 2021년이었으니 벌써 4년이 지났네요. 그때보다 단단해졌다면, 그것은 인내의 시간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서두를 수 없는 길이고, 그 길 위에서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연주 홍보 영상

이번에는 키릴 페트렌코와 첫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음악가들은 삶 자체가 음악이고, 음악에 온몸과 정신을 헌신하는 분들입니다. 페트렌코 역시 그런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음악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탐구하며, 악보의 작은 표시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죠. 그런 음악가와 무대에서 직접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지휘자로서 그의 집중력과 투명한 시선을 오래 존경해 왔는데, 이번에는 피아니스트로서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페트렌코와 함께 연주할 작품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듯 어우러지는 이 곡을 어떻게 해석할 예정인가요?

슈만은 협주곡을 작곡할 때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파트너’로서 기능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음악에서 피아노는 중재자가 아니라 여러 자아가 얽혀 있는 존재죠. 특히 이 작품에서는 클라리넷, 첼로와의 실내악적 교감이 돋보입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이 곡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자로서 이 곡을 바라보면 어떤가요?

학창 시절, 지휘과에서 필수로 공부해야 하는 레퍼토리였습니다. 특히 3악장의 엇박 구간은 지휘자에게 악명 높은 부분이죠.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흔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곡은 조화를 추구할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납니다.

 

지휘와 피아노, 두 길을 걸으며

지휘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김선욱은,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카라얀과 아바도의 베를린필 연주를 들으며 상상 속 무대를 그렸다. 그는 이제 지휘자로서 음악을 이끌고,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선다. 요즘 그는 ‘도전’이라는 단어보다 음악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지휘자로든, 피아니스트로든 자신이 전하는 음악이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위로와 기쁨이 된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다른 음악가들과 소리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그의 가장 큰 도전이자 행복이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있나요?

지휘자들은 보통 주 단위로 일정이 정해지고, 독주자는 일 단위로 일정을 조율합니다. 지휘 일정이 많아지면 피아노 무대가 줄어들지만, 틈이 생기면 늘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음악에 쓰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실내악 연주 경험이 지휘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귀’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내 소리를 잘 듣는 능력을 키워야 내가 만들고 싶은 소리와 음악이 발전할 수 있어요. 실내악에서는 서로의 소리와 표현을 들으며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 경험이 지휘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잘 들어야 원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듣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완벽도 없습니다. 저 역시 여전히 ‘내가 듣는 것이 정말 들리는 것인가’ 자문하곤 합니다. 평생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죠.

12월 경기필 ‘마스터즈 시리즈 VI’ 공연(12.11·12/경기아트센터 외)에서는 지휘자로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음악가와 한 무대에 선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지휘자로서 협연자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원하는 음악의 방향이 빠르게 교감되고, 그 에너지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하나로 모일 때 느껴지는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조성진 씨와도 그런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이를 거듭하며 달라지는 연주의 깊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진정한 예술가들은 예민하고, 솔직하며, 자기 비판적이었습니다. 음악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무대에서 연주자의 내면은 거울처럼 그대로 비칩니다. 사회와 부딪히며 내면을 다듬은 흔적이 결국 음악에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나이테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리즈 콩쿠르 이후 20여 년의 연주 여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저는 여전히 무한한 은하 속 하나의 작은 별 같은 존재입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음악은 점점 더 넓고, 미지의 세계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정의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계속 걸으며 나아가고 싶습니다.

홍예원 기자 사진 빈체로·베를린 필하모닉

 

김선욱(1988~)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런던 왕립음악원 지휘 전공으로 콜린 매터스를 사사했다. 2006년 리즈 콩쿠르 최연소·아시아 최초 우승을 거둔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선보였으며, 런던과 독일에서 다수의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공식적으로 지휘 데뷔 후, 2024년부터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키릴 페트렌코/베를린 필하모닉

11월 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협연 김선욱)

바그너 ‘지그프리트 목가’, 슈만 피아노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1번

11월 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야나체크 ‘라치안 춤곡’, 버르토크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1947년 버전)

11월 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협연 김선욱)

슈만 ‘만프레드 서곡’·피아노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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