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국교정상화 60주년
한·일을 잇는 또 하나의 길, 예술
역사와 정치, 사회의 변화 속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두 국가. 우리의 문화교류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OVERVIEW 2025년, 한·일의 공연예술 교류
INTERVIEW 한·일 수교 기념작 ‘야끼니꾸 드래곤’ 연출가 정의신
CONTINUE 과거와 현재를 넘어 앞으로의 한·일 관계
OVERVIEW
2025년 현재 한·일의 공연예술 교류는?
올해 우리나라와 ‘상호문화교류의해’를 맺은 국가는 두 곳이다. 2023년 수교 60주년을 맞은 캐나다와 2024년 수교 140주년을 맺은 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해’는 특별한 외교 계기가 있는 수교 국가에 대해 선포되는 것으로, 수교 주년을 기념하며 약 2년에 걸쳐 양국 간 교류의 기회를 확대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다가오는 2026년에 문화 교류가 기대되는 나라로는 프랑스가 수교 140주년을 앞두고 있으며, 이에 한국과 프랑스의 대사관은 벌써 ‘창의·기회·연대’라는 슬로건을 함께 채택하며 교류와 협력 프로젝트를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국교정상화 60년을 맞이하게 된 일본과의 관계는 앞선 국가들과 비교하면 미묘하다. 해결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정치·외교의 문제가 문화 교류의 ‘정서’에도 영향을 끼친다. 성글게 맺어진 한·일의 문화 교류는 어떻게든 문제를 피해 이어가겠다는 효율적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올해도 클래식 음악부터 연극, 무용, 전통예술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장르가 그들만의 공존 방식을 찾아 무대를 나누었다. 무대라는 길로 난 한·일의 교류 현장들을 따라가 본다.
꾸준히 이어온 전통예술을 넘어서

‘조화와 울림: 한·일 우정의 선율’
지난 3월, 정명훈의 지휘봉이 양국의 오케스트라를 이었다. 그가 계관지휘자를 맡고 있는 KBS교향악단 56명, 명예음악감독으로 임명된 도쿄 필하모닉 55명의 단원이 보여준 음악은 양국을 부지런히 오간 지휘자의 영향력으로 빛을 발했다. 도쿄 오페라시티(3.2)와 서울 롯데콘서트홀(3.3), 양일의 공연 모두 1부에는 선우예권과 이가라시 카오루코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며 한·일 협업의 의미를 더했다.
6월에는 도쿄 산토리홀에서 의미 있는 실내악 공연도 열렸다. ‘조화와 울림: 한·일 우정의 선율’ 공연의 공동예술 감독으로 첼리스트 쓰쓰미 쓰요시와 양성원이 대표로 나선 것. 피아니스트 김선욱·박재홍, 비올리스트 박하양, 소프라노 서선영 등 다양한 세대의 연주자들이 나서 일본 연주자들과 피아노 듀오부터 성악, 피아노 3중주·현악 8중주까지 다채로운 실내악 무대를 꾸몄다. 특별히, 작곡가 김택수가 ‘도라지타령’과 일본의 근대 가곡 ‘하마베노우타(해변의 노래)’ 등 양국의 노래를 엮어 쓴 창작곡 ‘인터 인트라’가 세계 초연되며 의미를 더했다.
국가 간의 교류라는 점에서, 가장 꾸준하게 이어온 장르는 전통예술이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을 조치하면서 한·일 교류 정책이 활발해졌고 지난 4월 5일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공연 ‘시간속의 상생’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어온 것이었다. 김해숙의 가야금 연주에 일본 무용수 후지마 란코가 춤사위를 더하며 문화의 깊은 교류를 보여주었다. 같은 달 18일에는 2008년부터 개최돼 올해 7회를 맞은 ‘한·일 청년 전통음악가의 만남’ 공연이 열렸으며, 국립부산국악원 단원들과 일본의 전통악기 샤미센·25현 고토·북을 연주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번갈아 무대에 올랐다. 전통음악에서의 가장 의미 있는 협업은 3월 5일에 열렸다. ‘한·일음악의 우아함과 정취’라는 공연명 아래 일본의 대표적인 샤미센 연주자이자, 샤미센의 한 유파인 ‘혼조류’를 창시한 혼조 히데타로를 비롯 일본의 샤미센 연주자들과 한국의 음악가들이 협업한 것. 특히 혼조 히데타로가 작곡한 ‘빛의 실’은 오현희 시 ‘어머니’에 선율을 입힌 것으로, 양국 관객 모두에게 울림을 주었다.
국공립 단체의 일본 나들이
대구시향은 히로시마의 ‘2025 코리아 위크’의 초청 공연(9.24)에서 대활약했다. 대구와 히로시마는 1997년 자매결연을 체결한 후 도시 간의 교류를 이어온 곳으로, 올해 백진현이 이끄는 공연에서 관객과 적극 호흡한 오페라 아리아와 대구시립국악단과의 협연으로 연주한 박범훈의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등의 연주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편 국립부산국악원은 7월 19·20일, KAAT가나가와예술극장에서 무용극 ‘춤, 조선통신사-유마도를 그리다’를 올렸다. 한·일 우호 외교의 상징인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한 공연을 일본 현지에서 선보인 사례다.
그외에도 다수의 국립 단체가 일본 공연 길에 올랐다. 국립심포니(지휘 이승원, 협연 마에다 히나)는 10월 2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6일 오사카 NHK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했으며 4일에는 오사카 세계엑스포의 특별 무대에서 실내악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국립합창단(지휘 민인기)은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7.11), 오사카 더 심포니홀(7.15)에서 뉴 재팬 필하모닉, 오사카 교향악단과 함께 하이든의 ‘전시 미사’(전쟁 미사)를 연주하며 두 국가 사이의 상흔을 어루만지는 음악을 흘려보냈다. 국립발레단은 7월 12·13일, 도쿄 티아라 고토 대극장을 찾아 ‘허난설헌-수월경화’를 통해 교류를 이어갔다.
국립극장은 실황 영상 교류라는 새로운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일본 신국립극장과 업무 협약을 맺고, 지난 2월 8일 해오름극장에서 신국립극장의 ‘투란도트’(지휘 오노 가즈시, 연출 알렉스 올레)를 상영했다. 이어 8월 28일에는 도쿄 신국립극장에서도 국립무용단 ‘2022 무용극 호동’ ‘몽유도원무’가 연속으로 상영됐다.
‘동아시아’라는 연대감

민인기/국립합창단·뉴 재팬 필하모닉(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
시선을 넓히면, 관점도 풍성해진다. 양국 간의 팽팽하던 긴장감이 삼자 구도에서는 오히려 균형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국립극장이 처음 개최한 창극 중심 세계 음악극 축제(9.3~28)는 한·중·일 3국의 전통 음악 기반 음악극을 소개하며 의미 있는 시작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망한가’(9.17·18)는 한·일 합동 음악극으로서 그 소재에서부터 예술 협업의 의의를 보여준다. ‘망한가’는 일본 전통가면극인 ‘노’(能)의 공연집단 노후카와 고창농악보존회의 임성준 연주자를 중심으로 제작되어 1993년 초연된 작품이다. 도쿄대학의 명예교수 타다 토미오가 집필한 작품으로, 일제감정기에 일본으로 강제노역을 떠난 조선 징용인 ‘이동인’의 아내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에서 영감받아 창작했다. 전쟁으로 슬픔을 겪은 아내의 이야기는 백제가요 ‘정읍사(수제천)’ 등의 시어를 빌려 표현된다.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이 사용되며, 이번 축제를 통해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게 됐다.
한·중·일의 협업은 창극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3국의 수도인 베이징(Beijing)·서울(Seoul)·도쿄(Tokyo)를 합쳐 이름을 만든 ‘베세토(BeSeTo) 연극제’는 2015년 ‘베세토 페스티벌’로 명칭을 확장해 이어져 왔다. 매년 세 나라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되며, 지난해는 한국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렸다. 올해는 9월 20일~10월 12일, 일본 돗토리현에서 개최됐고 한국 작품 중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로제타’가 무대에 올랐다.
PREVIEW 11월의 공연과 전시
서울국제음악제(10.30~11.6) 기자간담회에서 예술감독 류재준은 “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있고, 서울이 그 교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을 비롯하여 베트남, 말레이시아까지 음악 교육 수준이 올라가며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범아시아권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연주자 교류가 필요한 때”라고 언급했다. 서울국제음악제의 폐막 공연(11.6)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작곡가 타케미츠 토오루의 비올라 협주곡 ‘가을의 현’(지휘 키릴 카라비츠, 협연 박하양, 서울국제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이 공연될 예정. 3년 후의 축제 프로그램까지 구상하고 있다는 류 예술감독은, 앞으로도 더 많은 아시아권 연주자에 관심을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시대 일본 예술가들의 작품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연극 연출가 오카다 토시키와 작곡가 후지쿠라 다이(1977~)가 협업한 ‘거실의 변신’(11.1·2/대학로예술극장)은 연극과 현대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작품이다. 강제 퇴거 위기에 놓인 한 가족의 이야기는 무대에 오른 일본 첼피치 소속 배우 6명과 한국 연주자 7명을 따라 낯선 감각으로 관객을 이끈다.
12월에 들어서면 한일현대미술전도 각각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요코하마 미술관의 교류전으로 요코하마 미술관에 12월 6일부터 전시를 시작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내년 5월부터 전시될 예정이다.
하나의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그 정체성은 개개인 삶의 이야기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큰 틀에서는 기울지 않던 마음도, 그 역사를 통과한 한 사람의 생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수긍할 수밖에.
이야기에 집중한 공연으로는, 한국에서 초연을 앞둔 창작 오페라 ‘더 라스트 퀸’(11.19·20/서울 광림아트센터)이 대표적이다. 2015년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으로 제작, 한국에선 올해가 초연이다. 재일 교포 소프라노 전월선이 각본과 기획, 제작과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1901~1989)의 실화를 대본화했다. 이방자는 ‘마사코 여왕’으로도 불린 일본 왕족 출신으로, 영친왕 이은과 정략결혼을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품은 채 남편 사후에도 한국 땅에 묻혔다. “내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는 이방자의 대사가 역사의 중심에 선 여인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
다우치 치즈코, 혹은 윤학자로 불리던 여성의 삶을 다룬 음악극 ‘공생, 원’(12.11~14/국립극장 달오름/연출 김달중) 또한 국경을 넘는 사랑의 삶을 그린다. 윤학자(1912~1968)는 일본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부모를 따라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동복지시설 ‘공생원’의 창립자인 윤치호와 결혼, 남편의 실종 후에도 3천 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본 ‘한국 고아의 어머니’다. 음악극 ‘공생, 원’에서는 시간이 흘러 이곳에서 자란 이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한편 그간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다수의 연극 중, 2008년 초연된 ‘야끼니꾸 드래곤’(11.14~23/예술의전당)이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재회를 앞두고 있다. 그간 두 극장 간의 협업으로 탄생한 연극으로는 ‘5월 어느 강가에서’(히라타 오리자·김명화 공동 집필, 이병훈·히라타 공동 연출, 2002년), ‘아시아 온천’(극작 정의신, 연출 손진책, 2013년)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야끼니꾸 드래곤’은 제작 당시 양국에서 호평을 거뒀고, 양국의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글 허서현 기자
INTERVIEW
재일교포 연출가 정의신
한결같은 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
14년 만에 재연하는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한·일 정서를 ‘가족애’로 잇다
2008년 초연과 2011년 재연을 거쳐, 한국과 일본의 극장에 여러 차례 막을 올리며 벚꽃처럼 흩날리는 가족의 기억을 따뜻하고 애틋하게 담아낸 화제의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초연 당시, 작품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연극협회 ‘2008 공연 베스트 7’에 선정되었으며, 동시에 일본에서 ‘아사히 무대예술상 대상’ ‘요미우리연극대상 대상’ ‘최우수작품상’ 등 유수의 수상을 거두며 예술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양국의 배우와 스태프가 대거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프로덕션 재구성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일본 신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이 다시 손을 잡았고, 초연의 작·연출을 맡았던 재일교포 정의신이 다시 연출을 맡아 양국의 배우들과 함께한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1970년대 일본 관서 지방에서 재일 한국인 가족이 운영하는 곱창집 ‘야끼니꾸 드래곤’을 배경으로, 전쟁에서 왼팔을 잃은 아버지 용길과 서로 다른 상처를 지닌 세 딸,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막내아들, 그리고 가족 곁을 지키는 어머니 영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의신의 작품에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무언가가 결핍되었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렵고 힘겨운 현실을 살아 나가는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다. 정의신은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2012) ‘쥐의 눈물’(2011) ‘나에게 불의 전차를’(2013) 등에서 “살아간다는 것,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나의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다”라는 소신을 밝혀왔다. 14년 만의 재연을 앞둔 정의신에게 ‘야끼니꾸 드래곤’을 작업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 마음의 온도를 물었다.
번영의 시대 속에서 잊힌 가족의 초상
초연 이후 17년, 그리고 재공연 이후 14년 만에 ‘야끼니꾸 드래곤’이 한국과 일본의 무대에 오릅니다. 작·연출가로서 어떻게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요?
일본에서는 네 번째, 한국에서는 세 번째 공연입니다. 당초 여러 차례 공연을 거듭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재공연을 바라는 많은 목소리로 인해 다시 이렇게 공연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야끼니꾸 드래곤’의 시대적 배경을 오사카 만국박람회 직전의 관서 지방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 시대가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가 열렸을 때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빛나는 파빌리온이 늘어선 세계 박람회를 보면서 ‘미래는 멋진 것’이라고 믿었지요. 하지만 그 뒤편에서는 이타미공항(오사카국제공항) 활주로를 확장하기 위해 폐광된 규슈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빛과 그림자가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겁니다. 일본 경제의 저변을 한국인 노동자들이 지탱해 왔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어요. 또한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된 1970년은 일본이 고도성장기에 접어든 시기입니다. 만국박람회로 사회는 활기로 넘쳐있었고, 모두가 ‘미래는 멋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를 위해 희생되고 잊혀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의 사회와도 다르지 않아요. 경제적 부흥을 이루는 대신,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이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1970년대는 상징적인 해입니다.
결핍의 시대, 사랑을 꿈꾸며
암울한 상황에서도 당신의 주인공들은 늘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이는 작가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라 여겨지는데, 그런 유머 감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타고난 성격인 것 같습니다. 언제 길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은 두 개의 레일처럼 희극과 비극이 등을 맞대고 달린다고 생각합니다. 슬픈 일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웃음 속에 슬픔이 스며 있는 일도 많지요.
당신의 작품에서 항상 ‘가족애’가 강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가족은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의 사회를 나타내지요. 특히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쓰다 보면 가족의 존재가 선명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깊은 정으로 묶인 사람들이기에,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직 진한 애정을 지닌 사람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죠. 현재 가족의 의미는 점차 사라져 가지만, 제가 그리는 가족의 진정한 가치에 관객이 공감한다면 그 또한 현시대에 가족 간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서 오는 깊은 상실감일 겁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변함없이 가족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토키오의 존재를 좀 더 부각하고 싶습니다.
‘야끼니꾸 드래곤’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 ‘봄의 노래는 바다로 흐르고’ 등에는 자매들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자매들의 이야기에 특별한 애정을 느끼는 이유가 있는지요?
저희 어머니는 네 자매셨는데, 모이면 늘 새벽까지 시끌시끌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자매들은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했죠. 저도 다섯 형제 중 한 사람이라 그런지, 가족을 그릴 때 자연스레 형제와 자매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작품에는 장애인·재일교포·동성애자·말더듬이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건 결국 ‘결핍’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가진 것들을 잃어버린 존재들에게 관심이 가기 때문인데요. 넓게 보면 재일 한국인 또한 그런 존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인간이란 본디 완전하지 않은, 어딘가 결함을 지닌 존재라고 믿어요. 그 인식이 작품 속에서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저 역시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의 존재였기에 주류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애정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가운데 절망보다는 희망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무대와 삶으로
‘야끼니꾸 드래곤’을 비롯해 당신의 작품에는 억척스럽고 생명력이 강한 ‘어머니’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억척스러운 어머니 캐릭터를 자주 등장시키고 부각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할머니나 어머니가 강한 분들이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그런 캐릭터들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작품을 쓸 때마다 자연스레 그분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시대의 고난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상처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은 인간의 가장 강한 생명력, 그리고 사랑의 원형처럼 느껴지거든요.
초연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함께하는 고수희를 비롯해, 이영석·박수영·김문식 등 한국의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야끼니꾸 드래곤’에 참여합니다. 그간 한국 배우들과 여러 차례 작업을 이어왔는데, 그들만의 특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감정 표현의 강도, 두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배우들에게서는 강한 열정이 언제나 느껴지는데요, 그러면서도 감정적이라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연기를 쌓아나가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지금 또 구상 중인 작품이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년에 한국에서 ‘야끼니꾸 드래곤’의 10년 전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주류 밖에 선 사람들의 시선에서 작품을 계속 써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청주대 연극학과 교수) 사진 예술의전당
정의신(1957~)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 출생의 재일교포 2.5세. 요코하마 방송영화전문학원 미술과를 졸업 후, 극단 ‘검은 텐트’에 입단해 연극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7년 극단 신주쿠료 잔파쿠(신주쿠 양산박)를 창립했다. ‘천년의 고독’ ‘나에게 불의 전차를’ ‘더 데라야마(寺山)’ ‘인어전설’ 등으로 상을 받으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
11월 14~2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정의신(원작·연출), 쿠메 다이사쿠(음악감독)/이영석(용길), 고수희(영순), 지순(사츠카), 무라카와 에리(리카), 정수연(미카), 키타노 히데키(토키오), 박수영(윤대수), 치바 테츠야(테츠오), 이시하라 유우(하세가와), 김문식(오일백) 외
CONTINUE
과거와 현재를 넘어 앞으로의 한·일 문화 관계
‘성실’과 ‘믿음’이 깔린 교류로
조선 통신사에 담긴 의미를 톺아보며 두 나라 문화 협력의 나아갈 길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 한일 문화교류 사업-조선통신사 삼사 임명식'(서울)
지난 4월, 부산문화재단은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며 조선통신사의 모습을 재현했다. 의복과 의례를 고증한 서울 ‘조선통신사 삼사 임명식’으로 시작, 부산 북항에서 오사카까지 이어지는 통신사선을 실제로 띄워 당시의 뱃길을 재현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이 일본과의 교류를 위해 파견한 외교사절을 일컫는다. 학문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이들로 인해 발생했다. 한양에서 시작해 에도까지, 왕복 4천km가 넘는 대장정의 걸음은 의미 있는 교류의 기록물로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성실과 믿음으로 교류한다’는 뜻의 성신교린(誠信交隣)은 바로 이 통신사를 유지하는 정신이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도 계속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15세기 전반 외교를 위한 파견단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모든 관계가 단절됐다. 하지만 1607년 통신사의 파견은 다시 곧 이어졌고, 이 시기에 사절단의 문화적 역할이 강화됐다. 앞마당을 공유한 이웃 국가와의 관계는 이렇듯 갈등이 반복되는 듯하나, 선조들은 그 역사 속에서도 유산이 될 기록을 쓰며 되새길 만한 평화의 정신을 남겼다.
계속되는 역사의 미지수 속, 오늘날의 한·일 문화 교류는 새로운 활로를 찾을 때다. 빠르게 변하는 온라인 환경과 아시아의 문화적 성장이 실마리 중 하나다. 당장 지난 50주년과 비교해도, 문화 교류 분야가 다양해졌다. OTT를 기반으로 한국의 드라마,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큰 성공을 거뒀고, 양국의 문화 향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중·일 3국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서 전통악기를 기반으로 한 재해석이 활발했다면, 이제는 전통예술을 넘어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 등에서도 주목할 만한 역량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자본, 일본의 탄탄한 내수 시장 등을 고려한다면, 이를 엮어내 시너지를 발생시킬 묘수가 우리에게 있을지 모른다.
교류를 이어갈 방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다. 역사와 정치 속 국가라는 이름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문제들이 영원히 산적해 있지만, 조선에서 온 문화사절단의 한시를 받기 위해 몰려든 일본의 민중처럼 문화예술의 이름으로 오가는 발걸음에서 피어날 성실과 믿음은 양국 사이를 연결할 가장 튼튼한 다리가 될 것이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부산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