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트루바두르 카나리 워프 극장 ‘더 헝거 게임스: 온 스테이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2월 15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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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바두르 카나리 워프 극장 ‘더 헝거 게임스: 온 스테이지’ 11.12~26.10.18

 

잔혹한 생존 연대기

소설과 영화에 이어 연극으로! 런던에서 되살아난 ‘헝거게임’의 거대한 세계관

 

 

Credit: Johan Persson

만 열두 살이 되면,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 한 장이 유리공에 들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쪽지 수는 늘어나고, 가난한 주민들이 배급을 받을 때에도 쪽지가 추가된다. 이 쪽지들은 매년 열리는 생존 게임의 참가자를 뽑는 데 쓰인다. 각 구역에서 12~18세 아이들 한 쌍이 강제로 선발돼 경기장으로 보내지고,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헝거게임’이다. 부유한 ‘캐피톨’과 빈곤한 12개 구역(디스트릭트)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독재 국가 ‘판엠’은 과거 반란을 일으켰던 구역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 잔혹한 게임을 반복한다. 2008년 출간된 수전 콜린스(1962~)의 소설 ‘헝거게임’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2년부터 2015년에 걸쳐 네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시대를 대표하는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 2023년 프리퀄이 공개되며 다시 주목받았고, 2026년 여섯 번째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견고하게 구축된 세계관은 런던에서 ‘더 헝거 게임스: 온 스테이지’라는 새로운 형태로 탄생했다.

캣니스, 약자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12구역의 소녀 ‘캣니스 에버딘’은 시리즈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활쏘기와 사냥을 배우며 자랐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왔다. 그런데 열두 살 동생 프림이 게임에 뽑히자, 캣니스는 동생을 대신해 참가를 자원한다. 캣니스는 완벽한 영웅이라기보다 두려움과 책임감이 뒤섞인 현실적인 인물이다. 처음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지만, 약자를 돕고 부당한 규칙에 맞서는 선택을 이어가며 점차 체제를 흔드는 인물이 된다. 시리즈 전반에 걸친 이러한 변화를 통해 그녀는 ‘모킹제이’라는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모킹제이’는 캐피톨이 만든 감시용 새가 야생 새와 교배해 태어난 돌연변이로, 통제를 벗어난 존재를 뜻한다. 캣니스는 점점 저항과 희망의 상징을 직접 구현하는 인물이 된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속 분노와 용기를 깨워 희망이 되어가고, 모킹제이 브로치를 단 모습만으로도 저항의 메시지를 전한다. 수많은 위기를 거쳐 결국 반란을 이끄는 얼굴로 떠오르게 된다.

작품을 짓고, 공연장까지 새로 짓다

카나리 워프는 런던의 다른 명소들과 달리 완전히 새롭게 조성된 현대적 지역으로, 헝거게임의 미래 세계와 닮아있다. ‘더 헝거 게임스: 온 스테이지’는 기존 공연장을 빌리지 않고, 공연을 위해 극장 자체를 새로 지었다. 극장 건물 꼭대기에는 커다란 모킹제이 구조물이 우뚝 서 있고, 안내 직원들도 모킹제이 브로치를 달고 있어 극장 전체가 세계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 극장을 만든 ‘트루바두르’는 공간을 찾아 떠돌며 공연하던 작은 극단에서 출발해, 직접 극장과 스튜디오를 짓는 회사로 성장했다. 웸블리 파크의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전용 극장도 이들의 작품이다. 공간에 작품을 맞추는 대신, 작품에 어울리는 공간을 설계하는 방식은 제작자들이 꿈꾸는 형태일 것이다.

이번 극장은 모듈식 구조로 설계되어 필요에 따라 쉽게 재배치할 수 있으며, 영화 촬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다만 공사 지연으로 첫 프리뷰가 한 시간이나 늦게 시작됐고, 휠체어 관객이 공연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간 문제도 있었다. 접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런던 극장에서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다. 그럼에도 젊은 관객층의 반응은 뜨거웠고, 캣니스처럼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천 2백석 규모의 트루바두르 카나리 워프 극장은 소설 속 ‘헝거게임’ 경기장처럼 아레나 스타일을 택했고, 경사형 좌석으로 어디에서나 무대가 잘 보이도록 만들었다. 무대는 육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피겨 스케이트 경기장을 떠올리게 했다. 무대를 둘러싼 낮은 전광 패널은 장면에 따라 화면이 바뀌며 경기 중계와 배경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전광판에는 녹화된 장면과 실시간 중계 화면, 디지털 그래픽을 함께 사용했다.

시리즈를 움직이는 기술과 규모

배우들은 객석을 통해 등장하기도 했고, 어떤 순간에는 천장에 매달려 관객 바로 앞에서 공중 결투를 펼쳤다. 특히 장면에 따라 움직이는 객석이 큰 특징이었는데, ‘디스트릭트’로 나뉘어 배치된 관객석이 블록 단위로 이동하며 무대의 형태를 바꿨다. 구역 참가자가 사망할 때 해당 구역의 객석이 붉게 물들어, 관객은 자신의 자리가 하나의 구역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감했다.

세트는 바닥에서 솟아오르거나 천장에서 내려왔다. 다만 배우들이 트러스 같은 구조물을 오르기 위해 하네스(암벽장비)를 착용하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지뢰 폭발이나 벌의 공격, 격투 장면은 빛과 소리로 은유적으로 표현해 잔혹함을 완화했다.

이번 공연에서 캣니스 역은 배우 미아 캐러거(2004~)가 맡았다. 영화 작업을 주로 해온 그녀는 무대 데뷔라 믿기 어려울 만큼 강한 에너지로 극을 이끌었다. 공연에서는 캣니스가 특별한 유대감을 나눈 소녀 ‘루’의 죽음을 마주하고, 자신도 생사의 순간을 넘나들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촘촘하게 배치됐다. 경기장형 무대에서는 섬세한 내면 변화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순간도 있었지만, 별이 떠 있는 밤하늘 아래, 같은 구역 참가자 ‘피타’와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은 현란한 효과 사이에서 오히려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마지막에는 시민들의 무반주 합창으로 공간을 채웠다.

이 공연에는 2천 6백만 파운드(한화 약 5백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움직이는 객석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시야를 선사했고, 변형되는 무대는 다채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화살이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 꽂히는 놀라운 순간에는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관객들은 소설과 영화 속 세계에 실제로 들어온 듯한 감각을 체험했다. ‘더 헝거 게임스: 온 스테이지’는 거대한 시리즈의 상징을 무대로 불러냈고, 런던 공연 현장의 창의성과 기술력, 그리고 과감한 투자가 만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라이언스 게이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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