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 | 단 세 곡으로 쓰는 나의 이야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2월 22일 9:00 오전

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23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바리톤 고성현

단 세 곡으로 쓰는 나의 이야기

 

 

고성현(1962~)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과 라 스칼라 아카데미아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푸치니 콩쿠르 등 다수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했으며, 1995년 첫 한국가곡 음반을 선보인 이후 ‘인생이란’(2015), ‘시간에 기대어’(2016) 등을 발매했다. 현재 한양대 성악과 교수 및 한국성악학회 초대 회장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더 이상 날지 못하리, 그러나 날아올랐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더 이상 날지 못하리’ #고교 콩쿠르의 추억

에리히 클라이버/빈필(협연 바리톤 체사레 시에피)

감상 포인트 피가로의 발랄함과 위트가 넘치는 행진곡풍의 경쾌한 리듬

 

1978년 어느 봄날,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께서 제게 “너는 성악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본래 의사를 꿈꾸던 우등생이었지만, 그 말씀 이후 제 안에서 성악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성악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MBC 전국 고교생 성악 콩쿠르 ‘우리들의 노래’에 도전했습니다. 그때 선택한 곡이 바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더 이상 날지 못하리’였습니다.

“Non più andrai, farfallone amoroso(더 이상 날지 못하리, 사랑의 나비여)”

피가로가 군대에 입대하는 젊은 케루비노를 놀리며 부르는 이 아리아는 행진곡 리듬 위에 경쾌함과 위트가 살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날지 못하리”라는 가사를 부르던 그 순간, 저는 오히려 성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해 저는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고, 부상으로 받은 피아노를 제 모교에 기증했습니다. 음악의 길을 열어준 학교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습니다.

이 곡은 제게 단순한 콩쿠르 레퍼토리가 아니었습니다. 모차르트 특유의 명랑함 속에 숨겨진 깊이,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지만 내면은 진지한 피가로의 성격처럼, 저 역시 그렇게 음악에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곡입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질 제 여정의 출발점. ‘더 이상 날지 못하리’는 제게 “이제 너는 날 수 있다”고 말해준 곡이었습니다.

 

 

청산, 그 의구한 스승의 노래

#김연준 #‘청산에 살리라’ #한양대학교와의 인연

오현명(바리톤)

감상 포인트 “세상 번뇌 시름 잊고”라는 가사 속에 담긴 초월과 위안의 정서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1992년, 서른두 살이던 저는 김연준 한양대 총장님께서 직접 제 손에 교수 임명장을 쥐어주신 순간을 맞았습니다. “언제든지 들어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따뜻한 말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 귀에 생생합니다. 총장님은 가곡 ‘청산에 살리라’의 작곡가이자, 한양대학교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의 설립자였습니다. 김연준 선생님은 1973년 윤필용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구치소에 계실 때 이 곡을 작곡하셨습니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는 가사는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예술가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1993년 귀국해 한양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이 곡은 제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중요한 행사나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그 정신이 떠올랐습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는 구절처럼, 김연준 선생님께서 일구신 한국 가곡의 전통과 그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최근 전주 옆 작은 추동마을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며, 김연준 선생님의 연가곡을 담은 악보집 ‘시인의 사랑과 생애’(2025)를 완성했습니다.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던 늦은 밤, 그 별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시간이 신의 크신 은혜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랜 세월 성악가로 무대에 서며 한국 가곡이 지닌 깊은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찾은 ‘청산’입니다. 이 연가곡이 국내를 넘어 세계에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성악가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 펴지고, 더 넓은 청중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청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술가가 평생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며, 김연준 선생님께서 제게 남겨주신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 청산에서 저는, 오늘도 노래합니다.

 

 

하늘에서 만난 두 개의 태양

#아메데오 밍기 #‘하늘의 두 태양’ #이탈리아 유학 시절

아메데오 밍기

감상 포인트 이탈리아 대중음악의 서정성과 벨칸토 발성이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

 

1990년대 초, 이탈리아 밀라노. 저는 베르디 음악원에서 공부하는 한편, 라 스칼라 아카데미아에서 오페라를 익히며 낮에는 아리아를, 밤에는 이탈리아 가곡을 파고드는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라디오에서 아메데오 밍기(1947~)의 ‘하늘의 두 태양(Due soli in cielo)’이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중가요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그의 딕션, 호흡, 레가토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이탈리아어 발음과 벨칸토 기법이 대중음악 속에 녹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밍기의 노래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페라 아리아만 공부하던 제게, 이탈리아 대중가요는 살아 있는 이탈리아어 교과서였습니다. 일상 언어의 자연스러운 억양, 감정의 미묘한 결, 모음의 색채감. 이 모든 것을 그의 노래에서 배웠습니다. 특히 벨칸토 발성의 핵심인 후두 개방, 호흡 지지, 그리고 레가토(부드럽게 이어 부르기)를 그는 대중가요에서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힘을 빼면서도 울림을 유지하는 법, 자연스러우면서도 기교적으로 완벽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오페라 극장에서는 드라마틱한 힘이 필요하지만, 진정한 벨칸토는 그 힘을 아름답게 제어하는 데 있습니다. 밍기의 노래는 힘과 아름다움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하늘의 두 태양’이라는 제목은 제게 오페라와 가곡,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이탈리아와 한국이라는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하는 두 세계를 모두 품고 싶다는 마음을 일깨웠습니다.

8개월 만에 네 개의 국제 콩쿠르를 제패하며 유럽에서 인정받던 시절, 저는 밤마다 밍기의 노래를 들으며 벨칸토의 본질을 깨달아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발성 기술이 아니라,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우리말 노래를 부르고,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것도 그때의 경험 덕분입니다. ‘시간에 기대어’ ‘인생이란’ ‘서시’ ‘시간이 흘러도’ 등의 음반을 발매하며 클래식 음악과 대중의 경계를 허물고자 합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있습니다. 음악에도 두 개의 태양이 함께 빛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밍기의 ‘하늘의 두 태양’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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