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35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벨기에에서 꽃핀 예술 기업가 정신
이자이 콩쿠르 총감독 엘레나 라브라노프

엘레나 라브라노프(Elena Lavrenov)는 벨기에 출생의 불가리아계 바이올리니스트. 리에주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스페인 무르시아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실내악단 ‘라 브레 노트’의 회장이자, 2018년부터 이자이 콩쿠르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달콤하고 향긋한 와플의 고향, 리에주는 벨기에 남동부에 자리한 인구 70만 명 규모의 도시다.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왈롱 오페라 극장과 1905년 세계 엑스포를 위해 세워진 라 보레리 미술관은 이곳에 예술적 감성을 더한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수많은 예술가들이 리에주를 예술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만들어냈다. 상징주의 시인 조르주 로덴바흐, 초현실주의 화가 폴 델보를 비롯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비외탕(1820~1881)과 그의 제자 외젠 이자이(1858~1931)가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전통을 확립하며 유럽 음악계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이자이는 인간적 진정성을 중시한 연주자였으며 음악을 하나의 언어이자 삶의 고백으로 여겼다. 대표작인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여섯 곡(Op.27)은 각각의 연주자에게 헌정된 초상화이다.
오늘날 리에주는 이자이의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의 정신을 현재의 무대 위로 되살린 인물이 있다. 환하고 상쾌한 미소와 금발이 인상적인 이자이 콩쿠르 총감독 엘레나 라브라노프이다. 그녀는 예술과 현실, 이상과 실행을 연결하는 기획자이자 연주자이다. 외젠 이자이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무대, 이자이 콩쿠르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그녀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콩쿠르의 탄생 비화

엘레나 라브라노프와 공동 설립자 아숏 카차투리안
2018년 이자이 콩쿠르를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리에주 출신인 외젠 이자이의 음악적 유산을 기리며, 동시에 젊은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예술적 탁월함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아숏 카차투리안(이자이 콩쿠르 예술감독)과 바이올리니스트 베르트랑 라브라노프와 함께 대회를 설립했다.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가?’ ‘진정 의미 있는 예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벨기에라는 작은 나라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젊은 예술가들이 음악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길 바란다.
창립한 지 7년이 지났다. 이자이 콩쿠르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콩쿠르는 꾸준히 진화해 왔다. 대회의 핵심 가치는 예술적 탁월성, 포용성, 그리고 접근성이다. 단순히 경쟁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젊은 음악가들이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예술로 연결되는 세계시민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바이올린과 실내악 부문으로 출발한 대회는 이후 피아노와 첼로 부문을 추가하며 영역을 넓혀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했으나, 2023년부터 다시 대회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바이올린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 참가자들이 영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이자이 콩쿠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린 콩쿠르로 성장했다.
음악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서사
주니어·시니어 부분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주니어(만 13세 이하)와 시니어(만 33세 이하)로 구분되는 두 부문은 나이와 교육적 목적에 따라 레퍼토리와 프로그램을 다르게 설계하고 있다. 매년 각 부문별로 100명 이상이 참가해 다양한 연주자들이 모인다. 평가 기준은 공통으로 음정·음색·완성도·개성·해석력·예술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다만 부문별로 중점은 다르다. 주니어 부문은 무대 경험과 자신감, 그리고 국제 무대에 대한 노출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시니어 부문은 보다 심화된 해석력과 전문가 네트워크 형성, 국제적 가시성 확대, 연주 계약이나 추가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각 부문의 수상자 혜택은 무엇인가?
시니어 부문 1위 수상자에게는 고가의 바이올린을 1년간 대여받을 수 있는 특전과 함께 오케스트라 협연의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2025년 우승자인 줄리안 카인라트는 런던의 현악기 제작자 플로리안 레온하르트로부터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대여받았으며 오는 2026년 4월 5일 프라하 스메타나홀에서 노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이다. 주니어 부문에서는 수상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어진다. 조직위원회는 수상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공연 소식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하고 진로 정보나 조언을 제공하는 등 커리어 매니지먼트 측면의 지원을 함께 펼치고 있다.
재원 조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시의 행정·재정 지원과 민간 기부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시작은 아주 소박했다. 2018년 첫 대회는 어떤 외부 지원도 없이 가족이 설립한 라 브레 노트 음악학교의 내부 자원만으로 진행됐다. 이후 대회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관객과 참가자 가족들의 자발적인 후원이 점차 늘어났고, 현재는 개인과 기업의 정기 후원 체계가 자리 잡았다. 연간 운영 예산은 약 35만 달러 규모다.
공정성과 자유, 두 축으로 세운 심사의 미학
예선, 준결선, 결선 심사마다 평가 기준은 어떤 차이가 있나?
예선과 준결선은 영상 심사로 진행된다. 예선에서는 참가자의 기술적 숙련도, 음정과 음색, 그리고 잠재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며 준결선에서는 음악성, 양식에 대한 이해,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본다. 준결선 심사는 실시간 스트리밍 영상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심사위원이 같은 홀에 모여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토론을 거쳐 평가를 내린다. 결선 무대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심사위원 앞에서 연주한다. 이때는 예술적 정체성, 감정의 깊이, 그리고 관객과 심사위원과의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각 라운드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핵심은 바로 ‘예술적 자유’다. 모차르트 협주곡, 파가니니, 바흐 등과 같은 표준 레퍼토리를 지정하되 각 연주자의 다양한 해석과 개성 있는 스타일을 존중한다. 주니어 부문은 참가자들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부여해 자신만의 표현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다. 반면 시니어 부문은 보다 명확한 기준과 깊이 있는 레퍼토리를 요구한다. 결선에서는 반드시 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 중 한 곡을 연주해야 하며 이를 통해 참가자의 예술적 정체성과 해석력을 가늠한다.
심사위원은 어떻게 선정하며, 공정성은 어떻게 보장하는가?
심사위원단은 통상 7~9명으로 구성된다. 현역에서 활발히 연주와 교육 활동을 이어가는 국제적인 음악가들을 초청하며 각 라운드에는 서기가 배석해 전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한다. 심사는 단순히 점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방적인 토론을 중시하며 ‘사운드’ ‘비브라토’ ‘프레이징’ 등 음악적 요소에 대한 정성적 논의를 통해 투명한 합의에 도달한다.
총괄 디렉터로서 당신의 역할은?
나는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공정한 심사를 위해 직접 평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참가자 중 개인적 인연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조직 운영과 대회 전반의 방향 관리에 집중한다. 심사 과정은 예술감독 아숏 카차투리안이 전담한다. 나는 최종 합의 과정에만 참여해 심사위원단이 엄정하고 투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자이 콩쿠르만이 추구하는 특별함
벨기에에는 유서 깊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있다. 이자이 콩쿠르와는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를 것 같다.
이자이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경쟁 관계가 아닌 보완적 관계에 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역사 깊은 대회라면 이자이 콩쿠르는 보다 접근성이 좋고 교육적인 환경을 지향한다. 주니어, 시니어 부문을 나누는 것도 그 이유이다. 국가 간 협력을 통해 결선 무대를 이동시킬 수 있는 유연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우리만이 가진 독특한 국제 전략이다. 2026년 7월 결선은 한국에서 열린다.
내년, 결선을 한국에서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대회마다 새로운 심사위원진을 초청한다. 2025년에는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남카라를 심사위원으로 초대했는데,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이자이 콩쿠르를 보다 국제적인 형태로 발전시키자’는 뜻이 서로 맞았다. 서로의 비전과 목표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한국에서 결선을 개최하기로 했다. 또한 아시아권 참가자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어 접근성과 참여 기회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2025년 주니어 부문에서 한국 연주자가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음악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의 높은 교육 수준과 체계적인 훈련 문화가 낳은 결과라고 본다. 한국 음악가들은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엄격한 자기관리, 섬세한 감수성, 끊임없는 헌신, 그리고 탁월한 집중력을 갖추고 있다. 이 요소들이 결합해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연주자들의 정밀한 테크닉과 깊은 표현력은 이자이 콩쿠르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
이자이 콩쿠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자이 콩쿠르는 깊은 자부심의 원천이다. 외젠 이자이는 벨기에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그 위상이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직접 세계에 알리고 그 음악적 정신을 이어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벨기에, 특히 리에주를 세계 음악 커뮤니티와 연결하고 있다는 점 또한 큰 의미가 있다. 국제적 교류를 통해 얻는 문화적 풍요로움이야말로 예술의 본질 중 하나라고 믿는다.
앞으로 10년, 이자이 콩쿠르가 지향하는 방향은?
국제적 정체성을 강화하되 예술적 뿌리는 벨기에에 두고자 한다. 첫째, 오케스트라와의 협력을 확대해 연주 기회를 늘릴 것이다. 둘째, 수상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해 실질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 셋째, 해외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해 결선 무대를 벨기에와 파트너 국가에서 교차 개최할 예정이다. 2026년 한국에서 열리는 결선이 그 첫걸음이며, 2028년 창립 10주년에는 다시 벨기에 리에주로 돌아와 축제의 장을 펼칠 계획이다.
‘예술은 꿈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술은 구조를 통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믿는 엘레나 라브라노프는 예술가의 이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옮겨내는 방식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아이디어를 무대 위 생생한 현실로 바꾸는 그녀의 추진력은 놀랍다. 불과 몇 년 만에 이자이 콩쿠르를 지역 축제에서 국제 무대로 성장시킨 것도 그런 기획력과 기업가적 감각 덕분이다.
2026년 결선을 한국에서 열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가 예술로 대화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벨기에의 클래식 전통이 서울의 무대에서 울려 퍼지고, 아시아의 젊은 음악가들이 리에주로 돌아와 다시 연주를 이어가는 순환은 라브라노프가 그리고 있는 예술 생태의 새로운 지도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이자이 콩쿠르
INFO 7월 6~12일 이천아트홀
2026년, 이자이 콩쿠르 결선은 한국에서!

남카라
벨기에에서 시작된 이자이 콩쿠르는, 국제적 확대를 목표로 하며 내년 콩쿠르에서의 예선·준결선은 온라인(벨기에)으로, 결선은 한국에서 개최된다. 이에 결선 라운드 공동감독으로 한국국제예술학교(KISA)의 교장 남카라가 선정되었고, 두 기관의 협력으로 콩쿠르가 개최될 예정.
“국내 최초의 초·중·고 통합 음악학교인 한국국제예술학교는 체계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교육 과정을 토해 차세대 음악가들을 양성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교의 철학과 맥락 속에서, 국제 콩쿠르의 결선 무대가 한국국제예술학교와 이자이 콩쿠르 본부의 공동 주최로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특히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의 결선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내 음악계에도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콩쿠르 설립자 두 분도 음악가 부부이고, 저와 제 남편 역시 이 학교를 함께 운영하는 음악가 부부라는 점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습니다.”(이하 남카라)
지난 7월, 남카라는 벨기에에서 열린 이자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주니어 부문 1·2·3위가 모두 한국계 연주자에게 돌아가며, 한국 연주자와 음악 교육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다가오는 이자이 콩쿠르 결선은 7월 6~12일에 이천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신청 마감은 오는 12월 29일까지.
“이번 협력은 단순한 공동 주최를 넘어, 서로의 전문성과 예술적 철학을 존중하는 과정입니다. 기존의 벨기에 생중계 경험을 기반으로, 이번 한국 무대는 음향과 영상의 품질, 그리고 연출 전반을 한 단계 높인 글로벌 라이브 스트리밍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대회의 감동을 전 세계 시청자들과 보다 생생하게 나누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교가 위치한 경기도 이천은 훌륭한 예술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결선은 이천아트홀에서 개최되며, 참가자들은 연주 준비를 위해 최적화된 시설을 갖춘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리허설을 진행합니다.”
허서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