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2025년, 장르별 국내외 화제 공연 총결산
클래식 음악·연극·뮤지컬·무용·전통음악·축제 등

PERFORMANCE of the YEAR
올해도 공연계를 둘러싼 희로애락이 교차했다. 클래식 음악은 팬데믹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며 외형적인 풍요를 회복했고, 전국을 가득 채운 지역 음악 축제들도 주목할 만하다. 동시대적 실험을 거듭하는 연극과 무용, 창작 뮤지컬의 토니상 수상을 이룬 뮤지컬, 성찰과 실험을 모두 이룬 전통음악계도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더불어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미국 등 국가별 한 해를 돌아보는 지면까지! 공연예술계의 오늘을 돌아보며 올 한 해를 마무리 짓는다
총괄 허서현 기자
CLASSICAL MUSIC ORCHESTRA
관현악
쏟아진 명문 악단의 방문

야쿠프 흐루샤/밤베르크 심포니(협연 김봄소리) ©빈체로
* 국내의 명문 악단들의 활약과 교향악축제, 그리고 여러 페스티벌의 개·폐막 공연을 장식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활약이 돋보인 한해였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그 가운데 해외 악단들의 성공적인 내한을 손꼽았다. 협연자의 유명세보다 악단의 시그니처 레퍼토리를 앞세운 공연들이기도 했다
쌉싸래하고 중후한 음향의 세묜 비치코프/체코 필하모닉(10.28·29)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 전곡은 여느 오케스트라보다 감격적이었고, 피부에 스며드는 듯한 중저음이 살아있는 체코의 사운드는, 방부 처리라도 된 듯 거리마다 옛 발자취가 남아있던 프라하를 고스란히 소환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끝맛이 개운했으며, 잔재주 없는 표현에 아첨하지 않는 진솔한 해석이었다. 총주에서는 놀랄 만큼의 음량으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야쿠프 흐루샤/밤베르크 심포니(5.31~6.1)는 김봄소리와의 협연으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탄산음료를 한 모금 마신 듯 밝고 가볍고 민첩한 그녀의 연주는 파란 드레스와 조응하며 무대의 결을 환하게 열었다. 그녀가 천착하는 바체비치의 ‘폴란드 카프리치오’에 이어 바이올린 단원 가브리엘레 캄파냐가 독주 바이올린용으로 편곡한 크라이슬러 ‘아름다운 로즈마린’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 밤베르크 심포니는 현·관·타악기를 하나로 갈아 넣은 듯 매끄럽게 융합된 음색 위, 악단의 고유한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냈다.
정명훈/라 스칼라 필하모닉(9.17·18) 연주에서 루간스키가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서두르지 않았으며 유유자적했다. 압권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한때 정명훈의 해석은 개인의 정서를 투사할 수 있는 울부짖음이었다면, 이번 해석은 인생의 비극을 담담하고 거대하게 관조하는 스타일이었다. 3악장의 절묘한 변속에서 과거로 회귀하나 싶더니 마지막 4악장의 처절하게 변색이 되어가는 최후 형상화가 기막혔다. 라 스칼라 필은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과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후반부를 칸타빌레로 선사했다.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9.24~28)의 연주에서는 음악감독 안토니 헤르무스가 지휘한 서울 공연보다 윤한결이 이끈 고양아람누리 공연(9.30)이 더 와 닿았다. 백혜선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여유가 있었고 또박또박 짚는 단아한 연주였다.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 윤한결은 스케일과 꼼꼼한 세부를 모두 챙기며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의 잠재력을 이끌어냈다. 목관은 생생한 존재감을 보여줬고, 호른은 넉넉한 가을빛을 띠었다. 4악장 주제 선율이 계속 흐를 때는 상당히 감동적이었으며, 또렷하게 상이 맺힌 가을의 브람스가 존재했다.
에드워드 가드너/런던 필하모닉(10.14~18)은 손열음 협연으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펼쳤다. 손열음은 여유 있게 운행했으며, 손이 안 보이는 격렬한 악구를 소화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품위를 잃지 않았다. 런던필은 더블베이스 소리가 고급스러웠고, 플루트 수석은 피어오르듯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했다. 멘델스존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와 브람스 교향곡 2번은 부드럽고 밝은 현과 관의 블렌딩이 내내 따스했다.
구스타보 두다멜/LA 필하모닉(10.21·22)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은 약음과 디테일을 세심하게 살리는 부분이 선명했다. 베스 테일러(메조소프라노)·첸 레이스(소프라노)의 호흡도 좋았다. 스트라빈스키의 두 대표곡인 ‘불새’ 모음곡과 ‘봄의 제전’ 역시 청중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한층 노련해진 마에스트로 두다멜이 침묵의 가치를 올리며 다이내믹을 크게 가져가니 객석에는 전율에 가까운 순간들이 이어졌다. LA필 특유의 미국적 활기와 밝은 음색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에사 페카 살로넨/뉴욕 필하모닉 ©Chris Lee
에사 페카 살로넨/뉴욕 필하모닉(6.26~28)은 밀도 높고 진한 앙상블을 들려줬다. 악장 프랭크 황이 이끈 현악, 자유롭고 분방한 금관이 크게 어우러지며, 익숙함과 낯섦이 뒤섞인 프랑스 관현악의 색채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아기자기하고 아련했던 라벨 ‘어미 거위’ 모음곡, 컬러와 모노톤이 섞인 듯했던 드뷔시 ‘바다’,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의 여정은 토요일 저녁을 풍성하게 채웠다. 오토 클렘페러 편곡의 바흐 ‘Bist du bei mir(그대가 나와 함께라면)’의 감동과 바그너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의 호쾌함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완벽한 디저트처럼 음악적 입맛을 돋우었다.
알렉산더 셸리/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5.29~31)의 연주에서 손열음의 즉흥적이고 재즈 친화적인 성향은 라벨 특유의 질감이 묻어난 피아노 협주곡과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졌다.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접한 연주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해석이었다.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는 프랑스 악단처럼 목관에서 은은한 향을 피워 올렸고, 그녀의 피아노는 곡의 비경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시간이 멈춘 듯한 2악장은 아름다움과 서글픔이 밀려와 눈물샘을 자극했고, 3악장은 아크로바틱하면서 위트있는 해석도 돋보였다. R.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에서 빠릿빠릿하게 반응하는 악단의 적극적인 기동력이 돋보였고,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은 독일적이라 할 수 없는 악단 성격의 빈틈을 지우며 부드럽게 이어 연주했다.
프랑스 목관의 화사한 색채감을 만끽했던 크리스티안 마첼라루/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4.29~5.2)의 생상스 ‘신앙에 의한 3개의 교향적 회화’ 중 3악장은 녹음이 드물게 남아있는 작품을 실연으로 진하게 체험했다.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중 2번과 더불어 대표곡인 5번 ‘이집트’는 알렉상드르 캉토로프가 협연했다. 미묘하고 영롱한 타건에 귀가 황홀했으며, 생상스 ‘삼손과 델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와 베체이 ‘슬픈 왈츠’ 등 두 곡의 앙코르도 최고급 셰프의 단품 요리 같았다.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을 프랑스 오케스트라보다 잘 하기는 힘들 것이다. 루실둘라의 오르간은 머릿속 깊은 곳과 발에 닿은 바닥까지 동시에 떨렸다.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우스’ 중 ‘지옥의 갤롭’과 샤미나드 ‘스카프춤’은 프랑스 특유의 에스프리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CLASSICAL MUSIC OPERA
오페라
계획된 만족감을 넘어 화제가 필요하다

국립오페라단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황필주
*정명훈이 화제를 낳고, 그가 예술감독이 된 부산이 한국 오페라계에서 많이 거론된 해였다. 바그너·프로코피예프·최우정의 작품들이 첫 선을 보였고, 대구에서는 신작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수연 오페라평론가는 “전반적으로 특이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1년이었다”며 아쉬움을 남겼다
국공립오페라단과 민영 오페라단에서는 예년과 다름없는 일정으로 오페라가 공연됐고, 예정됐던 축제들도 모두 무사히 마쳤으며, 오페라계는 별다른 이슈 없이 한 해를 마감하는 듯하다.
올해 우리 오페라계의 가장 큰 뉴스로는 정명훈이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의 247년 역사상 첫 동양인 음악감독으로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되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정명훈은 지난해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클래식부산의 예술감독으로도 임명되었다.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선임 발표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정명훈은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공연과 라 스칼라의 연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6월 20일 개관한 부산 최초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은 작곡가 베토벤을 주제로 8일간 개관 페스티벌을 이어갔는데, 마지막 순서로 오페라 ‘피델리오’(6.27·28)를 콘서트오페라 형식으로 공연했다. 정명훈과 더불어 외국 성악가와 우리 성악가가 함께 꾸민 이 무대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콘서트홀의 물리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콘서트홀은 12월 19·20일 정명훈의 지휘와 테너 이용훈, 바리톤 김기훈 등이 출연하는 콘서트오페라 ‘카르멘’을 다시 공연할 예정이다. 오페라하우스가 개관하기 전까지 부산 지역에 오페라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술의전당 ‘물의 정령’ ©예술의전당
서울 예술의전당이 자체 제작해 세계 초연한 오페라 ‘물의 정령’(5.25~31)은 아마 올해 한국 오페라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K-오페라를 표방하며 외국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도 추진하는 등 예술의전당이 야심차게 준비한 이 오페라는 호주 작곡가인 메리 핀스터러의 몽환적인 음악과 톰 라이트의 영어 가사 대본으로 공연했다.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에는 대부분 높은 점수를 줬지만, K-오페라의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국 오페라로서 정체성 또한 여러 의견이 엇갈렸다. 세계 무대를 향한 동시대 한국 오페라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으나, 예술의전당이 큰 포부를 가지고 자체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좀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도 한국 초연 무대를 과감히 이어갔다. ‘피가로의 결혼’(3.20~23)은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국립오페라단으로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무대에 올린 것이었다. 이어 6월에 공연된 프로코피예프의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10월에 공연한 ‘화전가’, 12월 초에 선보일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모두 한국 초연이다.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6.26~29)은 낯선 작품이었음에도 섬세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고, 주역으로 나선 우리 성악가들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화전가’(10.25·26)는 작곡가 최우정, 대본가 배삼식 콤비가 창작했다. 이 작품은 9명의 여성 성악가로 구성된 독특한 서사와 오페라와 연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적 요소로 신선함을 안겼다. 국립오페라단으로서는 모처럼 발표한 우리 오페라 신작인데, 창작 오페라의 공연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객과 만나 한국 오페라의 확실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작년부터 시작된 바그너 시리즈의 두 번째 오페라인 ‘트리스탄과 이졸데’(12.4~7)는 5시간 40분이라는 긴 공연 시간을 예고하고 있다. 이 같은 제약에도 우리나라에서 완성도 높은 바그너 오페라를 관람하길 바라는 애호가들의 열망을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에 이은 국립오페라단의 레퍼토리 다변화는 국립예술단체로서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한국 오페라의 기반을 풍성하게 한다고 본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서울시오페라단은 두 편의 그랜드오페라와 한 편의 야외 오페라를 공연했다. ‘파우스트’(4.10~13)는 연극배우 정동환이 파우스트 박사로 오프닝에 등장해 연극과 접목한 연출로 화제를 모았고, 40주년 기념작 ‘아이다’(11.13~16)는 우리 성악가만으로 최고의 무대를 꾸미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장점을 크게 살린 공연이었다. 1985년 창단 당시, 서울시립오페라단(현 서울시오페라단)은 김신환 초대 단장의 오랜 해외 경험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원어 공연을 시도했고, 외국인 성악가나 연출가를 적극 초빙하는 등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서울시오페라단은 오직 한국인 성악가와 스태프로 외국 오페라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올해 해외 교류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1월 불가리아 소피아 오페라 공연을 시작으로, 7월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축제에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초청 공연했고,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는 ‘동방의 심장, 하나의 무대’(10. 30)라는 콘서트에서 한·중·일 성악가들이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이밖에 3월, 2025년 첫 시즌 공연으로 오스트리아의 클랑포룸 빈과 벨기에 니드컴퍼니의 협업으로 탄생한 메타오페라 ‘Amopera’(2.22·23)를 콘서트 형식으로 내놓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참신한 공연이었다는 평가다.
민영 오페라단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6.6~7.13)도 16회를 맞았다.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7개 단체가 참가하여 오페라하우스에서 네 작품, CJ 토월극장에서 한 작품, 자유소극장에서 두 작품이 순조롭게 공연을 마쳤으나 올해 역시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해 향후 페스티벌의 의미와 지속가능성에 염려를 자아내는 실정이다.
이처럼 계획됐던 많은 오페라가 별 차질 없이 공연됐으나 전반적으로 특이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1년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계가 요동친 이후, 지난 몇 년간 한국 오페라는 생생하게 움직이며 변화를 모색해 왔다. 그런 영향으로 더욱 진일보할 것으로 기대했던 2025년에 이처럼 동중정(動中靜)의 모습이 관찰된 것은 실망스럽다. 무탈하게 지나간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모순되게도 우려스러운 것은 그 평이함이다. 화제성 없는 장르에 대중의 관심이 머물지는 않는다. 왠지 모를 정체의 기운이 더 깊어지기 전에 하루빨리 걷어내야 할 것이다.
글 손수연(오페라평론가)
CLASSICAL MUSIC MUSIC FESTIVAL
음악 축제
사계절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물들인 향연

교향악축제 ©예술의전당
* 서울에 음악 자원들이 몰려있는 가운데 축제는 음악가와 공연을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는 서울부터 통영까지 열린 축제에 대해 “대한민국은 1년 내내 클래식 음악 축제가 진행 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년 내내 축제인 나라’.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아닐까? 그런 나라라면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바로 그렇다는 사실! 모아 보면 늘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설을 쇤 직후, 대구콘서트하우스(DCH)는 DCH 앙상블 페스티벌(2.6~3.28)을 시작했다. 연초부터 빈-베를린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라이너 호넥·하노버 스트링 퀸텟·아벨 콰르텟 등 뛰어난 음악가들이 대구에 모였다. 대구의 음악제가 끝나자마자 통영이 이를 이어받았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진행된 통영국제음악제(3.28~4.6)는 클래식 음악과 국악, 단편영화 상영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다. 임윤찬을 상주 연주자로 두어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역동적인 영상과 시대악기 전문연주단체인 B’Rock의 연주로 무대에 오른 애나 메러디스(1978~)의 ‘Anno’는 우리 시대 음악 공연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4월에는 전국의 클래식 음악가들과 애호가들이 모이는 교향악축제(4.1~20)가 열렸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빼곡히 채운 일정에 전국의 18개 관현악단이 만나 어우러지는 향연이다. 원래는 ‘한화와 함께 하는’ 축제명이었으나 올해부터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로 변경되었고, ‘The New Beginning’이라는 제목으로 새 출발을 알렸다. 보기 드문 관현악단 축제이자 수많은 감상자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대중이 즐겨 듣는 작품에 더하여 새 레퍼토리 발굴로 음악 문화와 감상 습관의 확장을 선도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4.22~5.4)에서는 실내악의 섬세함에 심취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14개의 음악회를 여는 저력은, 20회라는 녹록지 않은 경험이 바탕에 있다. 잘 알려진 실내악곡부터 숨겨진 보석까지 포괄했으며,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뛰어난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여름에 접어들면 축제는 더욱 뜨거워진다. 25회째를 맞은 대구국제현대음악제(6.25~27)는 제목 그대로 현대음악에 특화되어있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작곡가와 연주자들, 해외 수준급 단체의 초청, 워크숍과 리딩 세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여 현대음악 전문가들에게는 중요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유럽 최고의 현대음악 연주 단체 중 하나인 앙상블 레셰르셰 등이 초청되어 주목을 받았다.
7월이 되면 생각나는 음악제, 바로 더하우스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7.1~31)이다. 올해 스트라빈스키를 필두로 20세기 러시아 작곡가들의 실내악에 집중했다. 이들의 관현악곡은 종종 듣지만 피아노 음악이나 실내악을 들을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는 점에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발길을 유혹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휴가철의 단골 예약, 평창대관령음악제(7.23 ~8.2)는 한여름의 대표 음악제다. 약 열흘간 강원도 산자락에서 열리는 무려 21회의 주요 공연과 공연장을 벗어난 음악회, 마스터클래스, 강연 등 음악의 다양한 즐거움과 모임의 기쁨을 공유했다. 평창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니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8.5~10)가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당의 세 공연장에서 열린 16개의 공연은 그야말로 경이로웠고, 또한 동시 개최로 아쉬움도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노세다·클라라 주미 강·이설리스·리시에츠키·트리오 반더러 등이 들려주는 소리의 아름다움은 거부할 수 없는 기세로 다가왔다. 또한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신진 연주자들의 모방할 수 없는 아이디어는 이 축제가 꼭 필요한 음악제임을 증명했다.
더위의 문턱을 지키는 음악제가 있었다. 세종솔로이스츠의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8. 22~9.5)이다. 서울에서 열린 이 페스티벌은 음악적 아름다움을 들려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문학과 함께 했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키메라의 땅’을 바탕으로 작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김택수가 곡을 썼으며, 세종솔로이스츠와 베르베르가 함께 무대에 올라 초연했다. T.S. 엘리엇의 시 ‘네 개의 사중주’ 낭독과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5번 연주가 함께하는 공연도 잊을 수 없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래식 레볼루션(8. 28~9.3)도 계절의 변화 문턱에서 애호가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아홉 개의 음악회는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의 실내악과 관현악에 집중했다. 개성 있는 곡들을 선곡하여 작곡가와 음악에 대한 시야를 확장했으며, 예술감독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를 비롯하여 황수미·최하영·양인모·김태형 등의 열정적인 연주는 이러한 감흥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다.
가을의 한복판에 이어지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9.26~11.8)는 ‘일 트로바토레’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와 진영민의 신작 ‘미인’을 무대에 올리며 음악극의 고전부터 오늘까지 오페라의 폭넓은 세계를 접했다. 하지만 작품 당 한두 회에 불과한 공연은 아쉬운 부분이다.
가을에 강원도가 빠질 수 있을까? 하슬라국제예술제(10.18~26)는 이제 두 번째를 맞는 신생 음악제지만, ‘선물’이라는 주제로 무려 13개의 음악회를 소화했다. 독주부터 관현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면서 환우들을 위한 공연을 여는 등 특별한 활동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에서 열린 범음악제(10.27~11.1)는 ‘53회’라는 숫자처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 현대음악제다. 국내외 여러 작곡가의 작품들을 유럽 정상의 스트라스부르 타악기 앙상블 등 여러 수준 높은 단체들이 연주하였으며, 불레즈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그가 설립한 이르캄(IRCAM)과 제휴하는 등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서울국제음악제(10.30~11.6)도 이 무렵 기다려지는 음악제다. ‘Dance with Me’라는 제목으로 게리 호프만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부터 SIMF오케스트라까지 일곱 개의 연주회를 낭만주의 음악의 생동하는 리듬으로 채워 감상자들의 생기를 북돋웠다. 또한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으로 다케미츠의 ‘가을의 현’을 연주하여 늦가을의 정취에 환상적 감성을 더했다.
다섯 번째 포항국제음악제(11.7~13)는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공사 중인 포항문화예술회관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일곱 번의 주요 공연과 일곱 번의 특별 연주회를 소화했다. 올해는 하겐 콰르텟·황수미·사무엘 윤·손민수 등이 참여하여 거부하기 힘든 가을의 울림을 만들어냈다.
가을의 문은 대한민국 작곡제전(11.9~23)이 닫았다. 윤이상 서거 30주년 기념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열리는 이 음악제에서는 여러 한국 작곡가들의 실내악과 관현악 작품들이 일곱 개의 음악회에서 연주되었다. 대구현대음악제·범음악제와 더불어 한국 현대음악 계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음악제였다.
모든 음악제를 다룰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 음악제들이 함께 모여 이룩한 놀라운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대한민국은 1년 내내 클래식 음악 축제 진행 중!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CLASSICAL MUSIC CHAMBER MUSIC & SOLO
실내악 및 독주
부지런히 공연장을 채운 아름다운 선율

타카치 콰르텟 ©Musica Film/크레디아
*실내악 중 유명 현악 4중주단의 공연이 연이어졌고, 후지타 마오·아리스토 샴·브루스 류 등 차세대 음악가들의 향연이 이어진 해였다. 오페라나 교향악단에 비할 때 규모가 작아 해외 음악가들의 내한이 더욱 많은 실내악과 독주분야를 양경원 음악 칼럼니스트의 기억을 따라, 화제의 공연을 회상해보자
올해는 전통의 강자와 패기의 신예를 아우르는 현악 4중주단 공연이 내내 이어졌다. 시작은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아레테 콰르텟. 하이든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으로 1월에 경건한 문을 열고, 5·9·11월에 걸쳐 심원한 현악 4중주의 세계를 선보였다.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 노부스 콰르텟은 그간 베토벤·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전곡 연주 등으로 칼끝을 벼려왔는데, 올해 5월엔 브람스의 현악 4중주 1~3번으로 19년 내공의 정확한 활을 그었다.
봄, 코리나 벨체아가 이끄는 벨체아 콰르텟(4.4)과 디아파종 황금상에 빛나는 에벤 콰르텟(4.3)이 나란히 내한해 브리튼과 베토벤의 걸작들을 연주했고, 함께 통영국제음악제(4.1·2)로 내려가 에네스쿠와 멘델스존의 현악 8중주를 연주하기도 했다. 5월에는 50주년을 맞이한 타카치 콰르텟(5.20)이 내한했다. 2022년 리처드 용재 오닐이 비올라 멤버로 합류한 이후 한층 더 친숙해진 이 앙상블은 올해 소프라노 박혜상과 함께 연주한 힌데미트 ‘멜랑콜리’를 비롯, 하이든 현악 4중주 Op.77-1, 라벨 현악 4중주 F장조로 호응을 얻었다. 가을에는 오스트리아의 하겐 콰르텟(11.8·9)이 일본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다. 40여 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2026년 은퇴를 선언한 콰르텟의 ‘피날레-나이트’였다. 체코의 파벨 하스 콰르텟(11.11)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찾았다.
한편 두터운 팬층을 가진 피아노 독주 공연은 숨 가쁘게 이어졌다. 1998년생의 일본 피아니스트 후지타 마오(2.23)를 필두로, 2021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류(5.11), 2025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아리스토 샴(9.4~11)과 같은 샛별들의 무대가 있었다. 이어 4월에는 최희연, 5월에는 언드라스 시프·샤를 리샤르 아믈랭, 6월에는 조성진·미하엘 플레트뇨프, 7월에는 손민수·임윤찬 듀오, 8월에는 장 에플람 바부제·스미노 하야토, 9월에는 예핌 브론프만, 10월에는 에릭 르 사주, 11월에 알렉상드르 타로까지 자신들의 ‘스페셜 티’, 또는 새로운 추천 플레이리스트로 재방문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특히 사제(師弟) 듀오로 화제를 모은 손민수·임윤찬 듀오 리사이틀(7.15)은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됐지만 일반적으로 놓이는 ‘가장 먼 거리의 두 건반’이 아닌,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도록 피아노가 배치되어 청각·시각적 미학을 두루 충족시켰다.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의 격정을 주고 받은 둘은, 임윤찬의 단짝 이하느리가 편곡한 로진스키 ‘장미의 기사 모음곡’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롯데콘서트홀 마티네 콘서트 ‘대니 구의 플레이리스트’는 3·4·5월 1회씩 오전 11시 30분에 시작하며 ‘중간 지대’의 관객에게 구애했다. TV출연으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진행과 연주를 맡았고, 고상지(반도네온)의 탱고 앙상블, 대중가수 김태우의 가요를 곁들인 재즈 공연 등으로 클래식 음악을 한층 친숙하게 만들었다. 같은 공연장에서 진행된 ‘황수미의 사운드트랙’ 시리즈는, 9·10·11월 각각 가곡·오페라·영화를 주제로 한 클래식 음악 성악곡들로 채워져 낮 시간 콘서트홀을 찾은 관객들을 감성에 빠져들게 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싱 로우 앤 소프트’(8.23)는 월드 클래스 베이스 연광철·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바리톤 김기훈의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으로 꾸며졌다. ‘성악가들의 에너지와 연기력이 돋보인 무대’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편, 3월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오페라계의 슈퍼스타 요나스 카우프만(3.4·7)이 10년 만에 내한해 그를 오래 기다려온 한국 관객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와 독일 가곡을, 수원시향과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었다.

정경화·케빈 케너 ©크레디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그의 ‘영혼의 동반자’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의 듀오 리사이틀(9.11~26)은 평택·서울·고양·통영에서 열렸다. 관록의 호흡과 여전히 마르지 않는 정경화의 박력으로 전국 관객의 가슴을 울린 연주회였다.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 역시 지난해 모차르트 음반 녹음에 이은 ‘모차르트 프로젝트 Ⅱ’로 연중 전국의 연주홀을 뜨겁게 달구었다. 거장 피아니스트임에도, 사인회에 줄선 관객들 한 명 한 명에게 다정한 눈길을 건네 마음을 녹였다는 후문.
외에도 1972년 등장해 ‘본진’인 베를린필의 도움 없이도 늘 티켓을 매진시키는 베를린필하모닉 12 첼리스트(7.17~19)가 서울·인천·대구에서 친숙한 선율로 관객의 마음을 훔쳤고, 지난해 빈 필하모닉의 협연자로 내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11.22)가 21년 만에 리사이틀로 내한해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등을 들려주었다.
1965년, ‘서울바로크합주단’이라는 명칭으로 창단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는 올해 창단 60주년 기념 연주회(2.1)를 가졌다. 연주 기록 780회, 해외 초청 연주 141회의 기록을 가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는 수석객원지휘자 최수열과 함께 하며 김택수의 ‘Ongoing’(위촉 초연),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등을 선보였다.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에 속한 한국 단원들이 모여 결성한 발트앙상블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앙상블 10주년을 자축하며 그리그·코플런드·야나체크의 작품으로 채워진 음악회(8.10·12·16)가 통영·서울·의정부에서 펼쳐졌다. 롯데콘서트홀 ‘인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첼리스트 최하영(4.30·11·26)은 고(古)악기와 모던악기를 오가며 첼로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으며, 유럽에서 연주 경험을 다진 동생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와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자 자매 연주’도 국내에 선보였다.
지속적인 내한과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2019)로 친근한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서울과 부산에서 리사이틀(5.1·2)을 가졌다. 오랜 협업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그트를 이은, 키벨리 되르켄과 함께였다. 때때로 ‘현의 여제’에 비유되는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은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함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연주(11.4·5)했다. 얀센의 협주곡, 앙코르 바흐 무반주 소나타 ‘아다지오’는 물론, 연주를 함께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베토벤 교향곡 7번 연주 또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이밖에도 대학로의 숨은 보석, ‘더하우스콘서트’의 올해 상주음악가로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3.10)가 활약했다. 브람스와 슈만의 피아노 4중주 편성에서 첼로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등, 실내악과 즉흥 연주를 중심으로 색소폰의 매력을 알렸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슈만 ‘아베크 변주곡’ ‘크라이슬레리아나’로 꾸며진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20주기 추모 음악회’(5.23)를 열었다. 박 명예회장은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금호영재콘서트를 개최해 젊은 연주자들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주었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영재들에게 명기를 대여해주는 악기 은행을 운행했으며, 예술가를 물심양면 후원하는 메세나 활동으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손열음의 연주는 이러한 고인에게 헌정하는 예술가의 진심어린 마음이었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CLASSICAL MUSIC CONCOURS
콩쿠르
부상한 신예와 떠오른 콩쿠르의 과제
*콩쿠르의 전과정을 생중계로 즐기는 마니아들이 생길 정도로, 콩쿠르 현장은 또 다른 음악회장이 되고 있다. 이름난 콩쿠르의 한국인 입상자들로 인해 한국의 클래식 음악이 세계와 맞닿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한해였다. 한편 갈등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국제 정세 속 콩쿠르의 역할을 모색하려는 토론의 장도 열렸다
다시 돌아온 ‘쇼팽 콩쿠르’(10.2~23)는 극적인 드라마였다. 10년 전, 조성진이 우승하던 해 4위에 올랐던 에릭 루가 재도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본 경연이 재참가자에게 특히 까다로운 평가를 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우승은 더욱 의미가 깊다. 한편으론 1위 피아니스트에게 국제적 공연 기회가 집중되는 씁쓸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혁·이효 형제의 본선 진출도 한국 관중의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2005년 공동 3위를 차지했던 임동민·임동혁 형제를 떠올리게 하며, 쇼팽 콩쿠르라는 드라마를 이끌어 간 또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효·이혁 ©Krzysztof Szlezak
이혁·이효 형제의 이름은 ‘롱티보 콩쿠르’(3.25~30)에서도 등장했다. 2022년 공동 1위에 올랐던 이혁의 뒤를 이어 동생 이효가 올해 우승에 도전했으나, 3위에 입상했다. 연이은 한국인 우승의 흐름은 김세현이 이어갔다. 그는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하며 청중상과 기자·평론가상 등을 휩쓸었고, 이후 프랑스 각지의 공연장과 축제에 초청되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성악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또 한 번 증명하듯, 성악 부문 콩쿠르에서도 여러 낭보가 전해졌다. ‘몬트리올 콩쿠르’(5.25~6.6)에서는 테너 황준호가 2위를, ‘리옹 실내악 콩쿠르’(4.23~26)에서는 베이스바리톤 임재영이 윤이상을 비롯한 독일·프랑스·노르웨이·미국의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박혜상·황수미·김건우 등을 발굴한 ‘국립오페라단 성악콩쿠르’(7.14~23)에서 1위를 차지한 베이스 김석준의 향후 성장기도 지켜볼 만하다.
현악 부문에서는 ‘시벨리우스 콩쿠르’(5.19~25)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활약이 빛났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에릭 루가 10년 간 크고 작은 공연과 음반 활동으로 내실을 다진 끝에 결실을 맺은 것처럼, 박수예 역시 협연과 음반 활동에 집중한 뒤 콩쿠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오랜 무대 경험이 콩쿠르에서 빛을 발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한편, 올해도 콩쿠르의 의미와 역할을 재정의하려는 조직적 움직임이 이어졌다. 경쟁과 우승이라는 타이틀보다 젊은 음악가 육성에 방점을 찍은 지휘 콩쿠르들이 눈에 띄었다. ‘제2회 로테르담 지휘 콩쿠르’(6.1~13)는 지난해 6월 준결선을 거쳐 선발된 지휘자 6인을 대상으로 1년간의 경력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올해 6월 결선을 치렀다. 결선에서는 고전부터 현대음악, 교향곡부터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프로그램으로 다섯 번의 무대를 선보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6인의 지휘자들은 로테르담 필하모닉, 클랑포룸 빈, 18세기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 악단들과 협업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앨런 길버트를 배출한 ‘제네바 콩쿠르’ 지휘 부문도 2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올해 본선을 통과한 6인은 내년 준결선 3라운드와 결선 2라운드에 임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총회’(6.25~29)는 갈등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국제 정세 속 콩쿠르의 역할을 논의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콩쿠르가 세계인의 축제이자 교육의 장으로서 상호 이해를 위한 중립적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러나 참가자의 국적 표기나 특정 국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의무화하는 일부 콩쿠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큰 견해 차이가 드러났다. 콩쿠르의 이상에 다가가기 위한 실질적이고도 세심한 실천 방안이 적극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RECORDS AND VIDEOS
음반 및 영상물
놓치지 말아야 할 실물 음반들

❶ Decca 4870122
*음반시장은 이제 전문 마니아나 극성팬들을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다. 특히 올해는 임윤찬과 조성진의 신보가 발매되어 ‘음반’보다는 팬들에게 찐한 ‘굿즈’를 안겨준 해였다
2025년 또한 음반산업은 해를 거듭하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의 연장선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화제성과 예술성, 판매량 모두를 만족시키는 몇몇 아이템들이 빛을 발했다. 가장 먼저 K-클래식 음악이 낳은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발돋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앨범들이 올해 한국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올해의 핫이슈는 아무래도 임윤찬의 ‘사계’(Decca)❶일 것이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테두리를 벗어나 계절마다 새로운 표현력과 독창적인 감수성을 부여하며 이전에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작품의 깊이와 음향의 다채로움을 이끌어낸 모습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내년 2월에 발매될 그의 2024년 카네기홀 실황을 담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Decca) 또한 예약 판매로도 이미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결승 실황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Decca)도 드디어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온라인 동영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이 실황이 뒤늦게나마 음반화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로서, 시종일관 불을 뿜으며 신묘한 표현력을 발산하는 임윤찬의 개성적인 연주를 하이파이 시스템을 통해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조성진은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DG)❷을 선보이며 프랑스 피아니즘에 의한 기존 명반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옹골하면서도 감각적인 터치와 청명한 음향이 주는 쾌감은 라벨의 피아니즘에 대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접근으로서, 연이어 발매된 라벨 피아노 협주곡과 완전한 세트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❸ C Major 811408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온 만큼 음반 형태의 영상물 시장은 음반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다. 몇몇 블루레이 전문 레이블을 제외하고는 새롭게 발매되는 카탈로그의 양 자체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 할 두 장의 블루레이를 선별해 보았다. 하나는 202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블루레이인 미에치슬라프 바인베르크의 ‘백치’(C major)❸. 거장 크지슈토프 바를리코프스키가 연출을 맡고 젊은 여성 지휘자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미르가 크라지니테-틸라가 지휘를 한 초연 프로덕션이다. 무엇보다도 바를리코프스키의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캐릭터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스케일 큰 연출이 압권이다. 오페라의 영역을 넘어선 음악극으로서 음악과 극의 완벽한 일체를 구현해냈다. 2024년 97세를 맞은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밤베르크 심포니와 함께 성 플로리안 수도원 대성당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Accentus)을 연주한 블루레이는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7번 교향곡과 더불어 브루크너 교향곡 영상물들 가운데 가장 앞에 위치시킬 역사적인 공연실황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 세기에 걸친 그의 음악적인 경험이 농축된 카리스마로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평범한 음악회가 아닌 영적인 계시를 받는 듯한 고양감과 신성함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BOOK
서적
기초 감상 단계부터 확장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깊이에 빠지고 싶은 독자들은 온라인을 벗어나 종이책을 펼쳤다. 대중을 위한 유튜버의 입문서부터 심도 있는 깊이로 접근한 전문적 서적으로, 음악을 다룬 출판계는 극단으로 벌어졌다
클래식 음악계 종사자거나 애호가라면 ‘초심자들을 어떻게 이 세계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객석’에서 추천해 온 서적에도 그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각종 입문서나 지침서가 끊이지 않았으나, 그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클래식을 읽는 시간’(김지현)은 클래식 음악에 관해 누구나 품어봤을 궁금증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왜 내 귀에는 클래식이 안 들리는 걸까’(이지협)는 비전공 애호가의 시선에서 입문 과정을 담아냈고, ‘이토록 다정한 클래식’(김수연)은 곡의 정보나 해설 대신 상황이나 감정에 따른 감상을 제시했다. 유튜브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재치 있게 풀어내는 탱로그 채널의 주인은 본지와의 3월호 인터뷰 이후에도 ‘클래식 왜 안 좋아하세요?’(권태영)를 통해 ‘객석’에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입문 단계를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독자층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서적도 눈에 띄었다. 클래식 음악의 계보와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상관관계를 다룬 ‘전쟁과 음악’(존 마우체리), 오페라의 등장인물과 내용을 심리적·철학적 시선으로 분석한 ‘오페라 속 인간: 그 내면의 여정’(음악미학연구회)은 표면적인 설명을 넘어선 심도 깊은 탐구를 통해 사유의 확장을 일으켰다.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양정무)에서는 명작이라 칭해지는 작품들은 어떠한 이유로 명작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풀어냈다.
한편,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줄 만한 서적들도 있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비앙카 보스커)에서는 현대 미술 작품이 어떻게 예술로 칭송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보편적 의문으로 시작하여 저자의 직접적인 경험의 여정을 통해 미학적 결론을 도출했으며, ‘예술이라는 일’(애덤 모스)에서는 현역으로 활동 중인 예술가들과의 대담과 그들의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는 여러 스케치의 삽입을 통해 어떠한 과정에 의해 현대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지를 구상적인 관점으로 살필 수 있었다.
2025년은 라벨 탄생 150주년이자 쇼스타코비치 서거 50주년으로서 두 작곡가의 작품들이 풍성히 무대를 채우던 한 해였으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한 사티를 챙기는 공연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소개된 특정 작곡가를 다룬 책 중에 ‘사티-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메리 E. 데이비스)가 있었으니, 글을 통해서라도 사티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12월이 지나가기 전까지 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글 최성혁 기자
THEATER
연극
실존과 원칙이라는 근원에 대한 탐색

양손프로젝트 ‘유령들’ ©LG아트센터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일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연극은 일상의 순간을 멈추고 우리가 보지 못한 일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숨구멍 같은 존재다. 다양한 소재가 오른 2025년이었지만, 배선애 평론가는 일상을 담은 연극계 작품에 주목했다
2025년 연극계는 뚜렷한 경향이나 크게 화제가 된 작품이 별로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대면한 현실이 그 어떤 연극보다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힘든 현실은 연극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게 했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실존의 문제,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원칙의 문제를 탐색한 결과, 올해 연극계는 다채롭고 다양한 작품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실존의 영역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산업재해를 다룬 작품들이 관객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산재일기’(5.9~18) ‘로비:기어코 그 손을 잡고’(6.20~29) ‘엔드 월’(9.10~28)은 각각 다큐멘터리적 접근과 감각적 연출을 통해 산재 피해자 혹은 생존자의 정서를 전달하며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는 노동 현실 속 실존의 문제를 제기했다. 또 다른 실존은 ‘나’의 정체성, 근원 찾기로 볼 수 있는데, ‘마지막 면회’(9.12~21)는 일본 사린가스 테러 실화를 배경으로, 연루된 인물이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반대로 서울시극단의 ‘유령’(5.30~6.22)은 스스로 존재를 지운 인물들을 통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정체성의 문제는 재일 한국인의 삶을 그린 작품들로도 이어졌다. 변영진 연출의 ‘장소’(6.20~29) ‘이카이노 바이크’(9.12~10.5), 정의신 연출의 ‘야끼니꾸 드래곤’(11.14~23)은 일본 사회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일상을 영위하고 뿌리내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 배우들이 보여준 실존 또한 큰 영역을 차지하는데 모두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젤리피쉬’(3.18~4.13), 김은미 연출의 ‘춤추는 립스틱’(7.4~6), 극단 춤추는 허리의 ‘퇴장하는 등장 2’(9.9~11)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한 장애인 배우들은 무대 위 실존은 물론, 현실의 실존까지 문제의식을 확장했다.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원칙의 영역에서는 제목 그대로 근원적 질문을 던진 이준우 연출의 ‘원칙’(5.23~6.1)이 주목받았으며, 사회적 재난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는 전인철 연출의 ‘아이들’(9. 30~10.4), 이성렬 연출의 ‘다 내 아이들’(11. 28~12.14)이 하반기에 관객을 만났다. 베트남 전쟁에서 비롯된 역사적 책임을 일상에서 되묻는 김수정 연출의 ‘하미 2025’(7.5~13)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원칙의 탐구는 고전의 다양한 변주로 발현되었다. 현실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시기, 고전은 답을 찾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올해는 특히 입센이 주목받았다. ‘헤다 가블러’(국립극단 5.8~6.1/LG아트센터 5.7~6.8)가 같은 시기 다른 프로덕션에서 동시에 공연되어 화제를 모았다. 서로 다른 헤다를 비교하는 즐거움도 있었는데, 궁극적으로 헤다의 허무가 현실의 불안과 공명하는 바가 컸다. 입센의 또 다른 작품인 ‘유령들’(10.16~26)은 양손프로젝트가 동시대의 감수성으로 유령의 정체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강훈구 작·연출의 ‘클뤼타임네스트라’(2024.12.31~1.12), 체호프의 원작과 달리 인간의 욕망을 전면화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현대의 계급까지 확장한 문삼화 연출의 ‘벚꽃동산’(10.15~26), 원작을 다양한 오브제로 현대화한 윤시중 연출의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7.4~13)도 주목받았다.
하반기에는 ‘엔들링스’ ‘초록빛 목소리’ ‘밤에 먹는 무화과’를 연속으로 공연한 연출가 이래은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삼매경’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의 연출가 이철희도 고전을 현재화하는 창작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이 세상 너머’ ‘반짝 희라’에서 안정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한 연기 변신을 보여준 배우 박은경도 올해 주목되는 연극인이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MUSICAL
뮤지컬
괄목한 성과를 거두고, 다양성을 향해 발을 떼다

‘어쩌면 해피엔딩’ ©CJ ENM
*재미와 의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던 과거와 달리, 올해 뮤지컬계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으며 화제작들을 내놓은 실속 있는 한해였다. 정수연 뮤지컬평론가는 “2025년은 창작 뮤지컬의 기점이 되기에 충분한 한 해였다”며, 의미의 방점을 찍었다
2025년 뮤지컬계의 가장 큰 소식은 ‘어쩌면 해피엔딩’(10.31~2026.1.25)의 토니상 수상이다. 작품상을 비롯해 극본상·작곡상·연출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이번 성과는 창작 초연 10년 만에 거둔 놀라운 결과다. 이번 수상은 한국 뮤지컬이 영어권 관객에게도 보편성을 지닌 작품임을 증명했으며, 브로드웨이가 ‘뮤지컬의 본토’이지만, 진출 가능한 구체적 무대로 한층 가까워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창작자의 대중적 위상이 높아지며, 배우가 독점하던 ‘스타’라는 명칭이 창작자에게까지 확장된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AI 창작을 공식적으로 내세운 최초의 작품 ‘보이스 인 더 햄릿’(5.16 ~6.28)이 공연되어 눈길을 끌었다. 완성도나 흥행 여부는 논외지만, AI와 창작자가 앞으로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 공연 대본 완성까지 작가와 작곡가의 실질적인 보완 작업이 있었으니, 창작자의 노동은 그대로였지만 이름만 사라진 셈이다. 높아진 이름과 사라진 이름, 이 두 갈래의 경향은 앞으로 더욱 확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창작 뮤지컬의 주류는 여전히 퀴어 코드를 담은 작품들이다. ‘모리스’(3.7~5.25)와 ‘두 낫 디스터브’(6.10~8.31) 등 남성 퀴어와 BL(Boys Love) 소재의 작품이 흥행을 이끌었고, 여성들의 사랑을 다룬 작품 역시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하트셉수트’(3.11~6.8) ‘올랜도 인 버지니아’(7.9~10.9) ‘삼색도’(4.4~5.25) 등이 그 부류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이 완성도에 비해 높은 화제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서사의 범주로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은 올해도 꾸준히 이어졌고, 셰익스피어의 고전에 재판극의 형식을 입혀, 폭력과 억압에 짓눌린 여성의 이야기로 바꿔놓은 ‘오셀로의 재심’(1.8~26)도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알라딘’ ©에스앤코
사실 ‘삼색도’는 19금 여성 서사보다 인디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인디 뮤지컬이란 한 시간 정도의 뮤지컬 여러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형식으로, 서울숲의 소극장에서 저렴한 관람료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같은 세트의 무대에서 하루에 두 작품이 연속으로 공연된다. 제작비 절감은 물론, 다양성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이며, ‘청새치’(9.2~11.2)처럼 호평받는 작품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지속성을 지켜볼 일이다.
다양성은 창작 뮤지컬의 절실한 화두이기도 하다. ‘긴긴밤’(3.12~5.25)과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2.11~27)은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긴긴밤’은 대학로에 어린이와 가족 관객을 불러모았고, 칠곡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중년·노년 관객층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 장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매드 해터’(10.22~2026.1.18)도 마니아극과는 다른 결의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완성도와 흥행 면에서 모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이 작품들은, 마니아 중심의 대학로 공연문화 속에서도 일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은 단연 ‘알라딘’(2024. 11.22~6.22)이다. 익숙한 서사와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디즈니 뮤지컬은 불황 속에서도 저력을 발휘했다. 반면, 프로듀서 신춘수가 브로드웨이에서 직접 제작에 참여한 ‘위대한 개츠비’(8.1~11.9)는 의욕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못했다. 그러나 작품과 제작 양면에서 한국 뮤지컬의 영역이 확실히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25년은 창작 뮤지컬의 기점이 되기에 충분한 한 해였다.
글 정수연(뮤지컬평론가)
DANCE
무용
발레붐과 장기 공연으로 호사를 누리다

영국 로열 발레 ©LG아트센터
*공연예술계에서 장기 공연과 그 성공은 보기 드문 경사다. 올해 무용계는 장기 공연들이 관객들의 발걸음을 당겼고, 흥미로운 해외 작품들의 내한이 마니아들의 구미를 충족시켰다. 특히 안무가들의 신작도 여럿 쏟아져 나왔는데, 윤대성 ‘댄스포럼’ 편집장은 “호사를 누린 한 해”라고 평했다
유독 볼만한 무용 공연이 넘쳐나 호사를 누린 한 해였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작품은 나이트라이프(Nightlife)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편, 국립발레단 ‘카멜리아 레이디’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더 벨트’다.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한 ‘카멜리아 레이디’(5.7~11)는 고급 매춘부 마르그리트의 인생을 담은 동명 소설에 또 다른 매력의 깊은 울림을 더한다. 이야기 구조가 겹겹으로 쌓여있는 다층적인 내러티브 발레인데다, 성(性)이 가장 강력한 화폐였던 여자가 더 고결한 것을 위해 헌신하기까지의 내면 변화를 가슴 미어지는 섬세함으로 그려낸다.
‘더 벨트’(11.6~9)는 작년 영국 초연으로 ‘뉴욕타임스’가 뽑은 ‘2024년 최고의 춤’ 기사에 언급됐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최신작이다. 통속예술의 문화 코드를 끌어올리는 캠프미학에 ‘보이는 음악’이란 신고전주의를 접목해온 김보람 예술감독이, 이번엔 클럽이라는 밤문화의 역동성·집단성을 끌어들였다.
신작 4편도 기억에 남는다. 춤판야무 ‘누수’(9.4~7)는 내면의 소진을 생필품으로 시각화하는 독특한 상상력과 시대의식이 인상 깊었다. 유민경댄스프로젝트 ‘바디 레시피’(8.2·3)는 신체 부위를 쇼핑하는 미래를 영상과 접목해 그렸는데, 이후 LED 패널을 사용하는 연출을 따라하는 무대가 늘었다. 시네마적 미장센과 섬세함으로 놀라움을 안겨준 젊은 한국무용 안무가 권미정의 ‘한 살: 백발’(7.23·24), 허상을 쫓는 사회를 마술에 접목해 표현한 김민(티오비그룹)의 ‘라이트 인 더 베이스먼트’(8.2·3)도 주목해야 한다. 20대 안무자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모헤르댄스컴퍼니 ‘집 속의 집: 안팎’ 해오름극장 버전(10.5)은 더욱 섬세해지면서 서연수·강요찬 듀오의 시너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무용도 장기 공연이 가능할까’를 실험하는 한 해였다. 공연당 평균 회차가 2회 가량인 무용시장에서 1주일 이상 장기 공연이 늘었다. 매튜 본 ‘백조의 호수’(16회)뿐 아니라 앰비규어스 ‘바디콘서트’(15회), 유니버설발레단 ‘지젤’(11회)·‘백조의 호수’(9회),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8회)·‘워킹 매드&블리스’(8회) 등이 현상을 견인하며 티켓판매액 상위권에 안착했다. 발레붐에 힘입은 중소형 발레단의 레퍼토리 개발도 눈에 띈다. 와이즈발레단 ‘프리다’(9.20·21)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에 멕시코의 활기를 담은 작품으로 애틀랜타 발레 출신 김유미 안무자의 움직임이 돋보였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에 블랙코미디를 더한 프로젝트클라우드나인 ‘황폐한 땅’(10.16~19)은 우아한 발레에 유머를 불어넣으며 성 역할 등 기존 관습을 뒤엎었다. 로봇리나를 투입한 백연(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바디-시뮬라크르’(10.19), 스페인 희곡을 춤으로 풀어낸 함도윤(아함댄스프로젝트) ‘베르나르다 알바’(4.5·6), 이해니(해니쉬발레) ‘꼬끼-오’(7.30·31)도 발레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광주시립발레단이 마린스키 발레 예술감독 엘다르 알리예프 안무로 초연한 전막발레 ‘해적’(9.26·27)도 호평이 자자하다.
대형 내한 공연도 봇물을 이뤘다. 9천 송이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분홍빛 무대 위 매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피나 바우슈 걸작 ‘카네이션’(11.6~9/11.14~15)부터 천재 안무가로 불리는 알렉산더 에크만의 ‘해머’(11.14~16/11.21~22), 영국 로열 발레(7.4~6),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4.24~27), 파리 오페라 발레(7.30~8.1)까지 세계 주요 단체가 한국을 찾았다. 또한 독일 탄츠 매거진 ‘올해의 안무가’(2023·2025)로 뽑힌 마르코스 모라우의 작품 3편을 4~5월 GS아트센터가 개관 페스티벌로 소개했다.
글 윤대성(댄스포럼 편집장)
TRADITIONAL MUSIC
전통음악
성찰과 실험을 거쳐 새롭게 다가가기

서의철 가단의 ‘시를 읊다–님이 침묵한 까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예술이지만, ‘현대’적으로 가열차게 디자인해 나가고 있는 전통음악계에 대해, 이소영 평론가는 전통과 실험, 원로와 신진 등이 균형을 맞춰가며, 새로운 현재를 써나간 해로 꼽았다
올해는 국악관현악단이 출범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로서 전국의 국악관현악단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게다가 광복 80주년과 겹치다 보니 악단마다 기념 음악회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공연 중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베스트 컬렉션’(3.12)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칸타타 ‘빛이 된 노래’(8.23)가 기획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이신우의 작품 ‘빛이 된 노래’는 민경찬 음악학자의 자문이 개입되어 음악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서울시국악관현악단 등에서 젊은 작곡가들의 상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고운·이하느리 등 신세대 작곡가들의 참여로 국악관현악의 창작 생태계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었다. 3회를 맞은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10.15~25/세종문화회관 주최)는 작품성과 신규 위촉 초연 중심으로 전환해 국악관현악 레퍼토리 개발의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올해는 박범훈·김영재·김일구·지성자·최경만·원장현 등이 참여하는 원로 명인들의 회고적 무대가 펼쳐져 근원을 환기시켰다. 젊은 세대에게 오랜 세월 전통의 유산을 몸에 새겨온 분들의 장인 정신을 일깨우며 ‘국가가 주도하는 전통’이 아닌 ‘음악에서 음악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본질을 재확인하게 했다.
올해의 축제는 새롭게 신설된 영동세계국악엑스포(9.12~10.11)와 여우락페스티벌(7.4 ~27)의 새로운 변모가 눈길을 끌었다. 여우락페스티벌에서는 민해경·최백호·인순이가 참여하는 대중가요와 이춘희·유지숙 등 명창들이 이끄는 민요가 하나의 범주 속에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공연이 선보였다는데 그 결과 기악 중심의 기존 회차와 차별화를 이루며 이희문 예술감독의 개성이 도드라진 축제가 되었다. 23회를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8.13~17)는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모범적으로 구현하며 여전히 국악계의 중심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또한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의 고향인 영암에서 새롭게 단장한 김창조산조페스티벌(9.13·14)은 산조의 본질과 전승 문제를 학술과 공연으로 엮어낸 유기적 축제였다.
또한 2025년은 판소리에서 출발한 창극 및 소리극이 중심에 선 시기였다. 이는 개별 공연의 성취를 넘어, 전통양식의 현대적 계승과 서사 재구성에 대한 집단적 실험으로 읽힌다. 그중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작으로 공연된 국립창극단의 ‘심청’, 이자람의 ‘눈, 눈, 눈’, 고선웅 연출의 ‘서편제’는 K-소리극의 현재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준 세 축이었다. 이자람의 ‘눈, 눈, 눈’(4.7~13 외)은 판소리의 핵심인 소리와 장단만으로 판소리 1인극 형식이 지닌 극적 상상력의 극한을 펼쳐 보였다. ‘심청’(9.3~6)은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의 ‘판소리씨어터’라는 개념 아래 판소리의 서사 구조와 오페라적 연출을 공존시켜 창극이 지역성과 시대성을 넘어 세계적 무대로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선웅이 연출을 맡은 ‘서편제’(10.17~11.9)는 이청준 원작의 정서를 연극적 상상력으로 영화보다 내밀하게 극화하면서도 판소리의 중요 소리 대목을 인물의 심리와 극적 리듬에 배치했다. 이는 창극의 뮤지컬화 경향을 반성하면서도, 판소리 본연의 긴장감과 미학을 복원한 무대였다. 지기학 연출로 서의철 가단이 선보인 ‘시를 읊다–님이 침묵한 까닭’(2.7~9)은 근현대시와 남도소리를 결합해 전통소리와 언어의 교차점을 탐구했다. 자연음향으로 구현된 무대는 국악이 추구해야 할 음향미의 방향을 제시했다. 남원시립국악단의 ‘소녀 춘향’(8.9~9.27)은 동학 농민운동의 역사성과 여성 서사를 결합하며 지역 단체의 기획이 전국적 담론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총체적으로 2025년의 전통음악계는 전통과 실험, 원로와 신진, 무대예술과 국악관현악이 교차하며 ‘소리의 현재’를 새롭게 쓴 해였다. 특히 창극과 소리극의 여러 실험과 탐색은 국악이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과 사유를 담아내는 살아 있는 예술 언어임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글 이소영(음악평론가)
INTERNATIONAL
독일
예산 삭감으로 칼바람 앞에 선 현재

바이로이트 축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유럽에서도 음악의 중심지인 독일은 보기와 달리 ‘생존의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2025년을 보냈다. 문제는 재원 확보. 찬란한 유산을 이어나갈 종잣돈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은?
독일 공연계의 2025년은 씁쓸했다. 물론 외양은 여전히 화려하고 풍성했지만, 이 훌륭한 공연들은 2~3년 전부터 기획된 결과물들이다. 미래에는 지금과 동일한 문화의 질을 누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시작된 문화 예산 삭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 적자로 압박받는 지방정부들은 먼저 문화 분야를 수술대에 올렸다. 그 진앙지는 애초부터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던 수도 베를린이었다. 그러나 파장은 순식간에 드레스덴·뮌헨·쾰른·라이프치히 등 독일 전국으로 번졌다.
베를린의 경우 올해에 이미 12%(약 1억 3천만 유로)의 문화 예산을 깎았다. 뿐만 아니라 시당국은 2026년과 2027년에도 매년 1억 1천만 유로씩 추가 삭감을 계획하고 있다. 쾰른은 문화 예산의 20%인 600만 유로를 삭감할 계획이며, 매년 250만 유로씩 감축을 이어갈 전망이다. 라이프치히는 게반트하우스와 오페라극장을 포함한 주요 문화기관의 예산이 내년에 약 100만 유로 가까이 감소한다.
지금 독일 공연계가 누리는 찬란한 외양은 과거의 유산이다. 앞으로는 예산 삭감의 여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 공연계가 이 지경에 이른 이유는 재정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이 내는 세금에 재정적으로 크게 기대고 있는 잉골슈타트라는 작은 도시를 살펴보자. 독일 자동차 산업이 침체되면서 이 도시의 세수는 급감하였고, 이는 문화·스포츠 부문에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잉골슈타트 시 문화담당관 마크 그랑몽타뉴는 최근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문화는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문화 관련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독일 문화계에 새로운 ‘생존의 시대’가 도래했다. 예산이 신중하게 집행되고 있는지, 중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 등 예산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증명이 요구될 것이다. 잉골슈타트의 논점은 세금에 관련된 것이지만, 그간 폭스바겐 같은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재단을 통해 문화 부문에 적지 않은 후원을 했다. 이제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독일에서 연방정부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페스티벌인 바이로이트 축제는 큰 변화를 감행했다. 이미 합창단 인원을 대거 감축하는 등 변화를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축제의 예술감독 카타리나 바그너의 독단적 결정 방식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바뀐 것은 ‘하드웨어’만이 아니었다. 전범재판 및 반유대주의에 심오한 물음을 던지는 베리 코스키 연출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작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올해는 뮤지컬 연출가로 명성이 높은 마티아스 다비즈의 버전을 선보였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퉁 FAZ’는 “베리 코스키의 걸작 프로덕션 이후 이번 새로운 프로덕션은 가볍다. 그러나 어쩌면 코스키의 무거움에 대응하는 유일한 시도일지도 모른다”라고 평했다.
1976년, 바이로이트 100주년을 기념해 등장한 파트리스 셰로의 ‘반지’는 레지테아터의 기념비적인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그 사실을 떠올려보면, 올해의 변화는 또 다른 방향 전환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올해 무대는 오히려 레지테아터가 수십 년간 흔들어놓았던 작품 해석을 현대적 감각 속에서 다시 ‘순수한 결’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읽혔다. 올해 축제는 방문객의 증가로 98.1%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바그너에게 거리감이 있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프로젝트인 ‘바그너를 위한 시작’이 큰 주목을 받았다. 25세 이하 관객에게 단 50유로의 티켓을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내년에도 지속될 예정이다.
내년은 바이로이트 축제 150주년이다. 올해 감지된 변화의 방향성이 2026년 독일 공연예술계 전반에 어떤 실질적 변화를 낳을지 주목된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오스트리아
화려함과 논쟁이 공존한 문화의 해

그라페네크 페스티벌 ©Lisa Edi
*빈이 음악의 중심지라면, 외곽 도시와 그곳에서의 페스티벌은 중심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지원군이다. 정치·사회적으로 겹친 문제도 있었지만, 오스트리아는 올해 전체적으로 풍요로웠고, 안정적으로 빈의 공연과 지역의 페스티벌이 열렸다
2025년 오스트리아 클래식 음악계는 인상적인 동시성으로 특징지어졌다. 국제적 파급력을 지닌 대형 예술 이벤트가 두드러지는 한편, 문화 정책의 도전과 사회적 긴장, 구조적 논의가 심화되며 문화계 전반에 복합적 움직임을 드러낸 해였다. 주요 페스티벌과 오페라하우스는 견고한 프로그램으로 위상을 재확인했지만, 예술적 요구·재정·공공적 책임 사이의 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고 민감해졌다는 사실도 분명히 드러났다. 이 가운데 한국 예술가들은 주요 무대에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였다.
오스트리아 클래식 음악계의 문은 매년 그렇듯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로 열었다. 특히 올해는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를 맡아 탁월한 해석과 품격 있는 연주가 호평을 얻었으며, 2026년 지휘자로 야닉 네제 세갱이 선정되었다는 발표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투간 소키예프 지휘로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한 공연(9.23)이 깊은 울림을 남겼고, 11월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 아래 사미 무사(1984~)의 ‘엘리시움(Elysium)’과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연주(11.1·2)하며 강렬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7.18~8.31)은 올해도 강렬한 신작과 뚜렷한 연출로 존재감을 입증했다. 특히 페테르 외트뵈시의 음악극 ‘세 자매’에서 한국계 미국인 카운터테너 강민 저스틴 킴(1988~)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페스티벌의 개방성과 실험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79회를 맞은 브레겐츠 페스티벌(7.16~8.17)도 24만 9천여 명의 관객이 80여 개 프로그램을 찾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호수 무대에서 공연된 ‘마탄의 사수’(27회)는 97%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고, 페스티벌하우스에서 상연된 ‘오이디푸스’ 역시 96%의 점유율을 보였다. 이는 릴리 파시키비 예술감독의 첫 시즌이 강력한 성공으로 평가받는 근거가 되었다.
한편, 그라페네크 페스티벌(8.14~9.7)은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저명 솔리스트의 참여로 주목받았으며, 역사적 건물 레이트슐레(Reitschule)를 개조해 조성한 실내악홀 ‘루돌프 부흐빈더홀’이 큰 화제를 모았다. 본래 귀족의 승마학교였던 레이트슐레가 새로운 음악 공간으로 탈바꿈한 과정은 인프라 자체가 하나의 문화정책적 메시지로 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빈 모던(10.30~11.30)은 이례적으로 다수의 초연작을 선보이며 유럽 동시대 음악의 핵심 플랫폼으로서 입지를 굳혔으며, 아이젠슈타트의 헤르프스트골드 페스티벌(9.10~21)은 예술감독 율리안 라흘린이 이끄는 프로그램 속에서 배우 존 말코비치와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의 협업으로 가을 시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빈 방송교향악단의 존속 결정이 주요 이슈였다. 일시적으로 구조조정이 논의되었으나, 오스트리아 공영 방송인 ORF 이사회가 지속 운영을 확정하면서 동시대 음악과 영화음악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이어가게 되었다. 또한, 유럽 주요 공연장에서는 일부 정치적 항의 행동이 발생하며 공연장의 안전과 대응 방식이 논의되기도 했다.
이처럼 2025년 오스트리아 음악계는 국제적 공연, 신작의 활력, 새로운 리더십, 그리고 한국 예술가들의 존재가 교차한 풍성한 해였다. 오스트리아 클래식 음악계는 올해도 세계 음악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켰다.
글 이선옥(오스트리아 통신원·코리아 리 문화예술원 대표)
프랑스
프랑스 근현대 음악사의 궤적을 좇다

라벨 페스티벌 ©Valentine Chauvin
* 근현대 음악사를 쌓아온 프랑스는 국가의 재정 위기와 맞물린 음악계 재정 삭감 속에서도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점으로 피에르 불레즈, 사티의 기념 해를 위한 풍성한 공연이 열렸다
올해는 프랑스 근현대 음악사의 궤적을 기념하는 큰 해였다. 팔레 가르니에 개관 150주년, 국민 작곡가 라벨의 탄생 150주년, 프랑스 현대 음악의 기반을 다진 불레즈의 탄생 100주년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나의 건축과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하지만, 근대 이후 프랑스 음악계가 전통적인 무대에서 감각의 예술로, 다시 사유의 실험으로 진화한 여정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기념했을까.
먼저 팔레 가르니에 개관 150주년. 팔레 가르니에는 나폴레옹 3세 제정기, 프랑스의 국력을 보여주기 위해 웅장하게 설계된 극장으로, 예술을 넘어 정치적 상징도 짙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1월 14일 기념 컨퍼런스를 열고 그 정치 맥락을 살폈다. 1월 24일 파리 오페라는 레아 데상드르·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등 주역 성악가, 상주 단체들과 기념 갈라를 꾸몄다. 150주년 기념 가이드 투어, VR 콘텐츠 상영 등 행사도 이어졌다. 10월 14일부터는 극장 내 도서관-박물관에서 건물의 역사와 미학을 조명하는 전시와 오페라·발레 의상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1월부터 매달 한 명씩 상주 아티스트를 선정해 작품을 선보인 ‘PROJECT 12’도 흥미롭다. 그렇게 탄생한 12개 작품은 내년 초 경매된다.
두 번째, 라벨 탄생 150주년. 라벨은 당대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프랑스식 대안을 제시한 인물로, 근대 관현악법을 정립시켰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는 지난 3월 그의 생일을 기해 2주간 헌정 연주 시리즈를 열었다. 8~9월 라벨의 고향 생장드뤼즈에서 열린 라벨 페스티벌은 라벨의 제자 계보를 잇는 장 프랑수아 에세르, 그의 제자 베르트랑 샤마유를 필두로 성대한 150주년 기념 에디션을 펼쳤다. 또한 샤마유는 라벨 피아노 작품 전곡 투어도 가졌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라벨 볼레로’ 전시를 열었으며, 갈리마르 출판사는 라벨의 생가 박물관과 협력해 라벨의 약 2,000통의 편지와 엽서, 147편의 저술을 엮은 서간집을 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사상가로서 프랑스 현대 음악의 토대를 확립한 피에르 불레즈도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문화부는 올해를 ‘불레즈의 해’로 선포했으며, 파리 오케스트라·시테 드 라 뮈지크·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르캄(IRCAM) 등이 협력해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지난 1월과 3월, 필하모니 드 파리의 ‘불레즈 주간’을 비롯해, 생일달인 3월 샹젤리제 극장 등 여러 공연장에서 기념 주간 및 컨퍼런스가 열렸다. 불레즈의 현대음악 단체 설립, 정책 운용 등이 현재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며, 회고를 넘어 음악계의 미래를 함께 구상한 자리였다.
기념 현장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라벨 주간 실황을 담은 ‘Ravel 2025’(Naïve), 라벨과 현대 작품을 엮은 샤마유의 ‘라벨: 단편선 모음집’(ERATO), 프랑수아 에세르의 실내악 음반 ‘연금술사 라벨’(Mirare), 그리고 불레즈 탄생 100주년 기념 음반(DG) 등으로 느낄 수 있다. 파리 오페라 스트리밍 플랫폼 POP는 가르니에 1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필하모니 라이브는 불레즈 기념 섹션을 마련했다.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 뒤, 현실은 조금 어둡기도 했다. 연초에는 음악계 재정 삭감으로 인한 파장, 2월엔 국립음악원 반주자 처우 개선을 위한 파업이 이어졌다. 5월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피에르 오디가 급작스레 사망하며 슬픔에 잠겼다. 반면 10월 페스티벌계의 주요 인사 르네 마르탱이 성 추문에 휘말리고, 11월 초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열린 이스라엘필 공연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가들이 공연 중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 여러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기도 했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미국
조용히 방향 탐색에 나선 신대륙, 눈부신 한국인의 활약

두다멜/뉴욕 필하모닉(협연 임윤찬) ©Chris Lee
*미국은 한국 음악가들이 가장 먼저 진출한 나라 중 하나다. 현지에 형성된 한인사회도 그렇고, 올해는 광복 80주년 등의 기념비적인 행사로 양국의 음악가와 단체를 잇는 여러 공연들이 미국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한국 작품들이 미국 현지에서 많이 연주되어, 작곡가들의 실험실이 되기도 했다
미국 클래식 음악계는 익숙한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 한 해였다. 오케스트라들이 거리와 페스티벌로 향했고, 공연기관들은 오래된 명곡 대신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 음악을 선택했다.
올해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LA 필하모닉의 무대였다. 4월, 이들은 팝과 힙합이 어우러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연주(4.12·19)했다. 콘서트홀이 아닌 사막 한가운데서 울린 이 곡은 클래식 음악이 제약을 넘어 새로운 청중과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하우스들은 동시대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뤘다. 뉴욕 필하모닉은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로 하와이 출신 작곡가 레일레후아 란질로티(1983~)의 신작을 위촉해 시즌을 열었다. 토착 문화의 음향과 현대적 어법이 공존한 이 작품은 미국 사회의 다층적 배경을 음악 언어로 드러냈다. 존 코릴리아노(1938~)의 교향곡 1번이 연주되었던 공연도 화제가 되었는데 이 곡은 1980년대 에이즈 위기를 주제로 삼았던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재의 사회적 공기를 환기시켰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메이슨 베이츠(1977~)의 ‘캐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을 세계 초연했다. 이민과 소수자, 예술가의 책임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화려한 기술보다 이야기의 현실감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올해는 과거의 위대한 작품을 반복하기보다, 동시대의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국계 연주자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LA 필하모닉은 ‘Seoul Festival’(2.19~3.9)을 통해 한국 창작음악과 연주자들을 집중 조명했다. 작곡가 진은숙이 큐레이팅한 이 프로젝트는 한국 음악의 정체성을 현대적 창작의 흐름 속에서 보여주었다. 일부 공연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소되었지만, 한국 음악이 독립된 주제로 미국 주요 악단이 주최하는 페스티벌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의미를 남겼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은 카네기홀과 뉴욕 필하모닉의 무대에서 연이어 연주하며 미국 음악계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혔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손민수·선우예권·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김봄소리·양인모, 첼리스트 한재민, 성악가 박혜상·백석종·김기훈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링컨센터·카네기홀 등 주요 무대에서 활약했다. 작곡가 김택수와 신동훈을 미국 중요 무대에서 만나 볼 수 있게 된 것 역시 한국 음악이 미국 음악계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서울시향의 카네기홀 초청 공연은 개인 연주자를 넘어 오케스트라 단위의 교류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공연계는 팬데믹 이후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대형 공연장들은 활기를 되찾았지만, 그 복귀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의 탐색에 가깝다. 링컨센터는 여름 시즌 내내 무료 야외 공연을 이어가며 접근성을 높였고, 여러 단체들이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통해 공연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정의했다. 공연장은 점점 더 ‘열린 구조’로 변모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은 특정 공간의 예술이 아니라 도시의 리듬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거창한 선언보다 조용한 변화를 택한 2025년의 미국 클래식 음악계. 익숙한 방식을 벗어나 지금의 감각으로 시대를 바라보려는 시도 속에서, 한국 음악가들은 그 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다.
글 양승혜(뉴욕 통신원)
ISSUE
2025년 이슈들
화제의 공연장·인물·기념사업·포럼 등
새롭게 태어난 공연장

부산콘서트홀 개관식
부산콘서트홀 올해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이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으로, 약 2천 석 규모의 비수도권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 설치 공간이기도 하다. 6월 20일 개관 이후, 100일간 총 77회 공연, 6만여 명의 관객을 기록했고, 공연장 가동률 60.2%, 평균 객석 점유율 84.4%을 보였다. 개관 페스티벌에서 예술감독 정명훈,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의 출연으로 화려한 출발을 한 덕이다. 2027년 개관 목표인 부산오페라하우스를 감안한다면, 부산을 향한 예술계의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GS아트센터 서울에선 (구)LG아트센터 역삼 자리에 공간을 리모델링한 GS아트센터가 들어섰다. 개관 첫 공연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발레 갈라로 화제를 모았고, ‘경계 없는 관객’을 위한 공연장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의 ‘아파나도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각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시빌’ 등을 선보이며 공연·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인천문화예술회관·용인포은아트홀
수도권 지역 공연장도 매무새를 다듬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지난해 개관 30주년을 맞으며 노후화된 시설을 재정비, 484억 원을 들여 공연장의 안정성과 편이성을 강화했다. 무대·음향·조명 시스템 교체를 비롯, 모바일 티켓 검표 시스템까지 도입됐다. 한편 용인포은아트홀도 리모델링을 거치며 극장의 규모를 확대했다. 객석이 1,525석으로 늘어났고 경쟁력 있는 무대 시설이 구축됨에 따라, 대형 뮤지컬·오케스트라 공연 등에 용이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가 기념한 음악가들

모리스 라벨
라벨 탄생 150주년 1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음반을 발매하며 작품에 담긴 그의 세계를 조명했다. 2월에는 협주곡 전곡도 발매했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주자인 만큼 라벨의 음악 세계를 조명한 그의 인터뷰와 생각들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는 기회였다. 4월에는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 장 에플람 바부제도 전곡 음반(Chandos)을 발매하며 감상의 풍성함을 더했다. 국내에선 고잉홈프로젝트가 총 네 번에 걸쳐 라벨 관현악 전곡 시리즈를 기획해 선보였다. 마지막 공연은 12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
거장들의 별세 기념의 한편에는 거장들의 별세가 연달아 이어지기도 했다. 1월에는 피아니스트 정진우(서울대 음대 명예교수)가 향년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신수정·김용배 등 현 음악계를 이끄는 이들의 스승으로, 한국 피아노 교육의 대부로 불렸다. 3월에는 러시아 출생의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본지의 영국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그를 기리며 “그의 ‘오페르토리움’을 듣고 있노라면, 미지의 행성계 질서에 귀가 적응하게 된다. (…)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라기보다는 러시아 음악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끝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6월엔 우리 시대 피아노 지성의 한 축을 담당했던 알프레드 브렌델이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비롯, 연주와 글을 통해 깊이 있는 관점으로 많은 이들의 멘토가 되준 그의 별세 소식에 여러 음악가들이 개인 SNS 등으로 추모에 동참했다.
한국의 정체성과 교류 탐색
광복 80주년·한일 수교 60주년 다소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맞이한 광복 80주년이었지만, 국공립단체들이 부지런히 기념 음악회를 이어갔다. 국립국악원의 공연 ‘빛을 노래하다’(8.14·15)에선 판소리 ‘열사가’, 구이임이 부르는 윤동주의 시 등이 무대에 올랐고, 국립극장(8.20)은 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한 자리에 모아, ‘아리랑 환상곡’부터 ‘하나의 노래, 애국가’ 등을 연주했다. 국립합창단(8.21)은 뮤지컬 ‘영웅’을 합창으로 선보였으며, 한국-카자흐스탄 합작 뮤지컬 ‘열차 37호’(8.14·15)도 대학로극장 쿼드에 올랐다. 한편 해외에선 미국 LA한인음악회가 월트디즈니홀에서 ‘Sprit of Korea’(8.2)로 음악회를 개최, 백낙금·안익태 등의 작품을 연주했고, 뉴욕에선 독립운동 전시 개관과 함께 음악회 ‘Resonance of Freedom’(10. 3·5)가 열리며 김택수의 ‘들풀(The Grass Still Grows)’이 위촉 초연되기도 했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선 일본 신국립극장이 국내 국립극장·예술의전당과 협력했다. 국립극장에선 신국립극장의 ‘투란도트’가, 반대로 일본에선 국립무용단의 작품이 상영됐으며, 예술의전당과 2008년 공동 제작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11. 14~23)이 다시 무대에 오르며 의미를 되새겼다.
FACP 부천 총회·AAPPAC 대전 총회 아시아 교류의 중심지로서 지역의 공연장들이 발 벗고 나섰다. 올해는 그 결실을 맺은 해. 부천에서는 아시아문화진흥연맹(FACP) 총회(10.16~19)가 (재)부천아트센터 주최로 열렸다. 아시아-태평양 주요 도시의 문화 예술 전문가들이 모였고, ‘아시아 문화 잠재력’ ‘공연 제작과 유통’ 등 동시대 과제에 대한 활발한 토론 및 작품 피칭 등이 이뤄졌다. 같은 달 21~23일에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아시아·태평양 연합회(AAPPAC)의 정기 총회가 열렸다. 싱가포르·홍콩·네덜란드·뉴질랜드 등 19개국 3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여했다. 특별히 ‘예술과 과학의 융합’ 등 대전의 특징을 살린 행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글 허서현 기자
SUMMARY
‘객석’에 담긴 2025년
*스타급 음악가와 예술가, 역사적인 기념해를 맞이한 축제 등 인물과 콘텐츠가 표지를 장식한 한 해였다. 콩쿠르, 세계음악잡지, 장애예술, 중동의 클래식 음악, 취미예술가들 집중탐구, 광복 80주년, 몰입형 공연, K팝과 클래식 음악의 경계 탐색 등 일상부터 세계적인 이슈까지 특집에 담기도 했다. 그리고 11월호는 통권 ‘501호’로 특집호를 발간했다 정리 최성혁 기자
1월호 피아니스트 랑랑·지나 앨리스
예술 현장의 살림꾼, 예술 단체장 8인에게 듣는 새해 계획
도시와 음악·작곡가와 작품·음악가와 관객이 만나는 축제, 올해의 ‘콩쿠르’는 무엇이 있을까?
2월호 테너 백석종
예술가의 미래를 위한 노력, ‘성과와 수확’ ‘육성과 지원’ ‘공모와 공유’ ‘발굴과 교육’ 4가지 측면으로 바라보다
더 알차고 새롭게 준비된 2025년 한 해의 공연 살펴보기
3월호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창간 41주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의 음악 잡지들을 둘러보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무대들
4월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20주년
더이상의 편견은 NO! 장애 예술가들과 단체들이 이어 나가는 활약의 현장
오르간 마이스터 박상률과 함께한 부천아트센터 파이프 오르간 탐방
5월호 바이올리니스트 미리암 프리드
고전 예술과 현대 예술의 만남이 빚어내는 마법
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거듭나는 사막 한가운데의 도시, 두바이를 주목하다
6월호 베이스 박종민
예술이 삶의 일부가 된 ‘취미 예술가’들의 이야기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KBS국악관현악단, 그 세월의 궤적을 돌아보며 미래를 그리다
7월호 베를린 필하모닉 12 첼리스트
바다와 예술의 만남, 해양도시로 떠나보는 특별한 예술 여행
민요로 만드는 히트곡,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 소리꾼 이희문을 만나다
8월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세종솔로이스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낸 국내외의 ‘몰입형 공연’ 즐기기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오페라 ‘264, 그 한 개의 별’과 광복절을 기념하는 여러 공연
9월호 세묜 비치코프&체코 필하모닉
전 세계를 휩쓰는 K팝이 예술 분야 전반으로 확장된다면? ‘K팝 사용 설명서’
새로운 형태의 예술 교육의 현장, ‘꿈의 페스티벌’과 ‘한국국제예술학교’를 방문하다
10월호 하겐 콰르텟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가을! 모음·체험·브랜드·도전까지 4가지 키워드로 만나보자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LA필이 함께한 여정의 끝자락, 그들의 지난 17년을 반추하는 음반들
11월호 ‘객석’ 통권 501호 발행
‘객석’과 함께해 온 수많은 음악가들과 예술경영인들이 남기는 메시지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한 한국과 일본, 예술을 통해 함께 나아갈 길을 그리다
12월호 손진책·박범훈·국수호·김성녀
2025년 한해 예술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국내 각 지역의 특별한 예술 현장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