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COLUMN
음반에 담긴 이야기
세계가 호평한 음반들을 살펴보며
2025년, 주요 음반상이 택한 화제의 음반은 무엇일까?
콩쿠르 1위의 연주자가 언제나 화려한 이후를 보장하지 않듯, 음반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음반에 절대적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상작에는 언제나 그 이유가 있고, 우리가 경험을 통해 찾아야 할 선택의 시간을 크게 줄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음반상 수상작들을 살펴보는 시간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예의 주인공들을 선별해 소개한다.
ICMA(현대음악 부문)
베를린 필하모닉 ‘진은숙 에디션’
베를린 필하모닉의 진은숙(1957~) 에디션(Berliner Philharmoniker)❶은 21세기 발매된 동시대 작곡가의 음반 가운데 놓쳐서는 안 될 세트다. 2023년 말, 베를린 필하모닉 레코딩스 특유의 직사각형 모양 박스에 담겨 발매된 ‘진은숙 에디션’은 두 장의 CD와 한 장의 블루레이로 구성됐다. 2005년부터 베를린 필과 협업해 온 진은숙의 협주곡과 관현악곡이 담겼다.
첫 번째 CD에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첼로 협주곡이, 두 번째 CD에는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사이렌의 침묵’, 오케스트라를 위한 ‘코로스 코르돈’, 피아노 협주곡,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카나’(2008) 등 두 장의 CD에 총 여섯 곡의 작품이 수록됐다. 블루레이에는 모든 수록곡의 고해상도 블루레이 오디오 트랙이 들어있고,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제외한 모든 곡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1887년 창단 이후, 138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한국의 동시대 작곡가에게 헌정한 음반 세트를 발매했다는 사실은, 한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베를린필이 생존 작곡가를 기념하는 음반은 2016/17 시즌 상주작곡가로 활약했던 존 애덤스 이후 두 번째다.
1984년 카라얀이 베를린필을 이끌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진은숙은 표를 살 돈이 없어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서 연주를 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의 곡을 이제 베를린필이 연주한다. 나아가 베를린필이 그녀에게 작품을 위촉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패키지로 발매했다는 사실이 극적으로 다가온다.
그래미상
(최우수오케스트라 연주·최우수 현대 클래식 작곡·최우수 컴필레이션 부문)
가브리엘라 오르티스 ‘레볼루시온 디아만티나’
구스타보 두다멜/LA필이 연주한 멕시코 출신 작곡가 가브리엘라 오르티스(1964~) 음반(Platoon)❷ ‘레볼루시온 디아만티나’가 그래미상(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최우수 현대 클래식 작곡·최우수 클래식 컴필레이션 부문)을 세 부문이나 수상했다.
2024년 6월 7일 발매된 이 음반은 애플 산하 음악 레이블 플래툰에서 출시됐다. 라틴 아메리카 음악 유산의 재조명을 목표로 하는 LA필의 다년간 프로젝트 ‘팬아메리칸 음악 이니셔티브’의 일환이기도 하다.
오르티스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음악을 만든다. 그녀의 음악은 강한 리듬감, 거리에서 태어난 진정성, 생생한 색채 감각으로 서로 다른 세계와 삶을 하나의 소리로 엮는다.
타이틀 ‘레볼루시온 디아만티나’는 2019년 당시, 멕시코 전역에서 확산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선 페미니스트 봉기인 ‘글리터 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발레 음악이다. 여성 살해 증가가 ‘글리터 혁명’의 촉매제가 되었으며, 경찰에 의한 성폭력 사건 이후, 책임 있는 응답이 없었던 상황을 규탄하며 분홍색 글리터(화장용 반짝이 가루)를 뿌린 시위에서 상징성을 얻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현의 제단’은 작곡가의 ‘제단’ 시리즈의 일환으로, LA필과 자주 협연하는 안달루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 두에냐스를 위해 작곡했다. 이외 팬데믹 이후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위촉작, 오르티스의 ‘카유마리(파란 사슴)’가 수록되어 있다.
오랫동안 오르티스의 음악만을 담은 음반 제작을 꿈꿔왔다고 밝힌 두다멜은 “육체와 영혼 모두에게 말을 거는 음악으로, 본능적인 원초적 리듬과 신비롭고 영혼을 울리는 음향 세계로 가득하다”고 오르티스의 음악을 설명했다.
그래미상(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
비킹구르 올라프손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21세기의 가장 각광받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1984~)의 음반들은 그간 주요 음반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돼왔다. 누적 스트리밍 재생 수 6억 회 이상을 기록한 그는 전통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이면서, 동시대 음악으로 활동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장 글렌 굴드의 레퍼토리를 독창성과 개방성을 더한 서사로 해석해 이목을 끌었는가 하면, 2014년에는 헬리콥터가 낮게 날면서 수면을 흔드는 베르나고 호수 위 수상 무대에서 스크랴빈 Op.72 ‘불꽃을 향하여’를 연주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이슬란드의 글렌 굴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마침내 도전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DG)❸은 독자적인 해석으로 바로크 건반 예술의 최고봉에 도달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지금까지 작곡된 건반 음악 중에서 가장 비르투오시티가 넘친다. 놀라울 정도로 멋진 대위법의 사용, 숭고한 시적 표현, 복잡한 사색, 깊은 애상감이 무수히 포함되어 있다. ‘단순하며 우아한 아리아’라는 한정된 소재를 무한하게 확장하는 바흐의 우주적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올라프손은 지적인 매무새를 유지한 채 맑은 음색과 눈부신 기교로 21세기와 바흐를 연결하고 있다.
그래미상(최우수 오페라 녹음 부문)
사리아호 오페라 ‘아드리아나 마터’
핀란드 출신의 현대 작곡가 카이아 사리아호(1952-2023)가 작곡한 오페라 ‘아드리아나 마터’의 세계 최초 녹음(DG)❹이다. 그와 같은 고향 출신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에사 페카 살로넨이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이 녹음은 2023년 6월,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심포니홀에서 이루어졌으며, 사리아호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며칠 후 완성됐다.
헬싱키·프라이부르크·파리에서 작곡을 공부한 사리아호는 1982년부터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프랑스국립음향음악연구소(IRCAM)에서 전자음악을 연구했다. 그는 라이브 연주와 전자 음향을 융합해 특유의 풍부하고 신비로운 텍스처를 창조했다.
‘아드리아나 마터’는 사리아호의 두 번째 오페라로, 전쟁으로 분단된 나라를 배경 삼아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현재를 잠식하는지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2006년 4월 파리 오페라에서 이 작품의 세계 초연을 지휘했던 살로넨은 음반에 이렇게 적었다.
“그로부터 18년 후, 나는 이전보다 나이가 들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은 음악가로서 이 훌륭한 악보로 돌아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리허설 도중 카이아의 부고를 들었고, 이 작품을 세상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한편 살로넨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스트라빈스키 ‘3개의 악장을 위한 교향곡’은 2026년 최우수 관현악 연주 후보에 지명됐다. 정밀하고 명료한 표현과 꿈틀대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디아파종상·그라모폰 어워즈(피아노 부문 & 젊은 음악가 부문)
임윤찬 쇼팽 ‘에튀드’
밴 클라이번 콩쿠르(2022)에서 18세의 나이로 우승한 이후, 결선 연주 영상 조회수가 1,300만 회 이상 돌파하는 동안 임윤찬의 연주는 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2023년 그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클라우스 메켈레가 소속된 데카 클래식스와의 전속 계약을 발표하며, 메이저 데뷔 음반(Decca)❺으로 쇼팽 연습곡 Op.10과 Op.25 전곡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재생했다가, 착륙할 때까지 내리 듣게 되었던 음반이기도 하다. 강렬하고 투명하게 작품의 진수에 육박하는 진지한 연주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 곡에 다시금 빠져들게 한다.
오푸스 클래식(올해의 기악 연주자 부문)
조성진 라벨 피아노 작품집
쇼팽 피아노 콩쿠르(2015)에서 우승과 함께 폴로네즈상도 동시 수상한 후 국제적인 각광을 받고 있는 조성진. 2025년 12월 경기필과 협연한 그의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듣고 능수능란해진 피아니즘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여러 음반 중, 쇼팽과 드뷔시를 잇는 프랑스 작품의 진수가 나왔다. 모리스 라벨의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벨의 솔로 피아노 전곡 녹음(DG)❻에 도전한 것. ‘그로테스크한 세레나데’와 같은 초기 작품부터 ‘밤의 가스파르’, 그리고 ‘쿠프랭의 무덤’ 등 원숙기 작품까지 다양한 연대의 라벨 작품을 망라하며, 프랑스적인 음색의 미학을 큰 족적으로 남기고 있다. 향후에도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대표하는 시리즈로 자리매김할 업적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