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 | 건반 위의 퍼즐, 그리고 영혼의 이정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월 26일 9:00 오전

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24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피아니스트 박종화

건반 위의 퍼즐, 그리고 영혼의 이정표

 

 

저는 평생 피아노와 더불어 성장해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피아노는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장난감’이었고, 유년기의 피아노는 저의 무한한 상상을 소리로 구현하는 ‘음악적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은 저의 가장 가까운 ‘음악적 동반자’이자 삶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엄격한 ‘선생님’으로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악보와 피아노라는 두 오브제의 결합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그것은 작곡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정보 전달의 조합인 동시에, 그 앞에 선 연주자에게는 무형의 거대하고 무궁무진한 퍼즐을 던져줍니다.

이 음악적 퍼즐 안에는 창작자들의 지극히 사적인 세계와 당대의 시대정신,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이 화석처럼 고스란히 박혀 있고, 우리는 각자의 능력과 깊이에 따라 이 거대한 우주에 접속할 뿐입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저는 순수하게 악보와 악기 사이에서 작업하는 고독한 시간을 선호합니다. 그 정적인 시간 속에서만 비로소 작곡가의 숨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녹음이란 작업의 최종 단계에서 마주하는 매체이자, 이중적인 정체성을 지닙니다. 음악가로서는 엄격한 ‘참고자료’가 되고, 음악 애호가로서는 무한한 ‘뮤직 라이브러리’가 됩니다. 수많은 기록 가운데 현재 저의 예술적 철학에 깊은 뿌리를 내린 세 장의 특별한 음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박종화(1980~)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 졸업 후, 뮌헨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입상했으며, 2003년 부소니 콩쿠르 등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2007년부터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과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라자르 베르만의 리스트: 초월(超越)과 타협 없는 의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S.139 #10대 시절 접한 곡

라자르 베르만(피아노)

감상 포인트 19세기 비르투오소적 피아니즘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베르만의 연주

소련 출신의 라자르 베르만(1930~2005)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초인적’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선천적인 신체적 능력, 구소련의 과학적이고 조직화된 음악 교육 시스템, 그리고 지독한 자기 수양이 결합되어 탄생한 경이로운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코르토 등 수많은 거장들의 음반을 탐구해왔지만, 10대 시절 접한 베르만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음반은 제게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기교가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성부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그 복잡한 층위의 표현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모습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예술은 불완전함 속에서 감동이 피어난다고 말하지만, 베르만의 연주는 리스트가 악보에 심어놓은 19세기 비르투오소적 피아니즘의 정수를 완벽하게 재현해냅니다.

이 연주에는 ‘타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연주자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악보의 지시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이를 ‘음악적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베르만은 그러한 타협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오직 리스트가 도달하고자 했던 절대적인 지점에서 음악을 빚어냅니다.

훗날 이탈리아에서 그를 만났을 때, 무대 위의 서슬 퍼런 모습과 달리 너무나 너그럽고 온화한 인상이었는데, 그 인격적 깊이가 그의 강인한 음악적 의지를 지탱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키스 자렛의 즉흥성: 재창작과 존재의 철학적 질문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쾰른 콘서트 라이브 연주(1975) #창조적 자유에 대한 해답

키스 자렛(피아노)

감상 포인트 클래식 음악의 엄격함 속에서도 즉흥이 살아 숨쉬는 연주

피아노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저는 늘 근원적인 갈증을 느꼈습니다. ‘악보에 담긴 퍼즐을 건반 위에서 완벽히 풀어내면 그것으로 끝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는 창작과 재창작의 경계에 선 연주자로서의 실존적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모방으로서의 예술(Mimesis)’의 관점에서 본다면, 녹음 기술의 산물인 음반을 통해 음악을 재현하는 우리 세대의 작업은 어쩌면 ‘모방의 n제곱’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구조는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를 도출하는 현대의 AI(LLM) 프로세스와도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AI의 창작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학습하고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갈증 속에서 저는 대학 시절 재즈라는 장르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흑인들의 영혼이 담긴 소리와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만나 탄생한 그 자유로움 속에서, 저는 ‘즉흥’이 지닌 창작의 진정성을 발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이가 바로 키스 자렛(1945~)이었습니다.

“키스 자렛은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바흐의 평균율을 연습한다”는 이야기는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바흐 연주에는 클래식 음악의 엄격함 속에서도 즉흥성의 연장선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감상한 ‘쾰른 콘서트(The Köln Concert)’ 연주는 즉흥 연주의 대가가 창작과 해석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어떻게 음악적 마법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재즈뿐 아니라 헨델과 C.P.E. 바흐까지 폭넓게 탐구하며 클래식 음악에도 진심을 다하는 그의 행보를 통해, 연주자가 모방자를 넘어 어떻게 창조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팅크와 브루크너: 음향의 대성당에서 배운 겸손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지친 영혼에 안식을 주는 처방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감상 포인트 하이팅크의 지휘로 완성되는, 긴 호흡과 명상적 집중의 브루크너

피아니스트에게 교향곡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많은 피아노 작품이 시공간적인 차원에서 오케스트라나 파이프 오르간의 음향을 모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베토벤에서 브루크너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교향곡의 성을 쌓아 올린 작곡가들은 모두 뛰어난 건반 악기 연주자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브루크너는 제게 특히 각별한 존재입니다.

그는 베토벤이 투영했던 ‘신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시골 오르가니스트 출신으로 투박한 옷차림과 어설픈 매너 때문에 사교계의 조롱을 받았고, 비평가들의 가혹한 비난에 상처받아 이미 완성한 작품을 여러 차례 고쳐 쓰기도 했던 소심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약한 인간이 구축한 음악적 대성당 안에는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치밀한 설계와 신비로운 색채, 그리고 창조주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깃들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정적(휴지)과 특유의 리듬으로 대변되는 그의 교향곡은 감상자를 숭고한 영성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저는 인간 브루크너로부터 거대한 예술 앞에 서는 ‘겸손’을 배우고, 그의 음악으로부터는 ‘믿음과 희망’에 대한 확신을 얻습니다. 모든 콘텐츠가 점점 자극적이고 짧아지는 오늘날, 긴 호흡과 명상에 가까운 집중력을 요구하는 브루크너의 음악은 오히려 더욱 깊은 가치를 지닌다고 느낍니다. 브루크너 해석의 거장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지휘로 듣는 전집은, 지친 영혼에 안식을 주는 가장 고귀한 처방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일은 어쩌면 평생을 바쳐도 끝낼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르만의 불굴의 의지, 키스 자렛의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브루크너의 숭고한 겸손을 이정표 삼아 저는 오늘도 건반 앞에 앉습니다. 이들의 음반은 제게 단순한 소리의 기록을 넘어, 제가 가야 할 길을 비추는 영원한 빛입니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