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2026년 예술영화 기대작 9편 이야기
아직도, 여전히 영화관은 함께 살아간다
극장에 앉는다. 탁, 불이 꺼지는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관객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공연장이라면 조명이, 영화관이라면 화면이 켜지는 순간 현실의 공간이었던 극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문이 열리듯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변화한다. 2026년, 집에서 소파에 누워 편히 보는 체험 대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서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의 삶을 체험하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감정의 경험을 즐기고 싶은 관객들을 위한 예술영화 기대작을 소개한다.
다양성 영화: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
영화계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타 예술 장르의 장점을 흡수하고 기술적인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외연을 확장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영화가 예술 장르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상업 영화의 틈 사이로 아주 작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담아내는 ‘다양성 영화’에 지원과 투자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도전하고 관객을 설득하는 다양성 영화는 우리 곁의 볕이 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➊ ‘흐르는 여정’
감독 김진유 음악 권현정
청각장애 소녀의 삶을 그린 영화 ‘나는 보리’로 주목받은 김진유 감독의 ‘흐르는 여정’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독립영화상과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을 받으면서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좋은 죽음과 좋은 삶을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평가받으며 보통 인물의 아름다운 관계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➋ ‘내일의 민재’
감독 박용래 음악 모그
서울독립영화제 2025 페스티벌 초이스에 선정된 박용래 감독의 ‘내일의 민재’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차별받아 온 보육원 출신 육상선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시 비리와 계급 격차, 청소년 문제 등 냉정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스포츠 영화의 형식에 녹여 넣었다. 제38회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의 미래’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받았다.
➌ ‘물의 연대기’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 음악 패리스 헐리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인 ‘물의 연대기’는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트라우마와 자아 탐구를 섬세하게 그린 드라마다. 2025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과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았다. 여성의 서사에 늘 관심을 가져온 스튜어트인 만큼 감독으로서의 시선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➍ ‘고독의 오후’
감독 알베르트 세라 음악 조디 리바스, 새뮤얼 미틀먼, 브루노 타리예르
카이에 뒤 시네마의 2025년 1위 선정작, 알베르트 세라 감독의 ‘고독의 오후’는 현역 스타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은 간결하고 정적인 긴장감으로 역사와 신화를 탐구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는데, 투우의 전통부터 미학적인 역할까지 진지하게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는 드물게 개봉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관심을 끈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 아트버스터
예술영화와 블록버스터를 합성한 아트버스터는 규모가 크다는 뜻이 아니라, 소규모 독립영화이지만 관객의 강한 지지로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의미한다.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타협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작품이지만 그 소재와 표현 방식으로 많은 관객의 정서와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➎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감독 임선애 음악 최동훈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멜로 ‘세기말의 사랑’으로 주목받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백영옥 작가의 원작 소설의 깊이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수지와 이진욱 등 스타 배우의 캐스팅으로 아트버스터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➏ ‘마더 메리’
감독 데이비드 로워리 음악 대니얼 하트
음악 영화 ‘마더 메리’는 창의적인 예술영화 제작 배급사로 알려진 A24가 제작한 영화로 팝스타와 암살자 사이에 피어나는 로맨스라는 독특한 소재이다. 2013년 데뷔작으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과 앤 헤서웨이의 만남으로 더욱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➐ ‘다이 마이 러브’
감독 린 램지 음악 조지 베스티카, 라이페 버첼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인 ‘다이 마이 러브’는 ‘케빈에 대하여’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린 램지 감독의 신작으로 제니퍼 로렌스와 로버트 패틴슨이 부부로 만나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미친 듯이 사랑해서 망가져 가는 아내를 지키려는 남편 사이에 오가는 심리 드라마이다.
➑ ‘아르코’
감독 우고 비엔베뉴 음악 아르노 툴롱
우고 비엔베뉴 감독이 연출하고 나탈리 포트만이 제작과 목소리 참여를 한 애니메이션 ‘아르코’는 무지개와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화려한 색감의 애니메이션으로 환경에 관한 메시지와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대 제작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질감을 지닌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많은 호응이 예상된다.
영화관은 우리에게 어떤 곳인가?
넷플릭스는 영화관 개봉을 못 한 다수의 한국 영화를 품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손익분기점에 가까운 제작비 회수를, 감독에게는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고, 넷플릭스 공개 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일도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창동
➒ ‘가능한 사랑’
감독 이창동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2026년 상반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전도연·설경구·조인성의 캐스팅과 ‘버닝’ 이후 8년 만의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으로 제작 단계에서 큰 관심을 끌었지만, 제작비 문제로 넷플릭스에 선판매되었다. 개봉이 불투명했던 예술영화를 관객들을 넷플릭스 덕분에 볼 수 있게 된 셈인데, 다행인 건지 안타까운 건지 모호한 지점이 있다.
최근 일본 실사영화 역대 1위에 오른 이상일 감독의 일본 영화 ‘국보’는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이야기할 때 영화가 얼마나 근본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우리가 봉준호, 박찬욱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일본 영화는 다양성 영화를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독립영화관과 예술영화 전용관 등이 버티면서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창작자가 성장할 기회를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025년 개봉한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는 빼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상영관 때문에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 씨네21 편집장을 지냈던 조선희 작가는 이 영화의 가치를 높이 사 아예 극장을 통째로 대관하고 페이스북 친구를 초청해 ‘관객 운동’ 차원의 릴레이 무료 상영회를 열었다. 이후 관객들의 객석 기부 릴레이가 이어졌다. 좋은 영화를 지키고 널리 알리려는 전문가의 도움과 관객의 호응이 뜨겁고 아름답다.
조선희 작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거대한 눈덩이가 되진 않았지만, 문화 운동에 가까운 이런 시도는 꽉 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단단한 벽의 작은 숨구멍이 되었다. TV의 등장, OTT의 잠식 등 영화관 위기의 순간은 늘 거대 자본과 함께 찾아오지만, 영화관 생존의 열쇠는 늘 관객이 들고 있다. 관객과 만나지 않은 영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