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아레테 콰르텟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1월 5일 9:00 오전

COVER STORY

 

연이은 콩쿠르 우승 아레테 콰르텟

전채안·박은중·장윤선·박성현

 

‘참된 목적’을 향한 네 개의 현

 

 

현악 4중주의 시작은 남다르다. 솔리스트의 길을 걸어온 네 명의 현악기 연주자가 하나의 소리를 향해 방향을 맞춘다는 것은, 각자의 음악적 에고를 내려놓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려놓기’에 이어 햇수로 데뷔 7년 차인 아레테 콰르텟은 ‘올라가기’의 행보를 보여주며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현악 4중주단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대전(7일)·김해(27일)·서울(29일)· 통영(12월 6일)으로 이어진 공연을 마친 이들에게 4인의 기자가 묻고 들었다

총괄 유내리 기자 사진 박진호·목프로덕션

 

RESONANCE 아레테 콰르텟이 걸어온 8년의 시간 _유내리

INTERVIEW 미래에 거는 신뢰 _편집부

 


 

RESONANCE

 

아레테 콰르텟이 걸어온 8년의 시간

결성의 우연을 확신으로 바꾸며, 하나의 소리를 만들다

 

이들의 리허설은 늘 바흐의 코랄로 문을 연다. 악기의 화성이 가장 순수한 음악을 통해 네 대의 현이 하나의 소리로 수렴하는 감각을 먼저 확인하기 위해서다. 네 악기가 하나로 명확하게 들려야 한다는 팀의 지향은 ‘아레테’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도 확실한 연결선을 그린다.

‘아레테’는 고대 그리스어로 ‘참된 목적’ 혹은 ‘최상의 우수함’을 일컫는다. 음악의 본질을 닦아 최선의 음악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담아, 팀의 이름을 아레테로 지었다.

2019년 9월, 이들의 결성과 출발은 대학 시절의 현악 앙상블에서 비롯됐다. 첼리스트 박성현을 중심으로 앙상블에 매료된 친구들을 모아 현악 앙상블을 구성한 것이 그 시작으로, 당시 이름은 ‘앙상블 청춘’이었다. 이들은 팀의 운명을 한 달 후 열리는 금호영체임버콘서트 오디션에 걸었다. 합격하면 팀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체하기로 약속한 것. 결과는 만장일치의 합격을 따냈다. 아레테 콰르텟의 등을 힘차게 밀어준 금호문화재단과의 인연(2019)은 훗날 상주음악가(2025)로 이어지는 여러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세계 각지의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기까지

아레테 콰르텟이 국내외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21년 체코 프라하의 봄 콩쿠르에서 6관왕에 달하는 우승이었다. 현악 4중주 부문 한국인 최초 우승으로, 노부스 콰르텟과 아벨 콰르텟에 이어 세계 무대 활약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콰르텟이 탄생했다. 결성 후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뤄낸 쾌거였다.

이후 이들은 침착하되 빠르게 움직여나갔다. 2022년 독일 ARD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했고, 2023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콩쿠르 수상과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최고 해석상’을 받았다. 이는 2014년 같은 콩쿠르에서 노부스 콰르텟(리더 김재영)의 뒤를 잇는 기록으로, 스승과 제자가 동일한 무대에서 우승한 보기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이후 국제 콩쿠르 도전은 계속 이어졌다. 2024년 프랑스 리옹 실내악 콩쿠르 1위 및 5개의 특별상을 석권했으며, 2025년 프랑스 보르도 콩쿠르 3위와 캐나다 밴프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창단 당시 바이올린을 맡았던 김동휘는 2023년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났고, 유다윤이나 김동현 등이 객원 단원으로 참여했다. 약 1년간의 객원 체제를 마치고 지금의 박은중이 2024년 리옹 콩쿠르부터 새롭게 합류해 함께하고 있다).

알고 보면, 이들의 콩쿠르 도전은 단순히 ‘성적’을 목표로 한 선택은 아니었다. 전채안은 “실내악 팀으로서 무대에 설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콩쿠르는 팀으로 무대에 오르고, 다른 콰르텟과 직접 부딪히며 음악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통로인 것을 발견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아레테 콰르텟의 활동 무대는 자연스럽게 콩쿠르가 열리는 나라로 확장됐고, 수상 이후 해당 국가에서 연주 기회가 주어졌다. 콩쿠르 우승 이후의 풍경은 분명히 달라졌다.

국내에서는 단발성의 연주가 많았고, 해외에서는 콩쿠르 부상으로 무대에 투어 연주가 함께 주어졌다. 이런 이유로 아레테 콰르텟은 콩쿠르에 도전할 때조차, ‘연주 기회가 부상에 포함돼 있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콰르텟으로 활동하는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개인 아티스트와 달리, 팀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모든 결정을 네 명의 합의로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안에 이어진 이 성과들은 아레테 콰르텟이 꾸준한 축적의 경로 위에 서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2025년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 선정으로 이어졌다.

 

체코의 숨결을 빚어낸 첫 음반 발매

“프라하의 봄 콩쿠르 우승 직후, 우리끼리 대화를 나눴어요. 만약, 첫 음반을 내게 된다면 이렇게 의미 있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작품을 음반으로 담는 것이 어떨까, 하고요”(전채안)

그 논의는 실제 음반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년 11월, 아레테 콰르텟은 애플 산하 음원 플랫폼 플래툰(Platoon)을 통해 ‘야나체크 & 수크’ 음반을 발매했다.

음반에는 체코 음악사를 대표하는 작품이 담겼다.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와 2번 ‘비밀편지’, 그리고 옛 체코 성가를 바탕으로 요제프 수크(1874~1935)가 작곡한 ‘성 바츨라프에 의한 명상곡’이다.

아레테 콰르텟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수크의 음악을 소개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그의 작품을 수록했다. 한때 국가 후보로 거론될 만큼 체코의 역사와 정서를 짙게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음반에 수록된 체코 작곡가들의 작품은 모두 부제가 붙어있다. 이는 연주자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오히려 제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레테 콰르텟은 이를 해석의 제약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삼아, 부제가 지시하는 감정과 서사를 어떻게 소리로 옮길지에 집중했다.

박성현은 이에 대해 “체코 음악을 가만히 듣다 보면, 한국의 음악과 닮은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아요. 유럽과 아시아라는 차이는 있지만, 민족성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표현을 주저하기보다, 부제가 가리키는 감정이 맞다고 믿고 더 적극적으로 소리로 옮기려고 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당분간 아레테 콰르텟의 무대는 야나체크와 수크의 음악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흔히 연주되지 않는 레퍼토리까지 책임 있게 다루겠다는 각오 역시 분명하다. 슈만 서거 170주년을 맞는 올해는, 아레테 콰르텟이 오래 애정해 온 작곡가를 다시 마주할 시간이 될 것이다. 이들의 4중주는 이미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각자의 역할에 주목하며 4인 4색의 인터뷰를 읽어볼 것. 소리의 기준을 세우는 전채안, 전체를 듣고 연결의 고리를 찾는 박은중, 논의와 온도를 조절하고 수렴시키는 장윤선, 소통의 길을 닦고 계획을 세우는 리더 박성현의 이야기다.

유내리 기자

 

Album

‘야나체크 & 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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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음반은 재단법인 아트실비아의 후원으로 아트센터 실비아홀에서 사흘간 녹음됐으며, 톤마이스터 최진과의 협업을 통해 밀도 높은 앙상블을 완성했다. 또한 한국-체코 수교 3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활발히 이어진 문화 교류의 흐름 속에서 아레테 콰르텟의 ‘야나체크 & 수크’ 음반은 두 나라를 잇는 교두보로서 의미를 더했다.

 

 


 

INterview

 

미래에 거는 신뢰

‘객석’ 4인의 기자와 만나 각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청사진을 그리다

 

 

네 명의 소리를 듣는 ‘자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전채안

아레테 콰르텟을 둘러싼 최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왔다. 프라하의 봄 콩쿠르를 계기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에는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한 시즌을 채우며 첫 음반을 발표했다. 짧은 시간 동안 굵직한 성과를 쌓아온 이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전채안은 제1바이올린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팀 안에서 가장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다. 무대에서는 방향을 제시하고, 리허설에서는 판단의 기준을 세운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를 ‘리더’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네 명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소리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음악적인 판단, 리허설에서의 조율, 때로는 감정과 체력의 한계까지. 수많은 무대와 연주, 그리고 음반 작업을 거치며 한 단계 깊어진 자리에서 전채안은 지금의 아레테 콰르텟을 안과 밖의 시선에서 차분히 돌아봤다.

먼저 제1바이올린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팀 안에서의 리더십에 대해 묻고 싶어요. 리더는 첼리스트인 박성현 씨가 맡고 있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제1바이올린의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자연스럽게 나뉜 것 같아요. 성현 오빠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편하게 잘하는 사람이에요. 팀의 가장 연장자로서 업무적인 소통에도 능통하고요. 그런 역할은 잘하는 사람한테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리허설이나 음악적인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제가 리드를 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연습할 땐 전적으로 저를 믿어주려고 해요. 물론 다툼이 없지는 않아요.(웃음) 그래도 역할이 나름대로 잘 나뉘어 있어서 자유롭게 굴러가는 구조라고 느껴요. 요즘은 제1바이올린이 모든 걸 다 하는 팀도 많지만, 저희는 저희에게 맞는 방식으로 조화를 만들어온 것 같아요.

프라하의 봄 콩쿠르(2021) 이후 팀의 방향이 분명해졌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출전을 앞두고 멤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고, 어떻게 마음을 모으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콩쿠르에 도전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시 현악 4중주 부문이 16년 만에 다시 열리는 해였고, 저희가 유럽으로 유학 간 시기와도 자연스레 맞물려 있었어요. 여러모로 도전해볼 만한 기회라고 생각했죠. 저희 팀의 장점이자 단점은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팬데믹 시기라 영상 심사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저희끼리 “되든 안 되든 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네 명 중에 누군가가 사기를 올리면, 그걸 떨어뜨리는 사람이 없었죠. 다 같은 마음으로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여러 국제 콩쿠르와 다양한 레퍼토리를 거치며 아레테 콰르텟의 색도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도전적이었던 작품, 그리고 요즘 들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면요?

초반에는 알반 베르크, 버르토크 같은 현대 작품들이 도전적으로 느껴졌어요. 악보를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네 명이 함께 연주하고 있어도 제대로 맞물려 가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브람스나 모차르트, 하이든 같은 고전 레퍼토리가 더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현대 작품은 악보가 어려워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데, 고전 작품은 ‘듣기 편해야 하는 음악’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 속 부담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지난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시즌과 첫 음반 녹음을 거치며, 팀과 개인 모두에게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에서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나요?

상주음악가로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어떤 흐름으로 관객을 만날지 고민하는 시간 동안 단순히 연주를 잘하는 걸 넘어서, “우리가 이런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첫 음반 작업도 마찬가지였어요. 완벽한 연주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어떻게 담을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 이후로 무대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느껴요. 개인적으로도 연주자로서 한 단계 더 가능성을 본 해였죠.

‘아레테 사운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요? 제1바이올린으로서 감정과 체력을 관리하는 방식도 궁금합니다.

앙상블 면에서는 바흐의 코랄 연습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어요. 네 명이 같은 음정, 같은 소리 결을 맞추는 기본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이 과정을 통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가 찾아가는 소리가 점점 비슷해졌고,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아레테 사운드’로 이어진 것 같아요. 감정 관리는 아직도 가장 개선해야 할 부분이에요. 제가 말을 많이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까 기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결과가 안 나올 때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팀원들이 중재도 해주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많이 도와줘요. 체력 관리는 녹음이나 투어처럼 반복 연주가 있을 때 특히 신경 쓰는 편이고요.

‘아레테’라는 이름처럼, 팀이 추구하는 최상의 콰르텟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리고 2026년, 다음 챕터를 위한 방향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최상의 콰르텟은 결속력과 지속력이 있는 팀이에요. 존경하는 팀들을 가까이 보면서 느낀 건, 그들의 음악은 단순히 잘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네 명이 마치 가족처럼, 음악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연주자로서의 삶은 20%가 연주 실력이고, 80%가 소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네 명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그걸 오래 이어가는 게 지금 저희가 추구하는 모습이에요. 올해는 유럽에서의 활동 반경을 더 넓히고, 버르토크 전곡 같은 장기 프로젝트나 바로크 보잉을 활용한 고전 레퍼토리도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어요. 새해에도 계속 지켜봐 주시고,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홍예원 기자

전채안(1997~) 예원학교·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12세에 수원시향과 협연 무대를 가지며 두각을 드러냈다. 김남윤·민유경을 사사했으며,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실내악 과정에 재학 중이다.

 

 

다수를 책임지는 ‘하나’가 되며

바이올리니스트 박은중

2024년, 아레테 콰르텟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박은중이 바로 그 주인공. 나중에 합류했을 뿐만 아니라, 2001년생으로 팀 내에서 나이도 가장 어린 막내이다. 그 덕인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팀의 분위기를 밝게 이끄는 힘을 가진 ‘분위기 메이커’ 담당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돌연 콰르텟의 한몫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제2바이올린 주자가 된다. 다른 멤버들이 2019년 창단 이래 6년 이상 맞춰 온 호흡에,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지런히 따라붙은 그는 아레테 콰르텟의 강점에 대해 ‘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당당히 소개할 만큼 어엿한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교 실내악 교수님께서 어느 날 “아레테 콰르텟의 제2바이올린 자리가 공석이라는데, 맡아볼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하셨어요. 평소 실내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 여겨져 바로 승낙했습니다. 며칠을 기다린 후에 성현 형에게 전화가 왔고, 비록 연습이었지만 당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날 이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한동안 아무 얘기가 없더라고요?(웃음) 날아간 기회라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2~3개월 정도 지나고서야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멤버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실내악을 그렇게 좋아하게 됐나요?

어렸을 때는 솔리스트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연습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것에 점점 외로움을 느꼈어요. 이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다니면서 합주를 처음 경험했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 이루어나간다는 성취감이 뿌듯함으로 다가왔고, 연습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채워나가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현악 4중주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했죠.

현악 4중주의 매력은 ‘완벽한 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앙상블의 편성마다 제각각의 멋이 있지만, 현악 4중주에서 가장 이상적인 균형미를 느껴요. 덧붙여, 노부스 콰르텟 선배들도 저의 현악 4중주 사랑에 상당한 영향을 줬습니다. 스무 살 때 관람한 선배들의 공연에서 실내악이라는 장르는 물론, 현악 4중주의 힘에 압도됐거든요. 그 이후로 대학교에서 실내악 수업마다 현악 4중주만을 고집할 정도로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1학년만 현악 4중주가 필수고, 그 후로는 자유로운 편성을 꾸릴 수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다른 공연에서 제1바이올린을 맡기도 했죠. 지금은 제2바이올린으로 활동 중인데, 본인에게 더 잘 맞는 파트는 어느 쪽이라고 느끼나요?

각기 다른 역할과 매력을 지닌 파트입니다. 제1바이올린은 가장 높은 음역에서 멜로디를 이끌고, 제2바이올린은 그 멜로디와 저음 성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죠. 모두 경험해 본 결과 저는 제2바이올린이 더 재밌습니다. 소리를 안정적으로 연결 지으며, 항상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임무잖아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연주를 지속하다 보면 제2바이올린은 ‘지휘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소리를 놓치지 않고 감지해야 하기에 ‘머리에 100개의 안테나를 달아야 하는’ 파트라 하겠습니다.(웃음)

솔리스트에는 큰 욕심이 없나요?

지금은 실내악에, 더 정확하게는 아레테 콰르텟에 집중하고 싶어요. 이 활동을 통해 경험과 공부를 충분히 다지고, 그 이후에 솔리스트를 병행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레테 콰르텟이 올해 가장 크게 이룬 변화는 무엇인가요?

최근 들어 상호 간의 음악을 이해하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른 파트의 소리에 어떤 식으로 호응해야 하는지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인다고 할까요? 1년 사이에 콩쿠르를 두 번씩이나 참가하고, 야나체크와 수크의 곡으로 첫 음반을 준비하며 혹독한 시간을 보낸 결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뒤늦게 합류한 멤버로서 잘 정착하였다는 안정감도 함께 들고요.

‘야나체크 & 수크’ 음반을 통해 가장 크게 남은 것이 있다면?

음반에 수록된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2번은 관객에게나 연주자에게나 익숙한 레퍼토리도 아닐뿐더러, 난도도 높습니다.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고생스러웠지만, 그만큼 도전적인 곡들을 공부했기 때문에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어요. 한 챕터의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랄까요? 저희의 다음 행보는 새로운 장의 시작이 되겠죠.

첫 음반 작업이라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맞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각 파트의 소리가 동등하게 잡히기 때문에, 그 환경에 맞춰 사운드를 조정하는 것부터가 일이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최악은 ‘테이크’였습니다. 무대 연주는 어떻게 되더라도 한 번으로 끝이지만, 반복하며 녹음 테이크를 따는 작업은 끝이 없잖아요? 실수가 나면 무한정 돌고 돌아야 하는 뫼비우스의 띠였죠. 거듭할수록 몸은 지치고, 음악은 동일하게 유지해야 하니 예민함은 갈수록 상승하고… 상상 이상의 고역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싹 얼어붙은 채로 3일씩이나 녹음을 이어가야 했어요. 아직도 작업이 종료된 그날의 홀가분함을 잊지 못합니다.

다음 챕터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곡들에 도전해 본 만큼 더 난해하고 현대적인 레퍼토리에도 도전해 본다거나, 혹은 고전이나 낭만 작품들로 회귀해 보는 쪽도 있겠죠. 그렇다고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궁극적으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며 아레테 콰르텟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최성혁 기자

박은중(2001~) 2024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준우승, 성정음악콩쿠르 최우수상 등 국내 콩쿠르를 석권했다. 김남윤·이지혜·김성숙을 사사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실내악 과정에 재학 중이다.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힘

비올리스트 장윤선

아르텟 콰르텟에서 장윤선의 포지션은 분명하다기보다 유연하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소리를 잇는 비올라처럼, 콰르텟 안에서도 그는 늘 흐름을 살피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레테 콰르텟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일 수 있는 이유는, 눈에 띄지 않게 팀의 중심을 잡아 온 이 비올리스트의 시간과도 닿아 있다.

무대와 간담회를 통해 윤선 씨를 지켜보면서 비올라의 유연한 성격이 연주뿐 아니라 팀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는 그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그렇게 보이기도 하나요?(웃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해요. 음악적으로 팀을 이끄는 채안이는 세밀한 결까지 책임져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민해질 수밖에 없고, 저 역시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만큼 그 지점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현 오빠는 팀의 여러 실무를 담당하며 다른 방식으로 무게를 지고 있고요. 논의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한발 물러나 흐름을 살피고, 나름의 기준에서 팀이 하나로 모일 수 있도록 정리하는 편이에요. 모두가 ‘팀을 위해’ 의견을 내고 있다는 전제가 분명할수록,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수렴되는 순간이 많아요. 그 과정을 신뢰하는 것이 저희가 균형을 유지해 온 방식이지요.

바이올린을 오래 공부해 온 만큼, 비올라 전향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듯 해요. 마음이 기울게 된 순간이 언제인가요?

뭐랄까, 제게 바이올린은 너무 가벼워서 다소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제어해야 하는 악기였어요. 무게가 더 묵직한 비올라를 어깨에 올리는 순간, ‘만났구나!’라는 안정감이 들었거든요. 2019년 9월, 콰르텟 결성과도 시기가 맞물리면서, 비올리스트로 금호영체임버콘서트 오디션을 준비하게 됐는데 준비 기간이 딱 한 달이었어요. 비올라로 방향을 정한 뒤 한 달 만에 오디션을 본 셈이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제 선택을 확신하게 된 계기였달까요.

한달 만에 비올라로 준비해 만장일치 합격이라니, 제대로 임자 만났네요. 무엇 때문에 콰르텟에 매료가 되었을까요?

대학 시절, 성현 오빠를 중심으로 앙상블에 관심 있는 동료들이 현악 앙상블 팀을 구성했어요. 그 후 콰르텟 결성을 진지하게 원하는 연주자들이 모여 지금의 전신이 만들어진 거예요. 전 혼자 오롯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솔로가 부담스러웠어요. 협업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네 명이 함께 무대를 채우는 콰르텟에 사랑을 느낀 것도 당연하고요. 서로의 소리를 믿고 쌓아가다 보면 시너지가 분명히 생기는데, 그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젊은 콰르텟 단원으로서, 팀을 오래 유지하고 건강하게 존속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누구나 그렇듯 처음 가졌던 열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힘듦에 부치는 때가 오죠. 멤버들 사이에서 그런 기색이 느껴지면, 넘기기보다 먼저 말을 꺼내요. 본인이 하지 않으면 끄집어내고, “자, 지금은 다시 붙잡고 가야 할 때야”라며 서로 동기부여를 하기도 하고요.

특별히 좋아하거나, 교과서처럼 삼고 있는 콰르텟의 비올리스트가 있다면요?

에벤 콰르텟의 비올리스트 마리 쉴렘므(1988~)에게 큰 영감을 받아요. 비올라가 맡아야 할 ‘가교’ 역할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해내는 연주자는 드물다고 느껴요. 베이스와 만날 때는 충분히 묵직하고, 바이올린과 어울릴 때는 놀랄 만큼 유연하거든요. 소리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흐름을 정리하죠.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성격 자체가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저희 연주를 듣고 부족한 점을 바로 짚어주되, 밝은 에너지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분이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비올리스트의 모습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팀과는 별개로, 해보고 싶은 솔로 도전이 있나요? 그때는 바이올린, 비올라 중 어떤 악기를 잡고 싶나요?

지금은 팀이 우선이에요. 바이올린은 생각도 안 나요.(웃음) 저는 콰르텟을 하고 싶어서 비올라를 선택했거든요. 그 순서가 제게는 아주 분명하죠. 세컨드가 “비올라도 할 수 있다”고 은근히 노릴 때도 있고요. 아! 앙코르 때, 갑자기 자리 한번 바꿔 앉아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유내리 기자

장윤선(1995~) 예원학교·서울예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중 실내악 연주를 계기로 비올라를 연주하게 됐다. 현재 올리버 빌레 사사로 하노버 국립음대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변하지 않을 모습이라는 ‘믿음’으로

첼리스트 박성현

박성현은 농구부를 하던 어린 시절도, 첼로를 전공하던 학생 때도 ‘팀플레이’가 익숙하던 소년이었다. ‘협업의 DNA’가 태생부터 있었달까. 그뿐이랴. 농구부에선 주장이었고, 학생 시절 여섯 개가 넘는 실내악 팀을 꾸릴 때도 늘 수석이었다. 그가 아레테 콰르텟이라는 그림에서 첼리스트이자 리더라는 퍼즐을 맡게 된 것은 이렇듯 그 자신이 가진 성향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삶에서 콰르텟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쉴 때도 힙합과 현악 4중주만을 듣는다는 자칭 아레테 콰르텟의 ‘샌드백’ 박성현의 이야기다.

신년 호 표지를 장식하게 됐습니다. ‘객석’ 표지 인물이 되는 게 아레테 콰르텟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고요?

첫 호를 장식하게 되어 기쁩니다. 표지는 상징성 혹은 화제성을 보여주잖아요. 콰르텟이라는 장르는 화제가 되기 어렵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 저희 콰르텟이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해낼 것이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다짐에서 표지 인물이 돼 보고 싶었답니다. 정말 뿌듯하네요.

지난해는 밴프 콩쿠르·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데뷔 음반 발매까지, 아레테 콰르텟의 부지런함이 돋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건강 문제도 겪었다고 들었어요. 다사다난한 한 해이기도 했겠습니다.

수술을 받았고, 사실은 의사로부터 무조건 쉬라는 권고를 받기도 했어요. 그래도 팀 활동이라는 것은 멈출 수가 없겠더라고요. 다행히 운명처럼 제 막막함을 덜어줄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선정으로 국내에서 더 오래 머물며 치료받을 수 있다든가 하는…. 난생처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음반 하나는 꼭 내보고 싶다는 간절함도 생겼는데, 그게 첫 음반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밴프 콩쿠르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도전한 것이긴 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제겐 특별한 한 해였고, 이 시간이 고스란히 음악에도 녹아들 테니 가장 음악적인 해기도 했네요.

아레테 콰르텟에 대한 성현 씨의 의지와 애정이 느껴집니다. 음악가로서 본인의 커리어를 모두 이곳에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건가요?

확신을 가지는 성격은 아니에요. 다만 계획을 세우죠. 시작은 순수하게 앙상블 연주를 좋아하는 저였습니다. 혼자보다는 같이 모여서 만드는, 전략을 완성하는 쪽이 더 재밌었거든요. 서로가 함께한다면 즐겁겠다 싶은 멤버들이 모였고, 처음엔 우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로 금호영체임버콘서트 오디션(2019)에 도전했죠. 그다음은 콩쿠르를 염두에 뒀고, 프라하의 봄 콩쿠르 우승을 하고 나서는 조금씩 더 긴 시간에 대한 계획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최근 아레테 콰르텟의 리허설 현장을 봤습니다. 채안 씨가 의견을 발화하는 비중이 높아 보였는데, 평소 음악적 조율은 어떻게 하나요?

리허설은 그간 약속한 연습이 얼마나 잘 시행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인데 퍼스트 바이올린으로서 귀가 밝다 보니, 그 이야기에 빨리 반응해 주려고 하죠. 콰르텟 내에서 서로가 맡은 역할과 일의 비중도 다르고요.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리고 한 발짝씩 양보하는 게 결국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 같아요. 연습할 때는 ‘왜 이 작품을 이렇게 썼을까?’를 가장 많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만이 낼 수 있는 소리로 그 작곡가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저희의 추구 방향입니다.

현재 멤버들이 함께 하노버 음대에서 올리버 빌레(쿠스 콰르텟)에게 배우며 실내악 과정을 밟고 있다고요. 에벤 콰르텟·카살스 콰르텟 등도 실내악 스승이죠. 실내악 선배들로부터 배운 콰르텟의 본질은 무엇이었나요? 동시에, 앞선 세대와 달리 차세대 콰르텟으로서 우리만이 가진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음악의 본질이라는 게 참 주관적인 것 같아요. 저희가 영향을 많이 받은 에벤 콰르텟과 카살스 콰르텟만 해도 정말 달라요. 카살스 콰르텟은 비브라토 없이 화성 자체의 성질을 보여준다면, 에벤 콰르텟은 비브라토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그들만의 표현력을 드러내거든요. 결국 ‘어떻게 표현하느냐’보다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느냐’가 본질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끈끈하게, 우리만의 유기적 소리를 찾게 되고요. 흔히 콰르텟 연주에 ‘내성이 단단하다’는 것은 칭찬이지만,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에선 아닙니다. 내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외성이 얼마나 내성을 이해하고 반응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주든 합주든 중요한 것은 선율, 그러니까 ‘그 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게 들리냐’인 것이죠. ‘복잡한 콰르텟 연주치고는 좋네’가 아니라, 그냥 ‘좋은 음악이다!’라고 느끼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젊은 음악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팀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공과 사를 잘 구분하기 위한 규칙 같은 것이 있나요?

저희에게 공적인 부분은 음악이기 때문에, 규칙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사적인 부분에선 개인의 행동이 팀의 이름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규칙 세 가지를 정했죠. 첫째는 남의 음악에 대해 평가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일방적인 의견 제시보다는 대화를 이어갈 것. 마지막은 판단을 혼자서 하지 않는 것이에요.

팀 내에서 본인의 역할이 ‘샌드백’이라고요?

많이 맞는다는 말은 아니구요.(웃음) 아무래도 제가 맏이니 어떤 타격이 있어도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다는 느낌으로…. 우뚝 선 나무까진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샌드백에 가까운 것 같아요.

청춘은 영원을 꿈꾸고, 그 생명력은 불꽃처럼 삶을 비춥니다. ‘붉은 말의 해’ 병오년을 맞아, ‘아레테 콰르텟’의 불꽃 같은 작품을 뽑는다면? 더불어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아직 멤버들과 얘기한 건 아니지만… 음악의 중심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빈 콘체르트 하우스의 상주 음악가가 되는 날도 오면 좋겠네요. 버르토크의 작품 전곡 연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출신 작곡가인데, 헝가리 국기에도 올해의 상징인 빨간색이 들어있더군요. 그 색의 의미가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라고 하더라고요. 그 의미가 아레테 콰르텟과도 퍽 잘 어울리겠죠?

허서현 기자

박성현(1993~) 선화예고·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콩쿠르 1위, 베를린 라이징스타 그랑프리 콩쿠르 3위 등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아레테 콰르텟의 리더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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