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 악기들의 아슬아슬한 여행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2월 13일 9:00 오전

WORLD HOT GLOBAL ISSUES

 

음악가들의 해외 투어 살펴보기

악기들의 아슬아슬한 여행법

 

악기를 비행기에 싣고, 국경을 넘고, 세관 통과를 위한 정교하고 치밀한 작전기

 

해외여행을 앞두면 설렘과 긴장이 맞물린다. 새로운 풍경과 만남을 기대하는 마음 사이로 각종 서류와 짐, 수화물 규정, 날씨와 교통 같은 현실적인 체크리스트가 불쑥 고개를 든다. 악기와 함께 국경을 넘는 음악가라면 그 긴장은 배가된다. 악기는 단순한 짐이 아니라, 특별한 준비와 배려를 요구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카롤린 비트만(1976~)은 순회공연을 마치고 헬싱키 공항에 섰다. 무대 위에서 환호받던 그의 1782년산 과다니니는 탑승구 앞에서 냉정한 규정과 마주했다. 바이올린 케이스가 기내 반입 허용 크기를 넘는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한 것이다.

눈물 섞인 실랑이 끝에 텅 빈 케이스는 위탁 수화물로 부쳐지고, 얇은 스웨터를 두른 악기만 기내에 오르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렇게 과다니니는 헬싱키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라이프치히까지, 비트만의 품에 안겨 여행했다.

평균 일주일에 한 번꼴로 해외에서 연주하는 비트만이 악기 여행의 요령을 몰랐을 리는 없다. 문제는 날씨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항공 수화물 규정과 현장 관행 사이, 바로 그 회색지대였다. 악기 운반의 세계는 개인 음악가에게도, 오케스트라에게도 복잡하고 알쏭달쏭하다. 이제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하나씩 들여다보자.

 

‘기내 반입’이라는 작은 전쟁

비트만이 악기를 위탁 수화물로 부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화물칸으로 보내진 수화물들이 얼마나 자주 파손·분실되는지를 알고도, 온도·습도·충격에 예민한 데다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고, 역사적 가치를 가진 악기를 위탁 수화물로 보내는 연주자는 없을 테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개다. 케이스를 벗겨서라도 부피를 줄여 기내에 들여오거나, 악기를 위한 추가 좌석을 구매하는 것. 해당 항공편이 전 좌석 매진된 관계로 전자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케이스 유무에 따라 부피가 얼마나 차이가 나겠냐마는, 이게 바로 오랫동안 음악가들을 괴롭혀 온 ‘기내 수화물 규정’의 함정이다.

루프트한자를 비롯한 다수 항공사의 기내 수화물 기준은 명료하다. 55×40×23cm, 세 변 모두 이 범위 안에 들고, 머리 위 수납공간에 들어갈 것. 문제는 바이올린 케이스 규격은 대략 79×25×18cm로, 길이 하나만으로도 이미 규정을 넘어선다. 바이올린이 ‘원칙상’ 기내 반입이 제한되는 이유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에어프랑스 등의 기준은 비교적 유연하다. 세 변의 합이 118cm 이하면 허용된다. 그럼에도 녹록지 않다. 바이올린 케이스는 분명 머리 위 수납공간에 들어가고, 일반 캐리어보다 훨씬 슬림한데도 ‘세 변의 합’이라는 숫자 앞에서 번번이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일부 항공사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바이올린·플루트 같은 소형 악기는 예외적으로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그럼에도 기내 수화물 ‘원칙’은 여전히 악기를 겨누는 날카로운 잣대로 작동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공식 규정과 현장의 간극이다. 규정상 ‘머리 위 수납공간에 들어가야’ 하지만, 운항 기종이 작거나 그날따라 전 좌석이 만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탑승 직전, 악기는 언제든 기내에서 밀려날 수 있다. 공항의 체크인·탑승구 직원이 항공사 직계 크루가 아닌 경우도 많아, 소형 악기 예외 조항보다는 기본 규정을 우선 적용하는 일도 흔하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쾰른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던 한 아코디언 연주자는 체크인 과정에서 악기를 화물칸으로 보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마침 단원 한 명이 갑작스러운 병가로 투어에서 빠지게 되어, 그 빈 좌석을 악기를 위해 쓰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를 관철하기까지 적잖은 실랑이가 수반됐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 만들어낸 씁쓸한 장면이다.

첼로나 트롬본처럼 기내 수화물 기준을 훌쩍 넘는 악기들은 추가 좌석을 구매해 반입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항공사마다 다른 케이스 규격 제한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미리 요청하면 첼로용 안전벨트가 제공되니 이 또한 챙길 것. 다만 한 가지 포기해야 할 것도 있다. 비교적 넓은 다리 공간 때문에 선호되는 비상구 열이다. 비상 상황에서 몸집 큰 악기가 탈출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악기들은 늘 구석진 창가 좌석으로 배정받는다.

 

나무 한 조각이 국경을 넘지 못할 때

항공사의 복잡한 수화물 규정만큼이나 악기, 특히 현악기의 여행을 뒤흔드는 또 하나의 변수는 CITES CoP20협약이다.

CITES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를 규제하는 협약’으로, 많은 현악기에 쓰이는 재료가 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 활 끝에 쓰이는 상아, 고급 활의 핵심 소재인 페르남부쿠 목재, 지판이나 장식에 사용되는 로즈우드가 대표적이다.

이런 재료가 포함된 악기로 국경을 넘을 때는 CITES 허가서나 제조·수입·소유 이력을 증명하는 일종의 ‘악기 여권’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국가별 집행 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서류가 없을 경우 악기 압수나 입국 거부, 벌금과 법적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CITES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전 세계 현악기 연주자들이 긴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에는 페르남부쿠 활과 악기가 CITES 부속서 II에 속해, 최초 수출 시에만 허가가 필요했고 공연이나 투어를 위한 이동은 자유로웠다. 그러나 주요 산지인 브라질이 불법 벌목과 고갈 문제를 이유로 이 목재를 최고 보호 등급으로 격상하자는 제안을 공식 제출하면서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연주·수리·이동만을 위해서도 매번 CITES 허가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CITES CoP20의 결정으로 페르남부쿠는 공연과 투어 목적의 국제 이동은 대체로 허용되는 상태가 유지됐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브라질에서의 최초 수출, 국제 판매와 거래에는 이미 더 엄격한 CITES 허가와 원산지·연대 증빙이 요구되는 방향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CITES나 세관 규정을 위반해 악기가 압수되거나 벌금이 부과될 경우, 많은 악기 보험이 이를 면책 사유로 규정한다. 악기를 잃는 것도 모자라, 금전적 보호망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규제의 변화는 연주자라면 반드시 예의주시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투어, 그 뒤에서 생긴 일

자, 이제 백여 개 악기가 함께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투어로 확장해 보자. 수십, 수백 개의 악기가 국경을 넘을 때 이들은 더 이상 개개인의 수화물이 아니라 임시 수출입 물품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ATA나 CPD 등의 임시 수입 통관 증서(Carnet), 즉 악기들의 ‘집단 여권’이다. 이 서류에는 모든 악기의 목록과 재질, 제작 연대, 가치가 기록되고,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세관 도장을 받으며 이동한다. “연주하고 그대로 다시 가져온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다.

이 모든 절차가 얼마나 엄격한지는 작은 해프닝에서도 드러난다. 한국 투어를 마친 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기념품으로 산 마른 멸치를 악기 화물 케이스에 넣었다가 통관에서 적발돼 그의 소중한 기념품은 전부 폐기되고 말았다.

이 화물 케이스들은 한 나라에 들어온 모습 ‘그대로’ 출국해야 한다. 그 어떠한 음식물, 술과 담배, 가연성 물질, 의약품이나 배터리도 들어가면 안 된다. 악기 외의 물건이 들어가는 순간 전체 화물이 검사 대상이 되고 통관이 지연돼 최악의 경우, 투어 일정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 내 투어라면 비행기보다 트럭이 선호된다. 유럽연합 관세권 안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화물도 국경에서 별도의 세관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악기 트럭은 일반 차량처럼 국경을 넘는다. 덕분에 악기들은 항공 운송처럼 매번 하역·보안·통관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고, 온도 조절이 가능한 전용 트럭 안에서 다음 공연장 문까지 안락하게 이동한다. 다만 언제나 최단 거리로 갈 수는 없다. 스위스는 EU 관세권 밖이어서 이 나라를 통과하면 통관 절차가 따르기 때문에, 몇 시간 돌아가더라도 우회하는 게 상책이다. 유럽 대륙에서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처럼 바다를 건너야 할 때는 항공이 유일한 선택지다. 정기 노선의 기종은 대개 너무 작아, 주로 이 악기들만을 위한 전세기가 동원된다.

음악가와 오케스트라의 투어는 음악 여행을 넘어, 악기와 서류가 함께 움직이는 정교한 국제 작전이다. 무대 위의 화음 뒤에는, 항공기와 트럭, 통관 증서와 도장이 쉼 없이 리듬을 맞추고 있다.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체코 필하모닉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