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3
환상의 파트너
20세기 음악을 놓고, 다시 만나는 듀오의 밀도 높은 해석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 &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

이자벨 파우스트와 알렉산더 멜니코프는 오늘날 가장 신뢰받는 듀오 가운데 하나다. 두 사람은 단순히 오래 함께 연주해온 파트너가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질문의 방향까지 공유하는 동료에 가깝다. 2012년 듀오 내한 이후 약 14년 만에 성사되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이들은 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쇤베르크·부소니의 20세기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파우스트는 이번 프로그램의 구성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프로코피예프의 ‘다섯 개의 멜로디’는 매우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치밀한 대위법을 엿볼 수 있죠. 반면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는 훨씬 더 격렬하고 비극적입니다. 부소니 소나타 2번 역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멜니코프와 저는 이 곡을 가능한 한 빨리 녹음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흐의 영향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이 훌륭한 작품은 안타깝게도 공연장에서 자주 접하기 쉽지 않거든요. 쇤베르크와 부소니는 음악적으로도 잘 어울립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가까운 동료였고, 서로의 음악에 대해 활발히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죠. 쇤베르크의 환상곡 역시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입니다. 흥미롭고, 다채로우며, 쉽게 접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이 가운데 누군가는 새로운 음악, 그리고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작품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
시간을 해석하는, 파우스트
독일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최초로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1993)한 이자벨 파우스트는 종종 ‘안네 조피 무터 이후 가장 주목받는 독일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다. 이에 앞서 1987년에는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최연소 참가자로 우승했다. 25세가 되던 1997년에는 피아니스트 에바 쿠픽과 함께 버르토크의 소나타를 담은 데뷔 음반을 발표했으며, 이 음반으로 그라모폰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수상 경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음반(DG)으로 디아파종 황금상(2010)을, 이번 내한 공연을 함께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Harmonia Mundi)으로 그라모폰 ‘올해의 챔버 뮤직’ 부문(2010)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와 함께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이 그라모폰 ‘올해의 음반’에 선정되었다.
많은 연주자가 특정 시대, 예컨대 낭만주의 작품 해석에 강점을 보이는 데 비해 파우스트는 바흐에서 모차르트, 베토벤에서 버르토크에 이르기까지 클래식 음악사 전반에 걸쳐 두루 인정받는 연주자다. 이러한 폭넓은 스펙트럼의 근간에는 악보와 악기, 그리고 작곡가의 시대적 맥락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태도가 있다.
확신을 연주하는, 멜니코프

알렉산더 멜니코프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레프 나우모프(1925~2005)를 사사했다. 이후 슈만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97년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의 협연으로 첫 내한한 이후, 2009년에는 독주 무대로, 2017년에는 이자벨 파우스트·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와의 현악 3중주 무대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의 연주를 두고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재래’라는 찬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리흐테르(1915~1997)에게 재능을 인정받았고, 1994년 병환 중이던 리흐테르를 대신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이번 내한 프로그램에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데,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6·7·9번은 모두 리흐테르가 초연한 작품들이다.
멜니코프는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에 대한 탐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시대적 맥락에 맞는 네 대의 서로 다른 악기(1800년대 알로이스 그라프·에라르·뵈젠도르퍼 등)로 녹음해 한 장의 음반에 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와 함께, 라흐마니노프가 살았던 세나르 빌라에서 그의 피아노로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8과 ‘로망스’를 녹음해 호평을 받았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를 비롯해 수많은 악기와 인연을 맺어온 그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작곡가–피아노 조합이 있다면 무엇일까.
“짧은 인터뷰에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작곡가의 음악적 언어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작품에는 5옥타브 초기 피아노가 이상적이고, 베토벤은 그에게 실제로 주어졌던 것보다 한 세대 이전의 악기를 요구하곤 했습니다. 어쨌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세나르 빌라에서 그의 피아노로 녹음했을 때는 마치 기적을 경험하는 듯했고, 제 삶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등한 두 목소리, 20년의 파트너십
이번 내한 프로그램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파우스트와 멜니코프의 음악적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업으로는 단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음반(2009)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연주는 흔히 접하는 바이올린 선율 중심의 해석과 달리, 두 악기의 동등성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베토벤 소나타에서 두 악기의 ‘주도권’을 굳이 따져본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소나타는 분명히 피아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가 아니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니까요. 다만 모차르트의 소나타에서는 이미 바이올린 파트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이 흐름을 이어받았죠. 소나타 5번부터는 바이올린이 이 조합에서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1악장은 바이올린의 주제로 문을 열고, ‘크로이처’ 소나타에서는 확실히 피아노와 진검승부를 벌이죠. 그렇다고 해서 어떤 순간에도 피아노가 배경으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피아노는 모든 요소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바이올린은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하며, 피아노 스코어 ‘안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발견해야 합니다.”(파우스트)
“제 생각에는 어떤 종류의 ‘우세’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소나타라는 장르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베토벤 소나타는 여전히 대체로 피아노포르테 소나타였지만, 여기에 바이올린의 지정된 선율 오블리가토가 더해지는 형식이었죠. 그러나 모차르트와 베토벤 후기 작품에 이르러 이 관계는 빠르고 분명하게 변화합니다. 주도권의 문제는 오늘날에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멜니코프)
멜니코프는 한 인터뷰에서 파우스트의 바흐 연주를 듣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곧바로 협업을 제안했고, 그 선택은 20여 년에 걸친 동행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두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처럼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협업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저를 놀라게 하고, 감동을 줍니다. 종종 그녀가 초능력자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멜니코프)
“우리는 ‘호기심’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늘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향해 촉각을 뻗고, 그것이 우리 듀오를 생기 있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렉산더는 정말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예요. 그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제게 특급 행운입니다.”(파우스트)
서로를 향한 이 신뢰와 호기심이야말로, 이들이 단순한 듀오를 넘어 ‘환상의 파트너’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이자벨 파우스트(1972~) 데네스 지그몬디·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하고, 레오폴드 모차르트 콩쿠르(1987)와 파가니니 콩쿠르(1993)에서 우승했다. 지휘자 조반니 안토니니·클라우디오 아바도 등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추었으며, 시대연주부터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 초연을 통해 현대 음악을 확산하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알렉산더 멜니코프(1973~)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레프 나우모프를 사사했으며, 슈만 콩쿠르(1989),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91)에서 입상하며 주목받았다. 역사적 고증에 기반한 연주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무지카 에테르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등과 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이자벨 파우스트·알렉산더 멜니코프 듀오 리사이틀
2월 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코피예프 ‘다섯 개의 멜로디’ Op.35, 쇼스타코비치 소나타 G장조 Op.134, 쇤베르크 환상곡 Op.47, 부소니 소나타 2번 E장조 Op.36a
테오도르 쿠렌치스/유토피아 오케스트라(협연 알렉산더 멜니코프)
11월 18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번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