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2월 23일 9: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모두 휘발되고 남는 진정한 주인공

문화체육관광부 신년음악회

1월 7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올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문이 처음 열린 1월 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신년음악회는 꽃장식이 만발한 무대만큼 내용도 화려했다. 사회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표어를 실천하는 무대”였다. 클래식 음악·국악·창작곡, 드라마·영화 OST가 한데 모였고, 7명의 협연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첫 곡 최우정의 ‘수제천 리사운즈(Resounds)’는 하늘과 같이 오래 살라는 기원을 담아낸 전통음악 ‘수제천’에서 착안한 곡이다. 명상과도 같던 현악기는 점진적인 확장을 지속하며 용솟음쳤다. 숭고함을 불러일으킨 오프닝이었다.

이어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Op.28을 협연했다. 리듬을 유연하게 밀고 당기면서도 균형감을 유지하였다. 어려운 기교도 개의치 않는 호연을 이어갔으며, 오케스트라와의 합도 안정적이었다. 다음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이혁·이효 형제로, 연주한 작품은 바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BWV 1062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연주였지만, 합주로서의 시너지는 미약했다.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선곡의 문제로 보였다.

다음으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OST가 이어지며 협연자로 소리꾼 김수인, 베이스바리톤 길병민이 등장했다. 소리꾼 특성상 마이크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두 협연자의 마이크 밸런스가 흔들린 탓에 집중이 어려웠다. 협연 무대가 지난 후에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가 관현악 연주로 이어졌다.

공연의 후반부는 합창이 장식했다. 국립합창단과 청년교육단원의 연합이었다. 윤학준의 가곡 ‘나 하나 꽃 피어’가 시작되자 조명이 사그라들고 무대 전체가 프로젝션맵핑으로 채워졌다. 가사의 내용을 따라 풀밭이 점점 붉은 꽃으로 뒤덮이는 연출은 기억에 남을 광경이었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우효원의 ‘아 대한민국!-건곤감리’. 태극기에 그려진 4괘의 정신을 음악으로 승화한 작품으로, 이날은 4개 악장을 응축한 편곡이 올랐다. 장중한 관현악과 합창에 국악인 고석진의 북소리가 더해지며 관객들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앙코르에는 김수인·길병민이 다시 등장하여 한태수의 ‘아름다운 나라’를 연주했다. 예상 범위의 선곡이었으나, 만족스러운 마무리였다.

많은 것이 차려진 공연은 호사지만, 그만큼 빠르게 휘발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기억의 대상은 명확하다. 바로 무대를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갖가지 장르의 연주는 물론 수많은 협연자와 흐트러짐 없는 합을 이룬, 지휘자 홍석원과 KBS교향악단이다.

최성혁 기자 사진 예술의전당

 

 

금호의 문을 연 목소리

바리톤 김태한 리사이틀

1월 8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바리톤 김태한(2000~)의 첫 연주. 마이크를 들고나와 짧은 인사를 건넨 후 연주를 시작한 그는 총 14개의 오페라 아리아를 엮어 자신의 역량을 드러냈다.

젊은 성악가의 풋풋함과 재능, 그리고 열정이 모두 녹아 있는 현장이었다. 김태한은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의 아리아를 골고루 선보이며 자신이 쌓아온, 또 앞으로 쌓아갈 레퍼토리의 깊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대를 대하는 태도 또한 의연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연주는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의 아리아로 시작됐다. 프랑크푸르트 오퍼의 솔리스트 활동에 걸맞은 발성과 연기였지만, “요나스 카우프만처럼 믿고 듣는 가수가 되겠다”던 포부와 달리 리사이틀홀 규모의 아리아 갈라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언어의 미세한 억양을 따라 섬세하게 조절된 감정, 잘 닦인 저음에서 길어 올려지는 울림은 감상에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1부 마지막에 선보인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중 ‘나의 열망, 나의 집념’은 의심 없이 완벽한 해석이었다.

연주에 함께한 한하윤은 김태한의 공연에 여러 차례 동행하며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다. 기존의 오케스트라가 담아내야 하는 음향을 피아노 한 대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한하윤은 재치 있는 음색 변화로 눈길을 끌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구간들을 환기하며, 노래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더하는 역할이었다.

2부는 비극적 선율을 품은 이탈리아 아리아로 시작됐다. 푸치니의 ‘에드가’와 ‘요정빌리’,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로 드러낸 표현력은 그 규모가 1부에 비해 훨씬 커졌다. 그 에너지는 후반부 프랑스 오페라들에도 이어졌다. 구노의 ‘꿈을 지배하는 여왕, 맙’(로미오와 줄리엣)과 ‘떠나기 전에’(파우스트), 앙브루아즈 토마의 ‘오 와인이여, 슬픔을 거두어 가다오’(햄릿), 마스네의 ‘덧없는 환영’(에로디아드)을 부르며, 김태한의 첫 리사이틀이 마무리 됐다.

극적인 정서에 심취한 그의 모습에서,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베르디 혹은 바그너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을 날이 기대됐다. 그 기대감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앙코르는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였다.

재능과 자신감, 그리고 음악 안에서의 균형을 찾아내는 성실을 갖춘 성악가의 목소리가 올 한 해 금호아트홀을 채워나가게 된다. 상주음악가 김태한의 올해 공연 주제는 ‘페르소나’다. 다음 공연은 4월 23일, 소프라노 김효영·테너 김성호와 함께 선보이는 ‘페르소나-관계’로 이어진다.

허서현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영화의 명성일까, 무대의 효과일까?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인 필름콘서트’

1월 17·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영화 전편을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동시에,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라이브 OST 연주를 선보이는 공연 형식인 필름 콘서트. 이 장르는 2020년대 초반부터 꿈틀거리며, 유럽·미국·아시아 전역에 활개를 쳤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차례 음악상을 수상한 하워드 쇼어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와 더불어, 국내 필름 콘서트 열풍을 견인한 대표적인 공연이다.

J.R.R 톨킨이 창조한 ‘중간계’를 배경으로, 절대 반지를 둘러싼 선과 악의 최종 대결을 그린 대서사를 거대한 실사 연주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흥 영이 지휘하는 100명의 오케스트라(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220명의 대규모 합창단(위너오페라합창단·브릴란떼어린이합창단)이 함께하는 무대 역시 ‘대작’의 마지막 종결 편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스케일이었다.(17일 관람)

그러나 공연이 진행되며 몇몇 장면 속, 음악과 영화의 결합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 간달프가 피핀을 태우고, 곤도르의 미나스티리스로 달리는 명장면에서 연주를 견인해야 할 금관은 눈에 띄게 처진 템포로 긴장을 받쳐주지 못했고, 음형의 흐트러짐이 감지되었다. 아르웬을 비롯한 엘프들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솔리스트 그레이스 데이비슨과 대규모 합창은 장엄하고 신비한 선율을 통해 영화 속 엘프의 초월적 이미지를 구축해야 했으나, 소리의 밀도와 균형은 다소 의아했다. 한편, 평화로움과 신비감을 더하는 팬플룻과 목관들이 안정적으로 작품을 뒷받침하며 이입을 도왔고, 현악기 역시 명료한 음색을 유지하며, 초반보다 안정적인 연주로 전체 사운드를 지탱했다.

곤도르 평원에서 펼쳐지는 펠레노르 대전투 장면은 긴박하고 압도적인 전쟁 장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나즈굴과 오르크가 등장할 때마다 긴장되고 불안한 선율을 펼쳐보였고, 아라곤과 동료들이 유령 해적들을 이끌고 와 전세를 뒤집는 장면에서는 몇몇 파트들의 거친 흐름을 제외하고는, 점진적으로 승리로 전환되며 설득력 있게 뒷받침했다.

모르도르의 불길 속으로 절대 반지가 던져지며 프로도의 긴 여정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음악은 서사의 종지과 호흡을 맞추며 조용한 종결을 끝맺었다. 그래도 이 공연이 품은 매력은 분명했다. 추억과 기억에 자리 잡은 영화의 서사와 음악을 동시에 만나게 하여, 관객은 다시 한 번 중간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기억에 남을 특별한 체험을 영화로 한번, 그리고 ‘음악’과 함께 다시 한번 만든 순간이었다.

유내리 기자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퍼펫으로 만든 신들의 세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월 7일~3월 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오페라극장의 커다란 스크린 위로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낮게 깔린 산과 들판,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사이로 덜컹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섞인다. 치히로와 부모 역의 배우들은 몸짓으로 차의 흔들림을 표현한다. 작품은 첫 장면부터 미야자키 하야오(1941~)의 동명 애니메이션(2001) 오프닝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며 객석의 기대감을 끌어올린다.(1월 8일 관람)

이야기는 원작과 동일하게 전개된다. 이사 도중 길을 잘못 든 가족이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유바바의 음식을 먹은 부모는 돼지로 변한다. 홀로 남겨진 치히로는 부모를 되찾기 위해 온천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하쿠, 가마 할아범, 가오나시, 오물신 등 낯선 존재들과 마주하며 단단해지는 치히로의 여정도 무대 위에 충실히 재현된다.

무대는 이 여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온천탕은 2층 규모의 목재 구조물로 세워지고, 360도로 회전하는 세트는 음식점에서 온천탕으로, 다시 유바바의 집무실로 이어지며 시공간을 확장한다. 치히로의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과 유바바가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는 지브리 그림체를 닮은 돼지 탈과 유바바의 이목구비 탈이 등장하는데, 우스꽝스럽지 않으면서도 환상을 현실로 끌어오는 데 설득력이 있다.

공연의 중심축은 퍼펫이다. ‘애니메이션 속 존재들을 현실 무대에 어떻게 소환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연출진은 퍼펫을 선택했다. 무대에는 50체가 넘는 퍼펫이 등장하는데, 가마 할아범의 여섯 팔은 여러 퍼펫티어가 호흡을 맞춰 움직이고, 가오나시는 장면에 따라 1명에서 12명이 함께 연기한다. 거대해진 가오나시가 이동하는 순간에는 섬뜩함과 압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지브리 작품의 정서를 관통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이 모든 장면을 감싼다. 11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는 배우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템포를 조율하고, 감정의 밀도를 세밀하게 조정한다. 지브리 팬이라면 익숙하게 느껴질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선율은 향수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면의 리듬과 감정을 이끄는 서사적 장치 역할을 한다.

원작이 동화적 성장 서사를 품고 있다면, 공연은 그 서사를 다른 결에서 비춘다. 치히로가 겪는 노동, 규율, 명명(‘센’이라는 새로운 이름), 상실과 회복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타자와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무대는 동심을 소환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환상은 무대 위에서 물리적 존재를 부여받고, 음악은 감정에 힘을 더하며, 배우들은 현실과 상상의 틈을 메운다.

홍예원 기자 사진 토호/TOHO Theatrical Dept.

 


 

데이비드 이/서울시향 협연 루돌프 부흐빈더

새해에도 변치 않는 소리의 미

1월 9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지난 1월, 전국 곳곳에서 신년 음악회를 열며 새해를 맞는 기쁨을 나눴다. 특히 음악 단체와 음악가에게 신년 음악회는 새해의 다짐이자 포부의 공표이기도 하다. 서울시향은 이미 지난 연말에 새해 공연 계획을 모두 공개했고, 올해도 변함없이 가공할 일정을 소화해 낼 것이다.

그런데 첫 연주회에서부터 계획 변경이 생겼다.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중증 독감으로 불가피하게 내한할 수 없게 되어, 서울시향 부지휘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이가 포디엄에 오르게 되었다. 프로그램도 전반부는 루돌프 부흐빈더가 협연하기로 예정된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은 유지하면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8번과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를 연주하기로 한 후반부는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으로 대체되었다.

시즌 첫 공연부터 적지 않은 변경은 단체나 감상자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대규모 편성의 작품을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못했던 데이비드 이가 생상스의 대작으로부터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는 충분히 흥미와 관심을 돋우는 지점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반부는 부흐빈더가 협연하는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부흐빈더의 특기는 베토벤을 중심으로 한 18·19세기 독일-오스트리아 음악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 거슈윈의 협주곡이야말로 수십 년간 연주해 온 그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이 곡은 재즈의 뉘앙스를 강조할지, 혹은 고전의 측면에 집중할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연주될 수 있다. 서울시향이 반음계로 움직이는 미묘한 음향과 현악기의 신비로운 텍스처를 강조했다면, 부흐빈더는 전통에 얽매지 않는 자유로운 터치로 가벼운 음향을 들려주었다. 이 둘의 표현은 간혹 이질적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그다지 일탈하지 않고 음악의 구조와 흐름을 중심에 공유하여 하나의 앙상블로 공존하게 했다. 이런 지향점은 극적 표현에 생동감이 부족하게 들리는 부작용도 있었는데, 오히려 빅밴드의 덤덤한 전개에 가깝게 들리는 측면도 있다.

후반부를 채운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또한 프랑스 특유의 음향적 텍스처를 중시할지 혹은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드라마를 강조할지에 따라 다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다면체적 작품이다. 데이비드 이와 서울시향은 전반부에서 들려준 기조의 연장선으로 전자에 가까운 해석을 선택했다. 첫 악장의 서주를 시작하면서부터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음향으로 그가 꿈꾸었던 생상스의 문을 열었다. 대단원에서도 금관이 주도권을 독점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는 듯한 위치 설정은 극적 감흥을 억제했지만, 통일성 있는 전개의 측면에서 설득력을 갖췄다. 이러한 특징은 1악장 후반부에서 현악이 들려준 여유롭고 섬세하면서도 충분한 음량과 그 중후한 존재감의 밑바탕이 되었다. 2악장은 현악의 주도로 시작한 후 후반부에 금관 앙상블이 제 역할을 해주면서 드라마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서두르지 않고 환상적인 텍스처를 이어가면서, 드물지 않게 연주되는 곡에서 흔치 않은 소리를 들려준 연주로 기억될 것이다.

앙코르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여 신년의 정취를 되새기며 서울시향의 올해 첫 연주회가 마무리되었다.

※ 서울시향은 2월 12·13일 예술의전당 콘서홀에서 뤼도비크 모를로 지휘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협연 니콜라이 루간스키)을 선보인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데이비드 이/강남심포니 & 로베르토 아바도/국립심포니

별미가 준 호사였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2025년 12월 30일 강남심포니 & 1월 11일 국립심포니(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난해, 강남심포니의 공연을 다섯 번이나 찾아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시향·KBS교향악단·국립심포니의 공연 못지않게 자주 간 것이다. 세 악단을 제외하면 경기필하모닉의 서울 공연을 챙겼고, 두 번의 공연을 관람했다.

강남심포니의 알찬 2025년

시립도 아닌, 구립 오케스트라인 강남심포니 공연을 부지런히 방문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김도현·이진상·신창용 등 내로라하는 신진과 중견 피아니스트를 만날 수 있었으며, 이지윤(바이올린)·김두민(첼로)·조성현(플루트) 등 각 악기를 대표하는 한국 연주자들과의 협연 무대를 볼 수 있어서였다. 둘째는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말러 교향곡 4번까지 대편성 작품들 때문이었다. 즉 1부는 한국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랑데부를, 2부는 전통 관현악을 선사하는 지휘자 데이비드 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년 11월 강남심포니의 정기연주회 후에는 김선욱/경기필과 비교하며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필자와 같이 199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은 강남심포니와 경기필하모닉의 설립·발전사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두 단체 모두 1997년 각각 서현석과 최선용이 만들어 민간으로 창단됐고, 한쪽은 강남문화재단의 산하단체가, 하나는 경기도 산하의 도립이 되었다. 필자 또래의 대학생들이 다수 참여했던 당시 모습을 생각하면, 지방자치단체로의 성공적 전환과 안착의 롤모델 같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비슷한 연배의 두 남성 지휘자가 상임으로 있어, 단체의 비교는 필연적인데 김선욱은 지난해 12월, 2년 만에 경기필 지휘자 자리를 그만두었다.

마무리 매듭이 아쉬웠다

지난 12월 30일, 데이비드 이/강남심포니의 2025년 마지막 연주회 1부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이었다. 북구의 매섭고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장대함이나 황량함, 그리고 피어오르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끝없는 신비는 오간 데 없는 맥없음으로 일관한 느슨한 연주였다.

2부는 국립합창단과 함께 한 모차르트 ‘레퀴엠’. 데이비드 이는 자신의 색깔을 자제하고 무대 위의 성악가나 연주자를 돋보이게 해주려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불필요하고 과대한 동작은 삼가면서, 협연자와의 합에 중접을 두며 전체의 소리를 조감한 블렌딩이 뛰어났다. 데이비드 이는 열흘 만에 서울시향 신년음악회(1.9)를 이끌었다. 독감으로 인해 한국에 오지 못한 얍 판 츠베덴을 대신해 투입된 것이었다.

국립심포니, 새롭게 시작될 시간 앞에서

로베르토 아바도가 작년 3월, 국립심포니와 함께 이룬 베르디 ‘레퀴엠’의 기억이 생생하다. 강렬함과 탁월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 호연으로, 아바도의 이름을 단단히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2025년 국립심포니의 공연 중 최고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 같았다. 국내 교향악단의 고질적인 금관 실수도 없었고, 외국인 단원 없이 순수 국내 단원들만으로 훌륭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똑같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임에도,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건 지휘자의 영향이 커 보인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역량을 드러냈던 아바도가 국립심포니의 제8대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명문 음악가 출신으로, 현재 볼로냐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기도 하다.

지난 1월 11일, 아바도는 취임 연주회를 이탈리아 레퍼토리로 장식했다. 국립심포니의 뿌리와 정체성은 콘서트·오페라·발레를 모두 다루는 극장 오케스트라다. 아바도는 레스피기의 ‘환상적인 장난감 가게’, 베르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3막 중 발레곡 ‘사계’,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으로 본인의 장점을 확연히 드러냈다.

데이비드 이에게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어두움(강남심포니)이나 미국의 재즈 그루브, 앙코르에서의 빈의 왈츠 기질(서울시향)이 부족했다면, 아바도와 국립심포니는 이탈리아의 토속성, 파리의 발레 감수성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악단만큼 발휘하긴 역부족이었다. 비유럽 오케스트라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같은 보편적 음악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도달했지만, 자세하게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인 특유의 DNA까지 일치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런 혼종과 접목은 지경을 확대하고 다양성을 키운다. 무엇보다 한국 관객에겐 매일 세계의 각종 별미를 즐길 수 있는 호사를 제공하니, 행복한 비명이며 감사한 문화생활이 아닐 수 없다.

성용원(작곡가) 사진 강남심포니·국립심포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피아노 독주회

‘조연’을 자처하는 아름다운 소곡(프렐류드)들을 엮은 밤

1월 13·15·18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음악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중요하고, 그 관계는 오래될수록 빛을 발한다. 피아노 음악 애호가라면 2003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56~)의 내한 공연 당시 얻었던 좋지 않은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당시 그는 녹음과 촬영을 향한 결벽에 가까운 통제를 청중에게 설명하려 했고, 그 모습은 다소 오만하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갈등은 시간이 해결했다. 여전히 한 치의 융통성도 없이 객석을 통제하려 하지만, 어느덧 그의 자세에 익숙해진 청중은 그 까다로움을 완벽주의로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백발의 신령 같은 지메르만이 손수 만든 듯한 악보 뭉치를 들고 나와 들려주는 연주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에서 해방된 지메르만의 독주 무대가 청중의 집중력을 향상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평이 나오는 바, 다양한 작곡가의 전주곡 스물네 곡이 펼쳐진 이번 내한 공연(필자는 15일 관람)에서는 그가 세밀하게 설계한 작품 간의 ‘휴지’(Pause)를 운용하는 방법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겨울 공연답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기침 소리가 이어졌지만, 12곡씩 이어진 전·후반부의 연주가 마치 거대한 하나의 작품처럼 심리적 연결고리를 이어가는 모습에서, 지메르만의 선곡 고민이 얼마나 창의적인지 새삼 실감했다. 그의 탁월한 심미안 덕분에 드뷔시의 전주곡들이 공연의 시작부에, 거슈윈의 짧은 전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유명한 전주곡 c#단조 Op.3이 프로그램의 대미에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지 처음 느꼈다.

쇼팽과 드뷔시의 주요 작품들을 포함해 폴란드 작곡가 시마노프스키(1882~1937)와 그라지나 바체비치(1909~1969)가 요긴하게 곁들여진 ‘프렐류드의 밤’은 철저히 지메르만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오마카세를 연상시켰다. 음향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악기를 통해 피아노 음의 조합을 근원부터 만들어내는 연주자답게 원근법의 치밀한 묘사가 무엇보다 두드러졌다.

첫 곡인 드뷔시의 ‘가라앉은 대성당’, 바흐 파르티타 1번 BWV825 중 전주곡, 쇼팽 전주곡 Op.28-4 등은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양한 음역이 서로 다른 색과 울림으로 독자적인 입체감을 형성했다. 깊은 비애는 언제나 탁월한 해석을 보여주는 시마노프스키와 바체비치의 작품들에서 나왔다. 시마노프스키 전주곡 Op.1-2·7은 내면 깊숙한 슬픔을 드러냈고, 바체비치의 전주곡과 푸가 f단조는 결코 억누르지 못하는 충동과 비장미를 동시에 표현했다.

새겨 누르는 듯한 터치로 깊은 감성을 나타낸 전주곡들도 흥미로웠는데, 쇼팽 전주곡 Op.28-11·17은 우아함의 극치였고, 세자르 프랑크의 Op.18 중 전주곡은 오르간의 음향을 연상시키듯 선율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슬픔들이 무대 위로 둥실 떠올랐다. 지메르만 특유의 절제된 테크닉은 이번에도 유효적절하게 사용되었다. 거슈윈 전주곡 3번, 쇼팽 전주곡 Op.28-16과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Op.3-2 등에서 지메르만은 화려함보다는 소품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의 통일을 유지하는데 더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이번 아시아 투어에서 그는 전주곡 외에도 슈베르트 즉흥곡을 포함해 60여 곡의 레퍼토리를 준비해 공연마다 자유롭게 배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조연’을 자처하는 아름다운 작은 곡들을 이리저리 조망하며, 결국 자신을 또 다른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70세 거장에게 특별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주영(서울사이버대 피아노과 교수) 사진 마스트미디어/Rowan Lee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