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
낯선 음계 위, 남겨둔 질문
‘동유럽’ 작품을 중심에 두고, 기존 ‘공연’과 ‘연주’에 관한 새 고민을 품다

어떤 무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202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이후, 최송하의 연주는 더 이상 ‘증명’의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무대는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매순간 질문이 생성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 소리는 어디까지 닿는가. 그는 이제 연주를 통해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들 속에 스스로를 오래 머무르게 한다.
콩쿠르 이후, 최송하를 향한 청중의 기대 역시 높아졌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같은 선 위에서 충돌한다. 그러나 그는 긴장을 회피하지 않으며, 오히려 균열 속에서 다음 방향을 발견한다.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자유, 그리고 무대 위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넓어지는 감각이 그의 연주를 새로운 곳으로 이끈다.
오는 3월, 최송하는 또 하나의 리사이틀을 펼친다. 폴란드의 시마노프스키와 비에니아프스키, 헝가리의 베체이와 버르토크 등 동유럽 색채로 직조된 이번 무대는 완결된 해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남기는 여정이 될 것이다. 프로그램 속에 숨겨진 비밀을 함께 따라가보자.
익숙한 공식에서 벗어나며
연주자로서 기존 리사이틀의 공식 가운데 가장 문제적이라고 느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그간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소나타를 중심에 두고, 마지막에 비르투오소 곡을 배치하는 형식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 결과 청중은 소수의 작곡가가 만들어낸 제한적인 청각 세계에 머무르게 되는 문제가 생겼죠. 저는 연주자가 청중의 감각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며 특정 지역과 그 지역의 음악적 언어에 집중해 하나의 흐름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더 흥미롭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연주에서는 동유럽의 주요 지역인 폴란드와 헝가리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네요.
전통과 환경, 작곡가의 개성, 그리고 바이올린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를 하나의 서사로 묶고 싶었어요. 특정 스타일을 강조하기보다는, 형식과 규모가 다른 작품들이 동유럽 특유의 색채 팔레트 속에서 각자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연출했습니다.
동유럽 레퍼토리를 하나의 맥락으로 묶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한 기준이 있었나요?
폴란드와 헝가리 곡의 표면적인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전통과 언어의 공통성과 이질성 속에서, 각 작곡가가 바이올린을 어떻게 다뤘는가였죠. 동유럽 음악이 서유럽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색으로 단순화하며 묶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화, 야성적인 정서가 담긴 춤, 테마와 변주, 농축된 감정이 배어 있는 왈츠, 밀도 높은 소나타를 통해 이 복합적인 민족적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피아니스트 박영성과는 어떤 인연으로 이번 리사이틀을 함께하게 됐나요?
2021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리사이틀을 두 차례 함께하며, 무대 위에서 서로의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경험했습니다. 연주 중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즉흥적인 순간들이 공연에 생동감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와는 그런 순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죠.
소리로 짜인 동유럽 지도
시마노프스키의 ‘신화’ ‘녹턴과 타란텔라’는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지만,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두 곡의 성격은 확연히 달라요. ‘신화’ 중 ‘드리아데스와 판’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 즉 신화라는 세계를 소리로 그리는 태도가 중요해요. 여러 장면과 인물을 묘사하는 음향적 상상력, 특수한 음색과 색채가 핵심이 됩니다. 반면 ‘녹턴과 타란텔라’에서는 서사적 묘사와 에너지 넘치는 리듬이 공존합니다. 녹턴이 밤의 정서를 만들어낸다면, 타란텔라에서는 춤곡 특유의 몰입감이 중심이 돼요.
비에니아프스키의 변주곡은 종종 ‘비르투오소 레퍼토리’로 소비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를 넘어 이 작품에서 특히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음악적 층위는 무엇이었나요?
맞습니다. 비르투오소 레퍼토리로만 소비되는 점이 늘 아쉬웠죠. 선율에 밴 폴란드 정서 때문에, 열 살 무렵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곡입니다. 이번에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곡의 핵심은 특정 인터벌과 선율 진행이 만들어내는 힘, 다시 말해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이라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난도 높은 기교는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요.
동유럽 음악은 감정 노출 방식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복합적인 감정이 겹겹이 숨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노스텔지어, 희망,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고통 같은 인간 보편의 감성이 중첩되어 있죠. 자연스럽게 스며든 민속적 요소들이 이 감정의 결을 만듭니다.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놓인 역사적 맥락과 민속적 리듬을 공부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기술적으로는 냉정한 통제를 유지하되, 정서적으로는 그 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방식이랄까요?
퐁퐁 솟아나는 음악의 다음 좌표
영국에 이어 독일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음악 교육 차이를 체감한 경험이 있나요?
영국에서의 10대 시절은,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이었습니다. 러시아 출신 스승에게서 러시아 스타일 연주법을 배우면서도, 서유럽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경험을 했죠. 반면 독일에서는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영국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면, 독일은 전통에 더 깊이 집중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화성학적인 접근에서도 두 나라의 차이는 분명했고요.
현재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콜야 블라허를 사사하고 있는데요.
그는 학생마다, 그리고 같은 학생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연주자로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주는 데 집중하며, 기본기와 최상의 악기 상태 유지를 강조해요. 학생과의 음악적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조언은 하되 강요하지 않습니다.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음악가로 성장하도록 존중하는 것이 그의 교육 철학입니다.
이번 리사이틀 이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요?
다음 리사이틀의 테마는 무엇이 될까.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예술가로서 어떤 책임을 더 발견하게 될까. 이번 경험이 나의 성장을 얼마나 자극했을까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더 탐구하고 싶은 음악적 방향이 있다면 힌트를 주세요!
지금까지 후기 낭만파부터 초기 현대음악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이 흐름을 더 확장하고 싶어요. 후기 고전주의와 초기 낭만주의도 깊이 탐구하고, 특히 버르토크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해요. 미국 음악에도 관심이 많으며, 즉흥 연주와 편곡 작업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글 장혜선(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더브릿지컴퍼니
최송하(2000~)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영국 예후디 메뉴인 음악스쿨을 졸업,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콜야 블라허를 사사 중이다. 202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2023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2위 및 다수의 상을 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아트엠콘서트 -최송하’
3월 19일 오후 7시 30분 신영체임버홀
바흐 파르티타 2번 BWV1004,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외
최송하 바이올린 리사이틀(피아노 박영성)
3월 2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베체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슬픈 왈츠,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외







